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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회

제 2 장. 후삼국

6


얼마간 평온한 나날들이 흘러가는가싶더니 갑자기 뜻하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어 후고구려국의 도성인 송악성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금성이 위급하다는 급보가 올라와 온 조정이 설설 끓게 되였던것이다. 금성은 견훤의 잔등에 박힌 비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또한 지리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있어 앞으로 견훤이와 궁예와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전장이 될수 있었다.

이러한 금성의 중요한 전략적지위를 잘 알고있는 궁예이기에 금성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반면에 지리적으로 궁예의 후고구려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병력의 보충과 후방물자의 보급을 잘할수 없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전략적으로 몹시 중요한 금성이 신라에서 떨어져나와 견훤이 아니라 궁예에게 항복의 뜻을 보내여왔을 때 궁예는 너무 기뻐 춤까지 추었었다.

지금까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여 견훤이 금성을 타고앉기 위한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 견훤에게 먹힐지 몰라 발편잠을 자보지 못한 궁예였다.

그런데 이렇게 우려하던 일이 불쑥 현실로 닥쳐왔던것이다.

북방의 후고구려국과 대치하고 나라의 동쪽으로는 죽기로 항거해나서는 신라의 잔여세력과 싸움을 벌리느라 미처 금성을 돌아볼새 없었던 견훤은 차츰 전선형편이 펴이고 계림의 세력권에서 많은 성들이 떨어져나와 후백제국에 항복해온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비밀리에 정예무력을 금성방면으로 돌렸던것이다.

이제는 어차피 금성을 놓고 견훤이와 피투성이싸움을 벌리는 길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싸움을 하려면 금성으로 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병력의 수송도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거기로 많은 량의 치중물자를 보내는것이 가장 큰 난사였다.

견훤이 금성을 두겹세겹으로 봉쇄했기때문에 한알의 쌀도 들어가지 못하고있었다.

전선을 넘어 륙지로 그 많은 군량과 군수기재를 수송한다는것은 황당한 꿈이였다.

오직 바다길만 열려있는데 거기는 이미 견훤이 파놓고있는 함정이였다.

견훤은 금성을 지원하려고 후고구려국의 수송선단이 내려온다면 단숨에 그것을 격파하고 치중물자를 빼앗을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궁예의 후고구려국은 륙군은 패서의 변방수비군출신의 용맹한 기병을 가지고있어 견훤의 군사보다 우세할지 몰라도 수군은 후백제군에 비해 완전히 렬세했다.

그것은 견훤이 반변을 일으킬 때 이미 신라수군의 주력함선들과 수군을 고스란히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에 비하면 후고구려수군은 왕륭부자가 궁예의 수하로 들어올 때 가지고온 상선들과 천여명의 배군이 전부였다.

이것을 가지고는 바다싸움을 치를수 없을뿐아니라 자칫하면 얼마 안되는 배들마저 수장될수 있었다.

후고구려국은 이렇듯 큰 위기에 직면했던것이다.

궁예는 눈앞에 닥쳐온 위기를 제거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때를 놓치고 속수무책으로 있다가는 견훤이 신라를 멸망시키고 수륙량면에서 대대적인 북상을 개시할것이였다.

궁예는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수하장수들을 불러들여 국방회의를 열었다.

궁예의 잔혹한 성미를 잘 알고있는 여러 장수들은 저마끔 눈치보기만 하며 서뿔리 입을 벌리려고 하지 않았다.

하도 답답한지 원표가 나서서 헛기침을 하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에는 바다로부터의 공격은 포기하고 기병을 동원하여 대야성방면으로 진군해야 할줄 아오이다.》

궁예의 오랜 부하들인 대검, 신현 등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무모한 싸움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오는 길이요. 설사 장군의 의견대로 대야성과 금성을 탈취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을 지키기 위한 치중보급과 병력의 보충을 무엇으로 할테요? 하늘을 날아건너보낼 방도가 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니요?》

《그럼 두분 로장은 팔짱을 끼고앉아 견훤이 날치는것을 관망하시려는거요?》

《누가 그렇다오? 좀더 신중한 의견을 찾아내자는것이지.…》

제 부하들의 아귀다툼을 강건너 불보듯 바라보고있던 궁예가 별안간 왕건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찬은 어찌 함구무언인가? 한번 계책을 정해보게.》

모두의 시선이 왕건에게 집중되였다.

왕건은 침착하게 반렬에서 빠져나와 궁예의 앞에 부복하였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바다싸움밖에는 딴 계책이 없으리라 생각하오이다.》

궁예는 외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승산이 있을가?… 저들은 몇배나 되는 수군을 가지고있지 않는가?》

《바로 그것이오이다. 모름지기 그들도 생각이 같을것이니 허약한 우리 함대가 금성으로 쳐들어온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것이오이다. 견훤의 수군이 강한것은 싸움배가 많기때문인데… 그 싸움배들이 광주 앞바다에 많이 집결되여있소이다.

먼저 광주를 치고 그 배들을 불살라버린 후 금성으로 곧장 쫓아내려가 그 고을을 타고앉는것이 상책인줄 아오이다.》

궁예는 미타한듯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런데 말처럼 쉬이 될가?…》

왕건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연한 웃음을 지었다.

《대왕, 수군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소이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도중전투를 피하고 남쪽으로 내려간다는것은 황당한 꿈이요.》

《견훤이 가만히 팔짱을 끼고앉아 아군의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겠답디까. 그건 스스로 불에 뛰여드는 어리석은짓이요.》

여러 장수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자 궁예는 사납게 외눈을 흘기며 손을 들었다.

《마지막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웬 소란이냐?》

좌중이 조용해지자 궁예는 손짓으로 다음말을 재촉했다.

왕건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수군은 오히려 별개의 무력이오이다. 설사 수군의 힘만으로 금성까지 내려가 상륙한다고 해도 패전은 자명한 리치오이다.

제 결심은 이렇소이다. 우리 수군으로 하여금 적의 주력함대를 유인하게 하고는 군사를 배에 싣고 불의에 남하하여 광주에 상륙한다면 승전을 기할수 있나이다.》

《아찬의 계책이 심히 좋다마는 그 많은 전함을 어디서 구할텐가?》

궁예가 이렇게 반문하자 왕건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오이다. 물우에서의 싸움이 목적이 아닌것만큼 군사를 수송할 배만 있으면 되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신라의 조세를 실어나르던 조운선이 수백척이나 있소이다.

신이 혹 후날 쓸모가 있을것 같아 미리 사람들을 시켜 수리하도록 하였으니 수송선으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것이오이다.》

궁예는 감탄하여 혀를 내둘렀다.

과연 왕건은 용의주도하고 지략이 훌륭한 무장이 틀림없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고리를 대번에 꿰뚫고있었던것이다.

궁예는 왕건의 계책대로 하기를 결심했다.

《좋네. 그런데 병력의 수송은 경의 뜻대로 한다쳐도 치중물자의 보급은 무엇으로 할텐가?》

궁예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왕건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여쭈었다.

《저, 그것은… 지금 해상교역을 전문하는 송악의 동시전상단이 바다건너 등주에 가있는데 속히 불러들여 이번 원정에 배속시키려고 하나이다.》

그러자 궁예가 벌컥 성을 내는것이였다.

《아찬은 이게 아이들 놀음인줄 아는가? 바다건너에 있는 상인들을 어느 하가에 불러오겠는가?》

궁예는 소름끼치는 외눈으로 왕건을 노려보더니 만장에 대고 선포했다.

《나의 뜻은 이렇다. 아찬은 견훤을 물리치고 금성고을을 타고앉아야 할 막중한 소임을 맡고있으니 병력의 수송에만 힘을 돌리거라. 후방물자의 치중보급은 창업에 큰 공을 세운 두근상단에 맡길것이다.》

궁예의 이러한 선포에 장내가 통채로 술렁거렸다.

물론 두근이가 막대한 재부를 손에 쥔 거부이며 옛 신라의 시전상인들의 두목이므로 후방물자의 지원같은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을것이지만 륙로장사를 전업한 그가 해상으로의 후방물자보급을 무난하게 할것인가가 가장 큰 난사였던것이다.

해상수송을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변변한 배도 가지고있지 못한 그의 상단에 이러한 중임을 맡기는것은 너무도 큰 무리였다.

낯색이 질린 왕건이 반렬에서 나와 궁예를 향해 다시한번 간청했다.

《대왕님, 신이 어떻게 해서든 배를 마련하고 군수물자들을 준비하겠으니 그 령을 거두어주시오이다. 물론 두근의 상단이 창업에 큰 공을 세운것은 사실이나 해상수송과 수전에 전혀 경험이 없으니 일을 그르칠가 두렵소이다.》

왕건이 이렇게까지 간청해나서자 궁예는 마지못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좋다. 그대의 결심이 정 그렇다면 송악의 상인들도 이번 원정에 배속시키도록 하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원정에서 기본은 두근의 상단이 맡을것이다.》

왕건은 궁예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더이상 요구하지 못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번 조치는 왕건을 위시한 송악세력을 꺼려하는 궁예의 우려심이 짙게 반영된 조치였다.

왕륭이 죽은 후 그의 재부와 세력을 물려받은 왕건이 세력을 확장할것을 두려워하는 궁예는 이렇듯 막강한 재력으로 자기를 뒤받쳐주는 두근에게 채를 넘기려고 작정한것이였다.…


궁예는 밤이면 변복을 하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 큰 싸움이 터질것이라는 소문으로 뒤숭숭할 때 궁예는 여전히 습관대로 조용히 궁궐을 빠져나왔다.

수행원이라야 궁예의 부름을 받고 철원에서 급히 올라온 관나와 호위무사 한명만이 뒤를 따를뿐이였다.

저자거리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몹시 붐비였다.

송악은 역시 전통이 있는 오랜 도시였다.

전란의 불길속에서도 활기를 띠고있었고 고구려이래로 대를 물려온 건축물들이 성안에 비좁게 솟아있었다.

궁예는 천천히 저자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갔다.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치며 어디론가 우 몰려가는것이였다.

서로 밀고닥치며 찾고부르는 소리에 귀가 멜 지경이였다.

궁예는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는가싶어 급히 지나가는 한 녀인을 붙잡고 캐물었다.

《어디서 불상사라도 생겼소?》

《손님은 이 지방태생이 아닌가보군요. 생불님이 오셔서 강론을 하신답니다. 모두 생불님을 보겠다고 저 아우성이예요.》

궁예는 깜짝 놀랐다.

《아니, 생불이라니?!…》

《원, 이렇게 깜깜이라구야. 명망높은 석총대사님도 모르시오이까?》

궁예는 한순간 아연해졌다.

이윽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궁예는 자석에라도 끌린것처럼 석총이 강론한다는 석불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석불사는 발을 들여놓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궁예는 관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위무사를 앞세우고서 필사적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거칠게 등을 떠밀리우고 어깨를 다친 사람들의 입에서 거친 욕지거리가 터져나왔으나 궁예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아직 강론이 시작되지 않았는지 절당앞에서는 십여명의 중들이 바삐 움직이며 한치한치 앞으로 조여드는 군중을 정돈시키고있었다.

이윽고 자리가 마련되자 절당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수십여명의 중들이 쏟아져나왔다.

향불이 타는 냄새가 군중의 머리우를 감돌았다.

《저런 망할…》

궁예의 입에서 불시에 이런 쌍말이 튀여나왔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있는데도 궁예는 제 김에 불그락푸르락 성을 내였던것이다.

중년나이의 중이 품위있는 걸음으로 절당앞으로 걸어나와 자리에 단정히 앉았다.

무엇으로 섭생했는지 불깃불깃하게 살이 찐 얼굴에 부처연한 웃음을 부드러이 짓고 군중을 내려다보고있는 중의 모습은 아주 자신만만하였다.

궁예는 그가 다름아닌 석총이라는 법명을 가진 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석불사의 주지이하 여러 중들이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석총의 주위를 맴돌고있었다.

궁예는 생각할수록 비위에 거슬렸는지 옆구리에 찬 장검자루를 꾹 쥐였다놨다하는데 외눈은 점차 표독스러운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궁예의 표독스러운 성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관나는 혹시라도 그가 저자거리 한복판에서 망동이라도 부릴가싶어 은근히 두려움에 휩싸였다.

드디여 석총이 입을 벌려 강론을 시작했다.

군중은 침묵하고서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끌린듯 석총의 강론을 정신없이 듣고있었다.

석총의 강론은 마치 산골물이 곬을 따라 흘러내려가듯 거침이 없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궁예에게는 석총의 강론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단숨에 장검을 뽑아들고 뛰여나가 석총의 굵직한 목을 베여버리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치밀어올랐다.

민심이 석총에게로 쏠리는 광경을 보니 질투의 감정이 솟구쳤던것이다.

(이놈들이 뉘덕에 쌀알을 목구멍으로 넘기기에 저 요사스러운자의 잡설에 귀가 솔깃해있는것이냐?)

궁예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참을성있게 석총의 강론을 마지막까지 들었다.

《대왕님, 이젠 강론도 끝났으니 궁으로 돌아가심이 어떻소이까?》

강론이 끝나자마자 관나가 이렇게 조심히 여쭈었다.

궁예는 뜻밖에도 선선히 관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궁성앞 광장에서 발걸음을 멈춘 궁예는 뒤에서 따라오는 관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나야, 이 천하가 누구의 천하냐?》

궁예가 다짜고짜 이렇게 묻자 관나는 얼떠름해졌다.

《천하야… 대왕님의 천하가 아니오이까?》

《아니다.…》 궁예는 코웃음을 치며 관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너도 방금 보아서 알겠지만 표면상으로는 내가 창검의 숲을 헤쳐 피흘려 세운 나라이지만 저 석총이같은 놈들이 다스리니 나의 천하라고 할수 없지 않겠느냐?》

관나는 궁예의 말하려는 취지가 무엇인지 모르는바가 아니였으나 입부리를 조심하려는 생각에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는 궁예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궁예의 출생에 대한 비화를 유일하게 알고있는 관나로서는 자기 보신책의 하나로 자기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웠던것이다.

《땅을 떼여가졌다고 그 지배자가 되는것이 아니다. 그 백성을 자기것으로 만들어야만 천하를 내것으로 만드는것이다. 그런데 저렇듯 피 한방울을 흘리지 않은 석총같은자들이 민심을 거두어쥐고있으니 어디 될 말이냐?》

남달리 자존심이 강한 궁예는 도저히 이러한 사실을 묵새길수가 없는지 한바탕 이렇게 쏟아놓았다.

관나는 더이상 침묵만 지키고있을수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두었다가는 조폭하기 그지없는 궁예가 무슨 일을 벌릴지 몰랐던것이다.

《대왕님, 고정하시오이다. 석총같은자들이 민심을 걷어쥐고있는것은 일시적인것에 불과하고 대왕님의 대업은 영원한것이 아니겠소이까. 오히려 저런자들을 포섭하여 백성들의 정신을 그러쥘수만 있다면 그것이 다 대왕님의 복이 될것이오이다.》

관나가 이런 말로 간곡히 말해서야 궁예의 태도가 별안간 누그러졌다.

《저런 놈들을 포섭하여 리용해야 한다는 네 말이 일리가 있다. 하지만…》

궁예는 불시에 말을 끊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소름끼치게 쏟아놓는것이였다.

《…내게 치욕을 준 석총이같은 놈은 반드시 산채로 말리워 죽이겠다.》

관나는 궁예가 무슨 속생각을 가지고있는지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하여 궁예가 무서운 생각을 가지게 한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으로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관나는 그러한 불안을 곧 가슴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랬으면 어쨌단 말인가.

맹수를 길들이려면 맹수에게 물릴 각오쯤이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맹수가 사나울수록 사냥물이 많아지기마련이다.

《금성군으로 갈 준비는 어찌되였느냐?》

궁예가 이렇게 묻자 관나는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역시 배를 구하는것이 제일 난사이오이다.》

《이번 일은 나라의 중대사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궁예가 차거운 태도로 못을 박자 관나는 지금까지 품고있던 의문을 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대왕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번 일을 소인에게 맡기시려 하시나이까?》

궁예는 실실 비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너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 아니겠느냐. 실은 너의 아비가 해상교역권을 독점할수 있게 해주면 철원에 궁성을 짓겠다고 하였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관나는 궁예의 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미전에 궁예왕의 결정뒤에 아버지 두근의 손이 미쳐있으리라 짐작은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로골적으로 송악의 상인들이 가지고있는 해상교역권에까지 욕심을 두고있을줄 생각도 못했던것이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어디서 어떤 화를 불러올지 누가 알겠는가?!…

관나는 아비의 이번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얼굴색이 무거워졌다.

관나를 노려보던 궁예는 소름끼치는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관나야, 명심해라. 내가 널 내세워주는것은 너에게 입은 신세를 갚으려는것보다도 나라에 큰 상인이 여럿 되는것을 내가 바라지 않는것이라는걸 말이다. 이 나라에선 나를 받들 장사군이 한명이면 되느니라. 무자비해라, 네앞을 막는자가 누구이든 서슴없이 칼로 베거라. 그것이 바로 이 나라의 유일한 대상인이 되는 길이다.》

관나는 궁예의 말을 듣고 소스라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궁예의 잔인한 외눈이 관나를 무섭게 노려보고있었다.

금성고을을 치는 원정군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몇척의 배에 실은 군수물자를 날라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라는것을 관나는 비로소 깨달을수 있었다.

관나는 궁예앞에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쳤다.

《명심하겠소이다. 나라의 대상인이 될수만 있다면 그가 누구든 한칼에 베여버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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