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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려명

리웅수

1


별빛 한점 흘릴세라 두터운 장막을 꼼꼼히 치며 련사흘째 하늘을 가리우고있던 재빛구름이 머나먼 우주려행의 길에서 무거운 짐을 덜려는듯 드디여 아기주먹같은 눈덩이들을 대지에 펑펑 뿌려던지기 시작하였다.

대한을 앞두고 쏟아지는 그 폭설은 공동사설을 높이 받들고 정초부터 강성국가건설로 들끓는 온 강산을 하루밤만이라도 잠재우려는듯 두툼한 눈이불로 포근히 덮어주고있었다.

찰기가 느껴지는 습한 눈송이는 빨간 신호등이 쉼없이 반짝이는 고려호텔의 지붕과 즐비하게 늘어선 높낮은 살림집들, 도시변두리의 단층집들과 엉성한 나무가지들 그리고 정적이 깃든 차도로에 허연 주단을 펴면서 건물들의 기하학적인 딱딱한 모를 죽이고 메마른 나무가지들을 실하고 둥글둥글하게 살찌우며 서정적인 장식을 해갔다.

아직은 재밤중이라고 할수 있는 이른새벽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조용히 연구소를 나서시였다. 잠시 현관에 서신 그이의 손에서 하얀 전지불빛이 희검은 어둠을 째며 곧추 뻗어나갔다. 굵은 채로 치는듯 고르로이 쏟아지는 눈발속에서 언덕아래로 휘우듬하게 내려간 길이 불빛에 드러났다.

좀전에 그이께서 찍으며 올라오셨던 발자국은 어느새 눈에 묻혀버리고 백포를 편듯 한 길이 소나무며 아카시아나무, 떨기나무들이 빼곡이 서있는 오른쪽 도래코숭이뒤로 사라져버렸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 눈…

기분이 무척 상쾌하시였다.

문득 바람이 휙- 지나가며 나무가지에 얹힌 눈을 흩날리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그 선뜩함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드시였다.

어둠속에서도 달같이 환하게 보이는 그이의 밝은 존안에 싱싱한 웃음이 피여났다.


고드름처마에 흰까치 울고울어

새해의 이 아침에 노래불러준다네

설눈아 내려라 어서야 내려라

산에도 들에도 하얗게

태양의 축복받은 삼천리강산에

어서야 펑펑 내려라


불현듯 얼마전 텔레비죤에서 보았던 녀학생들이 부르는 랑랑한 노래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듯싶으셨다. 노래소리와 함께 날이 밝으면 좋아라 뽀얗게 눈싸움을 벌릴 꼬마들과 그들과 함께 덩달아 딩굴면서 깡충거릴 귀여운 강아지들의 장난질도 그려보시며 그이께서는 솜눈이 푹푹 발목을 잠그는 길로 활달한 걸음을 옮기시였다.

며칠째 전선시찰을 하시는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보좌해드리고 밤늦어 평양에 도착하신 그길로 대학연구소에 오신 김정은동지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신 후에도 이곳에 자주 나오시여 연구사들과 함께 인민군대의 싸움준비 특히 첨단군사과학기술이 도입된 현대전의 요구에 대처한 우리 식의 주체전법을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하여 그이께서는 끊임없는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을 보내고계시였다.

연구사들은 방에서 혼곤히 잠들어있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새벽 2시가 지났던것이다.

연구사들이 깨여날세라 발소리를 죽이며 방들을 돌아보시던 그이께서는 쇠를 잠근 우주성대좌의 방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퇴근한 모양이다. 연구소의 《고정재산》으로 불리울만큼 늘 사무실에서 각종 자료와 콤퓨터에 마주앉아 군사과학세계를 파고들던 그가 오늘은 어찌된 일인가?

십여년전까지 대학에서 강좌장을 하다가 젊은 교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연구사로 돌아앉은 우주성대좌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군사분야에 정통한, 특히 작전전술분야에서 남달리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있는 군사과학자였다.

칠순이 다된 체소한 몸집에 조용한 성미의 로병이지만 다문박식한 군사지식을 가지고있는 그였다.

연구소안의 모든 연구사들과 허물없이 친근하게 지내온 그이이시였지만 이밤따라 비여있는 우주성의 방을 보니 별스레 마음이 허전하고 무엇인가 귀한것을 잃은듯 한 아쉬움이 가슴 한구석에 스며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더우기 요즘 미제침략자들이 떠드는 핵선제공격에 대처한 전술안을 연구해보라고 과제를 주신터여서 그것이 어느 정도 진척되였는지 알고싶으신데다 좀전에 입수한 중요한 적군자료가 그에게 도움이 될듯싶어 마음이 조급해나시였다.

가자, 집으로 가보자. 년로한 몸에 혹시 어데 아픈데라도 없는지 걱정스럽기도 하여 먼 전선길의 피로도 무릅쓰시고 우주성의 집을 찾아 걸음을 떼신 길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연구사업의 휴식참에 한담을 나누다가 집구경을 좀 하자고 말씀을 건늬셨던 그이이시였다. 그때마다 대뜸 《예, 해야지요.》 하다가도 《아니, 늙은것들만 머룽머룽해 앉아있는 집에 무슨 재미로 가보시겠습니까, 허허.》하고 난색을 지으며 차일피일 미루어오는 우주성이였다.

석연치 못한 그 대답속에 김정은동지께서는 그가 매우 기뻐하면서도 피치 못할 그 어떤 사정으로 방문을 꺼려하는 모호한 립장을 느끼시였다.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더더욱 알고싶어 별러오시던중이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문앞에라도 가보고싶으시였다.

주소는 이미 알아두었고 대학주변마을은 환히 꿰들고있는지라 어둠속이여도 벌써 어디쯤에 있는 집이라고 짐작되시였다. 숫눈길을 헤치시며 연구소를 내려 대학구내의 기본도로에 나서시였을 때였다. 어둠속에서 《거 누구요?》 하는 굵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누군가 전지불빛을 보고 소리친것이다. 목소리가 귀에 익었으나 선뜻 응대할수가 없으셨다. 한순간 걸음을 멈추신 김정은동지께서는 난처하고 따분한 립장에 빠지시였다.

특전특혜를 질색하시는 그이이시였다. 자신을 오로지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조국통일대전의 시각이 오면 병사들과 한전호속에서 총을 잡고 싸울 전투원으로만 간주하고계시는 그이께서는 무릇 일군들이 알은체를 하며 정중히 모시려 할 때면 난처함과 그 어떤 구속감에 사로잡히는듯 한 겸허한 천품을 지니고계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 전지불을 끄고 서계시자 소리친 사람이 서벅서벅 다가왔다.

《누구요?》

퉁명스러운 어조, 대답이 없자 어딘가 좀 불쾌한 모양이다.

《쉬- 부총장동지, 납니다. 김정은입니다.》

《예-에? 아니, 대장동지가…》

몸집이 거방진 부총장은 어마지두 놀란 소리를 하였다.

《이 새벽에 어떻게?》

《예, 마을에 좀 볼일이 있어서 …》

김정은동지께서는 그의 앞에 전지불을 비쳐주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런데 왜 이제야 퇴근하십니까?》

그이께서 의아한 어조로 물으시자 부총장은 너부죽한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띄웠다.

《예, 하는일없이 분주하다보니…》

《무슨 말씀을… 왜 하는 일이 없겠습니까? 부총장동지야 수백명 교직원들과 선군시대 지휘관들을 키워내는 원종장의 호주가 아닙니까. 먹여주고 입혀주고… 추울세라 더울세라 보살펴주는 이 큰 대학의 군수관이나 같지요.》

부총장의 가슴은 금시에 찌르르해났다.

이날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누가 나에게 이처럼 고귀하고 힘이 되는 격려를 해준적이 있었던가! 과연 내가 그렇게 책임을 다하고있는가?…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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