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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장. 방 황

2


드물게 맑고 추운 날이였다.

차거운 바람이 북쪽에서부터 불어왔다.

새하얀 수의를 걸친듯 스산하게 느껴지는 산봉우리들마다에 뼈만 남은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삭풍에 몸부림쳤다.

광야에서는 퍼런 눈보라가 일었다.

밤새껏 휘몰아친 눈보라에 새하야니 설탕처럼 반짝이는 설령의 산악들로 둘러막힌 철원성은 아직도 하늘상공에서 우- 우- 울부짖는 눈보라에 아랑곳 않고있었다.

황량한 눈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림진강의 여윈 물줄기마저 꽁꽁 얼어붙었고 주위에 고삭은 초막들이 다닥다닥한 촌동네들이 하얀 눈판에 대조되게 뿌연 점들로 번져졌다.

멀지 않아 정월대보름이였으나 맵짠 추위는 나지막한 철원성의 퇴락한 성벽을 한껏 괴롭히고있었다.

오랜 성루의 낡은 합각지붕은 은백색을 띠며 번쩍이고 성안의 행길에는 무릎이 빠지게 눈이 가득 쌓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뿐 눈보라가 뜸해지고 날이 밝아 철원성의 성문이 활짝 열리자 기다렸다는듯 이 추위에도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인파가 물밀듯이 성안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철원성은 깊은 잠에서 깨여나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잠간사이에 성안 한복판 네거리에 이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큰 저자가 펼쳐졌다.

이른새벽부터 저자로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행길이 마구 붐비였다.

오늘이 바로 한달에 한번밖에 열리지 않는다는 철원성의 개시날이였다.

저 멀리 계림(경주)에서 상단이 들이닥쳐서인지 저자는 매우 흥성이였다.

린근고을의 상인들은 말고라도 송악지방과 멀리 완산(전주)에서도 상단이 도착하여 제법 큰 저자가 펼쳐졌다.

원래 철원성에서 열리는 저자라고 해야 고작 그 지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촌저자에 불과했다,

그러던것이 사방 길이 뻗어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온갖 물산이 모여지는 고장이라 하여 계림의 시전상인들이 손을 뻗치면서부터 점차 그 규모가 커지게 되였다.

더우기 신라의 해상교역의 중심지이며 당나라와의 국경무역을 겸하고있는 송악과 멀지 않은 관계로 장사가 흥하고 번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라에서 이렇듯 큰 규모의 장시가 운영되는 교역장은 송악지방과 도성 계림의 시장, 완도의 해상교역장을 비롯해서 불과 여러개밖에 되지 않았다. 송악이나 완도 등이 당나라와의 해상교역을 기본으로 한 교역장이라면 철원은 변방지역인것으로 하여 북방야인들과의 교역된 물산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했다.

이 추위에도 근 5리에 걸쳐 로천가게들과 음식점들이 호박순 뻗듯 하였는데 큰 거래는 대체로 성안팎에 자리잡고있는 려각들에서 벌어졌고 로천가게들에서는 주로 생활필수품을 팔고있었다.

대체로 이러한 가게들은 관청의 허가증인 체찰을 받은 시전상인들이 운영하고있는데 북방야인들이 공물로 바친 값진 털가죽으로부터 시작하여 증원의 비단들과 신라의 문방구 등에 이르기까지 없는것이 없었다.

비록 생활필수품들이라 하지만 대체로 귀족들의 향락을 위한 사치품이 대부분이라 일반촌민들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철원성의 저자에서 가장 이채로운것은 길가를 따라 가득 벌려놓은 음식가게들이였다.

철원고을 각 지방들마다에서 저저마다 몰려온 음식장사아낙네들이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로요, 가마요 하는것들을 잔뜩 벌려놓고 이 추위속에서도 저마끔 손님을 끌겠다고 지지고 볶고 굽고 삶고 하는데 참으로 장관이였다.

람루한 옷차림으로 가게들사이를 오고가는 행객들속에 이채롭게 눈에 뜨이는 한 중년의 사나이가 있었다.

사치한 비단옷에 담비가죽으로 만든 진귀한 털등거리를 걸치고 발에는 맵시나게 지은 가죽신을 받쳐신었다.

붐비는 사람들속을 글읽는 선비의 한가한 걸음으로 천천히 걷고있는 그의 몸에서는 일종의 살기까지 내비치고있었다.

살진 얼굴은 부드러운 웃음을 담고있으나 엇비스듬히 치째여오른 두눈은 보통 사납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보통사람은 쉽게 범접할수 없는 살기가 몸에서 배여나오는 모양이였다.

그의 이름은 두근, 계림의 시전상인들의 두목으로서 관가를 끼고 신라의 시전권을 독점하고있다고 할만치 소문난 인물이였다.

말그대로 그의 세력이 신라의 각 주, 군, 현 어디라 할것없이 뻗쳐있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계림에서 시전상인들의 도두목노릇을 하는 두근이가 철원으로 힘을 뻗쳐온지는 근 10년째였다.

두근이가 머나먼 계림에서부터 여기 변방이나 다름없는 철원으로 힘을 뻗쳐온것은 이 지방이 사방으로 길이 열려있어 장사에 유리한것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발해와 거래할수 있는 교역로를 열수 있기때문이였다.

나라의 시전권을 한손아귀에 그러잡은 두근에게 있어서 아쉬운것이 있다면 발해와의 무역과 바다건너 당나라와 해상교역로를 독점하지 못한것이였다. 하여 관영시전상인들의 두목인 두근은 발해와의 무역로를 열기 위한 첫시작으로 여기에 여러개의 점포를 내와 자신의 상업활동에 유리한 거점을 마련하고 나중에는 철원지방을 통채로 손아귀에 넣었던것이다.

그의 뒤로는 이제 열댓살쯤 돼보이는 총각애와 기골이 장대한 호위무사 한명이 뒤를 따르고있었다.

두근의 막내아들 관나와 호위무사인 원표였다.

그들은 행객들로 마구 붐비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제법 널직하게 대문을 세워놓은 려각앞에 다달았다.

큼직한 청동고리가 번들거리는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는데 그리로 홑옷바람의 일군들이 추위속에서도 줄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짐을 들여가고 끌어내왔다.

두근이가 사람을 시켜 부르니 몸이 가로 퍼지고 작달막한 사내가 구울듯이 달려왔다.

이 려각의 주인사내였다.

《어이구, 온다고 미리 전갈을 보내셨으면 마중나가련만 정말 죄송하오이다. 계림에서 언제 오셨나이까?》

려각주인은 비굴하게 고개를 갑삭거리면서 두근을 맞아들였다.

《여기 온지 며칠 잘되였네. 임자 요즘 벌이가 꽤 되는가보군. 장사판이 몰라보게 커졌는걸.》

두근은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문턱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렇게 비양조로 말하였다.

주인사내가 교활하게 눈을 굴리면서 《에이, 나리님이 뒤를 받쳐주니 밥술이나 건느지 않을뿐이지 아직 장사미립이 틀려면 멀었소이다.》라고 슬쩍 능갈쳤다.

《헌데 연통도 없이 어인 일이오이까?》

주인사내는 두근이와 같은 거물이 저자거리의 려각을 찾아온것이 몹시 궁금한듯 물었다.

하긴 여기 철원지방에서 두근의 눈밖에 났다가는 어느 하가에 패가할지 모르기에 은근히 두려운 모양이였다.

《오늘은 자넬 문초하러 온것이 아니니 마음놓게.》

두근은 실실 랭소를 흘리면서 말하였다.

짐을 들여오고 내가고 하면서 복새를 놓는 마당을 지나 본채에 들어서서야 두근은 자기가 찾아온 용무를 꺼내였다.

《그래 오령과 그의 상단이 여기에 머물고있느냐?》

두근이 거드름스럽게 물어보자 주인은 그제야 마음놓는 얼굴로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허리를 갑삭거렸다.

《예, 저기 뒤채의 손님방에 머물고있으니 소인이 가서 데려오리다.

나리님께서는 루추한대로 여기 사랑방에 계시오이다.》

《아니, 그럴것 없네. 오령이 거처하고있는 곳까지만 안내해주게.》

두근의 대답을 들은 주인은 놀라는 기색이였다.

계림의 시전상인들도 턱짓으로 오라가라하는 두근이가 행상인에 불과한 오령을 찾아서 설마하니 철원성까지 몸소 행차했으랴만 이런 려각에 제발로 찾아온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두근은 거드름스러운 자세로 뒤짐을 진채 주인의 뒤를 따라 뒤채로 돌아갔다.

주인이 찾으니 이제 마흔줄에 들어선 사나이가 마주 나왔다.

그는 오령이라는 행상인으로 주로 운송을 전업하는 인물이였다.

오령은 송악고을에 본거지를 정하고 륙로운송이건 해로수송이건 가리지 않고 벌리는 장사군으로 전국각지의 상인들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면이 넓었다.

이러한 직업적특성으로 전국각지를 떠도는 운송상단의 행수 오령을 두근은 인정이라는 면사포를 씌워 요긴한 대목마다 부리군 하였다.

오령은 능력이 있는 반면에 사람이 호인이여서 자기를 대하는 두근이의 흑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것을 호의로만 좋게 대하고있었다.

오령은 두근의 부탁을 시행하려고 패강지역을 다녀온 길이였다.

주인을 돌려보내고난 뒤 두근은 호위무사를 밖에 떨구어두고 아들 관나만 데리고서 오령의 방에 들어가 앉았다.

《이번에 내 심부름을 다녀오느라 참 수고가 많았네.》

그들이 자리를 정하고 앉자 두근이 먼저 치하하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마트면 상단이 야인비적을 만나 전멸할번 하였소이다. 》

오령의 말에 놀란 두근은 두눈을 크게 떴다.

《허, 지경을 넘어들어와 상단을 습격할만큼 야인들이 방자해졌단 말인가?》

《말도 마소이다. 때없이 변경을 넘어들어와 집짐승들을 마구 잡아죽이고 사람까지 붙잡아가는 놈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소이까. 이번에 그곳을 다녀오면서 보니 그곳 백성들의 모습이 참으로 눈뜨고 보기 어려웠소이다. 》

《패강류역이면 여기 철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그곳 지역이 그렇게도 무법천지인줄 몰랐군. 원래 그 땅이야 발해의 지역이 아닌가?》

《그렇지요. 하지만 발해가 쇠약해져서 미처 거기까지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기회를 노려 야인들이 제멋대로 들어와 활개치게 된것이오이다.》

오령의 말을 들은 두근은 혀를 끌끌 찼다.

《그럼 계림에선 왜 가만있는것인가. 야인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손에 넣어도 될것인데… 거기엔 아직 고려라는 소국을 세웠던 고구려의 유민세력의 힘이 남아있으니 그들과 손을 잡으면야…》

《그 땅이 옛 고구려지역이니 필요없다는 조정대신들의 편협함때문이지요. 변방을 지킬 군사들은 료미를 전혀 공급받지 못해 뿔뿔이 헤쳐져버리고 백성들은 야인들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여 타고장으로 떠나버리니 빈집과 다를게 무엇이겠소이까.》

오령이 이렇듯 울분을 터놓으니 두근은 차탁에 놓인 차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넌지시 화제를 돌렸다.

《참 고생이 많았네그려. 헌데 어찌 그 무지한 비적들에게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살아올수 있었는가?》

《다행히 제가 죽을 운명은 아니였는가보오이다. 사경에 처한 목숨을 은인을 만나 부지하게 되였지요. …》

《아니?! 은인이라니…》

《나리님이 패강지역에 가서 만나라던 그 검용 말이오이다. 이번에 만나보니 참으로 인물입디다. 그가 때마침 상단을 끌고 지나다가 비적들에게 략탈당하는 우릴 구해주었소이다.》

두근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오령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떡이였다.

《꼭 옛이야기를 듣는것 같군. 하여간 수고가 많았네. 그래서 비적들은 어찌하였는가?》

《붙잡아 치죄해보니 살인과 략탈을 업으로 살아가는 무리는 아니였소이다. 사냥해온 짐승의 털가죽을 공물로 바치고 대신 식량과 소금을 얻어다 연명하는 무리였는데 패강진의 관장이 약속을 어기고 공물을 빼앗고는 때려 내쫓았다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 분풀이를 하겠다고 몰래 지경을 넘어들어와서 상단을 습격하게 된것이오이다. 하여간 아무리 야인들이라고 해도 인명을 마구 해할수는 없고 하여 제가 놓아주자고 하였지요. …》

《자네 참 용하네그려. 나같으면 그냥 돌려보낼것이 아니라 한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 땅에 묻어버리고말았을거네. 그깟 야인이 몇이 없어진다고 이 세상에 해가 될것인가.》

두근의 말에 오령은 도리질을 하였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어찌 인명을 가볍게 여길수 있겠소이까.》

두근은 달다쓰다 아무말없이 차잔을 들어 차를 마시는데 그옆에 모로 꺾어앉아 무료한듯 천정만 올려다보고있는 총각애를 본 오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리님의 곁에 앉은 도령은 뉘신지요?》

《허, 내가 자기 생각만 하다나니 자네에게 실례를 하였네그려. 이애가 바로 내 막내아들인 관나일세.》

오령의 물음에 바빠난 두근이 변명하듯 말했다.

《참으로 빠른 세월이로군. 제가 관나도련님을 처음 뵈웠을 때는 아직 강보에 싸여있을 때인데 벌써 이렇게 성장하였군요.》

《참, 자네한테도 녀식이 있으니 내 아들과 한번 맞세워보세나.》

두근이 웃으며 말하자 오령은 급히 도리질하였다.

《제 딸년이야 이제 겨우 젖을 뗀 어린애인데 놀리지 말아주소이다. 그리고 제가 어르신께 가당하기나 하오이까?》

그러자 두근은 정색하여 입을 열었다.

《난 자네를 자그마한 행상인이 아니라 벗으로 여기고있네. 그러니 너무 자길 낮추지 말게.》

관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미치자 어린 마음에도 점직하고 또 따분한 장사이야기가 싫증이 나는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겠다고 아비에게 말하였다.

두근은 밖에 서있는 원표를 소리쳐불러 관나를 모시고 저자구경을 다녀오라고 하고는 아들이 밖에 나가기 바쁘게 오령에게 상반신을 기울였다.

《내가 시킨 일은 어찌되였는가?》

《예, 분부대로 검용을 만나 나리님이 발해와의 교역로와 대방을 넘겨주길 바란다는 소릴 하였소이다.》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어찌되였는가?》

두근의 성급한 물음에 오령은 온화한 태도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런데 검용은 발해행상권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기때문에 절대로 넘길수 없다고 하였소이다.》

오령의 대답을 들은 두근은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벌컥 성을 냈다.

《그래 내가 내놓은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잠시 아무말없이 잠잠해있던 오령이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깨였다.

《나리님이야 계림의 관전은 물론 전국의 시전을 한손에 넣고 부리는데 구태여 검용의 자그마한 상단을 가져서는 무얼하시려는지요?》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옛날에는 발해가 패강지역에까지 힘을 뻗치고있어 저 평양성이 변방무역의 중심이 되였지만 이제는 발해까지 한번 가자고 해도 야인들의 지역을 통과해가야 하니 검용의 상단처럼 발해행상에 경험이 많은 상단이 내겐 꼭 필요하네.》

두근이 이렇게까지 고집하는데는 다 리유가 있어서였다.

패강이북지역에는 옛 고구려유민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었기에 검용과 같이 교역로를 가지고있는 인물을 내세우지 않으면 설사 장사에 나선다 해도 실패하기마련이였다.

고려후국을 세운 고구려유민세력과 련계가 잦은 검용의 상단을 리용하지 않으면 발해와의 통상로를 독점하려는 두근의 야망이 실현될수 없는것이였다.

《그렇다고 꼭 검용의 상단을 수중에 두어야 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소이까?》

오령은 아무래도 두근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는듯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두근은 오령의 고집에 혀를 찰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령을 눅잦히느라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원, 사람두… 내가 아무렴 자네 은인에게 해를 입힐 사람인가. 자네가 싫다면 굳이 내 수하에 그를 끌어들이지는 않겠네. 하지만 내가 부탁한 화살촉은 반드시 기일을 맞추어야 하네.》

그제서야 오령은 안심한듯 입을 열었다.

《그건 념려마소이다. 그는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이번 행보에 반드시 구해오리라 다짐하였소이다. 한달내로 돌아올것이니 마음 놓으시오이다.》

《그럼 자네 말을 믿고 기다리겠네. 아참, 그한텐 내가 시킨것이 아니라 자네의 부탁으로 했겠지?…》

《그건 마음놓으시오이다. 설사 관가에 소문이 들어가도 나리님에게 루가 미치게 하지는 않을것이오이다.》

《원, 사람두… 누가 그런걸 두려워하는 말인가? 그저 나라에서 금지하는 일이니 조용히 하자는노릇이지.…》

두근은 태연하게 오령의 말을 받았다.

《저…》

이때 오령이 갑자기 주저하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나리님은 어째서 그 많은 화살촉을 구하시려 하나이까?》

오령이 조심히 물어보자 두근은 몸을 들썩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야 자네가 뭘 주저하는지 그 원인을 알겠군. 내가 칼이라도 들고 나설가봐 걱정인듯 한데 날 무모한자로 생각하지 말아주게.》

《그럼 나라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화살촉을 들여와서는 어찌하시려고요?…》

두근은 쓰겁게 웃으며 다 식어버린 차잔으로 또다시 손을 가져갔다.

차잔을 입에 가져가다가 밑굽에 조금 남은 차물을 기울여보고는 도로 차탁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방금 내게 뭐라고 하였나? 귀족들의 폭정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고 탄식하였지.… 자, 보게. 아직 차물이 남아있는 이 차잔에 깨끗한 샘물을 넣는다고 해서 이 차잔의 물이 샘물이 되겠나? 고인물은 언제든지 썩기마련이야. 계림은 운이 다됐네.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낡은 하늘이 새 하늘로 바뀔테지.…》

표정 하나 까딱않고 누가 들어도 기겁할 말을 마치 한담이나 하듯이 담담한 어조로 내뱉는 두근의 태도에 오령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방금전엔 그런 일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구선 어인 말씀이오이까?》

오령의 말을 듣고서 두근은 손에 든 차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웃었다.

몸까지 들썩이며 한바탕 웃고나서는 얼떠름해 앉아있는 오령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장사치일세. 오직 물건을 사고파는것외에는 아무 흥미도 없네그려. 지금 조정에 항거해나서는 어리석은 놈들처럼 멸문지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칼을 들고 나설 생각이 없네.》

《그… 그럼 왜 발해에서 화살촉을 들여오려는지요?》

《글쎄… 자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가.…》

두근은 이렇게 뜸을 들이고나서 정색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해상왕 장보고처럼 나라를 사고파는 장사를 한번 해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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