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15 회

제 2 장. 후삼국

1


897년에 이르러 신라땅에서는 큰 분렬이 일어났다. 계림의 귀족들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들고일어난 붉은바지농민군과 대격전을 치르고있을 때 나라의 북쪽지역에서는 궁예와 량길이 북방의 패권을 다투고있었다.

마침내 이 시기에 이르러 력사는 종국적으로 후삼국시대로 갈라져나간것이다. 신라는 나라의 4분의 3에 달하는 령토를 내놓고도 속수무책으로 대세의 이러한 추이를 지켜볼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에 이르렀다.

고구려국의 재건을 선포하여 삽시에 유민의식이 강한 북방지역 백성들의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낸 궁예는 스스로 임금으로 자칭하고 산하 수십여개 고을의 무력을 총동원하여 어제날의 자기의 상전이였던 량길을 공격했다.

궁예의 기습적인 공격에 크게 패한 량길은 북원의 산골짜기로 쫓겨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궁예가 이렇듯 단 한번의 공격으로 력량상 우세한 량길의 군사들을 패주시킨것은 전략을 잘 세워 시기와 때를 알맞게 선택한것도 있겠지만 기본은 패서의 북방군사들의 호응으로 적을 앞뒤로 공격하여 크게 승전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검용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그 부하인 명귀는 궁예에게 귀순한 후 함께 손잡고 량길의 군사를 치는 싸움에 나섰다.

검용의 평소의 뜻이 고구려의 넋이 깃든 백성들의 새 세상을 세우는것이므로 고구려의 재건을 표방하는 궁예와 손잡게 된것이다.

원래 농민군인 량길의 군사와 한산주관하의 신라지방군은 비록 힘을 합쳤다고 해도 자체의 취약성과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른것으로 하여 의견상이가 일어날것은 불보듯 뻔한것이였다.

이것을 제때에 간파한 궁예는 명귀의 북방군사들과의 협공으로 그들을 간단하게 격파한것이였다. 하여 이제는 명실공히 궁예가 북방의 유일한 패권자로 남게 되였다.

궁예는 북원의 깊은 산골짜기로 쫓겨들어간 량길의 남은 군사를 기병으로 추격하는 한편 기본주력을 재빨리 서남방향으로 기동시켜 한산주관하의 신라지방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패서의 북방군과 송악의 왕륭부자가 이끄는 수군으로 외응을 삼아 한산주를 앞뒤로 에워싸고 무자비하게 두들겨팼다.

하지만 한산주도독 김질이 이끄는 지방군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한산주관하의 30여개 성들에 완강하게 들어박혀 궁예군사들의 진격을 필사적으로 막아싸우고있었다.

궁예가 이끄는 주력은 첫 싸움부터 발목이 잡혀 주저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산주관하의 30여개 고을이 서로 련계를 취하며 완강하게 저항하는 조건에서 하나하나의 성들을 점령하여야겠는데 그것은 궁예의 성격에도 맞지 않을뿐아니라 기약이 없는 싸움이 될것이였다.

든든한 성벽에 의거하여 싸움하는 한산주지방군을 하나하나 완전히 격멸하려면 몇년이 걸릴지 실로 기약할수 없는 일이였다.

자칫하면 여기에 발목이 붙잡혀있는새에 북원에 쫓겨가있는 량길이 력량을 수습하고 뒤통수를 후려갈길수도 있는것이다.

어쨌든 장기전이란 궁예의 성미에 맞지 않을뿐아니라 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 아닐수 없었다.

궁예는 일단 군사를 뒤로 물릴수밖에 없었다.

궁예는 군사를 흥주(순흥) 부석사에 머물러두고 앞으로의 전략을 무르익히기로 하였다.

부석사는 당시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큰 절중의 하나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이 천명을 헤아린다는 큰 절이였으나 전란의 피해로 쓸쓸한 페허가 되고말았다.

여러차례에 걸쳐 략탈당하였고 소란스러운 세파에 부대끼자 중들마저 거의나 떠나가버렸다.

그러나 그 부지만은 굉장히 넓어 궁예의 수천군사를 수용하기엔 충분하였다.

궁예는 새로 병참관으로 올려앉힌 관나를 뒤에 달고 부석사를 돌아보기 위해 방을 나섰다. 관나부자의 신세를 톡톡히 지고있는 궁예가 늘 관나를 수족처럼 달고다니는것이 이젠 버릇처럼 되고말았다.

큰 마을폭의 부석사가 한눈에 안겨왔다.

사원을 한바퀴 휘둘러본 궁예는 관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허, 산사치고는 꽤 넓군. 오랜만에 풍경소리를 다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나.》

궁예가 감탄하듯 말하자 관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인도 장군이 한때 속세를 떠나 승려로 있었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헌데 어인 일로 속세를 떠나 중이 되였소이까?》

관나가 거리낌없이 이런 말을 꺼내자 궁예는 번들번들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은게 그게 다냐?》

《항간에서 떠도는 소문을 어찌 다 믿겠소이까. 그래서 직접 장군께 묻는게 아니겠소이까?》

관나는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궁예는 당돌한 관나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제껴들고 크게 웃었다.

《당돌하구나. 아직까지 그 누구도 너처럼 날 맞대놓고 감히 물어본 놈이 없었다. 하지만… 너한테 내가 무얼 숨기겠느냐.》

궁예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례의 그 사나운 외눈으로 관나를 노려보았다.

《사실 난 계림의 왕족가문출신이다. 왜? 믿어지지 않느냐?…》

궁예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 관나에게 쓰거운 미소를 보내며 남의 말을 하듯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당당한 왕족의 피를 이었으나 어머니가 천한 궁녀인것으로 하여 출생한지 한달도 못되여 불행을 겪게 되였지.… 궁중의 무서운 모해로 죽을 운명에 처했단다. 짐승같은 놈들이 달려들어 갓난아기인 나를 어미의 품에서 떼여내여 죽으라고 다락에서 집어던졌단다.

다행히 유모가 밑에서 날 받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수 있었으나 불행히 손가락에 눈이 찔리워 이렇게 애꾸가 되고말았구나.…》

관나는 궁예의 말에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깨진 독처럼 시퍼렇게 서슬만 남은 궁예에게 이렇듯 가슴아픈 불행이 서려있는줄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던것이다.

궁예는 여전히 한본새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치악산 남쪽에 죄를 짓고 도망친자들이 모여사는 이름없는 동네가 있었지. 날 살려준 유모는 거기로 도망쳐가서 변성명하고 날 키웠단다.

나는 차츰 성장하면서 남들이 왜 애꾸눈이병신이라고 놀려대는지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결국은 그 모든 원한이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였구나. 그러던 내가 열다섯살되던 해 나를 키워준 유모마저 그 지방에서 행세하는 귀족의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리유로 불행을 당하게 되였다.

유모는 림종을 앞두고 나의 출생에 대한 비사와 애꾸눈이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난 병신이라 탓하지 않고 날 애지중지 키워준 유모를 해친 귀족놈을 죽여버리고 세상을 등질 결심으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된것이다.》

《장군의 부친은 누구길래 제 친아들조차 지켜주지 못했나이까?》

궁예의 비사를 들은 관나는 울분을 못이겨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궁예는 소름끼치는 무서운 시선으로 관나를 노려보았다.

《그것까지는 알 필요가 없다. 어쨌든 너에게만 털어놓은 이야기이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도록 해라.》

궁예의 말이 여기까지 가닿자 관나는 가슴이 섬뜩하여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꺼내여 장군의 마음을 산란케 하였으니 용서하시오이다.》

궁예는 차거운 웃음을 지으며 관나의 어깨우에 손을 올려놓았다.

《괜찮다. 너야 날 지금의 위치에 올려세운 1등공신이 아니냐.

그러니 상전의 출생비사쯤이야 알아두어야지.… 하지만 명심할것은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는것이다.》

관나는 두려운 나머지 낯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궁예의 잔인한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관나로서는 괜히 입부리를 잘못 놀렸다고 후회하였으나 이미 깨여진 사발이였다.

《명심하겠소이다.》

관나는 짐짓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보였다.

궁예는 그제서야 안심한듯 허리에 찬 장검을 눌러잡으며 천천히 앞서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걷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뒤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관나에게 아까의 화제로 돌아갔다.

《바야흐로 나의 원한을 갚고 꿈을 이룰수 있는 길을 애써 닦아놓았는데 이렇듯 한산주의 무리가 발목을 잡는구나. 그래 네 생각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궁예의 말이 여기까지 미치자 관나는 공손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저는 장사치올시다. 어찌 저한테 전략을 물으시오이까?》

궁예는 관나의 겸양의 말에 비웃음을 지으며 코를 불었다.

《전략이란게 별것이겠느냐. 각 지방의 풍물과 리화에 대해 환히 꿰고있는 너라면 대응책쯤은 얼마든지 내놓을수 있다.》

궁예의 고무를 받은 관나는 그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 말을 흘려들어주사이다. 제 생각엔… 정면공격은 불가능하니 계책을 정해 한산주의 무리를 성밖으로 끌어내여 치는것이 마땅하리라 보오이다.》

《어떻게 말이냐?…》

궁예는 무척 흥미가 동한듯 외눈을 반짝이며 한발 다가섰다.

《사실 시간을 끄는것은 우리나 저들이나 다 불리하오이다. 제가 타산해보니 한산주의 지방군도 비록 기세가 왕성하다고는 하나 계림에서 전혀 치중보급이 진행되지 못하여 오래 지탱할수 없는 처지오이다. 그러니 그들은 기회만 조성되면 성에서 나와 아군을 들이치고 속전속결을 꾀할것이오이다.》

관나의 말을 들은 궁예는 감탄하여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적이 성밖으로 나올수 있게 도와주자는 소리겠군.…》

관나는 신이 나서 계속했다.

《그렇소이다. 우리도 군률이 해이된것처럼 꾸며서 한산주의 무리를 성밖으로 끌어낸다면… 한번 북을 쳐서 큰 승전을 이룰수 있나이다.》

궁예는 관나의 비상한 책략에 감탄하여 혀를 내둘렀다.

《그렇구말구… 적을 성밖으로 끌어내여 일거에 소멸해치운다면 한산주지방이야 저절로 내 손에 들어올게 아니냐.》

궁예는 만족하여 관나를 이렇게 치하했다.

이때 여러 사람의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불교경전들이 보관되여있는 장서각으로 돌아드는 길목에 부석사의 주지가 여러명의 중들을 데리고 불쑥 나타났다.

허연 수염발을 가슴언저리까지 드리운 풍채좋은 로승인 부석사의 주지는 웃는 얼굴로 궁예를 맞이하였다.

《로승이 로둔하여 이제야 문안을 드리오이다.》

《아니, 이거 페를 끼쳐 안됐소. 혹 내 부하들이 무례를 범한것이 있다면 언제든 내게 말만 하시오.》

궁예가 거만한 태도로 말하자 로승은 짐짓 황송한듯 허리를 굽혔다.

《산간의 이름없는 중이 장군의 일에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줄 아옵나이다. 자, 그럼 우리 사원을 소승이 안내해드리리다.》

주지는 지금 속으로 명망이 높은 승려로 자처하는 자신이 도적무리의 괴수앞에서 소인을 괴여올려야 하는 수치에 분통이 터지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속내를 감추고 이번 기회에 궁예를 자기의 오랜 학식과 사원의 위용으로 한번 크게 놀래줄 결심이였던것이다.

주지의 안내로 경장에 들어선 궁예는 깜짝 놀랐는지 입을 벌리고 한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실지 소문 그대로 큰 경장의 네 벽에는 경전이 꽉 들어차있었던것이다.

《진흥왕이후로 나라에서 편찬된 경전이 모두 이곳에 분장보관되여있소이다. 태종무렬왕께서 우리 부석사를 국사로 명명하신 후 나라의 각 절에서 경전을 골라올려 여기에 보관하도록 하였지요.…》

궁예는 무척 흥미가 동하는듯 키를 넘게 쌓여있는 경전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경전에 덮인 먼지를 옷소매로 털고 펼쳐보던 궁예가 별안간 껄껄 웃더니 주지를 향해 돌아섰다.

《대사는 이 경전들을 읽어보았소?》

《예?! 그건…》 주지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얼버무리자 궁예는 펼쳐든 경전을 그의 눈앞에 바투 가져다댔다.

《잘 보시오. 이 경전들은 대부분이 신라에서 만든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망한 후 략탈해온것들이요. 대사는 그것도 모르면서 어찌 부석사의 주지노릇을 하는거요?》

궁예는 심술궂게 웃으며 이렇게 주지를 시까슬렀다.

주지는 아예 말문이 막혀버렸다.

경전을 부류별로 갈라 하나하나 설명하는 궁예의 실력은 참으로 대단한것이였다.

주지는 아예 넋을 잃고말았다.

대체 이자는 어떤자이길래 불경에 대해 이렇듯 환할수 있는가.

궁예가 근 십여년이나 세달사(흥교사)에서 중노릇을 하였다는것을 알리가 없는 주지는 입을 하 벌리고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관나는 웃음이 나오는것을 억지로 참고 궁예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수습한 주지가 급한 걸음으로 쫓아나와 궁예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장군에게 보여드릴것이 하나 더 있소이다.》

《허, 경전이 또 있소?》

궁예가 야유하듯 말하자 주지는 제법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장군도 놀라시리다. 우리 부석사의 자랑은 경전뿐이 아니지요.》

승벽이 강한 주지는 쉽게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호기심이 동한 궁예는 관나와 함께 주지의 뒤를 따라 대웅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웅전의 문이 삐거덕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턱을 넘어섰던 궁예와 관나는 숨이 막힌듯 놀랐다.

주지는 그제서야 만족한듯 어깨를 쭉 폈다.

《신라 각 왕대의 화상들이 모두 여기에 모셔져있소이다.》

관나는 자못 흥미가 동하는 시선으로 궁예와 주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신라왕족들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있는 궁예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벌리겠는지 알수 없는 일이기에 멀찌감치 떨어져있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나가던 끝에 어느덧 경문왕의 화상앞에 이르게 되였다.

《신라 46대임금이신 경문대왕이오이다. 나라의 국선으로 이름을 날리신 후 헌안왕의 부마가 되여 국통을 이으셨지요. 정사를 시작하시여… 악!-》

주지는 기겁하여 두눈을 뒤집었다.

뜻밖에도 궁예가 서리발이 돋은 장검을 소리가 나게 뽑아들었기때문이였다. 궁예의 외눈이 황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눈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살기를 내뿜는지 관나마저도 공포에 질려 뒤걸음쳤다.

주지는 너무도 놀라운 충격에 기절하고말았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것은 외눈깔을 번뜩이며 궁예가 장검으로 경문왕의 화상을 힘껏 내리치는 광경이였다.

관나는 비로소 깨달을수 있었다. 경문왕의 화상과 궁예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통한것을 보고 궁예가 누구의 아들인줄 깨닫게 된것이다.

이무렵 북원의 량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량길은 궁예의 군사가 오랜 싸움으로 지쳤으리라 타산하고 이렇듯 한산주의 군사와 앞뒤로 협공하여 멸망시키려는것이였다.

량길은 자기의 이런 행동이 궁예가 그토록 바라던것인줄 짐작조차 못하고있었다.

그는 궁예의 유인술책에 말려들어 자기의 전 력량을 내몰았다.

궁예는 깊은 산중에 은거하고있는 량길과 든든한 성벽에 숨어서 응전하지 않는 한산주의 신라지방군을 끌어내기 위하여 관나의 계책대로 속임수를 썼던것이다.

부하들을 사방에 풀어놓아 로략질을 벌리게 하고 군률이 해이된것처럼 무질서하게 여러 성읍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여 끝내 량길을 속여넘길수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로회한 량길이였지만 궁예의 속임수에 넘어가고말았다.

그는 치중보급이 원만히 보장되지 못하여 곤경을 겪는 자기 군사들이 장기전을 벌려야 불리하다는것을 잘 알기에 속전속결로 궁예군을 때려 내쫓을 결심이였다.

량길은 한산주관하의 30여개 성에 틀고앉은 김질의 군사에게 성밖으로 나와 군률이 해이된 궁예군을 정면에서 공격하게 하고 자기는 북원의 남은 력량을 총동원하여 그뒤를 공격했다.

궁예는 여유작작하게 송악군의 군사들로 한산주의 지방군을 대적케 하고는 패서의 명귀 등이 이끄는 패강진의 군사들과 량익을 이루고 량길의 군사를 순식간에 무섭게 덮쳤다.

량길의 군사를 일격으로 형체도 없이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리고 그길로 군사를 돌려 한산주관하의 군병력을 소리개가 병아리를 덮치듯 냅다 들이쳤다.

궁예에게 얼혼이 빠지게 얻어맞아 만신창이 된 한산주관하의 지방군은 개미굴 무너지듯 갈팡질팡하며 제 소굴로 도망치다가 퇴로를 차단한 왕건의 송악군 군사들에게 항복하고말았다.

련 사흘동안 진행된 이 대격전에서 궁예는 량길의 군사와 한산주의 지방군을 아예 형체도 없이 짓밟아버린것이다.

이 대격전을 계기로 궁예는 북방의 유일무이한 패권자로 등장하였다.

궁예의 야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고있었다.

한산주를 장악하고 송악성으로 입성한 궁예는 여기에 림시 도읍을 정하고 천하에 고구려국의 건국을 크게 선포했다.

그가 고구려국을 재건한다고 표명한것은 고구려후손으로 자처하는 이 지방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의 타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궁예가 고구려국의 건국을 선포하자 고구려의 후손인 이 지방사람들의 뿌리깊은 반신라감정을 깨쳐놓아 마침내 광범한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되였다.

그가 송악을 나라의 도성으로 정한 리유는 귀순한 왕륭의 요구와 새로 수중에 장악한 한산주관하의 고을들의 민심을 거두어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라를 선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였다.

아직도 궁예에게는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비록 나라를 세웠어도 어설픈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던것이다.

도처에서 량길의 잔당들이 소란을 피웠고 새로 포섭한 패서의 명귀 등은 자기들이 고구려의 전통을 이은 세력이라 표명하며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재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그보다 더 심각한것은 신라의 서남지역에서 백제국의 재건을 선포한 견훤이 궁예의 고구려국을 표적으로 군사행동을 개시한것이다.

궁예는 건국을 선포하고도 왕위즉위식조차 뒤로 미루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북원의 산중으로 쫓겨간 량길을 추격하고있는 부하들에게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량길이 포위에 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수하의 천여명 잔당들을 모조리 소탕하였다는 보고였다.

량길이 죽었다는 소식은 궁예에게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주었다.

세달사에서 중노릇이나 하던 궁예가 이만치 일어서게 된것은 다 량길의 덕택이라고 할수 있었다.

량길은 이렇듯 궁예의 적수이기 전에 그를 거두어준 은인이였던것이다.

량길이 손을 뻗쳐주지 않았더라면 궁예는 력사라는 활무대를 밟고 세상에 나서지조차 못했을것이였다.

그러나 궁예는 량길이라는 그림자를 인차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차피 량길이라는 거물을 희생물로 바쳐야 하였던것이다.

이제는 오직 힘과 힘의 대결만이 남았다.

그는 전군을 모두 불러일으켜 미친듯이 창을 휘두르며 북상하고있는 견훤의 후백제군을 치기 위하여 청주방향으로 내려갔다.

힘이 강한자가 약자를 이긴다는것은 궁예와 견훤이 동시에 품고있는 생각이였다.

이제 그들은 계림의 비좁은 지역으로 몰린 신라조정 같은것은 아예 적수로조차 여기지 않고있었다.

신라조정의 폭정을 반대하여 백성들이 잘살 새 세상을 세우겠다고 표방하며 궐기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 가면마저 벗어던지고 서로 용납할수 없는 세력을 지키겠다고 이렇듯 대결에로 나선 궁예와 견훤이였다.

궁예의 고구려국과 견훤의 후백제국의 틈새에 끼운 광주, 청주, 당성, 괴양 등은 두 적수의 세력다툼의 첫 희생물이 되였다.

력사는 새로운 국내전쟁의 막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