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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안신호편

통일정부수립에 이바지하던 나날에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는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그때 북으로 쏠리는 민심을 타고 완고한 민족주의자이며 남조선의 우익정객의 거두의 한사람인 김구도 평양으로 오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으로 찾아오는 김구와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 이 중요한 사업을 앞에 놓고 제일먼저 생각하신것은 안신호였다.

그런데 김구가 평양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신호가 김구와의 상면을 거절해나섰다. 그는 김구를 잊지 못하면서도 절대로 용서할수 없는 극악한 숭미반공분자로 타매하면서 김구가 평양에 와도 만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의 반공행적으로 하여 당시 김구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당시 안신호만큼 김구와의 사업에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없었는데 본인이 김구를 만나지 않겠다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였다.

련석회의날자가 가까와오던 4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신호녀성을 집무실에서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김구선생이 들어오게 됩니다, 김구선생을 잘 대해주고 그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김구선생과의 사업을 선생에게 맡기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일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그 괴벽스러운 민족주의자가 평양에 온다는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와의 사업을 자기한테 맡겨주시는 크나큰 신임에 그는 더욱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놀라와하는 그를 지켜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김구선생과의 사업을 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김구선생의 지난날에 대하여 문제시하지 말고 그가 스스로 뉘우치도록 잘 일깨워주어야 한다고, 같은 민족의 정으로 따뜻이 대해주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잘 이야기해주면 김구선생이 느끼는것이 많을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이튿날 안신호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김구라는 사람이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다는데 잘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씀올리는 안신호에게 그의 과거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안선생으로서는 그럴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다 뭉치자고 하는것이 김일성장군님의 뜻인데 김구선생이라고 왜 못 들어오겠는가, 장군님께서는 그의 과거보다도 애국의 길로 나아가려는 현재의 지향을 귀중히 여기시여 그와 손잡기로 하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진심으로 애국의 길로 나아가려는 사람에 대하여 과거를 묻지 않고 손잡고 나아가는것이 장군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견지해오신 일관한 립장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안선생은 이번 기회에 김구선생에게 우리 북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지난날 김구가 알고있던 그런 공산주의자들과는 근본이 다른 진정한 애국자들이며 그들이 나아가는 길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이라는것을 잘 인식시켜야 한다고, 특히 북조선에서 달성한 모든 성과들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과 인민을 위한 옳은 정치를 베풀고계시기때문에 이룩된것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한다고, 나는 안선생이 김구선생과의 사업을 잘하여 김일성장군님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리라고 믿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안신호는 눈앞이 환해지고 어깨가 가벼워짐을 마음속으로 느끼였다.

사실 해방후부터 오늘까지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완고한 김구라고 해도 북에 대해, 김일성장군님의 정치에 대해 실감하게 될것이였다. 그리고 김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북의 현실을 본다면 그에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세심한 가르치심에 의해 자기가 얼마나 중한 임무를 걸머졌는가를 깨달은 안신호는 따뜻한 마음으로 김구를 만나리라 결심하였다.

4월 20일 평양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옵고 그이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과 뛰여난 도량과 인품에 크게 감복한 김구였건만 고집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제는 누구보다 안신호를 만나보아야겠다는것이 그의 생각이였다. 아득히 흘러간 청춘시절 서로 사랑하면서도 감옥살이, 상해망명 등 운명의 곡절로 부부의 인연을 맺을수 없었던 안신호였다.

북에 와있는 며칠새에 김일성장군님의 공산주의는 이전에 자기가 알고있던 공산주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던 그였지만 《독립운동의 대선배》로 자신이 존경하던 안창호의 친누이동생으로서 자기와 각별한 사이였던 그리스도교신자 안신호가 어떤 생활을 하고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더우기 김구는 북조선공산주의자들의 정치에 대하여 체험자의 고백을 통해 알고싶었던것이다.

김구의 요청에 의해 안신호는 그와 상봉하게 되였다.

후날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당시 평양에 와서 안신호를 만났을 때에 받은 충격과 감동을 적은 김구의 수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평양에 간것은 1948년 4월이였다.

먼저 무조건 기쁜것은 옛날 련인을 만난것이였다.

그 녀자가 얼굴에 주름살을 띄운 로파가 되여 내앞에 나타났을 때 그때의 흉중은 감개무량이라는 말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었다.

크리스챤의 가계로서 혹시 박해를 받지 않았는가 걱정하였는데 그런것은 전혀 없었다.

크리스챤인 그 녀자는 그때 녀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책임을 맡고있었다.》

그때 당시 김구의 기존관념에 수면을 튕기며 날아가는 팔매돌과도 같은 충격파를 일으킨것은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련인을 만났다는 애틋한 기쁨과 흥분에 앞서 우익민족주의자의 누이동생이며 독실한 그리스도교신자인 안신호가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한 북에서 녀성동맹의 간부로 성장한 뜻밖의 사실과 정신적으로 놀랍게 변모된 그의 인간상이였던것이다.

《그래 신호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지내오?》

김일성장군님의 덕분으로 온 집안이 다 행복하게 살고있습니다. 얼마전까지 남포시녀맹위원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녀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일하고있어요. 자식들은 대학에도 다니구… 생활에 아무 불편과 걱정을 모르고 잘 지내고있습니다.》

《그게 다 참말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저희가 남포에 살고있을 때도 친히 저를 여러차례 만나주셨고 오늘도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념려하여주신답니다.

그이께서는 안창호선생을 잘 알고있다고 하시면서 오빠도 조선독립을 위해 싸운분인데 동생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과분한 육친적배려를 돌려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집 아이들은 다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무료로 공부하고있어요.》

《신호, 여기 이북에서는 종교를 마음대로 믿게 하오?》

《종교를 믿고 안 믿고 하는것은 사람들의 자유이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을 믿어도 미국의 하늘을 믿는것이 아니라 조선의 하늘을 믿지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런 신앙은 나쁜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김구는 저으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야. 〈하느님〉을 믿어도 조선의 〈하느님〉을 믿으라. …》

머리를 연신 끄덕이는 김구의 가슴속에서는 안신호를 비롯한 북의 인민들이 높이 우러러받드는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조선의 구세주이시라는 생각이 번개쳤을것이다.

그날 김구는 자기는 이젠 70고령의 늙은 몸으로 젊은 사람들처럼 이북의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다니며 알아보기도 그렇고 또 공장이나 한두개 보고는 이북의 참현실을 다 알수 없으니 여기 실정에 밝은 신호가 이북의 정치에 대해 솔직하게 기탄없이 이야기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안신호는 김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일성장군님의 공산주의는 지금까지의 기존개념으로는 잴수 없는 제일 좋은 정치리념이라고 봅니다. 장군님의 공산주의를 다는 알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우리의 민족성원모두를 바른길로 이끌어 애국자로 키우고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선양하며 온 국민이 착취와 압박을 모르는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오빠는 애국애족이요, 독립운동이요 하면서 덮어놓고 공산주의를 반대하였고 우리 민족을 무력한 존재로 깔보면서 대국만을 숭배했습니다. 아마 오늘의 이북현실을 보았더라면 오빠도 가슴을 치면서 눈먼 과거를 뉘우치고 독립운동을 다시 해야겠다고 일어섰을거예요.》

안신호는 김구와 그의 측근들인 조완구, 엄항섭, 안우생 등을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안창호의 고향집, 자기가 태여나고 자란 고향집으로 안내하였다.

한평생 공산주의에 역행한 우익민족주의자의 누이동생, 독실한 신자가 김일성장군님의 믿음에 의해 녀성동맹의 지도간부로, 북조선최고립법기관의 대의원으로 있다는 사실앞에서 북의 공산주의에 대한 김구의 의혹의 뿌리는 밑뿌리채 흔들리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쓰시였다.

《일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김구는 남북련석회의때 북반부에 들어와 안신호를 만나보고 놀랐다. 공산주의자들이 상해림시정부 거물의 누이동생을 중앙녀맹부위원장으로 등용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모양이다. 안신호는 그의 젊은 시절의 애인이며 약혼녀였다.

4월말 안신호녀성을 다시 만나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구와의 사업정형을 보고받으시고 높이 치하하신데 대하여 알려주시며 무척 기뻐하시였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것을 두고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김정숙녀사를 우러르며 안신호는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와 김정숙녀사께서 미흡하기 그지없는 자기를 하나하나 깨우쳐주시고 이끌어주시려 마음써오신 나날들이 되새겨져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

이렇듯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그 광휘로운 빛발과 한량없는 은정을 받아안았기에 안신호녀성은 새 조선의 어엿한 역군으로 자라날수 있었으며 민족의 대단합실현에 이바지하는 책임적인 사업도 감당할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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