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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안신호편

영생의 언덕에 올라


안신호녀성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기대는 한 종교인을 일시적인 길동무로서가 아니라 영원한 동행자로 보고 그의 한생을 끝까지 책임져주시려는 숭고한 의리에 기초하고있는것으로 하여 날로 더욱 깊어지는 믿음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통일적중앙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진행될 때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였다.

력사적인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 참석한 안신호녀성은 북과 남의 각지에서 선발되여온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과 한자리에 앉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는 력사적인 사변의 체험자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선포하신 그 회의에서 안신호녀성이 법제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신임을 베풀어주시였으며 회의휴식시간에는 그를 만나주시고 나이많은 어머니가 대의원으로 많은 수고를 하게 되였다고 은정깊은 말씀을 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가 열릴 때는 물론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나 명절날의 휴식기회가 있을 때면 안신호녀성을 자주 만나주시고 어머니에게는 제강이 필요없다고, 어머니가 보고 느낀것을 그대로 말해주면 된다고 하시면서 거듭되는 신임을 베풀어주시였다.

한번은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진행되는 연회에 참가하여 오랜 신앙생활의 습관에 따라 눈을 감고있은적이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한 일군이 이 광경을 보고 《식사할 생각은 안하고 졸기는 왜 좁니까. 해방도 되였는데 이젠 그만 졸지요.》라고 롱말을 하여 좌중을 웃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신호의 심중을 헤아려주시며 우리 나라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거야 좋은 일이 아닙니까라고 말씀하시여 무안해하는 그의 마음을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신호녀성을 여러 외국손님들과의 담화에 참가시켜주시였으며 그들과 동행하는 사업도 맡아하게 하시여 그가 생의 말년에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사업에 의의있는 기여를 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어려운 시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그 준엄한 시기에도 안신호녀성을 잊지 않으시고 그에게 자동차를 보내시여 안전한 지대에 대피하여 생활할수 있게 하시였으며 그의 가정이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보살펴주시였다.

전쟁이 장기화되고있던 1952년 5월 어느날이였다.

당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신호가 오늘까지 우리를 믿고 따라왔으며 일을 잘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남북련석회의때에 어려운 일을 맡아한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의 이름으로 신문에 글도 내고 방송에도 출연시키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을 받아안고 안신호녀성은 어려운 전쟁환경속에서도 날로 더욱 두터워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임과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

그는 어느날 고급중학교 교장으로 사업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은 나라없는 지난날부터 우리 식구들의 신상에 닥쳐온 불행을 막아주시고 영광만을 안겨주신 잊을수 없는 은인이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돌려주시지 않았다면 너의 외삼촌이 어떻게 독립인사로 이름을 남길수 있었고 우리 온 식구의 오늘이 어떻게 있을수 있었겠니.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위대한 장군님의 안녕을 지켜야 한다.》

비록 몸은 년로하였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을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그는 1964년 2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민족의 어버이의 한량없는 사랑과 믿음속에 한생을 빛내인 안신호녀성을 잊지 않고계시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때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86년에 예술영화 《위대한 품》의 창작을 지도하시면서 그를 잘 형상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 영화를 보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그를 이끌어주시던 나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안신호, 그 어머니가 내 일을 많이 도와주었지라고 조용히 뇌이시였다.

1986년 7월에 건립된 애국렬사릉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에서 인생을 값있게 마무리한 수많은 애국인사들의 유해가 정히 안치되여있다. 바로 이 성스러운 곳에 안신호녀성도 안치되여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애국렬사릉이 건립되였을 때 그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하게 하시였으며 조국통일상이 제정되였을 때에는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단합을 위하여 노력한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조국통일상수상자로 내세워주심으로써 그의 생이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도록 해주시였다.

통일애국인사들이 안긴 품, 그 품은 애국에 살고 애족에 사는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안겨야 할 위대하고 한없이 넓은 품임을 안신호의 한생은 말해주고있다.

통일애국인사들이 그토록 바라던 조국통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다. 사람치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없다.

하다면 오늘날 조선사람으로서 참다운 애국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갈라진 나라의 통일을 위한 민족적인 성업에 뛰여드는것이다.

영생의 언덕에서 통일애국인사들은 온 겨레에게, 후대들에게 이 애국의 참뜻에 대해 절절하게 당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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