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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 1 장. 방 황

6


아버지가 죽음으로 열어놓은 혈로로 완산성을 무사히 빠져나온 능환은 근 사흘동안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도 못한채 험한 산발을 탔다. 그는 완산주를 한시라도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벼랑에서 떨어져 뒹굴고 사품치며 흐르는 계곡에 빠져죽을번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산발을 타고 또 탔다.

하지만 열다섯살소년의 기력도 한정되여있는것이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한 초인간적인 힘으로 버티여왔으나 완산주지경을 조금 벗어나면서부터는 맥이 진할대로 진하여 뛰기는커녕 기여가기조차 힘들었다.

하긴 지금까지 버티여온것만도 기적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능환이는 어떻게 하나 변산반도쪽으로 빠져나갈 작정이였다.

그곳에는 옛날 아버지의 상단을 따라다니면서 안면을 익힌 선상들이 여럿 되므로 그들의 도움으로 자그마한 배라도 한척 얻어타고서 바다로 나가려는것이였다.

될수록이면 신라를 떠나 중원이나 발해로 가려고 작정했다.

신라에 그냥 머물러있다가는 아무리 변성명하고 지내도 언제든 잡혀 죽을 운명이였다.

하여 기력이 모두 진하여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나 죽기내기로 기고 또 기였다.

실지 그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대아찬을 살해하고 완산주도독을 상하게 하였을뿐아니라 완산성을 발칵 뒤집어놓고 도망친 주범을 관가에서 그냥 놓아둘리 만무한것이였다. 능환의 칼에 죽을번 하였던 완산주도독은 반드시 그를 붙잡아 찢어죽이겠다고 벼르면서 제가 직접 날랜 군사들로 추격군을 편성하여 범인이 도주한 곳이라고 짐작되는 산발들을 참빗처럼 훑었다.

대아찬 김술이 자객의 손에 살해되였다는 급보가 전령을 통해 계림으로 들어가자마자 대소동이 벌어졌다.

무조건 범인을 붙잡아 도성으로 압송하라는 조정의 공문이 떨어져 완산주는 물론이요 린접한 모든 주, 군, 현에 사방 능환의 용모파기가 나붙었다.

읍거리마다 관병들이 쏟아져나와 요로에 둔치고 서서 오가는 행객들을 단속했다.

능환의 목에는 천냥의 상이 걸렸으며 그의 행적을 고변하기만 해도 백냥을 준다고 공포했다.

혹 바다를 통해 빠질수도 있다는것으로 하여 서남해안을 수비하는 수군에까지 공문이 내려갔다.

당분간 신라의 서남해안에서는 한척의 배도 관가의 승인없이는 띄울수 없게 수군이 직접 통제하라는 조정의 지시였다.

능환은 그런것도 모르고 변산의 바다가를 향해 힘겹게 가고있었다.

드디여 완산성을 탈출한지 나흘째 되는 날, 능환은 변산의 바다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등성이에 이를수가 있었다.

그는 잠시 자기 행색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이 찢기고 터지여 성한 곳이란 한군데도 찾아볼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였다.

란발이 되여 얼굴을 내리덮은 머리칼사이로 번뜩이는 충혈된 눈자위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까지 내뿜고있어 대낮에 그와 맞다들린 사람은 아무리 담대하다고 해도 기절하여 뒤로 벌렁 나가넘어지고말것이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산을 내려갔댔자 대뜸 붙잡히고말것이였다.

능환은 산중에 숨어서 밤이 깊어가길 기다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어촌마을이 자리잡고있는데 그곳 촌장으로 있는 도치라는 인물이 아버지 영창과 안면이 깊은자였다.

능환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과정에 여러번 대면했던적이 있는지라 그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작정이였다.

될수록이면 배를 타고 멀리 가고싶었다.

좋기는 중원이나 발해땅으로 건너가서 류랑하다가 풍파가 잦은 다음에 신라로 돌아오는것인데 그것은 욕망뿐이고 지금은 어떻게 하든 여기를 빠져나가 목숨을 건져야만 했다.

능환은 눈판에 그대로 드러누워 점차 어둠이 짙어가는 밤하늘에 하나, 둘 나타나는 별들을 세여보고있다가 불현듯 치밀어오르는 오열에 몸을 떨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가문이 망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머리우에 씌워진 모진 운명이 너무도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 영창이 무모한 선택을 하여 이렇듯 자신이 비참한 처지에 빠진것이라고밖에는 무엇이라고 더 설명할수가 없었다.

다만 거사가 실패하여 막다른 골목에까지 이른 지금 도척의 개처럼 신라조정을 향해 무작정 짖어댈것이 아니라 옛 가문의 지위와 권력을 손에 넣는것이 옳은 명분이 아니냐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는것이였다.

능환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번에 거사가 실패한것은 아버지 영창이 백제재건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하였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운명을 놓고 모험을 할바에야 보다 더 큰 목적을 내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마음속 방황을 거듭하던 능환은 가까스로 자기를 다잡고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밤중이라고 해도 큰길에서 사람과 맞다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밭을 가로질러 마을로 접근해갔다.

다행히 아직 달이 환하게 비치고있어 목적하고있는 집을 찾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발볌발볌 소리가 안 나게 뒤울로 돌아가 싸리울타리를 비집으며 몸을 들이밀었다.

동네 개들이 깨여나 겨끔내기로 짖을가 걱정하였으나 다행히도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가 모든 소음을 삼켜버렸다.

발볌발볌 뒤울안을 가로질러 창가에 다가가 잠시 동정을 살피던 능환은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러번 두드렸으나 기척이 없자 파도소리가 너무 높아 들리지 않으리라 여기고서 힘껏 두드렸다.

그제서야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겁먹은 중늙은이의 안침한 목소리가 조심히 울렸다.

《거 누구요?》

순간 능환은 반가움보다 먼저 눈물부터 앞섰다.

눈앞이 안개가 서린듯 뽀얘지고 온몸을 간신히 버티여주던 실오리가 뚝 소리를 내며 끊어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주인어른, 나는 영창행수의 아들… 능환이오이다.》

그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깜짝 놀란 집주인이 등불을 들고 뛰여나왔다.

등불을 비쳐들고 걸인의 행색이나 다름없는 능환의 얼굴을 세세히 비쳐보고나서 그제서야 능환임을 알아보았는지 부축하여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마치 꿈속인듯 능환은 너덜너덜한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새 옷으로 바꾸어입고 주인이 들여놔주는 찬밥덩이를 손으로 쥐고서 걸신이 들린 놈처럼 입에 넣고 씹지도 않은채 꿀꺽꿀꺽 넘겼다.

바싹 허기진 배를 얼마간 달래니 겨우 정신이 돌아섰다.

《어찌된 일인가?》

집주인 도치가 침울한 어조로 물었다.

《관가에서 쫓는 몸이니 며칠간 숨겨주소이다.》

능환이 맥없는 목소리로 간청하자 도치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같아서는 며칠이 아니라 몇달이라도 있게 하고싶지만 그럴수가 없구만.… 아까 낮에 병졸들이 왔다갔어. 완산에서 조정대신을 살해하고 달아나버린 범인을 찾는가보네. 그러니 날이 밝으면 어디론가 가는것이 좋을걸세.》

설마 이런 바다가의 초라한 어촌마을에까지 관가의 손길이 뻗칠것인가 하고 생각하였던 능환은 그만 아찔하여 두눈을 감았다.

서있을 맥조차 없는 지친 몸으로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관가의 마수가 이곳까지 뻗쳐있다면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붙잡힐것은 자명한 리치였다.

능환은 더 길게 생각할 사이도 없이 도치를 향해 털썩 무릎을 꿇고앉아 간청했다.

《아버님이 관군의 손에 잘못되시고 가문이 적몰되여 남은것은 저 혼자올시다. 이제 만약 저까지 잘못되면 우리 가문은 졸지에 망할것이니 옛정을 생각하여 어떻게든 살려주소이다. 살려준 은혜는 뼈에 새기고 잊지 않겠소이다.》

주인은 딱하다는듯 입을 다시면서 무엇인가 길게 생각하는듯 하더니 능환의 팔을 잡아일으켰다.

《자네 정상이 하도 딱하니 차마 모른체를 할수 없구만.…

그럼 이렇게 하세. 내 자그마한 퉁궁이배 한척을 내여줄터이니 바다로 나가게나. 저 앞바다에 알섬이라고 빈 섬이 하나 있으니 거기에 숨어있게. 내 아들녀석을 시켜 틈틈이 량식을 넣어주겠네.》

《고맙소이다.》 능환이 감격하여 무릎을 꿇자 도치는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돌리고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행수님두 참…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면 되였지 무엇을 더 탐낸단 말인가. 사람이 욕심이 지나치면 그만큼 많은것을 잃기마련일세.…》

도치는 떠날 준비를 갖출테니 그동안 눈이나 좀 붙이라고 하면서 이불을 내리워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며칠동안 산중의 눈판에서 굴며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한 능환은 솜처럼 나른해진 몸을 꼬부리고 옷을 입은채 이불우에 누웠다.

피곤이 가득 실리여 연덩이처럼 무거워진 눈시울이 자꾸만 감겨졌다.

차츰 멀어지는 의식속에서 한순간 이 집 식구들이 어째서 하나도 보이지 않을가 하는 의문이 잠시잠간 떠올랐다가 사라져버리고 끝내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가.…

능환은 꿈속에서 피투성이가 된채로 자기를 향해 소리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가슴을 부여잡고서 아들에게 어서빨리 일어나라고 안타깝게 소리치는것이였다.

능환은 악! 소리를 치며 환각에서 깨여났다.

의식이 점차 선명해질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가슴은 천근추를 달아맨듯 답답하기만 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능환은 여러 사람의 웅성이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온몸을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누르는듯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운 상태에서 제 몸을 내려다본 능환은 온몸이 굵은 삼바줄로 꽁꽁 묶이워있음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젠 정신이 드느냐?》

오지로 만든 독의 밑바닥에서부터 울려나오는듯 한 웅글은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울렸다.

간신히 두눈을 치뜨고 올려다보니 체격이 우람한 사나이가 굽어보는 모양이 안겨왔다.

그가 걸치고있는 수군장수의 복색을 알아본 능환은 이젠 모든것을 포기하고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그럼 이젠 떠나자.》

맨 처음 목소리를 낸 사나이가 이렇게 소리치자 네명의 수군이 다가와서 옴짝달싹 못하게 사지를 꽁꽁 결박한 능환을 번쩍 쳐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뼈를 쿡쿡 에이는 찬바람에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나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날 용서해주게. 관가에서 군졸들이 나와서 안해와 아들녀석을 인질로 붙잡아갔다네. 자네를 찾으면 그때 놓아주겠다더군.… 난 자네를 위해서 식구들을 잃고싶지 않네.》

도치가 지척거리면서 다가와 죄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능환은 무심한듯 새벽추위에 오돌오돌 떨고있는 새벽별들을 올려다보고있었다.

막상 위구하던 일이 불쑥 닥쳐오니 세상만사에 대한 흥미를 모두 잃어버리고 허탈감만 가슴에 꽉 들어차는것이였다.

《곧장 수군영으로 가려는지요?》 수군군졸중의 한명이 장수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거처하던 곳으로 돌아가자. 배가 들어오려면 멀었으니 조반이나 일찍 재촉해 먹고서 떠나도록 하자.》

능환을 측은한 눈길로 굽어보고섰던 수군장수가 이렇게 말하고는 앞장에 서서 걸어갔다.

전후좌우 수군의 옹위까지 받아가며 끌려가는 능환은 누가 보기에도 전장에서 상해서 군영으로 돌아가는 장수의 자세였다.

도치네 집에서 나온 수군들은 어촌마을과 외따로 떨어진 초막집으로 가는것이였다.

수군군졸들이 수군대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이 외딴 초막집이 바다순찰을 나오는 수군들이 이따금 들려가는 집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초막이라 하지만 제법 널직한 방이 아래, 우 두칸으로 되여있었다.

수군은 수군장수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섯인데 하나같이 건장하고 짠물에 젖은자들이라 설사 포박을 푼다고 해도 능환의 혼자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것만 같았다.

능환을 한지나 다름없는 웃칸에 처넣은 수군들은 밖에 파수를 하나 세워놓고 모두 아래방으로 들어가앉았다.

한창 밤을 새며 술을 돌려마시다가 도치의 고변을 듣고 뛰쳐나온듯 했다.

아래방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울리는것으로 보아 술판을 다시 펴놓고 먹고마시는것 같았다.

능환은 추위에 덜덜 떨리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용을 써보았으나 어찌나 단단히 결박하였는지 포승끈이 늦추어지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벽닭의 울음소리에 그만 맥이 진하여 고개를 뒤로 떨구었다.

이때 문이 삐거덕 열리면서 찬 기운이 확 끼쳐들어왔다.

갑자기 축축한 어둠을 밀어내며 불빛이 어른거리는것으로 미루어보아 누군가가 안에 들어왔음을 알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상대는 발끝으로 능환의 옆구리를 직신직신 건드렸다.

능환은 웅글은 목소리를 듣고 그가 수군장수임을 알았지만 한마디 대꾸도 없이 두눈을 감고있었다.

수군장수는 두말없이 끙 소리를 내며 능환의 몸을 번쩍 안아 벽에 등을 기대여앉혔다.

바닥에 놓았던 등불을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능환의 얼굴모습을 자세히 볼수 있는 위치에 놓고는 한발 뒤로 물러나 방바닥에 궁둥이를 무겁게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두눈을 가느다랗게 뜬 능환은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무장답게 둥그스름한 얼굴륜곽을 구레나룻이 보기 좋게 감싸고있었다.

이렇게 가깝게 보니 나이가 자기보다 십년이상 나보이지 않는 젊은 얼굴이였다.

사납게 번뜩이는 두눈만 아니라면 필경 인정많은 사내의 모습일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치는것이였다.

그의 두눈만은 마음이 약한 사람은 감히 마주보기 어렵게 그 어떤 잔혹한 의지와 살기가 내비치고있었다.

하지만 능환은 전혀 끌리는 기색이 없이 자신의 생사여탈을 한손에 쥐고있는 그 사내의 두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허, 대단한걸. 과시 세상을 들었다놓을만 하군. 영창행수가 아들을 시라소니로 키우지는 않았구나.》

상대는 겁기없는 능환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저희 아버님을 잘 아시오이까?》

비로소 능환이가 침묵을 깨고 물어보자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내가 수군에 군적을 올린 후에 몇번 신세를 진 일이 있다. 이번에 완산에서 일이 터진 후에야 네 아버지가 백제의 대귀족가문의 후예라는것을 알게 되였지.…》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능환의 기색을 유심히 살피다가 불쑥 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하였다.

《살고싶으냐?》

능환은 소스라치며 상대의 얼굴을 정신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상대는 단호한 동작으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능환의 결박을 끊어버렸다.

《대체 어떤분이길래 날 놓아주려는것이오이까?》

능환이 이렇게 물어보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서남해안방어군에서 대정으로 있는 견훤이란 사람이다.》

능환이 귀에 선 이름에 속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그의 웅글은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도치의 고변이 들어와 하는수없이 널 붙잡게 되였으나 이대로 끌고갔다가는 필경 릉지처참을 당할것이니 차마 내 손으로 끌고갈수는 없구나. 저기 뒤문을 열어놓았다. 그러니 내가 나간 다음에 곧장 여길 나와서 개가로 가거라. 거기에 자그마한 퉁궁이 한척이 매여있을것이다. 》

능환은 전혀 믿어지지 않는듯 서뿔리 움직일념을 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믿어지지 않느냐?…》

그는 초조하듯 이렇게 다그쳐물었다.

《날 놓아주었다가는 제일먼저 피해가 돌아갈것이온데 어찌… 살려주려 하시나이까?》

능환의 위구심이 무엇인지 안다는듯 견훤은 픽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나이가 어리군. 그래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일을 그리 허술히 벌릴리가 있겠느냐. 도치는 이미전에 처치하였으니 네가 내 손에서 빠져나갔음을 아는자가 한명도 없다.

네가 무사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난 완산에서 도망친 범인이 이곳에서 도치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탈출했다고 군영에 보고할것이다. 그럼 기껏해서 범인을 놓친 죄로 아무 처분이라도 받을것이 아니겠느냐.》

능환이 아직 석연치 않다는듯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견훤은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세우며 말하였다.

《어서 가거라. 완산에서 죽은 네 부친이나 상주에서 비명횡사한 나의 부친이나 다같이 백제의 후손이길래 널 살려주는것으로 알아라.》

능환은 그때에야 비로소 가슴에 큰 충격을 받고 견훤의 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살려준 은혜를 뼈에 새기고 잊지 않겠소이다.》

견훤은 그의 어깨우에 묵직한 손을 올려놓으며 두눈을 번뜩이였다.

《살아라. 살아서 반드시 오늘의 원한을 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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