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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 2 장. 후삼국

3


드디여 궁예군이 출전했다.

충주, 청주, 당성, 광주, 괴양 등지에서 활동하던 청길, 신훤 등의 적지 않은 농민군이 귀순해온 덕택으로 궁예의 후고구려국은 자기의 력량을 자유로이 배비변경할수 있었을뿐아니라 정예라고 할수 있는 귀속한 송악군의 군병력을 시급히 남쪽으로 집결시켜 충주, 청주방향으로 진격시킨것이다.

이 송악군병력에 부과된 임무는 충주, 청주방향에서 저항하는 반란군을 격파하고 북상하고있는 견훤의 후백제군을 격멸소탕하는것이였다.

궁예는 시기를 잘 선택하였다고 할수 있었다.

충주와 청주의 반란군이 당성, 괴양 등지의 청길, 신훤 등의 농민군과 서로 싸우고있는 조건은 그로 하여금 천하를 제패할 야심을 품고 대대적인 북상에 진입한 견훤의 후백제군을 격멸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것이다.

궁예는 송악군 태수 왕건에게 2천명의 정예병을 내주어 급히 당성, 괴양 등지로 내려가 청길, 신훤의 농민군을 흡수하여 질풍같이 쳐들어오는 후백제군을 무조건 저지시키라는 령을 내렸다.

왕건은 북원방향에서 량길의 잔당들을 소멸하고 개선하는 원표의 군사와 합세하고 당성, 괴양 등지로 진출하였다.

사실상 후고구려군은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다같이 가지고있다고 할수 있었다.

후고구려군에 있어서 유리한 점은 지형상 후방인 송악군과 가까운 관계로 군대의 치중보급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는것이다.

원래 왕건이 송악의 대토호출신인것으로 하여 많은 량의 군량을 자체로 조달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다가 각지의 상인들과도 인맥이 깊어 후방물자의 조달같은것은 문제로 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궁예가 각별히 대하는 대상인 두근의 아들 관나가 병참관이 되여 군의 치중보급을 전적으로 맡고있으니 후고구려군은 마음먹은대로 전선을 확대하고 군의 빠른 기동을 보장하고있었다.

하지만 불리한 점은 군대의 지휘가 하나로 통일되여있지 못한것이다.

후고구려군은 원표가 이끄는 궁예의 직속부대와 왕건이 이끄는 송악군의 무력, 당성, 괴양 등지에서 새로 항복한 청길, 신훤 등의 농민군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실지 후백제군을 격멸할 소임을 맡은것은 송악군 태수 왕건이였으나 원표는 자기가 궁예의 직속부대를 거느리고있으며 선배라는것을 등대고 왕건의 지휘에 굽어들려고 하지 않았으며 청길, 신훤 등 농민군의 두령들은 나이가 많은것을 내세우며 애젊은 무장인 왕건의 군령을 건성으로 대하군 하였다.

바로 이러한것으로 하여 후고구려군은 초기에 이룩한 전과를 확대할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당성, 괴양 등지에 주저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은 후백제군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주었다.

후백제군의 수장은 금달이라는 유능한 장수였다.

그는 원래 완산의 대상인이였던 영창의 부하로 있다가 영창이 죽자 견훤에게 가붙어 오래동안 전장을 누비며 많은 공을 세운 무장이였다.

싸움에서 용맹하고 지모가 비상한 금달은 적아의 력량관계를 깊이 타산해본 후에 자기가 승전할 방도는 불의의 기습공격으로 적의 보급로를 끊고 혼란된 후고구려군을 앞뒤로 들이치는것이라는것을 절감했다.

후백제군은 먼길을 왔으므로 가져온 군량이 많지 못한데다가 보급로가 길어졌기때문에 시급한 지원을 기대할수 없었다.

방도는 하나 현지의 농민들에게서 식량을 징발하는것인데 여기는 궁예의 세력권이라 그것은 불가능한것이였다.

이런 상태에서 치중보급이 잘 보장되는 후고구려군과 정면으로 싸웠댔자 싸움의 승패는 너무나도 뻔했다.

그러나 후고구려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집중공격을 가한다면 승산이 있는 싸움으로 될것이였다.

금달이 이번 원정에 이끌고온 후백제군은 이전의 관군출신군사들이 주력을 이루고있었다.

그것은 후백제왕 견훤이 신라해안방어군의 비장으로 있다가 반변하였으므로 신라해안방어군에 소속되여있던 정예군병이 후백제군의 주력을 이루고있는 사정과 관련되여있었다.

거기에 비하여 궁예의 후고구려군은 태반이 농민봉기군출신들이라 머리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정면으로 맞부딪친다면 승패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수 없는것이였다.

궁예군의 공격에 패하여 물러선 충주, 청주의 반란군을 흡수하여 군세를 확장한 후백제군은 곧 당성고을을 칠것처럼 부산을 피우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금달의 속임수라는것을 알리 없는 후고구려군은 각지로 나갔던 군사들을 당성고을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후고구려군은 당성고을에서 결전을 치르어 후백제군을 물리치려는것이였다. 이것은 정녕 금달이 바라는대로였다.

그는 당성고을쪽으로 후고구려군의 주력이 집결하면 동성서격으로 불의에 괴양고을을 기습공격하여 거기에 머물고있는 후고구려군의 치중부대를 섬멸하고 보급물자들을 빼앗으려고 마음먹고있었다.

송악군 태수 왕건이 그만큼 당부했지만 공명심에 사로잡힌 원표는 괴양고을에 치중부대만 떨구어두고 수하의 무력을 모두 거느리고서 당성고을을 향해 진격했다.

금달은 우정 새로 투항한 충주, 청주의 농민군들을 선봉에 내세워 당성고을을 향해 쳐나올것처럼 부산을 떠는 한편 자신이 직접 정예군사들을 거느리고 괴양고을을 불의에 기습공격했다.

금달의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는 후고구려군의 치중부대를 치고 보급물자의 전량을 빼앗았을뿐 아니라 괴양고을을 타고앉아 전과를 확대할수 있는 거점을 마련할수 있었던것이다.

후고구려군은 이렇다할 전략을 세울수가 없어 갈팡질팡했다.

왕건은 급히 전선을 좁히고 군사를 뒤로 물리도록 전군에 령을 내렸다.

왕건은 치중부대를 적에게 빼앗긴 혼란된 상태에서 당성고을에 그냥 머물러있다가는 후백제군에게 앞뒤로 공격을 받아 전멸할수 있다는것을 예감하고 잠시 뒤로 물러서서 반격을 가할 기회를 마련하자는것이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전략은 원표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원표는 뒤로 물러설것이 아니라 괴양읍성을 정면으로 공격할것을 주장했다.

《그대는 마치 전군의 주장이라도 되는것처럼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난 뒤로 물러서는것은 반대하오. 치중부대를 적에게 빼앗긴 상태에서 물러서는것은 명백히 패전이란 말이요.》

원표의 도전적인 언사에 좌우에 있는 장수들이 술렁거리자 왕건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들었다.

《제 계책이 신통치 않다면 장군이 생각하는바를 말해주시오.》

원표는 방자하게 코웃음을 쳤다.

《내 의견은 이렇소. 난 수하의 병력을 이끌고 이길로 괴양을 공격하겠소. 왕태수는 당성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아주시오.》

왕건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될 말씀이요. 그건 적이 바라는것이오이다. 무모한 싸움을 벌렸다가는 가뜩이나 치중부대를 잃어 전군의 사기가 저락된 때에 전군이 통채로 무너질수 있소이다.》

왕건이 아무리 만류해나서도 원표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다.

원표가 부디 괴양고을로 진격할것을 고집하는것은 적을 이길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치중부대와 함께 떨구어놓고온 관나의 운명이 걱정되여서였다. 그는 설사 이 싸움에서 패한다고 해도 반드시 관나를 구원할 생각뿐이였다. 만약 관나가 후백제군에 잡혀죽는다면 무슨 낯으로 그 아비를 대할수 있으랴. 관나에 대한 걱정으로 리성을 잃어버린 원표는 왕건의 만류를 끝내 뿌리치고 괴양고을에 대한 무모한 공격전을 벌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금달은 우정 패한것처럼 물러서서 원표의 군사를 괴양읍성으로 유인하고는 기력이 왕성한 군사로 은밀히 매복진을 폈다.

원표의 군사가 죽을둥살둥 모르고 쫓아와 매복권안에 들어서자 금달은 전고를 울리게 하였다.

원표의 군사가 아무리 용맹하게 싸운다 해도 사면팔방에서 일어나 덮쳐드는 후백제군을 물리칠수 없었다.

결국 원표는 이 싸움에서 거의 절반이나 되는 아까운 병력을 잃고 패해서 쫓겨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관나를 구하기는커녕 후백제군의 매복공격에 다시 일어서기 힘들게 얻어맞았던것이다.

왕건은 하는수없이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을수 없었다.

전선상황이 급변하여 이제는 후백제군과 최후의 싸움을 치를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보급이 끊어진 부대를 뒤로 물려 송악군으로 퇴군해가는 길이였고 다른 하나는 후백제군과 최후의 싸움을 벌리는것이였다.

이제 전선을 포기하고 물러서면 후백제군이 승세하여 후고구려의 전령토를 타고앉기 위한 대대적인 공세에로 넘어갈것이였다.

이것은 절대로 허용할수 없는 일이였다.

왕건은 장막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밝히며 마치 칠칠야밤에 손더듬으로 길을 찾아나가듯 전략을 모색했다.

《아뢰오이다. 장막밖에 오령행수가 찾아와서 태수님을 급히 뵙자고 하오이다.》

왕건은 장막호위장수가 들어와 이렇게 아뢰여서야 전장지도에서 시선을 뗐다.

《오령행수가?! 들여보내라.》

왕건은 그가 한밤중에 자기를 찾아온 의도가 리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기웃거렸다.

오령은 본시 송악의 토배기였고 아버지 왕륭과도 친교가 깊은 상인이였기에 이번 원정에 치중부대의 보급을 맡겼었다.

예로부터 상인들이 군대의 치중보급에 관여하는것은 흔히 있는 일이였다.

상인들은 군대의 치중보급을 맡아 군량과 마초, 전투기재, 무기 등을 조달하는 대신 여러가지 특권을 보장받았다.

이렇게 전쟁판으로 군대를 따라다니는 상인들을 가리켜 군상이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원표가 옛 상전의 아들인 관나를 병참관의 감투를 씌워 전장으로 데리고나온것처럼 전쟁판에서 장수와 상인은 항상 리해관계가 밀착하는 법이였다.

오령이 장막안에 들어서자 왕건은 례의상 아버지의 친구인 그를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였다.

《어떻게 이 깊은 밤에 저를 찾아오셨소이까?》

오령은 탁우에 펴놓은 전장지도를 보고 미안한 기색을 지었다.

《허, 이 늙은게 주책머리없이 전략을 구상하고있는 태수의 사색을 깨뜨렸구려.》

《전 괜찮으니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이다.》

왕건이 권하는 자리에 앉은 오령은 잠시 망설이는듯싶더니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왕태수, 사실은 한말씀 올리려고 태수를 찾아왔소. 혹시 방해가 된다면…》

《원, 행수님두… 말씀을 낮추어주소이다. 행수님이야 제 아버님의 벗이 아니오이까. 어서 신칙할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해주시오이다.》

왕건은 오령에게 차를 부어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오령은 그제서야 정색하여 입을 열었다.

《왕태수, 혹시라도 정면공격을 결심하였다면 그건 불가하오. 내 비록 군사에는 밝지 못하나 여기 지형은 행상을 자주 다녀놔서 훤하니 흘려듣지 말아주오.》

왕건은 덤덤한 기색으로 손에 든 차잔을 어루쓸기만 하다가 한참만에야 무거운 기색으로 오령의 말을 받았다.

《제가 그걸 어찌 모르리까.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수 없기에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는거지요. 방도는 오직 하나 적을 공격하여 형세를 역전시키는것인데 적장 금달이 괴양읍성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있어 참으로 진퇴량난이오이다.》

《그럼 왕태수는 공격을 결심하였소?》

《그렇소이다. 설사 많은 희생을 낸다고 해도 괴양읍성에 틀고앉은 적을 치려면 공격전을 펼치는수밖에 다른 길은 없소이다.》

오령은 왕건의 의지가 드팀없는것을 보고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야 우리 상단이 왕태수를 도울 길이 열렸나보군.…》

오령의 이 말에 왕건은 꿈쩍 놀랐다.

《그건 무슨 말이오이까?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소이다.》

오령은 왕건을 전장지도가 펼쳐져있는 탁자로 이끌었다.

《여길 보시오. 여기 괴양은 대부분지역이 낮은 산줄기들로 둘러막힌 구릉지대로 이루어졌소. 백제군이 틀고앉은 괴양읍성은 괴산이 둘러서있어 정면으로 공격하다가는 큰 랑패를 볼수 있소이다. 더우기 우리쪽에서 괴양읍성을 공격하려면 길이 큰길로만 열려있으니 이것은 명백히 자멸행위요.

그러니 왕태수는 군사를 둘로 갈라 한 부대는 읍성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다른 한 부대는 괴산을 에돌아 불의에 적의 뒤통수를 갈겨야 승전할수 있을것이요.》

왕건은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배후공격을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오이다. 그러나 괴산은 산세가 비록 험하지 않으나 군마가 움직일만 한 곳이 전혀 없어 망설이고있소이다. 동쪽의 충주방향으로 괴산을 에도는 길이 하나 있으나 그길은 너무 멀어 시간이 많이 들기때문에 망설이고있나이다.》

오령은 왕건의 고충을 안다는듯 웃으며 지도의 한끝을 가리켰다.

《여기가 어떻소이까? 여기서 곧장 내리면 바로 괴양읍성이지요.》

《그쪽에도 이미전에 사람을 보냈소이다. 그의 보고에는 거긴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아 길이 없다고 하였소이다. 어찌 그런 곳으로 군마가 갈수 있겠소이까.》

《아니, 거긴 길이 있소이다.》

오령이 이렇게 잘라 말하자 왕건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오령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여기 괴양군은 옛적 고구려때 잉근내라고 불리웠던 곳으로 한때는 고구려와 신라의 행상상단들이 발이 닳도록 오고가던 지역이오이다. 그후 신라의 배신적인 공격으로 고구려의 령역에서 떨어져나오면서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렸지요.… 하지만 행상들이 오고가던 길만은 아직 남아있소이다.》

왕건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언제적 일이라고 길이 끊어지지 않고 남아있겠소이까?》

왕건의 우려에 오령은 크게 웃었다.

《아마 적장 금달도 같은 생각일것이니 왕태수는 반드시 승전고를 울리게 될것이요.》

《그럼 진짜 행상들이 다니던 길이 남아있단 말이오이까?》

왕건이 반신반의하며 묻는 말에 오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길은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길이오이다.》

왕건은 너무 기뻐 자리에서 뛰쳐일어나 오령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였다.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으니 어둠속에서 광명을 만난듯 눈앞이 환해지오이다.》

오령은 급히 두손을 저었다.

《사실 이걸 알려준 사람은 내가 아니라 우리 상단에서 사환으로 있는 응통이라는 총각이오이다. 그가 날 찾아와 반드시 여기 어디엔가 길이 있을것이라는게 아니겠소이까. 내가 선뜻 믿지 못하자 그는 산발을 오르내리며 끝내 길을 찾아냈을뿐아니라 아군의 승전을 기할수 있는 방책까지 내놓은것이웨다.》

《그런 인물이 어찌 아직까지 상단의 사환으로만 있는것이오이까?》

왕건의 이런 물음에 오령은 얼굴을 붉혔다.

《이 늙은게 낡은 관습에만 사로잡혀있다나니 그가 인재라는것을 알고도 아직까지 사환으로 두고있소이다. 왕태수께서 한번 만나보시오이다.》

오령이 밖에 나가서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아보이는 애젊은 총각을 데리고 장막안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왕태수님께 문안드리오이다.》

왕건은 응통의 총명한 얼굴이며 결패있는 몸가짐에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행수님의 말뜻을 이제야 알것 같소이다. 누가 이 애젊은 총각이 그런 생각을 할줄 알았겠나이까. 정말 나이와 경험이나 따지다가는 곁에 인재를 두고도 모를번 했소이다.》

왕건은 부복하고있는 응통을 일으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장하다. 어떻게 오랜 경험과 경륜을 쌓은 사람들도 미처 생각 못할 일을 생각하게 되였느냐?》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께서 제가 어릴적에 해준 말을 되새겨보았을뿐이오이다.》

《아버님이 무슨 일을 하셨느냐?》

왕건이 심각한 기색으로 물어보자 응통은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까지 상전인 오령에게조차 검용이 아버지임을 숨겨온 응통이였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끝에 비로소 이제는 아버지가 검용임을 털어놓을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제 부친은 패강진의 폭동군 두령이였던 검용이오이다.》

응통의 말에 왕건과 오령은 다같이 놀랐다.

그중에서도 오령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지금껏 응통이 이름없는 행상인의 아들인줄로만 알고있었지 그가 검용의 아들임을 전혀 짐작조차 해보지 못한 오령이였다.

검용은 오령의 생명의 은인이였다. 그러나 오령은 본의아니게 검용을 함정에 빠뜨린 장본인이였다.


왕건은 수하의 병력을 모두 거느리고 괴양고을로 진출하였다.

후백제군은 원표의 군사를 쳐물리친 승세를 타서 마주 쳐나왔다.

량군은 괴양읍성앞 들판에서 서로 대치하여 진세를 벌려놓았다.

왕건은 이곳의 지형지리를 자세히 살핀 후 응통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옳았는가를 다시한번 느낄수 있었다.

괴양읍성을 지탱점으로 삼고있는 후백제군은 자연의 성새처럼 둘러막혀있는 괴산의 험준함만을 믿고 배후공격을 당할것을 전혀 예견조차 못하고있었다.

응통의 안내로 천여명의 정예기병이 괴산을 에돌아 진출하였으니 승패는 이미전에 결정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왕건의 머리속에는 금달의 후백제군을 괴양읍성에서 끌어내여 동시에 앞뒤로 공격을 가해 섬멸적인 타격으로 괴멸시킬 계책이 이미 무르익어있었다.

왕건은 드디여 전군에 공격을 명령했다.

후고구려군은 괴양읍성앞으로 흐르는 달천의 지류인 동진천을 건너 후백제군을 우정 눈속임으로 무모하게 선제공격했다.

예상했던바 그대로 후백제군은 괴양읍성에서 몽땅 쓸어나와 왕건의 군사에 반격을 가하였다.

《대항하지 말고 군사를 뒤로 물려라.》

후고구려군은 왕건의 령에 맞추어 우정 혼잡을 일으키며 무질서하게 동진천을 도로 건너 물러서기 시작했다.

패전을 거듭하는 후고구려군을 어느덧 얕잡아보기 시작한 금달은 전군에 도망치는 왕건의 군사를 추격하라는 령을 내렸다.

동진천을 도로 건너온 왕건의 직속군사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산으로 도망쳤고 후백제군의 기병대는 신이 나서 그들의 뒤를 정신없이 쫓았다.

후백제군의 주력은 물이 가슴언저리밖에 오지 않는 동진천의 강물속에 뛰여들어 천천히 강을 헤여건느기 시작했다.

적의 주력이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였다.

암석이 우중충한 야산에 서서 후백제군이 강을 건느는 모습을 지켜보던 왕건이 부하들에게 대장기를 흔들게 하였다.

때를 맞추어 전고가 맹렬히 울렸다.

순간 혼잡을 일으키며 도망치던 후고구려군이 별안간 맹수처럼 돌아서더니 뒤쫓아오는 후백제군에 무섭게 덮쳐들었다.

각 방면에 매복하고있던 후고구려군이 일제히 일어났다.

후백제군의 주력이 반쯤 강을 건넜을뿐 나머지 절반은 아직 대안에 있었다. 별안간 왕건의 군사들이 반격을 가해오고 사방에서 매복이 일어나니 후백제군은 아우성을 치며 혼란에 빠졌다.

옛날에 그 누군가가 써먹었다고 하는 《강을 절반 건느다. (반도)》라는 병법이였다.

《당황해하지 말아라. 포위에 든것이 아니니 적을 견제하면 승전할수 있다.》

후백제군의 수장인 금달이 벽력같이 고함을 지르며 군사들을 독려하였으나 이미 행차뒤나발이였다.

자기 군사들이 아무리 전투경험이 풍부하다고 해도 이러한 상태에서 오래 견디기 힘들다는것을 간파한 금달은 부하들에게 소리쳐 독려하는 한편 급히 기병대에 령을 내려 산골짜기들에서 쏟아져나오는 후고구려군을 죽기로 막아싸우게 하고 그 기회에 주력을 뒤로 빼내려고 하였다.

왕건은 손채양을 하고서 괴양읍성을 점령하고 후백제군의 배후를 치게 되여있는 기습군이 나타나길 안타깝게 기다렸다.

사방에서 쏟아져나오는 왕건의 군사의 드센 공격에 후백제기병대가 화살에 맞아죽고 창칼에 찔려 쓰러질 때 금달은 용케 혼란을 극복하고서 주력군을 거의 뒤로 물렸다.

왕건은 안타까움에 가슴을 죄였다. 이제 군사를 내몰아 적의 주력을 덮치려고 해도 후백제기병대가 완강히 저항하며 길을 막고있는 조건에서 뜻을 이룰수가 없었던것이다.

오직 기습군의 배후공격만이 적주력을 괴멸시킬수 있었다.

드디여 괴양읍성의 성루에 후고구려군의 기치들이 불쑥불쑥 솟아 기세좋게 나붓기기 시작했다.

대지가 부르르 진동하였다.

아직도 강물속에서 미처 물러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후백제군의 주력을 향해 기습군의 기병종대가 함성을 지르며 덮쳐들었다.

왕건은 흥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부하가 끌어다준 말등에 뛰여올랐다.

기병대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후백제군사들을 칼로 내리치는 무시무시한 광경, 산산이 흩어져 달아나다가 화살에 맞고 쓰러지는 후백제군사들의 이지러진 얼굴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새까맣게 한덩어리로 뭉쳐서 정신없이 달아나는 후백제군이 비명을 지르며 돌아섰다.

그쪽에서도 후고구려군이 창검을 번뜩이며 길을 막고있었던것이다.

괴양읍성두리에는 찢어진 기폭들이 여기저기 솟아 기세좋게 나붓기였다.

싸움은 후고구려군의 승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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