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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20


엎친데덮친다고 림정우의 입원으로 제품시험이 중단된 때에 훈증로모의실험도 련속 실패였다.

도면상에서는 완전무결하다고 보았던 훈증로가 콤퓨터의 3차원상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어째선지 훈연발생기안의 회전로는 돌아가는데 구이로의 송풍구로 훈연침투는 되지 않았다.

연기려과기의 밀페장치구멍들이 너무 작기때문인지? 아니면 구이로안의 흡입장치에 문제가 있는지? 원인을 찾기 위해 수십번 다시 조작시행을 해보았으나 진척이 없었다. 불안과 고민에 빠진 박수혁은 입맛을 잃어 식사를 할수 없는데다 불면증으로 쪽잠마저 이루지 못했다. 몸이 쇠약해지고 힘이 나지 않았다.

지배인의 얼굴이 컴컴해있으니 공장의 분위기도 자연히 저조해지는듯 했다.

그런 때 윤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뭘하고있소?》

《저…》

수혁은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대답이 시원치 않은걸 보니 일이 잘 안되는 모양이구만. 그렇다고 지배인이 그렇게 활기를 잃으면 되나? 종업원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요.》

《국장동지, 제가 그만…》

수혁은 자책감에 젖어 중얼거렸다.

《래일 점심때 종업원들을 다 데리고 옥류관으로 나오라구. 식사조직은 내가 해놓을테니까.》

뜻밖의 말에 수혁은 깜짝 놀랐다.

《예? 아니, 지금 그럴 경황이… 있습니까?》

《허허… 힘들 때일수록 잘 먹어야지. 옥류관이 현대화되였는데 멋있소. 모두 가보면 정신이 번쩍 들게요. 고기쟁반도 먹어보면 생각되는것들이 있을거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국장동지!》

수혁은 금시에 힘이 뻗쳐오름을 느끼며 결패있게 대답했다.

송수화기를 놓고 뻐스사업소전화번호를 찾는데 손전화기의 신호음악이 울렸다. 오늘따라 그 음악이 별스레 경쾌하게 들린다. 번호를 보니 마침 주병호처장이였다.

수혁은 흥그러운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주동무요? 지금 어디 있소? 대안중기계… 아, 특수합금강으로 훈증로를 만들것을 계약했다? 수고했수다. 큰 문제가 풀렸으니 한시름 놓이오.》

《시름을 놓는다는게 뭐요? 이젠 정확한 설계를 하는것이 중요하단 말이요. 그래, 모의실험은 어떻게 돼가오?》

《진척중에 있소. 처장동무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꼭 성공시키겠소. 그건 그렇구 주동무, 이제 곧 돌아와줄수 없겠나?》

《건 왜?》

《래일 점심에 옥류관집체식사를 조직했네. 담당처장동지가 빠지면 안되지 않나?》

《뭐? 지금같은 때 옥류관구경생각을 다 하구. 한가하구만. 도대체 무슨 정신들인지 모르겠다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댔는데 국장동지가 일부러 조직해주질 않았겠나?》

《국장동지가?!…》

주병호는 놀란듯 더 말을 못했다.

《그럼. 늦어두 래일 오전까진 도착해야 하네.》

수혁이 이렇게 강조하자 주병호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단호히 대답했다.

《아무래두 난 그럴 시간이 없네. 훈증로제작에 필요한 자재문제가 아직 앞에 있지 않나?》

《그럼 할수 없구만.》

수혁은 어쩐지 미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11시 30분이 되자 약속대로 대형뻐스 한대가 공장마당에 와멎었다. 종업원들은 오래간만에 집체적으로 시내구경을 나가보는지라 명절날처럼 흥성거렸다.

어느새 목욕을 하고나온 남자들이 외출복까지 척 갈아입고 나서니 이게 웬 난데없는 신사들이냐싶다. 여느때없이 머리기름을 찰찰 바르고 색안경까지 낀 유춘삼은 20년은 젊어보인다.

녀성호실에서는 최명금이가 처녀들의 머리단장, 옷단장을 지휘하느라 신바람이 났다.

요 며칠전 그는 휴식날 집에 갔다온 기념이라면서 호실처녀들에게 고급화장품 한개씩을 척척 나누어주어 모두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만들었다. 얼굴빛이 약간 철색인 처녀에게는 표백분크림을, 살결이 좀 까칠해보이는 처녀에게는 인삼살결물을, 눈섭이 연한 영혜에게는 눈섭그리개를, 빨깃한 여드름이 눈에 알리지 않게 돋기 시작한 처녀에게는 얼굴세척제를 안겨주는걸 보니 사전에 매 처녀들에게 필요한 화장품을 연구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입을 딱 벌리는걸 보고 명금은 생긋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다들 날 보고 미인이라고 성화들인데 난 우리모두가 다같이 미인이 되자는거예요. 우리 타조공장처녀들이 문화수준에서도 앞장에 서야 할게 아니나요? 얼굴살결도 머리모양도 옷차림과 몸매도 다 1등이 돼서 세상사람들을 홀딱 반하게 하자! 난 이거예요.》

그리고는 정말 자기가 미용사업의 책임자라도 된듯이 짬만 있으면 처녀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얼굴미안도 해주군 한다. 조발이면 조발, 파마면 파마 못하는 일이 없었다.

영혜는 허영에 뜬 처녀인줄 알고 비난했던 최명금에게서 아름다움에 대한 높은 리상을 느끼게 되자 그에게 더없는 사랑과 친근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얼굴보다 앞서 우리의 일터를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고 관리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깨우쳐주면서 기대관리와 나무심기, 꽃나무가꾸기에도 앞장서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둘이 쌍둥이처럼 가까와졌으며 작업휴식시간에는 영혜의 손풍금소리에 맞추어 명금이가 부르는 노래소리와 춤가락이 로동자들의 흥취를 돋구어주군 한다.

그러던 가운데 오늘 드디여 타조공장처녀들이 시내 한복판에 나가게 되였으니 진짜 온 시내사람들이 황홀해서 바라볼수 있게 아름다움을 떨쳐야 할 이 기회에 어찌 명금의 책임이 가벼울수 있으랴.

그는 오늘 레스달린 하얀 샤쯔우에 빨간 치마를 날씬하게 차려입었고 탐스러운 머리태에 반짝이는 코스모스빈침을 찔러 여느때보다도 더 고와보였다.

영혜는 연록색양복에 하얀 바탕의 목수건을 받쳐맸는데 명금은 그 수건색갈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기에게 있던 엷은 비취색목수건으로 바꾸어주느라고 한참 싱갱이질을 했다.

다른 처녀들은 그런 싱갱이를 당하기 전에 미리 자기가 어떤 형태의 옷을 입어야 어울리겠는지를 막냉이처녀에게서 비준받고서야 옷들을 골라입었다.

《야! 처녀들아, 차가 떠나겠다는데 아직도 류행복전시회냐?》

다부진 몸에 얼굴이 보름달같이 환한 회계원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이젠 됐다고 밀려나가기 시작하는 처녀들에게 향수까지 착착 뿜어주고서야 명금이도 날씬한 몸매를 률동적으로 흔들며 따라나갔다.

이쯤 되니 밖에서 기다리던 남자들이 감탄을 터치지 않을수 없었다.

《히야― 취한다!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왔나?》

《이거 오늘 시내 나갔다가 거기 총각들한테 홀딱 떼울게 아니야?》

《누구누구 해야 그저 우리 도살반처녀들이 제일이구만. 내가 장가를 빨리 가지만 않았어두 한번 어째보는건데…》

도살반장이 언제나처럼 능글거리는 말에 좌상령감 김상도가 《어험.》 하고 끼여들었다.

《이 앤 내 며느리감으로 이미 확정이 됐은즉 누구도 우리 명금이한테 눈독들일 생각 말게. 우리 아들이 가만 안 있어!》

《여여, 반장이구 좌상이구 다 비켜서라. 여기 당당한 도살반총각이 있는데 무슨 딴소리들이여?》

엄엄한 훈시와 함께 《봉이 김선달》이 가리키는 도살반총각이란 20살난 막냉이총각이다. 녀자처럼 날씬한 몸에 얼굴도 해말쑥하고 목소리마저 녀자처럼 챙챙한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머리를 긁는다.

《챠― 나한텐 누이벌 되는데…》

《누이면 어드래? 한두살 우인 녀자와 살면 더 재미나고 사랑두 더 받는다더라. 나처럼 색시한테 매두 안 맞구 먹을것도 많이 주구.》

《와하하.》폭소가 터져오르는데 《김선달》은 입을 꾹 다문채 덤덤해있다. 정말 색시의 박대를 받는 《수난자》의 표정이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던 박수혁이도 일시에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옷차림에 밝고 기쁨에 넘친 얼굴들이다.

그런데… 박수혁의 눈빛은 불시에 어두워졌다. 화려하게 단장한 처녀들속에서 유독 그늘이 비낀듯 한 영혜의 쓸쓸한 인상을 발견하였던것이다. 그도 남들과 같이 차리고 웃기도 하였으나 분명 이 마당에서 보아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하는 허전함이 어글어글한 눈에 그대로 비껴있었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그 생각에 수혁이도 흥뜬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는듯싶었다.

연구사의 수술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지…

수혁은 애써 불안을 지워버리며 다들 뻐스에 오르자고 소리쳤다.

옥류관에 도착한 공장종업원일행은 웅장화려하게 변모된 건물의 내부를 둘러보며 야! 야! 감탄사를 련발했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현대화된 이후로는 처음 들어와보는것이다.

특히 중앙홀에 들어서면서 량쪽의 긴 어항속에 희귀하게 생긴 철갑상어들이 욱실거리는것을 보고는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것이 관상용이 아니라 료리용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더더욱 깜짝 놀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에게 천만가지 복을 다 안겨주시려고 세상에 좋다는 희귀한 고기, 물고기까지 안겨주신다는 안내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 감동을 금치 못했다.

거쿨진 손으로 유리겉면을 쓸어보는 유춘삼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윽고 2층의 본관에 들어선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그만 눈들이 둥그래졌다. 연회장을 방불케 하는 대형풍경벽화들과 현란한 무리등, 네 면이 거울로 된 기둥벽들, 보석빛이 반짝이는 바닥, 눈부시게 하얀 보를 씌운 커다란 원형식탁들마다에 활짝 웃는 꽃송이들과 이채로운 번호판들, 눈뿌리 아득한 드넓은 방안의 식탁들마다에는 벌써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고기쟁반들과 국수그릇들이 정성스레 차려져있었다. 그 넓은 쟁반에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알까지 빼곡 채워져있는것도 놀라왔지만 수정같이 맑은 유리고뿌에 향기로운 술까지 찰랑찰랑 채워져있는것을 보니 더더욱 목이 메고 눈굽이 쩌릿해왔다. 우리가 치른 국수값에 비하면 너무도 비싼 원가가 들었을 고기쟁반을 앞에 놓고보니 우리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높이가 다시금 뜨겁게 헤아려졌다.

박수혁은 비싼 원가를 들인 타조고기를 인민봉사에 넘길데 대한 지시를 받던 첫 순간 그 엄청난 가격공간에 대해 일시나마 우려했던 자신이 돌이켜져 자책을 금할수 없었다.

흔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를 일컬어 대포를 쏘아 참새를 잡는다는 말도 생겼지만 인민의 리익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천만금을 아끼지 않으시며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고싶어하시는분이 우리 장군님이시다.위대한 사랑에 고무되여 우리 인민은 일터마다에서 새로운 기적과 혁신을 이룩해나가고있으니 그렇게 높아지는 생산능률이 바로 자본주의경제학설로써는 설명할수 없는 우리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장군님의 사랑을 전하는 안내원의 해설이 끝나자 요란한 박수갈채가 일어났다. 수혁에겐 그것이 백배천배 보답을 맹세하는 충정의 웨침소리로 들려왔다.

이어 축배잔들을 들었다. 진짜국가연회에 참가한 기분이여서 자못 숭엄해지기까지 했다.

《무엇을 위해서 들가?》

분육반장이 곁에 앉은 영혜에게 묻자 무슨 생각엔가 옴해있던 처녀가 당황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동문서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수혁의 가슴은 또다시 저려들었다.

《자, 우리 영혜동무의 행복을 위해서!》

챙그랑 잔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겨끔내기로 좌우에 앉은 사람들끼리 축배사를 주고받으며 잔을 맞쪼았다.

박수혁이도 웃음을 머금고 곁에 앉은 가공반장을 돌아보았다.

《반장동무, 우리도 이 축배잔에 뜻깊은 축사를 담아야지요.》

《전 그저… 우리 장군님의 하늘같은 사랑에 어떻게 하면 보답할가 하는…그 생각뿐입니다.》

《저도 같습니다. 우리가 보답할 길은 하루빨리 타조고기가공품의 질을 장군님 바라시는 높이에 올려세우는것입니다.

자, 그날을 위해서!》

두사람은 더 다른 말은 찾지 못한채 술잔을 마주쳤다.

옆식탁에 둘러앉은 종업원들속에서도 흥겨운 축배사들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번쩍 빛났다.

리태성비서가 때를 놓치지 않고 사진기의 샤타를 누른것이였다. 뜻깊고 즐거운 이 시각을 영원할 력사적순간으로 정지시켜준 고마움으로 사람들은 또다시 박수를 쳤다.

식탁을 맡은 어여쁜 접대원들이 주전자를 들고다니며 일일이 국수물을 부어주었다.

모두 입들에 웃음을 담고 국수를 저어 저가락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박수혁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영혜쪽으로 향했다.

처녀는 마치도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국수그릇을 앞에 놓고 난감해하는 그런 표정으로 저가락을 쥔채 내려다보기만 하고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영혜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수 없는 수혁이였다. 연구사생각이 나서 목이 메일것이다. 자기가 못 먹고라도 가져다주고싶은 아니, 자기가 먹는것보다도 연구사가 먹는것을 보는것이 더 기쁠 그런 심정이리라.

수혁은 슬그머니 일어나 영혜곁으로 다가갔다.

《왜? 영혜는 국수를 눈으로 먹나? 그러다 남에게 떼워!》

영혜는 깜짝 놀라 황급히 변명했다.

《아이, 저야 뭐. 더 하겠단 사람 있으면… 양보하겠습니다.》

《무슨 소릴? 이 옥류관에 들어오면 국수를 좋아하구 나빠하구 관계없어. 누구나 제 몫을 건사해야 한다구. 아무리 배집이 커두 제 몫이면 충분하니까 양보도 필요없어.》

영혜는 저가락을 국수그릇에 박았다.

수혁은 허리를 굽혀 나직이 속삭였다.

《내 접대원에게 말해놓겠으니 나갈 때 두그릇 받아가지고 병원에 가보라구.》

영혜의 놀란 얼굴이 흠칫 들리였다. 크고 검은 눈망울이 고마움에 젖어 파르르 떨었다.

사람들은 고기속의 국수를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수를 다 먹고 밖에 나왔을 때 박수혁은 모두거리로 물었다.

《국수맛이 어떻소?》

그러자 저마다 흐뭇해서 싱글대며 대답한다.

《히야―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정말 이루 다 말 못하겠습니다.》

《그거야 저 〈봉이 김선달〉의 훌쭉하던 배가 불쑥 나온것만 보면 알지 않습니까? 하하…》

《아,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조선사람으로 태여나 옥류관고기쟁반국수 한번 먹어보는것이 소원이라고 한다지 않습니까?》

《정말 옥류관국수 먹으러 비행기타고 오는 외국인들도 있답니다.》

박수혁은 떠들던 소리가 잦아들자 정색해서 말했다.

《동무들! 장군님께서는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모든 제품들이 바로 옥류관국수처럼 세상에 다시 없을 천하제일의 수준으로 만들어질것을 바라고계십니다.

우린 장군님께서 그처럼 훌륭한 타조목장을 세워주시고 타조고기가공공장에 귀중한 자금을 아낌없이 돌려주신 그 의도를 다시금 자각하고 인민에게 안겨질 타조고기가공품을 더훌륭하게 완성해나갑시다.》

《알겠습니다.》

신심과 결의에 넘친 종업원들속에는 남달리 자책이 큰 가공반장 유춘삼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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