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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방 황

3


어른들의 밀담을 곁에서 그냥 듣기가 따분하여 밖으로 나온 관나는 마구 붐비는 행객들사이로 저자거리를 천천히 걷고있었다.

철원성의 저자는 인총이 많이 모여들고 행객의 무리가 사방에서 그칠새 없어 풍물과 인심이 언제나 새롭고 활기로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바리, 소바리, 짐군, 지게군… 어느새 뭇사람의 발길에 반들반들 얼음판이 되여버린 행길에는 에쿠, 지쿠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들로 사태가 났다.

대체로 천민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은 술장사, 떡장사, 엿장사 같은 허드레음식판이였고 행상들이 등에 지고온 보따리를 풀어 벌려놓은 청동거울, 참빗, 노리개 등을 팔고있는 허줄한 로천가게들이였다.

해살이 퍼지자 바람이 잦아들어 아까보다는 별로 춥지 않았다.

《허어- 쫄깃쫄깃한 엿이요. 하박하박한 단엿에 울퉁불퉁한 대추엿이라. 저 건너편 문서방의 굽은 허리같은 엿가락도 있고 새애기 속살처럼 희디흰 찹쌀엿도 있으니 어서 가져가시오, 어서요!》

엿장사의 건드러진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값진 장신구나 털가죽, 비단 등이 잔뜩 걸려있는 시전상인들의 점포앞에 둥그렇게 장사진을 치고서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던 철없는 아이들이 와 달려오는통에 저자거리는 잠간사이에 소란스러워졌다.

떡장사도 엿장사에 뒤질세라 녀자목소리처럼 가늘고 힘없는 목청을 돋구어가며 있는 힘껏 고함쳤다.

《이것 보소, 시루떡에 매맞고 늘어진 가래떡, 부끄럼 잘 타는 새애기가 밤새 콩콩 손절구로 찧은 찰떡도 있고 정월대보름날 보름달처럼 둥근 달떡도 있으니 어서 사시오.…》

한쪽에서는 잔술을 파는 술청으로 사내들이 욱 밀려가서 저들끼리 모여앉고 둘러서서 술도 돌려마시고 곁따라 구운 고기며 장떡이며를 먹으면서 왁자지껄한데 다른쪽에서는 이른아침부터 저자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나온 아낙네들이 하루밤 자고나니 또 뛰여오른 쌀값을 깎느라고 싸전주인과 목청을 돋구어 아옹다옹 다투었다.

관나는 이러한 광경을 눈여겨보면서 계속 발을 옮겼다.

그는 저자거리의 이러한 활기와 늘 새롭게 맞다드는 풍물이 좋았던것이다. 그가 나서자란 계림에 비하면 규모가 못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가 단출하면서 활기로운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관나는 저자에서 나서 저자에서 자랐다고 할수 있었다.

그는 정실소생이 아니라 첩의 몸에서 난 서자였다.

이러한 리유로 나이차이가 심한 정실소생의 두 형으로부터 어려서 따돌림을 받아왔고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들에게서조차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하지만 관나는 가문의 박해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한치한치 자기자신의 위치로 톺아올랐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비가 장사일로 늘 밖에서 살다싶이 하는것만큼 관나는 집보다도 저자거리에서 사는 날이 더 많았다.

집에 있어봤자 눈치나 볼것은 뻔한노릇이였기에 줄창 저자거리에 나가 아비가 부리는 차인들속에서 성장했다.

어떤 때는 행상인들의 등에 업혀서 멀고 가까운 지방의 장시를 편답하기도 했다.

장시가 바로 그의 집이였고 보금자리였다.

이 과정에 시장변동에 따라 오르내리는 시세를 잘 알게 되였고 직접 각 지방의 풍물과 접하면서 상재를 몸으로 익혔다.

두 형이 아비의 세력과 재산을 등대고 기생방에 드나들며 놀음에 미쳐돌아갈 때 관나는 어린 나이에 벌써 멀고 가까운 지방과 고을들의 풍속, 지리, 물산에 대해 익혔던것이다.

드디여 관나가 정실소생이랍시고 늘 자기를 구박하고 거드름만 피우고 다니는 두 형을 제끼고 아비의 눈에 들 기회가 생기였다.

관나가 열살되던 해 여름이였다.

은근히 후사를 걱정하던 두근은 취재로써 자기뒤를 이을 아들을 정하기로 결심했다.

정실소생의 두 아들이 아비의 상업을 물려받을 생각은커녕 젊은 나이에 주색에만 미쳐돌아가니 이번 기회에 한번 정신이 들게 해주려는 생각도 있었던것이다.

그는 두 아들을 불러 각기 점포를 하나씩 맡기면서 열흘내에 매상고를 두배이상 높이라고 하였다.

사실상 열흘내에 매상고를 두배이상 높인다는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닐수 없었다.

두근은 정실소생의 두 아들이 매상고를 높이리라고는 애당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들이 이 기회에 장사를 배우고 물건을 사고파는데 대해 관심을 가지기만 해도 성과를 볼수 있으리라 여긴것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열살밖에 안된 어린 관나가 찾아와서는 당돌하게도 자기도 취재를 보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것이였다.

자기는 점포도 필요없으니 그저 은병을 한개만 주면 열흘안에 배로 만들어가지고 오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두근은 놀랍기도 하고 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여 이렇게 입을 열었다.

《좋다, 리자까지 갚겠다니 더 할말이 없구나. 헌데 담보는 무엇으로 할테냐?…》

《예, 담보는 갑자기 손에 쥔 돈이나 물건이 없으니 이제 소자가 성장하여 아버님께서 물려주실 점포나 상권을 아예 사양하는것으로 하겠소이다. 만약 소자가 실패하여 그 돈을 갚지 못한다면 아버님상단의 차인으로 되여 다달이 급료로써 갚겠나이다.》

《허, 그거야 앞으로 몇년이 지나야 할지 어찌 알고 기다리겠느냐. 후날 네가 딴소리할지 모르지 않느냐?》

《증서를 받으면 될것이 아니오이까. 소자가 돈을 갚지 못한다면 이제 성장하여 상단의 차인이 되든 종이 되든 부려서 그 값을 받아내면 되오리다.》

두근은 어린아이의 소견으로 물건을 거래하는것과 신용을 담보하는것에 대해 열성을 부리는것을 보고 은근히 속으로 대견하게 여겼다.

실은 서자인 관나까지 취재를 볼 생각은 애당초 생각조차 하지 않은 터에 본인이 스스로 나서니 이녀석이 어찌하나 한번 취재해보는것도 좋으리라 여기고 쾌히 응하고서 은병 한개를 내주었다.

두근이는 아예 그 돈이 다시 들어오기를 기대조차 하지 않고 내주었다.

그저 서자로 자란 관나가 불쌍하여 은병을 내준것이지 애당초 다시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안했었다.

다만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아비를 빼여닮아 장사에 극성인것이 마음에 들었을뿐이였다.

관나는 그 돈을 들고나가 기한이 되도록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더니 마지막날에야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맨손으로 쭈밋거리면서 앞마당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고 두근은 짐짓 성을 내여 꾸짖었다.

《너 이놈, 결국 아비를 속여서 그 돈을 갖다가 무얼하였느냐?》

《아버님, 고정하소이다. 여기 아버님과 약속한 돈이 있소이다.》하더니 관나는 당당한 기색으로 시뻘건 수결이 찍혀있는 어음을 펴서 내미는것이였다.

두근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얼결에 받아들고 이리저리 뒤집어보았으나 낯익은 거래인의 수결이 분명했다.

흔히 거래하듯이 2할의 리자까지 덧붙인 은병 한개에 대한 어음이였다.

《이거 혹시 누가 만들어준것이 아니냐?》

《아니올시다. 아버님께서 꾸어주신 은병 한개를 네개로 만들었나이다. 》

두근은 어린아이의 당돌한 대답에 기가 막히지 않을수 없었다.

놀라고 궁금하여 슬그머니 다가앉아 물으니 관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얘기했다.

《장거리에 나가자바람으로 안면이 있는 차인들을 고용하여 약국에 흔한 백출 〈흰삽주뿌리〉 한근에 값이 얼마인가 알아보도록 시켰더니 내가 가지고있는 돈이면 여기 계림의 백출을 다 사들이고도 남음이 있었소이다. 약국주인들은 백출이 지천으로 있는터이라 이게 웬일이냐고 너도나도 나서서 모두 털어놓는것이였소이다. 이렇게 열흘동안 하니 백출이 완전히 바닥이 나고 독점하였으니 그 값이 뛰여오르지 않을리가 있겠소이까. 고의로 차인들을 시켜 조금 내고 도로 사고 하니 거래가 활발해져서 이전가격보다 거의 열배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형편이였소이다.…》

《가만, 네 방법이 심히 좋다마는 혹시라도 차령고개를 넘어 약재를 전문 운송하는 행상단이라도 들이닥치면 어찌할것이냐?》

두근이 약점을 잡았다싶어 이렇게 찔러대는데도 관나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아니였다.

《다 알아보았나이다. 지금은 장마철이라 길이 끊겨 타고장의 약재장사들이 쉽사리 이곳으로 들어올수 없을뿐더러 가을에 캐서 말리워야 약효성분이 세지는 백출을 어디서 갑자기 많이 구하겠소이까. 거기에 일부러 타고장상인들로 가장한 차인들을 내세워 백출이 급히 소용되여 값을 묻지 않고 많이 사겠다고 떠들어대니 약국주인들이 괜히 재고를 바닥냈다고 공연히 안달복달하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바로 이틀전에 백출을 이전보다 네배의 가격으로 냈더니 약국사람들은 물론 시정의 상인들까지 나서서 너도나도 사가는 형편이였나이다. 그래서 이렇게 은병 한개로 은병 네개를 만들어 가져온 길이오이다.》

두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더니 무릎을 철썩 내리쳤다.

《네가 그 나이에 장사에 대해 깊이 꿰고있는것은 좋은 일이다. 이 아비의 취재를 잘 치르었으니 그만하면 손색이 없다.》

두근의 취재를 본 세 아들중에 유독 관나만이 이렇듯 장사에서 성공하였던것이다.

정실소생의 두 아들은 점포의 매상고를 올리기는커녕 어린 관나가 애달복달하며 아비의 눈에 들겠다고 뛰여다닐 때 놀음판에만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두근은 그후로 막내아들 관나를 어떻게나 신통하게 여기는지 늘 곁에 데리고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들의 재능을 알게 된 두근은 정실소생의 맏아들과 둘째아들은 각각 타지방으로 상권을 분배하여 점포를 나누어 분가시켰지만 관나만은 잠시도 곁에서 떼여놓지 않았다.

하여 두근의 상단사람들은 관나가 아비의 뒤를 이을것이라고 수군거렸고 어느새 두해라는 세월이 흐르는 속에 그것을 거의 확정하다싶이 하였던것이다.…

갑자기 눈앞에서 소동이 벌어지는통에 관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자거리를 오고가는 행객들이 모여들더니 삽시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두눈이 휘둥그래진 애녀석들이 와 떼지어 달려갔다.

심지어 저자바구니를 옆에 낀 아낙네들도 종종걸음을 쳤다.

관나는 역시 어린 나이라 충동에 못이겨 원표가 뒤에서 만류하는데도 하얗게 길목을 막고 웅성거리면서 어깨를 부비는 행객들 틈을 비집고들어갔다.

어른들의 거친 욕설을 들으면서 간신히 맨 앞줄에까지 나와선 관나의 눈앞에는 자기보다 열살 더 나보이는 젊은 녀석이 체통이 우람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과 치렬하게 맞붙어싸우는 광경이 펼쳐졌다.

주위에 늘어선 구경군들은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릴념을 하지 않고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듯이 왁자지껄 떠들기만 했다.

관나의 뒤를 따라 행객들 틈을 비집고나온 원표가 옷소매를 잡고 끌었다.

《도련님, 어서 가시우다. 나리님이 기다리고있을텐데…》

관나가 손을 뿌리치는것을 보고는 기가 막힌듯 《원, 이렇게 철이 없다구야…거리의 불량배들의 싸움을 첨 구경하는가요?》 라고 투덜거렸다.

관나는 원표가 어서 가자고 간청하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판만 유심히 살폈다. 저자거리에서는 술취한 불량배들이 행객들에게 야료를 부리거나 저들끼리 구역을 정해놓고 이른바 보호하는 점포들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세력싸움을 벌리는것쯤은 례사로운 일이였다.

관나도 어려서 저자거리에서 자랐기에 이러한 광경에 익숙되여있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판은 그런 부류의 싸움이 아니였다. 거리의 불량배들과는 전혀 다른 풍의 사나이 셋이 살기를 띠고 필사적으로 덤벼들고있었다.

비록 변복을 했어도 행동거지가 척 보기에도 도적을 잡는 포도군사가 아니면 형리들이라는것이 헨둥히 알리였다.

그러나 젊은 녀석도 만만치는 않았다. 별로 큰 체격도 아닌데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장사같은자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맹렬한 기세로 덮쳐드는데도 이리 뛰고 저리 날며 무섭게 맞받아싸웠다.

관나가 눈여겨보니 젊은 녀석은 뜻밖에도 보름보기였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에서는 보기에도 끔찍한 살기가 뿜어져나왔다.

《저 외눈통이가 관청에서 기를 쓰고 잡겠다던 그자인가?》

《그런가봅디다. 북원의 반란군두령인 량길의 부하라는데 얼마전엔 여기서 멀지 않은 고을을 습격하여 그곳에서 행세하는 모모한 귀족의 집안을 통채로 몰살시켰답디다.…》

《원, 담도 크군. 헌데 여기 철원성엔 왜 들어왔을가?》

《글쎄요.… 혹시 철원성을 치자고 먼저 렴탐을 하려는것이 아닐가요?…》

옆에서 어깨성을 쌓고 웅성거리는 군중속에서 오가는 말들이 귀전에 들려왔다. 서로 치렬하게 치고받는 속에 사나이들중의 한명이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외눈통이 젊은자가 앞장서 들어오는자의 사채기를 되게 걷어찼던것이다. 남은 두명이 두눈이 벌컥 뒤집혀 품속에서 짧은 칼과 몽치를 꺼내들고 달려들었다.

외눈통이는 반팔길이의 날이 시퍼런 환도를 빼여들고 접어드는자의 손목을 잡아 뒤로 꺾으며 칼을 빼앗고는 팔이 뒤로 꺾이여 비명을 지르는 사나이의 등을 아무런 주저없이 힘껏 내리찍었다.

사람이 죽어너부러지고 피가 흘러서야 이 싸움이 례사 싸움판이 아님을 깨달은 군중은 혼비백산하여 조급하게 와 흩어져버렸다.

말발굽소리가 진동하더니 말을 탄 관군의 모습이 언듯언듯 골목길에 나타났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성이 독같이 오른 마지막사나이가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몽치를 잽싸게 피한 외눈통이가 고슴도치처럼 몸을 옹크렸다가 별안간 고양이처럼 날래게 뛰여오르며 사나이의 멱을 손에 든 칼로 눈깜짝할사이에 베였다.

《잡아라!》 어느새 싸움판에 다달은 관군이 창검을 겨누어들고 미친듯이 소리쳤다.

공포에 질린 군중이 밀고닥치고, 흩어지고 하며 복새통을 놓는통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에서 고함만 지르고있었다.

하지만 저자거리 좌우로는 주런이 점포들이 늘어서있고 관군이 앞뒤로 막고있기때문에 외눈통이가 잡힐것은 불보듯 뻔한노릇이였다.

원표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밀고닥치고 복새통을 놓는통에 관나를 시야에서 놓쳐버렸다. 간신히 사람들 틈을 헤치며 공지에 나서는데 방금 살인을 한 외눈통이를 향해 관나가 무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 굳어져버렸다.

관나가 무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외눈통이는 그의 목을 죄여잡고 목에 칼을 겨눈채 가재걸음을 치는것이였다. 얼굴이 새까맣게 질린 원표는 급히 옆구리를 더듬어 장검을 뽑아들고서 발을 옮겨짚다가 흠칫 놀라 굳어져버렸다.

《다가오지 말아. 꿈쩍하면 이 애의 목을 도릴테다!》

외눈통이가 사납게 소리치는데 부릅뜬 눈에서는 잔인한 살기가 황황히 타올랐다.

군중이 흩어져버리자 관군이 창검을 겨누어들고 달려왔다.

그제서야 펄쩍 정신을 차린 원표는 칼든 손을 벌리고 관군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너도 살인을 한 놈과 함께 잡아가겠다.》

얼굴이 시꺼멓게 번들거리는 텁석부리군교가 원표의 몸에 맞구멍을 낼듯 날창을 겨누어들고 소리쳤다.

《저길 보아라. 너의 눈에는 볼모로 잡힌 사람이 보이지 않느냐?》

원표는 필사적으로 막아서며 맞받아 소리쳤다.

《흥, 우린 그런걸 몰라. 저 애꾸놈은 나라에서 찾고있는 중범이다.》

관병들이 창검을 들고 무지막지하게 접어들자 원표는 하는수없이 검을 내대며 막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의 등골로는 소름이 끼쳤다.

만약 군사들이 무작정 잡으려든다면 저 애꾸가 손에 든 칼로 관나를 해치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어째서 관나가 리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였을가 하는 의문이 지꿎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혹시 관나가 자기를 방패로 저 애꾸가 사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고 한것은 아닌지.…

어쨌든 관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만에 하나 저 애꾸의 손에 들린 칼이 관나를 상하게 한다면 무슨 체면에 그 아비를 마주할수 있겠는가.

원표에게는 어린애적부터 데리고다닌 관나가 아들이나 다름없었던것이다.

애꾸녀석이 인질로 잡은 아이를 방패로 슬금슬금 뒤걸음치는것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데 화가 난 텁석부리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애새끼가 죽든 살든 상관하지 말고 어서 저놈부터 잡아묶어라!》

군교의 부추김을 받은 군사들이 사색이 된 원표를 붙잡으려고 욱 덤벼들려는 순간이였다.

《잠간 멈추어라!》

갑자기 그들의 등뒤에서 이런 고함이 터져나왔다.

뒤를 돌아보던 텁석부리는 그만에야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여기 철원성은 물론 전국각지의 시전을 쥐락펴락하는 대상인 두근이가 성난 얼굴로 뛰여오고있었던것이다.

《이놈들, 감히 내 아들을 해치려들어?》

두근은 평소에 늘 침착하고 교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미친놈처럼 허둥지둥하였다.

당황해난 텁석부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아들이라뇨?! … 댁의 아드님을 우리가 어쨌다고 이러시오이까?》

《바로 저기 볼모로 잡힌 아이가 내 아들이다. 뭐 애새끼가 죽더라도 상관말라고?… 이런 무도한 놈들을 봤나.》

그제서야 영문을 알게 된 텁석부리는 얼굴이 새까맣게 죽었다.

《진정하오이다. 우리가 그걸 알았으면야…》

두근은 제 아들을 볼모로 잡고있는 애꾸눈이를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텁석부리에게로 돌아섰다.

《당장 돌아가주게. 어서! …》

《예?!… 그건 아니되오이다. 저 애꾸놈은 나라에서 찾는 흉악한 살인범이로소이다.》

《그럼 내 아들을 죽일셈인가?》

말이 여기까지 번져지자 텁석부리는 당황한듯 황급히 도리질했다.

《원, 그럴리야…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저 애꾸놈도 잡고 아드님도 무사히 돌려드릴테니 마음놓으시오이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우린 형틀에 올라앉아야 하오이다.…》

텁석부리의 애원을 들은 두근의 눈꼬리가 빳빳하게 살아올랐다.

《관가에 돌아가서 성주께 사연을 낱낱이 고하거라. 이 두근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크게 문책당할 일도 없을게다.》

텁석부리는 어쩔가 망설이던 끝에 두근이 시키는대로 돌아갈 결심을 내렸다. 살인을 친 놈을 붙잡아간들 포상은커녕 국물도 없을것인즉 그럴바에는 이 기회에 생색을 내여 대상인인 두근에게 잘 보이는것도 괜찮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검시를 위해 죽은자들을 들것에 담아싣고 관가로 가져가라고 이르고는 슬금슬금 뒤걸음질로 저자거리를 떠났다.

《어르신, 소인이 그만…》

두근은 사색이 되여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는 원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리둥절하여 어쩔가말가 망설이고있는 애꾸눈이에게로 다가갔다.

당황해난 애꾸눈이는 더 다가오지 말라는듯 칼을 내댔다.

두근이는 애꾸눈이의 아래우를 깐깐히 훑어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난 또 내 아들을 방패로 삼은 놈이라기에 나타태자처럼 머리가 셋이고 손발이 여섯개나 되는 괴물같은 놈이라 여겼는데 이건 둘 있어야 하는 눈알도 하나밖에 없는 외눈통이였구나.》

외눈통이가 이를 사려물며 살기띤 외눈을 부릅뜨는것을 보고는 픽 비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좋다. 보매 네놈은 북원의 량길두령의 부하인듯 한데 이젠 관군들이 다 돌아갔으니 어서 그 앨 놔주고 갈데로 가봐라.》

하지만 애꾸눈이는 관나의 목을 겨눈 칼을 내리지도 않은채 여전히 기가 살아 소리쳤다.

《흥, 성안에 온통 군사들이 쭉 깔려있는데 어떻게 빠져나가라는거요?》

두근은 성이 독같이 나서 두눈을 부릅뜨고 애꾸눈이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다가 어이가 없다는듯 입을 다셨다.

원표가 허리에 찼던 장검을 풀어내리며 《내가 대신 너의 인질이 되여 성밖으로 무사히 빼내주겠으니 어서 도련님을 놔주거라.》라고 애원하듯 말하였으나 애꾸눈이는 요지부동이였다.

바로 이때 관나가 아비에게 또릿또릿한 목소리로 성밖까지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겠으니 걱정말라고 하는것이였다.

두근이 어찌할바를 몰라 망설이는데 조급증이 난 애꾸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댁의 아들을 성문만 통과할 때까지 잠시 방패막이로 쓰자는것이니 어서 길을 비키시우. 만약 군사들이 또다시 날 잡으려 하면 나도 어찌 할지 모르니 더 지체할 겨를이 없소이다.》

그제서야 두근은 하는수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이 골목길로 사라지는것을 별도리가 없어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두근에게 원표가 쭈밋쭈밋 다가섰다.

두근은 화풀이할 상대가 나타난듯싶어 대바람에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으르렁거렸다.

《이놈아, 그래 이럴 때 쓰겠다고 지금껏 먹여주고 입혀주었는데 저따위 흉악한 살인범에게 내 아들을 빼앗겨? 관나의 손끝 하나 다쳤다간 봐라. 내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

《어르신, 소인이 그만 죽을 죄를 졌으니 죽여주십시오. …》

죄지은자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원표는 날 잡아다 잡수시오 하듯이 머리우에 떨어지는 욕을 고스란히 받았다.

하긴 상전인 두근에게 관나가 제발로 애꾸눈이의 볼모로 되였다고 설명하는것자체가 부질없는짓이였다.

한편 관나를 앞세운 애꾸눈이는 생각보다 쉽게 성문을 벗어날수 있었다.

철원성은 그 둘레가 10리가량 되는 큰 성이였으니 그만큼 인총이 많고 집이 많은것으로 하여 골목의 갈래 또한 여러가지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철원성을 손금보듯 하는 관나는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골목길로 애꾸눈이를 안내하여 무사히 성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했다.

아까 좀전에 두근이 군사들을 호령하여 쫓아버린것이 효험을 냈는지 저자거리 한복판에서 큰 살인이 났는데도 성안팎이 평범하게 조용했으며 여느때나 다름없이 성문도 활짝 열려있었다.

그들이 후날 알게 되였지만 관나와 애꾸눈이가 성문을 나가자바람으로 관가에서 보발군이 달려와 급히 성주의 령을 전하고 성문을 닫아걸게 하였으며 관채가 뜨고 군사들이 쓸어나와 골목골목을 줄뒤짐했다.

성문을 나선 애꾸눈이는 고개길우에 서서 소매속에 감춘 칼을 꺼내들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멀리 흐르는 강물에 던지고는 관나에게 돌아서며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잡히지 않았구나. 그래 네 이름이 뭐냐?》

《이름을 물으려면 먼저 네 이름부터 밝혀라.》

관나는 또라진 목소리로 되받았다.

애꾸눈이는 낄낄거리며 웃고나서 거드름스럽게 몸을 쭉 폈다.

《흥, 그래도 부자집도령이라고 속은 살았구나. 좋다, 내 이름은 궁예이다. 이젠 알았니?》

그의 말에 관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궁예라면 북원에서 일어난 량길의 반란군의 소두령중 싸움 잘하고 잔인한자로 이 아근에서는 소문이 자자했기때문이였다.

《나는 관나이다.》 관나는 이렇게 제 이름을 밝혔다.

애꾸눈이는 정색한 얼굴로 돌아가 관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래, 관나라… 내 네 이름을 잊지 않으마. 언제든 죽지 않으면 네신셀 갚을 날이 있겠지.》

관나는 여러 사람을 아무 꺼리낌없이 죽여버린 이 애꾸눈이의 얼굴을 두려움없이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한쪽눈을 검은 천으로 싸맨 얼굴이였으나 흉악하던 살기가 가셔지니 부드러운 모습으로 돌아가있었다.

코날이 바로서고 입술이 붉은것이 필경 애꾸만 아니였더라면 잘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모진 경난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깨진 독의 서슬처럼 시퍼렇게 살기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애꾸눈이에게는 그 어떤 숨은 힘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흡인력이 관나를 끌어당겼던것이다.

나이는 비록 어려도 일찌기 철이 들고 고초를 겪어 어른들 못지 않게 궁냥이 튼 관나는 그 마력과도 같은 힘에 끌리워 순간적으로 이 애꾸눈이를 살리려고 우정 인질이 될 결단을 내렸던것이다.

저자거리에서 자라 오직 타산과 리익에 대해서만 배우며 성장한 그로서는 자기의 이 결단이 참으로 놀라운것이였다.

《자, 그럼…》

궁예가 돌아서려는데 관나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를 멈추어세웠다.

《어인 일로 철원성에 들어와 살인까지 치게 되였니?》

궁예는 흠칫 몸을 떨고는 표독스러운 기색으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관나를 잡아먹을것처럼 노려보았다.

겁없이 두눈을 빤히 뜨고 올려다보는 관나를 내려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듯 씩 웃었다.

《그래 난 살인자다. 태여나자바람으로 아비에게 버림받아 죽을 운명에 처한 내다. 이젠 알겠니? 네가 구해준 이 애꾸눈이가 어떤 흉악한 살인자인줄 말이다. … 난 복수하겠어.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말것이다.》

궁예의 입에서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말마디들이 연방 튀여나오는데도 관나는 눈섭 하나 까딱 안했다.

《이제 어디로 갈테냐?》 관나의 물음에 궁예는 씩 웃어보이고나서 줄줄이 잇닿았다가 뻗어나간 산줄기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천하가 내 집이지.… 발길 가는데로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느라면 어디든 정착하게 될것이다.》

《흥, 여기 철원지방을 네가 눈독을 들이고있는줄 내가 모를줄 알구?》 관나가 이렇게 꼬집어 말하자 궁예는 놀라서 외눈을 크게 떴다.

《그… 그건 무슨 말이냐?》

《난 네가 반란군의 몸으로 여기 대처를 돌아친것이 무슨 렴탐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있어. 넌 자기가 일어설 발판을 찾고있을테지.…》

궁예는 외눈으로 관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린 놈이 참으로 당돌하구나. 네녀석은 누구냐?》

《난 여기 철원성의 세력자인 두근이란 사람의 아들이다. 앞으로 내 도움을 바랄수가 있을것이다.》

관나의 말을 들은 궁예는 처음에는 놀라는 눈치더니 갑자기 기분이 달라져 껄껄 웃어제쳤다.

《허, 너의 아비가 청동거울을 들고 지옥까지 비쳐본다는 시전상인들의 두목이였구나. 그런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한몫 단단히 우려내는건데… 하하!》

궁예는 한바탕 웃고나서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 지금은 내가 보잘것없는 처지여서 널 도와주지도 못하고 또 도움을 받을 처지도 못되지만 앞으로 세력이 커지게 되면 서로 상종이 많을것이다.》

궁예는 이 말만 남기고 관나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흔들흔들 고개길을 내렸다.

관나는 우두커니 고개길우에 말뚝처럼 서서는 차츰 멀어져가는 애꾸눈 궁예의 뒤모습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앞으로 저 애꾸눈 궁예가 자기 운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겠는지를 알수 없는 관나는 이 순간 오직 그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줄창 고개길우를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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