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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1 장. 방 황

7


날샐녘의 재빛하늘에서 드문드문 남아있는 별들이 새벽추위에 떨고있었다. 검은구름밑에서는 맵짠 바람이 일었다. 봄이라 하지만 새벽녘에는 차거운 북풍이 패강의 기슭을 휩쓸고있었다.

패강의 검푸른 물결우에서 안개가 뭉게뭉게 피여올라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백악산으로 퍼져가서는 대가리없는 재빛뱀처럼 언덕의 자드락으로 손더듬하듯 기여내려갔다.

강 좌안의 모래불과 숲으로 선을 두른 분지와 발들여놓을 자리가 없이 빽빽한 갈밭은 차겁게 서린 아침노을에 황황 불타는듯 했다.

미처 솟아오르지 못한 아침해가 동쪽 지평선너머에서 모대기고있었다.…

안개자욱한 새벽산책을 나온 한가한 사람처럼 침착한 자세로 패강기슭을 거닐고있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검용이였다.

그는 지금 상단을 인솔하고 발해땅을 다녀온 길이였다.

그의 이번 먼길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관가의 승인을 받지 못한 잠행이였다. 검용은 지금 피줄과 언어가 같은 동족의 나라를 다녀오는것도 남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울분에 모대기고있었다.

장사에서 크게 리문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쁨보다도 동족의 나라를 적대시하는 귀족들의 처사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있었다.

지금까지 신라는 대외무역을 당나라에만 의존하고있었다.

물론 동서방에 해상왕으로 널리 알려진 청해진대사 장보고에 의해 독자적인 해상교역로들이 개척되고 당나라와 일본 그리고 머나먼 서역과도 대외무역이 활발히 진행된적은 있으나 장보고가 살해되고 청해진이 무너진 후에는 다시 본래대로 돌아갔던것이다.

신라의 해상교역로가 당나라에만 국한된것은 당나라를 대국으로 바라보는 신라귀족들의 사대와 편협함때문이였다.

물론 당나라와의 해상교역으로 신라의 국내상업이 장성한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관가와 결탁한 시전상인들에게만 한한것이다.

오히려 신라의 편협한 해상교역을 통해 큰 리득을 보는것은 당나라의 상업이였다.

신라의 귀족들이 사대에 빠져 당나라에만 추종하고 동족의 나라 발해를 멀리하는것을 좋은 기회로 여긴 당나라상인들은 발해에서 들여온 물건을 신라상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거리하여 얻은 리득만 해도 실로 대단하였다.

독자적인 교역로가 없이 오직 당나라와의 교역로만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해마다 신라의 상업계는 적자만 불어났다.

심지어 극도로 오만방자해진 당나라상인들은 쩍하면 서로 짜고서 신라상인들이 싣고온 상품들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으려들기때문에 신라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황소의 란》이후 혼란된 당나라의 정치정세는 신라상업계에도 극심한 피해를 주었다.

혼란된 중원의 정치정세는 외곬으로 간신히 이어오던 해상교역로까지 막아버려 신라의 상업계가 큰 타격을 받게 된것이였다.

대외무역이 흔들리니 국내상업의 류통이 거의 정지되다싶이 하였다.

저들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치부를 할수 없게 된 귀족들은 그 해결책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보다 더 큰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한데서 찾았다.

하여 신라사회는 권력에 미쳐버린 귀족들의 련이은 반란과 도처에서 일어나는 백성들의 폭동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있었던것이다.

검용은 신라의 상업계가 살아날 방도는 오직 하나 당나라와의 대외무역에만 의존할것이 아니라 동족의 나라 발해와도 통상로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용뿐아니라 시세에 밝은 상인들은 발해와의 통상이 중요함을 인식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편협하기 그지없는, 사대의 잠에서 깨지 못한 신라의 귀족들만은 동족의 나라 발해와 통상하기를 반대해나서고있었다.

검용은 설사 관권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발해와의 통상로를 열 결심으로 이렇듯 수십차례에 걸쳐 잠행을 다녀오는 과정에 통로를 열고 판로를 마련한것이였다. 사실 발해행상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길이였다.

발해와 국경을 접하고있던 옛날에는 평양성에서 관문무시가 열려 자유로운 거래가 진행되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발해의 쇠락과 동족을 적대시하는 신라귀족들의 편협함으로 땅도 멀어지고 사람도 멀어지게 된것이였다.

패강이북지역에서부터 발해국경에 이르기까지 수백리지경에는 옛 고구려의 유민세력의 힘이 아직까지 남아있으나 북방야인들의 침입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화가 들이닥칠지 몰랐다.

오직 변방수비군에서 군직을 지내며 패강이북의 고구려유민세력과 련계가 깊은 검용만이 유일하게 발해와의 교역에서 성공할수 있었다.

발해행상은 대외무역이 정지된 상태에서 신라상인들이 누구나 탐내는 화수분같은 자리였으나 바로 이러한 리유로 하여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는것이였다.

사실상 발해행상은 검용이 독점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가 관권의 압력을 물리치고 굳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발해행에 나선것은 치부를 위한것이 아니라 동족의 나라들과 상업으로나마 끊어진 혈맥을 이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아, 하늘이여, 땅이여 !

단군성왕님의 후손으로 련면히 피줄을 이어오는 겨레가 언제면 하나의 하늘, 하나의 땅에서 하나로 모여살 그날이 올것이오이까?!…

끊어진 혈맥을 이어가기 위한 길에서 이 한몸 초석이 되고 주추가 되여 살리라, 이것이 바로 고구려의 후손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도리이리라!

검용의 이번 행상에서 제일 큰 리득은 거래에서 얻은 리익보다 뜻이 맞는 발해상인들과 사귈수 있은것이였다.

검용과 대면하여 거래하는 과정에 그의 뜻과 기개에 탄복한 발해상인들은 그를 진심으로 도와나섰으며 앞으로 서로 오가며 동족의 나라들끼리 끊어진 혈맥을 이어가자고 철석같이 약조하였었다.

해가 높이 뜨자 새벽안개가 걷히며 나가고 훈훈한 봄의 대기가 검용의 몸을 감싸안았다.

어느새 북풍은 수그러들고 눈석이물로 한껏 불어난 패강의 물결은 거울처럼 눈부시게 해빛을 반사시키고있었다.

검용은 이제 남강의 버드내마을로 돌아가 아들 응통을 만난다는 생각에 부지중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열두살의 어린 소년이지만 생각하는바가 남다르고 행동거지가 의젓하여 어디 내놓아도 짝지지 않을 장부감이였다.

일찌기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얼굴에 그늘이 질가봐 재취도 하지 않고 홀로 응통을 키우는 검용이였다. 그러나 일년 사시절 행상을 다녀야 하는 검용인지라 응통을 키우는것이 헐치 않았다.

나한암의 암주인 해명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들을 훌륭하게 키울수 없었을것이였다.

검용은 아들 응통을 자기뒤를 이어 발해와의 행상에 나서게 할 생각이였다.

응통이 저기 저 광활한 대륙으로 상업령역을 넓혀나간다면 검용은 더 바랄것이 없었다.

소박한 꿈에 앞서 그것은 동족의 나라들끼리 서로 지경을 없애고 오가면서 마음껏 교류할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 검용의 믿음이라고 할수 있었다.

검용은 배가 들어온다는 상단사람의 말을 듣고는 나루터로 내려갔다.

아직 이른아침이라 나루터에는 그의 상단사람들뿐이였다.

상단사람들은 원행에서 성공하여 이제 강만 건느면 고향으로 가서 그리운 부모처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희희락락하며 짐을 부리우고있었다.

나루터로 중선이 한척 미끄러져들어오는데 여느 배하고 확연하게 차이나는데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드디여 배가 하선장에 선미를 갖다대였다.

순간 벼락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십여명의 관군이 서리발같은 창검을 번뜩이며 중선에서 뛰여내리는것이였다.

《모두 꼼짝말고 그 자리에 서있거라!》

맨 나중에 뛰여내린 군교가 검을 뽑아들고 호령하였다.

상단사람들은 모두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하여 검용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검용은 처음엔 당황하였으나 수군군졸들속에 옛 부하였던 명귀가 있는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명귀는 검용이 한때 패강진의 패장으로 군직을 지낼 때 수하에 있은 사람이였다.

《여보게, 나 검용일세. 여긴 어인 일인가?》

검용의 물음에 명귀가 슬그머니 얼굴을 붉히며 외면하는데 군교가 다짜고짜 검을 내대면서 호령하였다.

《고변이 있었다. 나라에서 엄금하는 물건을 들여오는자들을 무조건 붙잡으라는 조정의 령이다.》

이어 좌우에 서있는 군졸들에게 령을 내렸다.

《한놈도 달아나지 못하게 포박하고 짐을 뒤져라.》

검용이 분노하여 주먹을 부르쥐는데 명귀가 재빨리 다가서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나리, 참으시오이다. 어제 패강진으로 공문이 떨어졌소이다. 설사 나리가 이 자리를 모면한다고 해도 이미 각지에 체포령이 내려졌으니… 항거하면 목숨이 위태롭소이다.》

검용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감을 느꼈다.

순간 그는 오령의 부탁으로 들여오는 화살촉이 들어있는 짐에 대한 생각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것이 물증으로 나지면 설사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된다.

발해땅으로 잠행을 다녀온것은 고작해서 행상권을 박탈당하고 짐이나 몰수당할뿐이지 무마될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짐에서 화살촉이 나지면 무엇이라고 변명할것인가.

검용은 어떻게 해서나 짐뒤짐만은 막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뻗대였다.

《동족의 나라인 발해땅으로 다녀오기로서니 어찌 그것이 불법이며 무슨 역적죄를 저지른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량민을 괴롭히는거요?》

《짐을 뒤져봐서 물증이 나서지 않으면 곱게 놓아보낼것이니 순순히 따르는것이 좋을것이다.》

군교는 랭정한 태도로 검용의 말을 받고는 부하들에게 돌아서서 소리질렀다.

《뭣들 하느냐? 이자들은 지경을 넘어 발해땅을 드나드는 불법행상의 무리이다. 짐을 뒤질 때 꿈쩍하는 놈이 있으면 사정없이 창으로 꿰여도 괜찮다.》

검용은 더이상 막을 도리가 없어 단념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제 맞섰댔자 무장한 군졸들과 싸움만 벌어질것이였다.

자칫하면 싸움판이 커져 사상자라도 나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질뿐이였다. 상단사람들의 인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모든것을 맡아안는 일뿐이였다. 군교의 거듭되는 호령에 군졸들은 상단일군들을 포박하여 한옆으로 몰고는 차례로 짐을 뒤졌다.

자그마한 행상상단이여서 수레가 두채에 부담마가 열필이니 짐이래야 부담이 열개에 보짐이 스무개도 되나마나하니 짐뒤짐은 잠간사이에 끝났다.

《여기 있소이다.》

마지막짐을 열어보던 군졸이 화살촉을 발견하고 군교에게 소리쳤다.

《물증이 나졌으니 모든 짐을 배에 실으라.》

부하들에게 이렇게 령을 내린 군교가 검용에게 돌아서서 실실 비웃음을 흘리며 야스꺼운 소리로 빈정거리듯 입을 열었다.

《흥, 패강류역에선 인물이라 하기에 청렴한줄 알았더니 이만저만한 적당이 아니로군.》

검용은 그와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따지기가 싫어 외면한채 말하였다.

《상단사람들은 관련이 없으니 나 혼자만 잡혀가게 해주시오.》

《그렇게는 안될걸. 어쨌든 변명은 관가에 가서 하고 지금은 령을 받고 나온 길이니 모두 압송할것이다.》

군교가 명귀에게로 돌아서며 호령하였다.

《이자들은 조정에 반기를 든 역당들과 내통하는자들이니 어서 선창에 가두어라.》

바로 이 순간이였다.

별안간 명귀가 날이 시퍼런 검을 빼들고서 군교의 목을 단칼에 쳐버리는것이였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검용은 아연하여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껏 관장의 손발이 되여 우릴 박해하던 무도한자의 목을 쳐버렸으니 날 따르는자는 오른쪽으로 돌아서라.》

명귀가 피가 점점이 번져진 검을 쳐들고 군졸들에게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던 군졸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서는것이였다.

명귀가 다가와서 포박을 풀어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검용이 아연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어쩌자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가?…》

《차마 나리를 관가에서 붙잡아가게 놔둘수가 없었소이다. 저자는 패강진 관장의 심복으로 우리들을 학대하여 그 원한이 사무쳤기에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목을 쳤소이다.》

명귀의 말을 들은 검용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상관을 살해하였으니 이건 분명히 반란으로 취급될것일세. 내가 들여오는 화살촉은 계림의 관영시전상인들의 부탁으로 들여오는것이니 관가에서 크게 확산시키지 않을것이나 자네가 저지른 일은 아무래도 지나친 처사인듯 하네.》

명귀는 쓰겁게 웃으며 검용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나리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고지식하오이다. 장사를 하신다면서 세간의 간사한 꾀를 아직 리해를 못하시다니… 사실 나리를 고변한자가 바로 계림의 시전상인인 두근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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