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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제 3 장. 겨레의 꿈

3


소금기가 어린 바다바람은 알지 못할 타향의 냄새를 기슭으로 날라오는듯 불어치고 기슭의 바위들에서는 거품이는 초록색파도가 끓어오르고있었다.

차겁게 식어버린듯싶은 해가 구름사이에 숨어서 대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정박장에 몰켜있는 크고작은 수십척의 배들은 파도가 들고나는대로 흔들흔들 오르내렸다.

불길한 정적이 정박장을 휩쓸고있었다.

응통은 지금 등주의 바다가기슭에 서서 아득한 저 멀리 고국땅을 바라보고있었다. 바다를 건너 등주에 발을 붙인지가 불과 며칠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수년세월을 보낸듯싶은 느낌이였다.

여기 등주는 몇해전에 응통이 다녀가고 또 동족이 많이 살고있는 곳이라 정이 붙을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온 느낌은 좀처럼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전혀 낯선 고장이 아니였으나 포구에 발을 붙일 때부터 타향의 애수가 가슴을 찌르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래서 옛사람들이 고향은 연기도 달다고 한것 같았다.

응통은 한숨을 길게 내쉬지 않을수 없었다.

수년만에 등주를 다시 찾았으나 그를 기다린것은 페쇄된 신라방의 쓸쓸한 페허뿐이였다.

능환이 배신적으로 거액의 상업자금을 가지고 후백제로 달아나서 숱한 상인들이 파산몰락하고 등주부에서는 이걸 트집잡아 아예 신라방을 페쇄해버린것이였다.

한때는 중원의 소문난 상업거점이 지금은 도적들에게 여러차례 략탈당하고 파괴되여 앙상한 잔해만 남아있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후량이 선 오늘에 와서는 등주의 저자거리에 신라방이라는 옹근 하나의 거리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차츰 사라져가고있었다.

사정은 발해관도 마찬가지였다.

능환의 배신행위로 피해를 본것은 신라상인들뿐아니라 발해상인들도 약차한 손해를 입은것이였다.

하여 총관인 여노자는 자리를 내놓고 딸 수나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고 차인행수를 하던 을추와 몇몇 상인들만 남아있었다.

응통은 그들에게 죄를 졌다는 죄의식에서 반가와하는 을추를 떼여놓고 도망치듯 발해관을 떠났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준것은 아니였으나 자기를 믿고 능환에게 상업자금을 대주었다가 파산몰락한 그들의 얼굴을 차마 마주볼수 없었던것이다.

응통은 능환의 처사가 못내 한스러웠다.

아무리 권력에 환장이 되였다 해도 어떻게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그렇게 쉽게 저버릴수 있으랴.

장사를 하는자에게서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신용이였다.

상대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장사군은 반드시 파산몰락하는 법이다.

바로 이러한 신용을 쌓아가는 과정이 상업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 즉 상도인것이다.

일시 술수를 부려서 거액의 상업자금을 그러모았다고 해도 상업계의 이러한 신용이 무너져버린다면 패가하기마련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천근추를 달아맨듯 무겁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능환이때문에 무너진 신용을 회복하고 이전의 신라방에 못지 않은 상업거점을 다시 내오겠는가?!

그가 여기 등주에 다시 온 목적도 바로 그것이였다.

등주에 새로운 상업거점을 내와서 새로 일어선 후량과 대대적인 교역로를 운영하려는것이 응통이 추구하고있는 목적이였다.

그것을 위해 이전에 여기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이렇듯 쓸쓸한 페허만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응통은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덧옷을 들고오는 미령의 모습이 눈앞에 안겨왔다.

배멀미로 일어나지도 못하던 미령이 이렇듯 멀리 포구의 바다가기슭에까지 나올줄은 생각도 못한 응통이였다.

《그만큼 숙소에 누워있으라 했거늘… 어찌 여기까지 따라온단 말이요?》

덧옷을 미령의 손에서 나꾸어채며 이렇게 어성을 높였던 응통은 며칠새에 배멀미로 몰라보게 파리해진 미령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돌아서고말았다.

그는 속으로 혼인한지 얼마 안되는 미령을 여기 머나먼 등주에까지 데리고온것을 몹시 후회하고있었다.

곡도로 귀양가는 응통을 따라나서서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돌봐준 미령이였다.

그때 미령이 따라가서 돌봐주지 않았다면 응통은 복귀는커녕 살아돌아오기조차 힘들었을것이였다.

곡도에서 송악으로 거기서 또 낯설은 타향에까지 미령을 데려와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자기가 새로 일어설수 있게 힘을 주고 늘 곁에서 말없이 도와주는 미령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에 응통은 얼굴을 붉혔다.

응통은 손에 든 덧옷을 미령의 어깨에 씌워주며 온화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바다바람이 차니 어서 들어가오.》

미령은 해쑥해진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같이 들어가시기 전에는 여길 뜨지 않겠사와요.》

응통은 그제서야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미령과 어깨 나란히 숙소를 향해 발을 떼였다.

《그런데 저…》 미령이 걱정어린 기색으로 응통의 무거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떼였다.

《여느땐 일에서 항상 결패를 보이시더니 여기에선 무슨 일때문에 주저하시나이까?》

응통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부인은 다 모를거요.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면하자면 하루라도 빨리 여기 등주에 거점을 내와야 하오. 그런데 원래 계획대로 변주(개봉)에 다녀와서 거점을 내오려면 시간이 한정없이 들겠기에 이 걱정이 아니요.…》

《그럼 랑군님은 계획대로 변주를 다녀오시오이다. 그동안 소녀는 여기에 남아 랑군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거점을 마련해놓겠소이다.》

응통은 대뜸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소? 여기서는 새로 신라방같은 상업거점을 내오겠다는 내 제의를 끝내 거절했소. 이제 남은 방도란 량나라의 도성인 변주로 가서 해당 관청에 신청서를 내고 승인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뿐인데… 그러자면 시간이 너무 들거던.…》

그러자 미령은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마시와요. 새로 허가해주길 기다릴것 없이 이미 있는것을 리용하시오이다.》

응통은 놀라서 두눈이 커졌다.

《그건 무슨 말이요?》

그제서야 미령은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총관인 여노자가 발해로 가버린 후에 발해관은 붙어있던 상인들이 뿔뿔이 헤쳐져 빈집과 다름없이 되여버렸다.

지금 발해는 급격히 강화되는 거란과의 대결로 새로 당나라를 대신하여 일어선 후량과의 교류를 가질 처지가 안되였다.

이러한것으로 하여 발해관 역시 본국과의 련계마저 차단되여 페쇄될 지경에 이르렀던것이다.

하여 차인행수 을추를 비롯한 발해관의 남은 상인들은 아예 이곳을 유력한 상단에 넘겨줄 잡도리인가본데 이 발해관을 접수하여 상업거점으로 만들면 어떤가 하는 의견을 내놓는것이였다.

미령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응통은 고개부터 내저었다.

《그 생각은 아주 좋으나 나는 차마 발해관을 수중에 거두지 못하겠소. 능환이 나를 빗대고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몰락시켰으니 결국은 나하고도 관계되는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을 내놓으라 하는것은… 아니, 난 못하겠소.》

미령은 응통의 어깨에 살풋이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누구도 랑군님을 탓할 사람이 없소이다. 그러지 않아도 좀전에 을추행수가 찾아왔댔나이다. 그를 통해 랑군님이 여노자총관의 따님을 구하겠다고 산적들과 싸운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응통은 점직한듯 얼굴을 붉혔다.

《원, 사람두… 그게 무슨 공적이나 된다고 말하면서…》

미령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왜요? 얼마나 흥미가 동하던지… 아마 우리가 혼인을 맺지 않았으면 랑군님을 질투했을것이오이다.》

미령은 곧 정색하여 입을 열었다.

《을추행수가 그러는데 지금 등주의 상인들이 발해관을 헐값으로 빼앗으려고 한다고 하오이다. 그래 을추행수는 동족인 우리에게 그것을 넘길 의향을 알리러 왔다고 하더이다.》

신중한 기색으로 미령의 말을 다 들은 응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미령의 말이 옳았다.

등주의 상인들에게 넘길바엔 차라리 자기가 그것을 넘겨받는 편이 량자에게 다 좋을것이였다.

《소녀가 랑군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모든 문서들을 다 갖추어놓고 손색없이 꾸려놓겠으니 마음놓고 변주에 다녀오시오이다.》

미령의 말을 다 들은 응통은 그제서야 걱정하던바가 일시에 사라져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미령이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 응통은 발해관의 차인행수를 불러 발해관의 인수에 대한 의논을 마친 후 원래 계획대로 변주성으로 장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을추는 내지로 장사를 떠나겠다는 응통의 말을 듣자 몹시 흥분되여 함께 가자고 간청하는것이였다.

응통과 함께라면 세상끝에라도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섰다.

응통은 처음에 발해관의 인수문제도 있고 하여 그를 등주에 그냥 떨구어두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을추가 여기 떨어졌댔자 크게 할일도 없으니 중원의 지리와 형세에 밝은 그를 데려가는게 여러모로 좋을것 같다는 미령의 권고를 듣고 함께 가기로 하였다.

차인행수는 이번 길이 치부를 목적으로가 아니라 떨어진 발해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것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간수해두었던 많은 량의 진귀한 털가죽을 꺼내놓았다.

응통은 능환의 일로 자기를 원망하는것이 아니라 장사를 해도 동족끼리 손을 잡고 장사를 하겠다는 그의 진심에 감복하여 함께 손잡고 변주로 가서 크게 판을 벌리기로 약속했다.

사실 응통의 이번걸음은 신라시기 사신단을 따라간 상인들이 벌리는 공무역이나 다름없는 행보였다.

이전 시기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있었으나 서로 정권이 바뀌여 아직까지 대외관계를 수립하지 못한 두 나라사이에 교류의 길을 열어놓자는것이 바로 응통이 여기 온 목적이였다.

후백제가 오월국과 국교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궁예는 자기도 중원과 교류의 길을 열어놓을 야심을 가지게 되였다.

원래 궁예는 이것을 관나에게 위임할 작정이였으나 응통이 왕건의 후원으로 귀양에서 돌아와 라주지원에서 또다시 큰 공적을 세운것으로 하여 하는수없이 그에게 이번 일을 맡기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근이 부자가 국고를 장악하고 나라의 재정을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로 조정의 원로대신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고있을 때 또다시 관나에게 이 일까지 일임하면 걷잡을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것을 우려하는 궁예였다.

이번 라주지원으로 또다시 크게 일떠선 송악세력, 중요하게는 조정내에 강한 세력지반을 형성한 왕건을 무시할수 없어 취해진 조치였다.

또한 오만무례하고 독선적인 궁예가 검용의 아들 응통에게 이 일을 맡긴데는 왕건의 후원도 후원이지만 중요하게는 응통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는데 있었다.

이번 후량과의 교류는 누굴 내세우고말고가 아니라 나라의 중대사인것만큼 보다 능력이 높은자가 나서야 가능한것이였다.

지역적으로 협소하고 늘 후백제와 교전상태에 있는 마진국은 시장을 국외로 확대하지 않으면 국력을 추켜세울수가 없었다.

비록 관나가 능력은 있으되 응통에게 미치지 못하는바가 많다는것을 실천적으로 확인한 궁예였다.

하여 관나의 간청을 무시하고 응통을 등주로 파견한것이다.

바꾸어 말하여 응통이 이번 일을 성공하지 못하면 곧 파멸한다는 운명의 예고이기도 했다.

그것은 응통이 실패하고 돌아오면 궁예가 가만있지 않을것이기때문이였다.

자기 혼자라면 파멸되든 죄를 쓰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든 두려운것이 없으나 일이 그렇게 되면 응통에게 의탁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도 파멸하고말것이니 응통이 제일 걱정하는것이 바로 이것이였다.

응통이 다시 송악고을의 동시전의 행수로 복귀하자 이전에 그와 련관된 수많은 상인들이 다시 찾아온것은 몰론이요 나라의 상권을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는 두근에게 불만을 느낀 많은 상인들과 상단들이 주위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하여 응통은 자연히 두근의 시전세력과 적수가 되고말았다.

자기에게 의탁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응통은 상도를 무시하고 횡포를 부리는 두근이의 시전세력을 상대로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여기서 성공하는가 아니면 다시 두근에게 짓밟히는가는 응통에게 모두 달려있었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변주(개봉)는 중원의 《문명》이 고도로 집약된 대도시였다.

춘추전국시기 정나라가 도읍을 정한 이후로 변주는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력사의 증견자가 되였다.

여러 왕조의 도읍으로 대를 내려온 변주는 당나라시기에 와서는 인구가 수십만이나 되는 중원최대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청장고원의 북동부 바얀카라산줄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황하의 물결은 구불구불 중원땅을 꿰질러 남쪽으로 흐르다가 바로 변주를 감돌아 동쪽으로 흘러 발해만으로 빠져나간다.

황하가 감돌아흐르는 변주는 지대가 황하의 물면보다 낮은것으로 하여 고대시기부터 사방 제방뚝을 쌓아 도시가 물에 잠기지 않게 하였다.

말그대로 강물우에 건설된 도시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한것으로 하여 변주는 일찌기 수상업이 발전하고 상업류통의 중심지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루에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진흙벽돌로 쌓아올린 성밖으로 나갔으며 사방으로 부채살처럼 뻗어나간 길로는 중원 각지에서 생산된 물품들이 쉴새없이 들고나갔다.

변방의 여러 이민족들에게서 조공의 명색으로 받아들이는 교역품이 짐바리에 산같이 실려 성안으로 줄줄이 들어와 중원의 물품과 교환되였다.

변주는 말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립추의 여지도 없이 수십만의 사람들로 붐비는 대표적인 소비도시이며 상업의 중심지였다.

성안을 가로지른 대로는 물론이요 네거리 각지에 널려있는 수십여개의 큰 저자들에서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비고있었다.

수만채의 크고작은 집들에서 울려나오는 각종 소음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묘한 대조를 이루어 성안이 떠나갈듯 하였다.

이러한 변주성이 당나라 말기에는 큰 병화를 겪어 알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였었다.

중원대륙을 통채로 뒤흔들어놓은 황소의 란의 직접적인 파동이 변주를 덮쳤던것이다.

전중원대륙을 뒤흔든 황소의 반란군이 여기 변주성을 점령한것이다.

그러나 황소가 천하에 공포한 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져내리고말았다.

지방의 번진세력을 규합하여 력량을 수습한 당군의 반격과 내부분렬로 장안을 내놓고 여기저기 쫓겨다니던 끝에 황소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말았다. 그때 황소의 반란군에 점령된 변주성탈환을 위한 치렬한 싸움이 벌어져 변주는 처참하게 황페화되였다. 그후 당나라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다시 성곽을 고쳐쌓고 불타고 략탈당한 궁전들과 관청건물을 다시 세우는 등 품을 들였으나 쇠퇴몰락하는 나라의 힘으로는 이전시기의 위용을 되살릴수 없었다.

907년 당나라를 뒤엎고 스스로 량왕이 된 주전충(주온)은 변주에 대한 대대적인 복구를 천하백성들앞에 공포했으나 아직까지 국력이 자라지 않아 그저 황소의 란때 불타버린 건물을 여러채 세우는데만 그쳤다.

하지만 역시 오랜 상업도시의 《관록》이 모두 없어진것은 아니였다.

전란으로 떠나가버린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집을 세우고 상인들은 닫아버린 점포의 문을 열었으며 후량의 건국으로 여러 나라의 사신행차가 줄을 잇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활발한 대외무역이 재개되였다.

한마디로 중원의 상업중심지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것이다.

응통이 상단을 끌고 변주성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의 실태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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