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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려명

3


중대장 우주성의 툭 삐여져나온 이마밑에서 용접불같은 눈빛이 번뜩이였다.

《그래서 안 데리고왔단 말이요? 그래서?》

《…》

이 《그래서?》 하고 따지는 우주성의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원산이 고향인 소대장 신태영은 며칠전에 휴가를 받고가서 결혼식을 하였다.

그런데 색시의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정세가 긴장하다고 하면서 다음날로 훌쩍 떠나왔다. 지휘관으로서 자각이 높은것은 좋으나 신부를 두고온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의미였다.

쭝해 서있는 신태영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다른 구분대로 조동된 군관들이 아직 이사를 가지 않아 집이 나지 않았던것이다.

소대를 거느리고 전방경계근무를 나간지 한주일째 되는 날 저물녘이였다. 성미가 덜렁덜렁한 부중대장이 갑자기 나타나 신중한 낯빛으로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교대.》 하고 말했다.

《아니, 무슨 교대 말입니까?》

신태영은 눈을 꺼벅거렸다. 아직 교대날자가 절반도 안되였다.

《이 사람 장가들더니 어떻게 된게 아니야? 교대란 말도 몰라? 중대장동지의 지급명령이야.》

고개를 기웃거리던 신태영은 《빠빨리.》 하는 부중대장의 재촉소리를 듣고서야 그간에 나타난 적정자료와 정황들을 자세히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중대장 우주성은 사무실에서 최근에 발행된 군사과학잡지를 읽고있었다. 류달리 큰 남북머리에 지독한 독서광인 그는 근무를 교대하고 돌아와 도착보고를 하는 신태영을 독서에 심취된 세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듯 얼떠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 그렇지.》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서는데 눈길은 여전히 책에 팔려있었다.

1년전 소대장으로 배치되여와 그에게 부임인사를 할 때 등에 진 배낭과 전투가방을 기웃이 넘겨다보며 《책이 있소?》 하고 묻던 생각이 부지중 떠올라 신태영은 빙긋 미소했다.

중대장은 책을 서랍에 넣더니 《갑시다.》 하며 제 먼저 문을 열고 나섰다.

《?》

무엇인가 음미하는듯 고개를 수굿하고 걷는 그의 뒤를 따라 의아쩍은 발걸음을 옮기고있던 신태영은 불빛이 환한 군인사택마을의 맨끝집 앞에 이르러서야 《아차.》 하며 생각을 굴리였다.

가만,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중대장생일? 아니, 중대장생일이야 2월 8일이 아닌가. …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자기를 보면 《삼촌, 삼촌.》 하고 졸졸 묻어돌며 권총갑을 매만지던 다섯살잡이 맏이와 이제야 겨우 뒤뚝거리는 막내생각이 났다.

광성이 생일? 아니면 유성이 생일?

《애아버진 책벌레야, 밤에도 책을 안고 자.》

《호호호,언니두…》

집안에서 두 녀인이 주고받는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창문으로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중대장이 여전히 《무슨 날》에 대해 옴해있는 신태영에게 소리쳤다.

《뭘하오?》

들어갔다.

《안녕들 하십니까?》 하고 녀인들에게 모두거리로 인사하던 신태영은 다시금 뻥해서 굳어졌다. 부엌에서 중대장의 아주머니한테서 음식그릇을 받아 상에 챙기다가 《어마!》 하며 굳어진 가냘픈 몸매에 눈이 류달리 큰 녀자가 뜻밖에도 안해가 아닌가!

《아니,동문…》

굳어진 두사람을 번갈아보던 중대장이 군관혁띠를 풀며 중얼거렸다.

《고새 벌써 얼굴을 잊어버렸나-》

소대장이 결혼식을 하고온 날 우주성은 안해와 의논하고 련대에 제기하여 직접 자동차를 타고가서 새색시와 함께 이사짐을 싣고왔었다.

물론 신태영에겐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사이 안해는 군인상점에서 장판지와 도배지를 사다가 웃방을 신혼부부가 꿀같이 달게 살도록 분통같이 꾸려놓았다.

뒤늦게야 모든 사연을 알게 된 신태영은 가슴이 뭉클하여 중얼거렸다.

《중대장동지두 참… 이렇게 하면 네식구가 비좁아서 어떻게 삽니까?》

웃방에 있던 이불장과 옷장, 책장을 내려오고보니 아닌게아니라 정지칸이 어방없이 좁아졌다.

조용히 눈굽을 닦는 새색시와 코멘 소리를 하는 신태영을 보며 우주성이 느슨하게 웃었다.

《뭘 그러나? 1소대장, 사람이란 집이 좁아서 못사는게 아니라 마음이 좁아서 오래 못살아.》…

삼십여년전의 일이다.

다음해부터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재직반에 올라가 공부하던 중대장은 졸업하자 교원으로 임명되였고 신태영은 세월과 함께 승급하여 어깨에 무거운 장령의 별을 얹고 오늘에 이르렀다.

10년전 인민무력부에 올라와 부총장으로 임명받은 날 옛 중대장을 찾아 인사를 한 신태영은 나지막한 단칸방에서 사는 그들내외를 보고나서 집을 해결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뭐라나, 다 나가고 단둘이 사는데… 일없소. 맡은 일이나 잘하오.》

그의 심중을 알아채고 하는 우주성의 말에 《중대장동진 여전히…》 하고 감심하면서도 집문제를 뇌리에 깊이 새겨넣었다. 그후 대학에 여러채의 새 집이 차례지자 신태영은 맨먼저 우주성에게 배정하였다.

했으나 그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연구사에게 양보하였다. 리해되였다. 우주성의 심정으로써는 얼마든지 그럴수 있었다. 후에 다시 집을 마련하여주었다. 그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였다. 입을 다시며 한숨을 내쉰 신태영은 집문제에 대하여 차츰 방심해버리다가 나중엔 잊고말았다.

하지만 우주성의 생일날 그는 대학에 있는 경우엔 반드시 찾아가군하였다.

했으나 밤중에 승용차를 타고 피끗 왔대놔서 집을 선뜻 알아맞힐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새벽 뜻밖에도 김정은동지께서 평범한 연구사인 그의 집을 찾으실줄이야. 등줄기에 식은땀이 쭉 내뱄다.

《예, 이 근방이 틀림없는데…》

황급해난 신태영은 목을 빼들며 이집저집을 기웃거리였다.

《아, 마침 저기 누군가 나옵니다.》

김정은동지께서 그의 팔을 건드리며 반대켠 채를 가리키시였다.

가운데집 문앞에서 전지불이 벙긋거리였다.

《에그, 눈이 왔구나. 령감두 참. 이왕 들어왔던김에 쉬질 않구… 쯧쯔. 》

푸념처럼 들리는 녀인의 목소리.

《중요한게 떠올라서 그런다니까. 어- 선선한게 좋구만.》

《길이 미끄러울텐데 조심해요. 아니, 전지를 안 가져가요?》

《잘 보여.》

신태영이 한발 내짚는데 김정은동지께서 그의 팔을 잡으시였다.

문이 닫기고 그 사람이 길가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전지불을 아래로 떨구시였다.

《연구사동지.》

그이께서 한발 다가서며 반가운 목소리로 부르시였다.

《뉘신지?》 하며 주춤거리던 그 사람이 갑자기 《아니, 대장동지…》 하고 놀란 소리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정은동지께서 놀라시여 말씀하셨다.

《아니, 이렇게 캄캄한데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허-》

우주성이 섭섭한듯 김빠진 소리를 내불었다.

《목소리가 귀에 익은데다 대장동지와 마주하면 어딘가 몸에 푹 배인 총대의 쇠내가 싱싱하게 풍기거던요.》

하하 웃으시던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나두 연구사동지가 부인님하고 주고받는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우주성의 얼굴에 어린애처럼 순진하고 깨끗한 웃음이 환하게 피는듯싶었다.

신태영은 그이의 뒤에 서있는 자기를 분명 알아본것 같기도 하고 알아보지 못한것 같기도 한 우주성이 섭섭하고 안타까운 한편 옛 전우와의 정을 《일이 바빠》 얼마나 아득히 밀어버렸는가 하는 죄의식에 시달리고있었다.

《대장동지, 저- 무엄한 질문이옵니다만 어디에 가시기에 이렇게 새벽걸음을 하십니까?》

우주성이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예, 연구사동지의 집을 찾아오는 길입니다.》

《예-에? 우리 집엘요?》

우주성이 놀란 나머지 입을 항 벌리며 굳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집구경을 하자고 여러번 말씀드렸지요. 그때마다 연구사동진 분명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불청객은 아닌게고 또 부인도 주무시지 않는것 같은데… 아니, 이거 눈내리는 밖에 그냥 이렇게 세워둘 작정이십니까?》

우주성이 무엇인가 주저하며 우물쭈물하는 거동을 느낀 그이께서 우정 다몰아대시였다.

당황해진 우주성이 두서없이 말씀드리였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해야지요. 한데 따뜻한 봄날에 꽃이 필때… 창문을 열면 만경봉의 일만경치가 기막힙니다. 저… 처마밑의 제비둥지도 보시고… 그때 가서 정식 초청하지요.》

《아니, 우리사이에 무슨 정식 초청이니 뭐니 하는 격식이 필요합니까? 우리야 군인이 아닙니까. 피차 시간이 아까운데 전술적으로 불의의 기습… 그것이 좋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부총장동지.》

신태영은 숨이 꺽 막혔다.

와본지 퍼그나 된 단칸방, 모든것이 부족한 때에 생활형편은 어떠한지.… 아마 우주성대좌도 그이께서 들어가보시고 걱정하실가봐 주저할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쳤다. 쭝해있다가 우뚤 놀란 그는 경황없이 말씀드렸다.

《옳습니다. 아, 아니 그래두… 저, 사실 례법대로 하면 주인이 청해야…》

《법? 나는 이미 신청한지 오랬고 또 주인도 승낙한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 여기엔 시효가 없습니다, 하하하!》

《그래두… 이거 들어가보실 형편이…》

우주성이 혀안의 소리로 중얼거렸다.

《허- 문전거절입니까?》

그이께서 짐짓 섭섭한 어조로 말씀하시자 우주성은 더욱 난처해하였다.

《들어가봅시다. 난 부호가 사는 고대광실을 찾아온것도 아니고 그 무슨 룡궁을 찾아온건 더우기 아닙니다.》

그의 심정을 알고도 남는듯 김정은동지께서는 시종 웃으시며 전지불을 비치면서 앞서 걸음을 옮기시였다.

옹색한 마음으로 별수없이 따라선 우주성은 신태영의 외투소매를 슬며시 줴당기며 나직이 물었다.

《이거 어쩌면 좋습니까?》

《나두 호미난방입니다. 집으로 퇴근하댔는데… 이렇게 모실줄 몰랐습니다.》

신태영은 우울한 소리로 대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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