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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김구편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것은 선택이라고 하였다. 사실 일생을 반공리념에 몰두한 김구에게 있어서 공산당이 집권하고있는 북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일생일대의 선택이 아닐수 없었다.

그의 이때의 복잡한 심경이 바로 38゜선을 넘으며 《북녘동포들과 흉금을 터놓고 담판을 해보아서 안되면 38゜선을 베고 자살이라도 하겠다.》고 한 비장한 말에 녹아있었다.

평양에 도착한 김구일행은 아늑한 숙소에 들었다. 김구는 려장을 풀기 바쁘게 김일성장군님께 도착인사를 드려야겠다며 숙소를 나섰다.

김구일행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니 그이께서는 몸소 응접실에까지 나오시여 기다리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하고 친근하신 음성으로 《김구선생!하고 불러주시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신 그이께서는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라고 하시면서 로령에 계시는분이 이처럼 먼길을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구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선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련석회의를 시작하였다가 선생이 도착하지 않아서 휴회를 하였다고 하시며 선생이 오셔서 회의는 더욱 빛을 내게 되였다고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표시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구에게 련석회의 첫날소식을 알려주시고나서 이번 련석회의에 남북조선의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이 거의다 참가한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만일 선생이 회의의안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있으면 다시 토론하여 회의에 제기하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김구는 다른 의견이 있을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련석회의를 마련하시느라고 로고가 많으셨겠다고 자기의 심중을 터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년로하신분이 먼길을 오느라고 피곤하겠는데 푹 쉬라고 하시면서 련석회의는 23일까지 계속되고 앞으로 남북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회담도 있겠으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일을 보도록 하자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선생께서 평양에 머무르는 기간 불편한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제기하라고 하시면서 옆에 있는 한 일군을 가리키시며 이 사람이 자신의 서기라고, 자신께서 믿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선생이 북에 와계시는 기간 사업과 생활에서 방조자가 필요하리라고 본다고, 그리하여 자신의 서기를 선생의 서기로 천거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숙소로 돌아가는 승용차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김구는 혼자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토록 큰 세기적위업을 이룩하신 김일성장군께서 그렇게 젊은분이시였구나!》

4월남북련석회의 제2일 회의는 4월 21일에 진행되였다. 회의장은 첫날회의에 대한 긍정적인 반향으로 들끓는데다가 남조선의 한국독립당을 비롯한 몇개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더 참가하게 된것으로 하여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였다.

회의는 첫째 의정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토의에 들어갔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시며 연단에 나오시여 《북조선정치정세》라는 제목으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는 조선의 정치정세를 명철하게 분석하고 분렬주의자들에게 된타격을 안기는 동시에 나라앞에 닥쳐온 영구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고 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할수 있는 휘황한 길을 밝혀준것으로 하여 전체 회의참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이날 회의가 끝난 후 숙소에 돌아간 김구는 밤깊도록 활자로 인쇄한 김일성장군님의 력사적보고를 몇번이나 읽어보면서 《과시 옳은 말씀이야! 옳은 말씀이야!》라고 경탄을 련발하였다.

그는 과묵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였다. 한번 결심하면 요지부동이였다.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도고한 배짱으로 맞서온 그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과 넓으신 도량, 크나큰 포옹력과 감화력, 현명한 령도력앞에서는 성문같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제끼였던것이다.

한국독립당 위원장 김구는 제3일 회의에서 축사를 하였다.

그는 축사에서 평양에 와보고서야 만나보니 내 민족이요, 손잡아보니 피와 정이 통하는 한겨레임을 페부로 절감했다고, 조국분렬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하여 남북의 애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주, 민주, 통일독립을 전취할 대계를 의논하게 된것은 실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위대한 발전이라고 하였다.

그는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공동의 투쟁목표는 우리 조국을 분렬하고 민족을 멸망하게 하는 남조선의 《단선단정》을 분쇄하는것이라고, 남조선의 《단선단정》의 분쇄를 최대의 임무로 삼고 전민족이 단결하여 백방으로 투쟁한다면 반드시 승리할것이라고 하였다.

평양체류기간은 김구로 하여금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고 그의 반공리념에 균렬이 가게 한 나날이였다.

어느날 김구가 류숙하고있는 숙소의 뜨락으로 난데없는 강아지 한마리가 뛰여들어왔다. 알고보니 그것은 숙소앞길로 지나가던 쏘련군군관의 안해가 데리고 가던 강아지였다. 그 녀인은 곧 정문초소로 다가와 강아지가 뛰노는 뜨락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런데 인민군보초병은 그를 뜨락에 들여놓지 않았다.

다른 위병근무성원에게 부탁하여 강아지를 돌려줄테니 보초소앞에서 기다리라는것이였다. 하는수없이 쏘련군군관의 안해는 다른 위병근무성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바로 이 광경을 김구가 보게 되였다.

범상히 여길수 있는 일이였으나 김구는 여기서 큰것을 보고 느꼈다. 인민군대의 당당하고 위엄있는 행동을 통하여 민족자주적권리를 행사하고있는 북의 실상을 확인했던것이다.

그는 남조선에서 미군이 그러하듯이 북조선에서도 외국군대가 주인노릇을 하고있을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강아지가 뜨락에 들어왔을 때 그 부인이 거리낌없이 따라들어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은 억측이였다. 이곳은 남조선과 달랐다.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조선사람이였다. 엄연히 자기 민족의 권위가 서있고 자주권이 확고히 보장되여있는 북반부였다.

김구의 머리속에는 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자기가 이전에 본 공산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고 그들은 민족주체의식이 강한 애국자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새겨졌다.

김구의 반공정신에 큰 균렬이 가게 한것은 만경대혁명학원과 만경대방문에서였다.

김구의 일행은 먼저 만경대혁명학원에 들렸다. 학생들은 공을 차며 즐겁게 놀고있었다. 그들은 학원이름그대로 모두가 지난날 반일투쟁의 길에서 희생된 렬사들의 자녀들이였다.

그를 안내한 학원 원장은 리종익이였다. 그로 말하면 한때 상해림정에 관여하였던 량심적인 민족주의자로서 김구,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엄항섭 등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애국의 마음을 값높이 헤아리시고 부모잃은 유자녀들에게 정을 붙이고 친부모와 같은 애정을 깡그리 부어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학원 원장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적임자로 몸소 리종익을 선정해주시였던것이다.

김구는 그의 안내를 받는것이 무척 반가웠고 그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렬사들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뜨거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학원을 돌아보다가 중국 남만에서 독립군 사령을 하던 량세봉의 아들을 만나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김구는 너무도 놀랍고 반가워 량세봉의 아들을 그러안고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자기는 공산주의자라면 덮어놓고 배척하였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의주장에 관계없이 반일투쟁의 길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자녀들을 다 한품에 안아 금지옥엽으로 키워주고계시지 않는가.

믿으면 설명이 불필요하고 믿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원장선생, 이 어린것을 보니 내가 부끄럽소.》

김구는 이렇게 말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그는 해방후 남조선에 돌아와서 반일의 길에서 함께 싸워온 동료들에게도 세방 하나 변변히 마련해주지 못했고 그들의 처자들을 이국땅에 널어놓은채 아직 찾을 생각도 못하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 무엇을 해온 사람으로 자부해왔던것이다.

그는 이 모든것이 부끄러웠다. 그는 학원에서 독립렬사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 진정한 애국의 륜리를 보았다.

하기에 김구는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웠을 때 이렇게 말씀드렸다.

《나는 북조선당국이 빨찌산투사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이런 학원에서 독립군 사령의 자제까지 공부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학원에는 빨찌산의 자녀들뿐아니라 국내에서 로조, 농조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애국자의 자녀들도 있다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한 애국자라면 그가 어떤 계렬이든지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김구는 감격하여 이 학원은 민족단합의 상징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김구일행은 학원을 떠나기 전에 기념촬영까지 하였다.

이어 김구일행은 만경대고향집을 찾았다. 일행이 만경봉에 올라 신묘한 절승에 한껏 취하고나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앞에 자그마한 초가집이 나타났다.

그들은 초가집앞에 이르러 수수대로 남새밭울바자를 엮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과 마주치게 되였다. 김종항이 할아버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것을 본 김구는 누구신가고 물었다. 김종항이 김일성장군님의 할아버님이시라고 소개하였다.

김구와 일행의 입에서는 탄성이 울려나왔다. 그들은 장군님의 조부님께서 사시는 집이라면 으리으리한 궁궐이고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어마어마하게 지키고있을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 나라 농촌 어디서나 볼수 있는 초가집이였다. 그 집에서 70고령의 할아버님께서 한평생 농사일을 하셨고 지금도 여전한 모습으로 일손을 놓지 않고계시는것이다.

너무도 놀라운 사실이여서 일행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

이윽고 김구는 숭엄한 자세로 머리숙여 할아버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할아버님께서는 그가 초면이 아니였다. 수십년전 황해도 안악에서 왜놈장교를 죽인 김구가 감옥에서 탈출하여 은거생활을 할 때 평양교외의 대보산 령천암에서 중노릇을 하며 동냥하러 이 초가집에도 몇번 찾아온 일이 있었던것이다.

할아버님께서 이런 옛일을 상기하시자 김구는 무척 놀라워하며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이 위대한 가정과 일찌기 그런 인연이 있을줄은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김구는 한동안 깊은 감회에 잠겨있다가 할아버님의 굳은 살이 앉은 거치른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손주님을 일국의 수령으로 두신분이 왜 이렇게 험한 일을 아직도 하고계십니까?》

《내 손자는 나라의 수령이지만 나는 철 알아서부터 한평생 농사로 늙어왔은즉 농사는 천하지대본인데 내가 농사를 잘 지어야 손자가 보는 나라의 정치도 잘될것이 아니겠소.》

김구는 또 감동되였다. 만고의 영웅이신 장군님도 위대하시고 언제까지 평백성으로 계시는 장군님의 할아버님도 위대하시다!

이날 밤 만경대의 초가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부모님을 모시고 김구일행과 만경대부락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소박한 연회가 진행되였다.

김구는 만경대를 떠나면서 일행앞에서 나는 오늘 장군님의 할아버님을 만나뵙고 많은 교육을 받았다, 일생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감동되였다, 참으로 훌륭하다고 거듭 찬탄을 표시하였다.

이날 밤 숙소에 돌아온 김구는 흥분으로 잠들지 못하였다. 흰서리가 머리에 내려앉도록 독립운동에 한몸바쳐왔다고 노상 자부했지만 이 나라에 해방과 건국의 꽃을 피운 참애국의 력사를 모르고 살아온 자신을 발견했던것이다.

이튿날 아침 김구는 자기의 막료들을 방에 모이게 하고는 경건한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어제 당신들과 같이 장군님의 만경대생가를 방문하여 조부모님을 뵈옵고 참으로 느낀바가 크오.

나는 일생을 반공으로 살아왔는데 김일성장군님 같으신분을 일찌기 뵈옵지 못한것이 크게 한이 되오. 내 한생의 오유는 여기에서 비롯된것이오.

김일성장군님 같으신분이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는것을 알았더라면 내가 무엇때문에 공산주의를 나쁘다고 하였겠소. 조선은 참으로 훌륭한 주인을 만났소.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셔야 조선은 행복하게 될수 있소.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겠소. 이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요.》

어느날 그는 자기의 심정을 또 이렇게 터놓았다.

《북조선에 와보니 마음에 듭니다. 상해에서도 남조선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북조선공산주의자들은 다릅니다. 나는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이란 협애하고 몹쓸 사람들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와보니 당신들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여 얼마든지 합작할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결단코 당신들과 합작하겠습니다.》

이것은 김구만이 아닌 조소앙, 조완구, 엄항섭 등 민족주의인사들의 일치한 심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구의 진심으로 되는 애국적지향과 련공합작결의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5월 2일 김구는 쑥섬에서 열린 남북련석회의 지도부성원들의 협의회에 참가하였다.

이 협의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적량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정견과 신앙에 관계없이 그 누구와도 손잡을것이라는 단합의 사상을 천명하시고 하늘을 믿어도 남의 나라 하늘을 믿을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하늘을 믿어야 한다는 자주의 철리도 밝혀주시였으며 남조선에서의 《단선단정》책동을 짓부실 투쟁방략도 명시하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특별히 야외오찬까지 마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대동강의 이름난 물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려고 오찬을 마련하였다고, 별반 차린것은 없으나 어서들 많이 들자고 하시며 손수 어죽과 숭어회를 옮겨놓아주시였다.

김규식은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하다고 하면서 숭어회와 어죽, 록두묵은 저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였고 김구도 대동강의 숭어맛은 별맛이라고 하였다.

정녕 김구를 비롯한 남조선정객들에게 있어서 쑥섬의 이 하루는 민족이 낳은 탁월한 령도자를 한자리에 모신 화기애애하고 꿈같은, 한생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오늘 이 력사적인 장소에는 통일전선탑이 세워지고 그날의 사적들이 원상그대로 보존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세계를 가슴뜨겁게 전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매혹과 숭배심으로 가슴끓이던 김구는 이날 자기를 단독으로 만나주실것을 간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헤아리시여 다음날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련공합작문제를 비롯하여 미제의 《단선단정》책동을 분쇄하고 민주주의통일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다시금 가르쳐주시였으며 그의 신변에 대해 걱정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커다란 감격을 금치 못하며 김구는 장군님, 북에 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부터는 장군님을 받들어 일하겠습니다, 내 이제 다 늙은것이 무슨 정권욕이 있겠습니까, 아무 야심도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와서 장군님께서 애쓰시면서 닦아놓으신 모든것을 보고 조선이 정말 위인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을 이끄실분은 장군님뿐이십니다, 나는 모든것을 장군님께 맡깁니다, 나의 명예이며 생명으로서 한생을 수호신같이 지켜온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장군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준비해가지고 왔던 림정인장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인장을 김구쪽으로 밀어놓으시면서 선생이 내놓은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은 그냥 가지고 가십시오, 내가 그 인장은 받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그저 인민대중의 두터운 신임이 있으면 됩니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림정인장은 김구와 그의 동료들이 보물중의 보물처럼 여겨왔다고 한다. 그것은 상해 프랑스조계지의 한 골목에 있던 컴컴한 림정청사안에서나 머나먼 남경, 중경에로의 피난길에서나 그리고 귀국의 수만리길에서도 마치 거기에 온갖 미래가 있는듯이 수호신처럼 그가 품에 안고있던 림시정부의 상징인 큰 도장이였다. 그 인장까지 장군님께 바치겠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우익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자기 운명의 전부를 위대한 수령님께 의탁한데 대한 재확인이였던것이다.

《장군님, 앞날의 통일된 조선을 위하여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충심으로 삼가 축원합니다.》

이것이 백범 김구가 위대한 수령님께 마지막으로 올린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통일전선을 위한 우리의 변함없는 노력과 성의앞에서는 김구와 같은 완고한 반공인사도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가 하루아침사이에 우리한테로 돌아섰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가 림정을 인정하지 않은 미군정의 처사가 고깝고 또 단순히 리승만과 의가 맞지 않아서 반공대신 련공을 한것도 아닙니다. 항일의 나날로부터 뜨겁게 간직해오던 애국의 열정이 우리와 김구를 하나로 융합시킨것입니다.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남조선의 민족주의세력 지도급인사들이 남북련석회의를 계기로 평양에 체류한 기간은 보름정도였다.

사람의 한생에서 보름기간이란 한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기간에 하나의 인생대학을 나왔으며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북과 남의 애국력량의 단합된 힘에 의해 통일적중앙정부는 반드시 수립될것이라는 확신을 받아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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