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제 9 회

제 1 장. 방 황

8


력사에 음녀로 유명한 진성녀왕(신라의 51대왕, 재위 887-897)이 즉위한 후 나라는 더욱더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갔다.

녀왕과 그 총애를 받는 귀족들이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면서 극도의 사치와 향락만을 추구하다나니 백성들은 중병에 걸린것처럼 뼈에 가죽만 붙게 되지 않을수 없었다.

궁중안에서 매일과 같이 벌어지는 질탕하고 방탕한 술놀이판에 막대한 재부가 탕진되였고 귀족들은 백성들의 고혈이 말라가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악착하게 짜내고 또 짜내였다.

녀왕이 정치에는 전혀 낯을 돌리지 않고 음탕한 생활에만 치우치니 아래것들이 그 본을 따지 않을수 없었다.

계림의 문벌귀족들로부터 시골의 귀족에 이르기까지 너나할것없이 더 많은 토지와 재부를 거두어들이는데만 정신을 팔다나니 백성들은 참고견딜수가 없게 되였다.

흉년이 거듭되고 각종 명색의 가렴주구로 더이상 참을수 없게 된 백성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들고일어났다.

전국도처에서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신라조정의 통치기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신라조정은 나라가 지금 어느 지경에까지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고 밤낮없이 음탕한 풍악으로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반란은 료원의 불길마냥 전국을 휩쓸었다.

신라땅 각지에서 일어난 폭동군이 신라의 행정통치기구를 모조리 때려부시고 자체의 통치기반을 세워놓았다.

명색이 나라이지 도성으로 향한 길이 어느 하나 열려져있는 곳이 없었고 조세조차 변변히 들어오지 못했다.

조정의 통치기반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녀왕과 귀족들의 수탈은 줄어드는것이 아니라 더 과중하게 백성들의 어깨에 씌워졌다.

어느 한 지방이 폭동을 일으켜 신라의 기반에서 떨어져나가면 계림에서는 그 지방의 조세몫을 다른 지방에 넘겨씌웠다.

그러면 여느때없이 배가의 착취를 받아 더이상 견디기 어렵게 된 백성들은 무리를 지어 들고일어나 관가를 들이치고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와 귀족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렇게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은 도적떼의 습격과 관군의 토벌이 두려워 자기 고을안의 명망높은 사람을 추대하여 자기들을 이끌어줄것을 요구하였다.

고을사람들의 추천으로 급작스럽게 《성주》, 《장군》 등으로 나선 인물들은 자기보다 강한 세력자들에게는 머리를 숙여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였고 또 저보다 약한자들은 끌어들여 세력을 늘이였다.

반란은 수레바퀴마냥 돌아가며 살륙의 씨를 곳곳에 뿌려놓았다.

이러한 와중속에 야심가들과 세력가들은 백성들의 폭동에 편승하여 자신의 천하를 꿈꾸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마을에서는 등불들이 하나둘 꺼져버렸다.

어둠이 짙게 흐르는 마을에는 유독 한채의 집만이 등불을 밝히고있었다.

비록 벼짚으로 이영을 씌웠어도 마을에서 그중 크고 번듯한 집이였다.

이 집 사랑채의 등잔불밑에 한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칠흑같은 코수염을 보기 좋게 기르고 얼굴륜곽이 부드러워 얼굴전체가 영특하고 잘생긴 중년의 사나이였다.

그는 검용이였다.

하지만 등잔불밑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검용은 지금 운명의 갈림길우에 서있었다.

고향을 떠나 변성명하고 숨어지내면서 행상인으로 인생을 조용히 흘려보낼것인가 아니면 조정에 항거하여 손에 검을 잡고 일어서야 하는가 하는 두갈래 길이 앞에 놓여있었던것이다.

이제 날이 밝으면 패강진에서 군직을 지내던 시절의 옛 부하인 명귀가 수백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그를 찾아올것이였다.

검용은 어제일을 겪고서야 명귀가 일으킨 반란이 결코 일시적인 충동에서 벌어진것이 아님을 깨달을수가 있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관장과 장수들의 학대로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군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란을 일으킬 모의를 거듭하고있었다.

명망이 높고 민심을 잡고있는 인물을 내세우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켰댔자 사전에 진압되고말것이라는것을 자각한 명귀 등 패강진의 옛 부하들은 검용을 적합한 인물로 점찍게 되였던것이다.

더우기 검용은 강건너 고구려의 유민세력과도 련계가 깊으니 그를 내세우면 반란은 삽시에 큰 세력으로 자랄것이였다.

바로 이때 발해땅으로 행상을 다녀오는 검용이 나라에서 엄금하는 무기를 들여온다는 고변이 있어 그를 잡으라는 조정의 공문이 떨어지자 명귀 등 반란의 수창자들은 이 일을 계기로 검용을 자기네 일에 끌어넣으려고 하였던것이다.

검용은 심한 고민에 빠져 방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발해와의 행상권을 빼앗기 위한 두근의 비렬한 음모가 결국은 자기자신을 이런 막다른 처지에까지 몰아넣었던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조정에 항거하여 칼을 들어야 하겠는가?…

그가 이 자리에서 물러서면 명귀 등이 일으킨 반란은 사전에 진압될것이고 여기에 련루된 수백명의 군사들은 모두 붙잡혀 처형되고말것이였다.

그러나 검용자신이 폭동을 선동하고 수창자로 나선다면 삽시간에 민심의 호응과 발해세력의 지지를 받게 될것이였다.

만약 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어찌 될것인가?!

검용은 제 한목숨뿐아니라 외아들로 자란 응통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잃을수 있었다.

검용은 자신의 꿈이 이 땅에서 얼마나 값없이 산산이 부서져나갔는가를 직접 페부로 느끼지 않으면 안되였다.

불합리한 신라사회를 갈아엎지 않는 한 고구려의 후손답게 살려는 검용의 그 꿈은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는 꿈으로만 남아있을것이였다.

검용은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장지문앞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비꼈다.

《누구냐?》 검용이 이렇게 소리치자 애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소자 응통이오이다.》

검용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나한암의 해명에게 가있으라고 하였는데 아직까지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단말인가?!

《들어오너라.》

문이 소리없이 열리면서 응통이 방안에 들어섰다. 응통은 방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단정히 무릎을 끓고앉았다.

《네가 아직 자지 않고 한밤중에 무슨 일이냐?》

검용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님, 소자는 나한암이 아니라 세상을 두루 다니며 세상공부를 하고싶소이다. 소자를 멀리 보내주소이다.》

응통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꺼내자 검용은 소스라쳐 놀랐다.

《그건 무슨 소리냐?》

《아버님, 소자는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고있소이다. 지금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는 때에 그것을 앉아서만 지켜볼수 없는 아버님의 심정을 소자가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나이까.…》

한동안 아연하여 아들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있던 검용은 곧 자신을 수습하고서 차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상관할바가 아니니 어서 들어가 자거라.》

응통은 물러서지 않고 비감한 어조로 소리쳤다.

《아버님, 소자는 밤새도록 아버님을 지켜보았소이다.

아버님의 걱정하시는바도 잘 알고있나이다. 이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선뜻 칼을 뽑지 못하시는 아버님의 심중을 잘 알고있나이다.》

검용은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열두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 벌써 이웃고을에까지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났으며 동서고금의 력사와 문장, 천문, 지리에 대해서 막히는데가 없었다.

검용이 대상인이 되려는 자기의 꿈을 넘겨주기 위해 지금껏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라고 할수 있었다.

검용은 아들이 몹시 긍지스러웠으나 짐짓 어성을 높여 그를 꾸짖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거두고 어서 들어가 자거라. 아직 어린 너를 정처없이 떠나보낸다 한들 내 마음이 편안하겠느냐? 앞으로 네가 어찌할것인가는 이 아비가 결정할것이니 네 방으로 돌아가거라.》

응통이 고개를 들었다.

가물가물한 등잔불밑에서도 그의 두눈이 번쩍이였다.

《아버님은 잊으셨소이까? 소자에게 늘 고구려의 후손임을 뼈에 새겨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이까. 조상의 넋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늘 외우시던 아버님께서 오늘은 어찌 한걸음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고계시나이까. 소자는 아버님이 옳은 길로 가신다면 설사 이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즐겨 따르겠나이다.》

아들의 비분에 찬 말을 들은 검용은 숨이 가빠지고 피가 뛰는감을 느꼈다.

그는 아들의 여린 몸을 와락 그러안았다.

《내가 널 헛키우지 않았구나. 넌 이 검용을 그대로 빼여닮았어.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이 아비를 릉가할것이다.

그렇지. 네 말이 옳다. 고구려의 후손임을 잊지 않는 길이 바로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란 사람의 도리라고 할수 있지.…》

검용은 호탕하게 웃으며 장지문을 활 열어제꼈다.

벌써 먼산에 아침노을이 붉게 비끼기 시작했다.

젖빛의 희읍스름한 새벽안개가 방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검용은 벽에 걸어둔 검을 벗겨들었다. 물기가 맺힌 검날을 비단천으로 정히 닦았다.

아무리 좋은 쇠라도 불에 달구고 제련하기를 거듭하여 다스리지 않으면 강철이 될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쇠를 다스리는것처럼 다스려야 하는것이다.

그는 아들의 소청대로 그를 떠나보낼 생각이였다.

당년 열두살의 어린 소년을 선뜻 품에서 떼여놓기가 애처로왔으나 직접 두눈으로 이 세상을 둘러보게 하는것도 그의 성장에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한것이였다.

산속 절에 들어박혀 학문에 몸담근다 해도 세상공부에 도움이 되지 못할바에야 차라리 세상을 편답하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뜻을 키우는것이 옳은것이 아니겠는가.

드디여 결심을 굳힌 검용은 장검을 철컥 집에 밀어넣고나서 응통에게 돌아섰다.

《이길로 송악으로 떠나거라.》

응통은 소스라쳐놀라 고개를 들었다.

검용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송악은 일찌기 상업이 발전하고 오랜 도시인지라 거기에 발을 붙이고 세상에 대해서 배우거라. 내가 뜻을 이루면 그때 너를 찾으마. 내가 만약 중도에 쓰러진다면… 네가 뒤를 이어 끝까지 가야 한다.》

《명심하겠소이다.》

《그리고 한가지…》 검용은 머뭇거렸다.

아들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입을 벌렸으나 차마 제 입으로 밝힐수 없어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무슨 분부이시오이까?》

검용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이 자리에서 말하자던 생각이 좀더 성장한 다음에 이야기해주자는 생각으로 바뀌였던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자기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지 알수 없었다.

《이번에… 송악에 자리를 잡으면 시간을 내여 구월산에 한번 가보거라.》

검용은 아들의 티없이 맑은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하였다.

응통은 의아한 시선을 들었다.

검용은 아들의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제 말만 계속했다.

《구월산에 가면 아직도 남아있겠는지 모르겠다만… 아사봉밑에 자리잡은 월정마을을 찾아보거라. 내가 수년전에 갔을 때는 마을터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찾기가 헐치 않을것이다.》

《그곳엔 어인 일로 찾아보라고 하시오이까?》

응통이 이렇게 묻자 검용은 정색하여 입을 열었다.

《거긴 네 조상이 살던 마을이다.》

응통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버님께서 늘 소자에게 이르시기를 여기 패강지역이 우리 가문의 근본이라 하시지 않으셨소이까?》

검용은 아들의 얼굴을 응시하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응통아, 후에 네가 성장하면 다 말해주겠다. 그러나 명심할것은… 여기 패강사람들이나 네가 찾아갈 구월산사람들도 다같은 고구려의 후손이라는것이다.》

정오무렵이 되자 검용의 집으로는 버드내마을사람들은 물론 주변의 많은 백성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밤새 시꺼멓게 언 동구밖 진창이 뭇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곤죽이 되였다.

사람들이 마당에 차고넘쳐 미처 자리가 없어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어깨를 부볐다.

검용이 응통과 함께 마당으로 나서니 수백명의 군중이 와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조여들었다.

검용은 크나큰 흥분속에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군중을 둘러보았다.

검용의 옛 부하들이였던 명귀 등 군사들의 모습들도 보이였고 버드내마을사람들과 한두레에 소속되여있는 농민들, 상단일군들의 얼굴도 눈에 뜨이였다.

모두가 고구려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살아온 패강류역 백성들이였다.

신라귀족들의 가혹한 착취와 수탈에 못이겨 죽기를 각오하고 들고일어난 사람들이였다.

《저도 여기 모인분들처럼 계림의 귀족들에게 억눌리고 짓밟혀온 백성의 한사람이오이다.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기꺼이 선두에 서겠소이다.

패강진 군사들의 한을 풀고 고구려의 후손들인 우리가 편히 살수 있는 새 세상을 세울 때까지 멈추지 않겠소이다.》

검용이 소리를 높여 웨치자 군중은 그의 열기를 넘겨받은듯 함성을 질렀다.

모두의 두눈은 비상한 열기를 담고 번뜩이였다.

검용이 장검을 뽑아들고 앞을 가리키자 군중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패강진을 향해 밀려갔다.

검용은 격앙된 어조로 아들 응통을 향해 웨쳤다.

《저 힘을 보느냐? 저것이 그 무엇으로도 굽혀낼수 없는 진짜 힘이다.

응통아, 나는 저들과 함께 내 길을 갈것이고 너는 네가 뜻을 이룰수 있는 길을 끝까지 걸어라. 력사에 고구려의 후손으로 어떻게 남는가는 그 길이 후세에 전해줄것이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