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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제 3 장. 겨레의 꿈

5


응통은 밤이 늦어서야 지친 몸을 끌며 려각으로 돌아왔다.

비록 몸은 지쳤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자기와 의기가 맞는 상인을 만나 판로를 개척할 길을 열게 되여 마음이 몹시 가벼웠다.

지금까지 시장을 돌고돌아도 맞춤한 거래대상을 만나지 못해 실망했었는데 이렇듯 배짱이 맞는 상인과 사귀게 되여 기분이 좋았다.

그 상인은 왕창근이라는 락양의 대상으로 사람이 서글서글한 호인이고 여러 나라의 풍속과 지리에도 비교적 정통한 인물이였다.

그는 응통이처럼 운송상단을 끌고 전국각지를 떠돌며 장사하는 운송상인출신이였다.

《호랑이는 호랑이끼리, 늑대는 늑대끼리》 라는 속담처럼 유능한 장사군은 첫눈에 대방의 됨됨을 알아보는 법이다.

응통이 왕창근과 만나게 된 동기는 매우 간단했다.

저자거리를 돌아보면서 응통이 절실히 느낀것이지만 전대륙을 휩쓰는 동란으로 시장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거기에 능환을 위시한 후백제상인들이 들이닥쳐 저들이 가져온 약재를 헐값으로 마구 류통시키는통에 변주의 시장을 개척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응통은 이것이 자기를 축출하기 위한 후백제상인들의 술책인줄 알지만 그렇다고 남의 나라 도성 한복판에서 동족끼리 가격경쟁이나 벌릴 생각은 꼬물도 없었다.

물건을 헐값으로 시장에 내다 팔바에는 차라리 빈민구제에 돌리는것이 옳은듯 하여 질병으로 신음하는 빈민들에게 얼마간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그가 나누어준 약재가 얼마나 신통한지 그것을 달여먹은 사람들이 대번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앉았다.

특히 송악지방에서만 난다는 귀한 인삼의 효력은 뭇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지경이였다.

이 소문이 사방 나서 응통의 상단에 약재를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오늘도 저자거리를 돌고있는데 갑자기 한명의 상인이 다짜고짜 앞을 막아서며 자기와 거래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그가 바로 락양의 비단상인 왕창근이였다.

왕창근은 인삼이라는 놀라운 효능을 가진 귀한 약재를 파는 상단과 한번 거래를 해보려는 생각에서 이렇듯 저자거리에서 응통을 기다렸던것이다.

그들은 첫 대면에 벌써 상대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십년지기처럼 의기가 통하여 친한 사이가 되였다.

왕창근의 입을 통해 응통은 중원의 시장형편에 대해 보다 잘 알게 되였다.

지금 후량에서는 이전시기에 비할바없이 민가에서 짠 비단량이 급격히 늘어나고있다는것이였다.

그것은 강성한 초원의 유목종족인 거란의 강요로 후량이 해마다 막대한 량의 비단을 공무역의 명목으로 거란에 섬겨바치지 않으면 안되는 원인에서였다. 이 모든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많은 조세를 내고서도 세외부담으로 비단을 짜서 바쳐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무슨 말로 이야기하겠는가. 전문 비단을 짜는 제직자가 아니라 일반농가에서도 겨끔내기로 비단을 생산하다나니 질나쁜 비단이 시장에 마구 나돌아 좋은 비단은 제 값을 받을수 없었다.

가치가 떨어지는것과 함께 수요도 떨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응통은 왕창근의 말을 들으며 자기가 이번길에 유명한 송악지방의 문방구를 비롯한 많은 량의 잡화와 약재를 가져오기 얼마나 잘했는가를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왕창근은 응통이 꺼내주는 조화금과 어아금을 비롯한 값진 비단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옛날 당나라시기에는 신라와의 공, 사무역으로 이런 비단이 중원땅에 많이 나돌았으나 지금은 찾아보기 매우 드물었기때문이였다.

더우기 해마다 많은 량의 비단을 헐값으로 빼앗아가는 거란의 횡포로 하여 질나쁜 비단이 대량적으로 시장에 나돌고있어 비단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있었다.

이러한 때 유명한 조화금이나 어아금과 같은 비단들을 시장에 풀면 소비를 자극하여 다시 비단의 가치를 높일수가 있었다.

역시 왕창근은 소문그대로 통이 크고 다른 시전상인들보다 멀리 앞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는 다른 시전상인들처럼 무턱대고 값을 깎으려는것이 아니라 응통이 부르는 가격을 그대로 받아물었다.

비록 처음엔 손해를 볼수 있어도 차츰 비단의 가치가 오르게 되면 배로 보상받을수 있다는 배짱이 있었다.

응통이 료해해보니 왕창근은 대상도 이만저만한 대상이 아니였다.

왕창근은 이번 거래만 잘 이루어지면 자기와 정상적인 거래를 계속하자고 하였다.

그를 통해 지속적이면서도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한다면 응통의 이번 걸음은 성공한 걸음으로 될것이였다.

응통이 침구를 펴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진국에서 온 상단이 여기 있느냐?》

거칠고 탁한 호령소리가 울리는것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음을 짐작한 응통은 급히 벗어놓았던 옷을 꿰면서 마당으로 나갔다.

검정복색의 포졸들이 마당에 쫙 깔린것을 보고 소스라쳐 놀랐다.

《내가 바로 마진국에서 온 상단의 행수되는 사람이올시다. 무슨 용무이신지요?》

응통이 자기를 수습하고 침착한 어조로 물어보자 무리의 우두머리인듯싶은자가 사납게 눈을 흘겼다.

《고변이 있었다. 네가 고의로 독이 들어있는 약재를 류통시켜 사람들을 해친다고 말이다.》

응통은 너무도 뜻밖의 말에 아연해졌다.

《이건 터무니없는 모함이요. 우리가 준 약재를 먹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났으니 이제라도 저자거리를 돌며 물어보면 잘 알것이요.》

뒤따라 뛰쳐나온 을추가 소리를 높여 항변했으나 포졸들은 애당초 말을 받아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여봐라- 어서 행수를 잡아묶고 상단의 짐들을 몰수하라.》

우두머리가 호령하자 포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격분한 상단무사들과 일군들이 뛰쳐나와 좌우로 벌려서는것을 응통이 소리쳐 말렸다.

《별일없을것이니 모두 물러서거라.》

응통은 우두머리에게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상관도 없으니 나 혼자만 잡혀가게 해주시오.》

우두머리는 상단일군들의 기세가 험악한데 놀랐는지 처음보다는 누그러진 태도로 나왔다.

《그럼 행수만 가고 나머지 상단사람들은 여기에 그냥 남아있으면서 하회를 기다리시오.》

그의 눈짓에 따라 포졸 두명이 재빠르게 다가와서 붉은 포승을 펼쳤다.

응통은 순순히 오라를 지고는 태연한 기색으로 대문밖으로 걸어나갔다.

대문밖을 벗어나던 응통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우두머리를 향해 돌아섰다.

《한가지만 물읍시다. 내가 독이 들어있는 약재를 시장에 풀었다고 모함한자가 누구요?》

이미 응통의 인품에 압도된 그인지라 순순히 입을 열었다.

《당신네와 동족인 백제국의 상인들이요.》

변주판윤 하의는 초헌을 타고 집으로 가고있었다.

그는 중독되여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검시하고 돌아가는 길이였으므로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부중에 이번 사건의 주모자가 마진국상인들이라는 고변이 전해진것이 바로 오늘 아침이고 포도장을 보내여 진상조사를 시작한것이 중낮때쯤이였다.

처음에 하의는 이번 사건을 크게 보지 않았다.

그가 초보적으로 알아본데 의하면 이번 사건에 대한 고변자가 다름아닌 동족이라고 해도 마진국과 서로 적대하고있는 후백제상인들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진상조사가 진척될수록 피해자가 늘어나는것으로 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수 없었다.

증언자들의 말에 의하면 응통의 상단이 파는 약재를 먹고 중독되였다고 하는것이였다.

처음엔 민심을 끌기 위해 우정 빈민들에게 약재를 그저 나누어주고는 대량적으로 시장에 내다풀면서 약재에 독을 탔다는것이였다.

사건이 점차 복잡해지고 중독되여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하의는 포도장을 불러 마진국상단의 행수를 잡아가두게 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명하였다.

부중에 줄줄이 실려온 중독되여 죽은 시신들을 보니 눈에서 불이 일고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아무리 담대하기로서니 감히 남의 나라 도성 한복판에서 독약을 팔아 사람을 살해하다니…

더우기 어떤 경로로 알게 되였는지 유력한 조정대신들이 줄줄이 찾아와서는 도성에서 벌어진 사건인것만큼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것이였다.

조정대신들은 무턱대고 마진국상인들을 처형해야 한다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있으나 하의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맹목적으로 믿을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리라 마음먹고 수사진척에 앞서 집으로 가는 길이였다.

하의는 아직 서른살도 안된 젊은 대신이였다.

그의 부친은 후량왕의 수하에서 여러번 큰 공적을 세운 유명한 장군이였다.

부친이 전장에서 전사한 후 부친의 정적들에게 박해를 받아 가문이 졸지에 망하여 산지사방으로 흩어진것을 하의가 다시 일으켜세웠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젊은 나이에 많은 공적을 쌓아 후량왕 주전충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있었다.

변주판윤은 비록 관직의 품계는 높지 않아도 도성의 행정, 사법을 관할하는 직책이므로 그 위치가 매우 막중한 소임이였다.

하의가 집에 들어서니 청지기가 허리를 굽석굽석하며 그를 맞이했다.

《누님은 진지를 드셨느냐?》

하의가 이 말부터 꺼내자 청지기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진지를 건넸소이다. 병이 계속 도지는듯 한데 백약이 무효올시다.》

하의는 무거운 얼굴로 곧장 안채로 들어갔다.

그에게는 나이가 두살 우인 누이가 있었는데 부친이 전사한 후 서로 헤여졌다가 몇년만에야 다시 만날수 있었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누님을 대하는 하의의 지성은 극진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어렸을 때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하여 하의를 극진히 돌봐준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였다.

그런데 누님이 갑자기 중병을 앓으면서 백약이 무효이니 하의는 안타깝기 그지없어 속을 태우고있는중이였다.

그가 부중을 떠나 집으로 온것도 사실은 중요수사가 진척되면 며칠이고 집으로 들어올 날을 기약할수 없기에 누님의 병문안을 위해 우정 들린것이다.

하의가 안채로 들어가는 외랑에 들어서니 시녀들을 앞세우고 풍채가 그럴듯한 늙은이가 팔자걸음을 하며 나오는것과 맞다들리게 되였다.

늙은이는 하의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보였다.

그는 여기 변주에서 명의로 통하는 유명한 의원이였다.

《그래 누님의 병증세가 어떻소이까?》

하의가 이렇게 물어보니 의원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소인의 의술이 부족하여 마님을 완쾌시키지 못하니 참으로 죄송하오이다.》

《어떻게 방도가 없을가요? 누님은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오이다.》

그러자 의원은 깊이 생각하는듯 하더니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소인이 듣기엔 저 멀리 동방에서 난다는 인삼이라는 약재가 중병에 령험한 효력을 나타낸다고 하더이다.》

《인삼이요?… 구체적으로 말해주소이다.》

귀가 번쩍 트인 하의가 이렇게 말하며 의원에게 다가섰다.

《나도 인삼을 써보지 않아 잘 알수 없으나 소문에는 그 약재가 참으로 신기한 효능을 나타낸다 하더이다.》

《그 인삼이란것을 구해서 누님을 살릴 방도가 없는지요?》

안타깝게 부르짖는 하의의 얼굴을 주시하던 의원이 《방도는 있소이다.》라고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어제 소인이 마님과 꼭같은 병증세를 보이는 사람을 치료하러 갔었는데…》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중병을 앓는 환자로 말하면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다고 하는것이였다.

원래는 일찌감치 포기하려 했으나 의원의 처지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차마 도중에 포기하였다는 비난을 받을가 두려워 이것저것 약처방이나 떼주며 속수무책으로 있었다.

그런데 어제 그 집에 갔다가 의원은 놀라운 광경에 부딪쳤다.

도무지 소생할 방도가 없다고 단정했던 사람이 병석을 털고 일어나앉아있는 광경을 보고는 너무도 놀라 숨이 멎는듯 한 충격을 받았던것이다.

그래서 알아보니 저자거리에서 마진국상인들이 파는 약재를 사먹고 자리에서 일어날수 있었다는것이였다.

의원의 말이 여기까지 미치자 하의는 소스라쳐 놀랐다.

《마… 마진국상인들이 파는 약재라고 하였소이까?》

《그렇소이다. 바로 그들이 파는 인삼이라는 귀한 약재를 달여먹고 병석을 털었다고 하더이다.》

하의는 혼탁된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이럴수 있는가. 고변에는 그들이 독이 들어있는 약재를 저자에 풀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중독되여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하의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그럴수 없소. 마진국의 상인들은 독을 친 약재를 저자에 풀어 많은 인명을 살해하였소.》

그러자 의원은 랭소를 지었다.

《잘 조처하시오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제 손으로 뿌린 독약재를 시장에 내다풀겠소이까. 소인은 오히려 고변을 한자들이 의심스럽소이다.》

의원의 말을 곰곰히 되새겨본 하의는 누님에게도 들리지 않고 그길로 돌따서서 부중으로 갔다.

검시관을 불러 정확히 무슨 독에 중독되였는지 알아내라고 분부하고는 증언자들을 차례로 불렀다.

그들의 증언을 직접 청취하는 과정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것을 포착하였다.

중독되여 죽은자들은 하나같이 저자거리에서 산 약재를 먹고 죽었다는데 증언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약재를 산것은 확실하나 그것이 실지 마진국상인들에게서 샀는지 확실하지 않은것이였다.

이때 검시관이 헐레벌떡 취조장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하의는 좌우를 물리치고 검시관과 마주앉았다.

《그래 무슨 독에 중독되였느냐?》

하의가 엄하게 묻자 검시관은 이마에 흥건히 내밴 땀을 소매자락으로 훔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실은… 시신들을 부검한 결과 고의로 독을 푼것은 아니고 변질된 약재를 먹고 중독되였소이다.》

검시관의 말을 들은 하의는 신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마진국상인들이 빈민가에 푼 약재가 변질되였다는 소리가 아니냐?》

하의가 날카롭게 물어보자 검시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조사해보니 마진국상인들의 약재에서는 별로 이렇다할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소이다.》

검시관이 조심히 아뢰는 말을 들은 하의는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누가 독을 친 약재를 저자에 풀었겠는가?!…

세상에 자기가 독을 친 약재를 버젓이 저자에 나가 파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의는 그제서야 캄캄한 동굴속에서 갑자기 굴밖으로 뛰여나온듯 눈앞이 석연해짐을 느꼈다.

《백제국상인들은 조사해보았느냐?》

하의의 물음에 검시관은 고개를 저었다.

《조정대신들의 비호를 받는지라…》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판윤의 호령에 놀란 포도장과 포졸들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너희들은 이제 곧 저자거리 려각으로 나가 백제장사군들을 붙잡아들이고 그들의 짐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중으로 가져오라.》

포도장이 포졸들을 거느리고 저자거리의 려각으로 풀려나간 뒤 부중앞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진국상단의 응통의 무고함을 밝히겠다고 진정서라는것을 들고왔다.

하의는 자기가 하마트면 무고한 사람을 잡을번 하였다고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포도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아뢰는 말이 벌써 백제국상인들은 모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것이였다.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졌으므로 하의는 옥사에 갇혀있는 응통을 내놓으라는 령을 내렸다.

그는 응통이라는 인물이 못내 보고싶어 자기가 직접 옥사로 찾아가 포박을 풀어주고 부중으로 데려왔다.

서로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하는 과정에 하의는 응통의 뛰여난 식견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중원에 발을 들여놓은것이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지리와 풍속, 문물에 이르기까지 막히는데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명망있는 재사들과 학자들을 대면하였던 하의였으나 이렇듯 식견이 뛰여나고 명석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였다.

한창 이야기가 오고가던중 하의는 문득 생각이라도 난것처럼 응통이 가져온 약재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자에 푼 약재는 일부이고 아직 상인들과 계약을 맺기 위해 남겨놓은 약재가 많다는 말에 하의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제서야 하의는 자기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응통은 대번에 수락하였다.

인삼을 쓰면 나을 중병을 앓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 가만있을수 있겠는가 하면서 팔을 걷고 나서는것이였다.

하의는 너무 기뻐 당장에 마차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응통은 을추에게 려각에 가서 좋은 인삼을 몇뿌리 가져오라고 시키고는 하의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

응통은 제가 직접 환자의 맥을 볼 작정을 하였다.

이미전에 약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직접 중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본 경험을 가지고있는 응통인지라 웬만한 의원은 찜쪄먹을 실력이 있었다.

그러니 맥이나 보고 진단을 내리는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좋은 약이라고 해서 함부로 아무 사람에게 쓸것이 아니라 적중하게 써야 하기때문에 이렇듯 직접 맥을 보려는것이였다.

내실에 들어서니 향내가 감돌았다.

막상 지체높은 부인의 방에 들어서니 응통은 몸가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였다.

방 한가운데 발을 쳐놓았는데 발 저쪽에 누워있는 녀인의 자태가 은은히 엿보였다.

응통이 맥을 보기 위해 발앞에 단정히 꿇어앉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발이 활 걷히여지는것이였다.

응통은 물론 옆에 앉아있던 하의도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중병에 걸린 녀인이 갑자기 발안에서 뛰쳐나와 응통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우는것이였다.

당황한 응통이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정신을 수습한 녀인이 급히 자세를 바로하며 응통의 앞에 꿇어앉았다.

《오라버님은 어찌하여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나이까?》

《?!…》

응통이 눈만 꺼벅이고있자 비로소 녀인이 안타까운듯 소리쳤다.

《그렇게도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겠나이까? 등주에서 오라버님이 구원해준 성문이오이다.》

《아니?! 성문이가?…》

그제서야 응통은 그 녀인이 수년전 등주의 취향루에서 만나 구출해준 성문인줄 알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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