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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8


방안에는 무덤속같은 고요가 깃들었다.

이불속에서 눈을 꾹 감은 최경천은 불시에 쓸쓸하고 서글픈 심회가 마가을 저녁의 찬바람같이 가슴속을 휩쓸었다.

나이 50이면 한창 정력이 왕성한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수있다.

하지만 최경천은 침상에 누워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보게 되는것이였다.

화력발전소 열조작공으로 일하던 그가 기계대학을 졸업하고 여기로 온것은 타조목장이 새로 일떠선 그해였다. 목장관리운영에 필요한 기술자, 전문가력량이 부족하다는것을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능력있는 기술일군들과 대학졸업생들을 선발배치할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최경천은 그때 제일먼저 적임자로 선발되여왔던것이다.

그때 그는 얼마나 큰 포부로 가슴을 설레였던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든 고향땅을 기술로써 빛내여가리라! 그것으로 나의 후반생을 자랑스럽게 빛내이리라.…

하여 그는 한창 설비납입중이던 고기가공공장에 배치되여 설비조립에 있는 힘과 정력을 다 바쳤다. 정말 힘든줄 모르고 밤낮으로 땀을 흘렸다.

주병호지배인이 꼬박 붙어 함께 일하면서 고무해주었다. 윤재철관리국장도 후방물자를 싣고 매일이다싶이 나왔었다.

아, 그때 최경천은 얼마나 보배로 떠받들렸던가? 젊음이 넘쳐서였던가, 기술이 높아서였던가.

참으로 긍지롭고 보람찼던 그 시절이야말로 경천의 인생엔 다시 없을 좋은 시절이였다.

헌데 이제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인생도 절기가 있어 어차피 락엽의 계절을 맞게 되는것이라고 그는 애써 위안도 해보았다.

하지만 미칠듯 한 이 고요와 공허를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공장의 동음이 그리웠다. 늘 웅웅거리는 랭동전동기소리와 각종 가공설비들의 동음속에 살아오면서 어느덧 거기에 익숙된 그에게 있어서 이 고요는 죽음과도 같았다. 고막을 울리던 그 소음들이 그에겐 삶의 노래였고 환희였다.

불현듯 멀리에서 그 음향이 울려오는것 같다.

벌떡 일어나 귀를 강구었으나 그것은 바람소리였다. 우― 우― 나무우듬지를 흔드는 청승맞은 바람소리…

경천은 고목이 넘어지듯 털썩 베개우에 쓰러졌다. 눈물이 관자노리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세상의 모든것이 자기를 버리고 외면한것만 같은 고독감과 서러움…

문뜩 일전에 찾아왔던 박수혁지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준절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래서 반장동문 자기의 과오를 사직으로 씻으려 했습니까?》

《정말 공장을 위해서라면… 꼭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구이로에 훈연장치도입… 그것은 정말 최경천자신을 살릴수 있는 유일한 길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경천은 그 희망의 마지막 한가닥실오리마저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 붙잡으려는 그 순간 눈앞에 주병호처장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타버린 전동기를 앞에 놓고 격분과 혐오감에 불타던 그 눈빛, 추상같은 절규…

《동무같은 사람이 이 신성한 일터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가? 동무는 애국자촌의 신성한 이름에 오점을 남겼단 말이요!》

한생 순박하고 성실했던 그가 한순간의 실책으로 이런 오욕을 당하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이게 어떻게 마련된 설비요? 동무가 그래 모르는가? 그래 공장이 입은 이 손실을 무엇으로 보상하겠소? 이젠 늙어서 감각두, 책임성두 무디여졌다는거요? 이렇게 너절하게 일할바엔 싹 그만두구 들어가란 말이요!》

최경천은 한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과격한 주병호처장이 너무 격분한김에 내뱉은 욕설로 리해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경천은 더없이 고지식한 사람이였다. 달리 리해할수가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정신없이 집으로 가자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고통을 이겨낼수 없었던것이다.

만취되자 꼬꾸라졌다. 나른한 쾌감이 그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정신이 들만 하면 또 마셨다. 빈속에 식사대신 연거퍼 술이 들어가니 위가 견디여낼수 없었다. 그래도 취하지 않으면 미칠것만 같았다. 정신만 들면 주병호처장의 말이 무섭게 공명되여왔다. 마디마디가 시퍼런 비수가 되여 날아와 박히고 구정물이 되여 온몸에 들씌워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병호처장이, 8년간을 함께 일해온 초대지배인이 자기의 인생을 너절하다고 했다. 그것은 성실한 땀과 지혜를 깡그리 바친 자기의 귀중한 시절을 통채로 부정하는것과 같았다.

분하고 억울했다. 통곡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솟구쳐오르던 의분과 원망감마저 스러져버리고 무서운 허무감이 덮쳐든다. 그래서 또 취해버리고싶었다.

부엌에서 달그락소리가 나더니 안해가 죽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여보, 미음이라도 좀 들어야지 그러다 어쩔려구 그러우?》

《됐소, 술이나 가져다주오.》

《원, 또 술이요? 의사선생이 뭐랬소? 위장염이 이제는 위궤양으로 넘어갔다구 절대 술을 금하라구 하였는데… 그러다 정말…》

마누라는 푸념을 하다말고 끔찍한 생각이 들었는지 흑 하고 앞치마자락을 눈에 가져갔다.

《죽으면 마는거지, 이렇게 살아선 뭣하겠소? 쓸모없이 버림받은 인간이…》

마음착한 마누라는 죽그릇을 놓고 돌아앉아 서럽게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최경천은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마누라가 설분을 토한다.

《그래, 사람이 그렇게 죽으라는 법이 어디 있소? 령감이 공장에서 일을 좀 많이 했소? 이 녀편네를 홀로 내쳐두구 밤낮나가 공장에만 붙어살더니 결국은 다 써먹었다구 그렇게…

사람이 일하느라면 실수할수도 있는거지 무슨 반동짓을 했다구 사람을 이 모양 만들어요?

휴가왔다간 아들이 부대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 하겠수? 아버지란 사람이 이러구 있으면 아들이 군사복무를 어떻게 하는가 말이요?

그래도 아들에게 떳떳하게 살아야지.… 이제래두 정신차리구 몸을 추세워서 농장일이라도 나가면 될게 아니요?》

마누라의 말이 옳았다.

최경천은 가까스로 일어나앉았으나 전혀 당기지 않아 멍하니 죽그릇만 내려다보았다.

박수혁이 다시 찾아온것은 바로 이때였다.

《반장동무, 빨리 나가 차를 탑시다.》

《예?!》

《중앙병원들에 가보고 치료대책을 세워야지요.》

뜻밖의 말에 최경천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구역병원에서 나와 진단을 내렸는데… 무슨 중앙병원엘 또 간다고 이럽니까? 난… 난 정말… 그만두겠습니다. 날 제발 내버려둬주십시오.》

수혁은 그를 안타까이 질책했다.

《제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습니까?

반장동문 그렇게 주저앉아 적당히 여생을 보내선 안될 사람이기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반장동무가 했던 말이 생각나겠지요? 무엇때문에 여기로 왔는가? 어떤 믿음을 안고 온 반장동뭅니까? 장군님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든 고향땅을 높은 기술로써 빛내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후반생을 장식하겠다던 그 결심을 반장동문 쉽사리 버릴수 있단 말입니까?》

《…》

《지난 가을 장군님을 공장에 모셨을 때의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우리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애국자촌의 고귀한 이름을 영원히 빛내여가자고 불같은 맹세들을 다지지 않았습니까?》

박수혁이 눈물을 머금고 절절하게 호소하는 바람에 최경천이도 그만 눈물을 흘리고말았다.

《제가 왜 그걸 잊겠습니까? 애국자의 자격을 잃었으니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고칠수 없는 병이라고만 생각지 말고 이악하게 달라붙어야 합니다. 꼭 고치겠다고 마음먹어야 약도 효험을 내는 법이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마음 절반, 약 절반이란 말이 있는게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내 꼭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맥을 놓고 누워만 있던 최경천은 현대의학기술이 안받침된 병원들마다에서 초음파검사도 해보고 복강경투시와 위내시경검사, 위액검사도 해보면서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되였다. 다행히 종물은 생긴것이 없었고 급성궤양에 간부종이 겹친것이였다. 그리고 이것이 갑자기 술을 많이 마신데 기인된다는 일치한 의견도 받게 되였다.

그제서야 최경천은 전동기사고를 내고 너무 속이 상한김에 며칠동안이나 밥을 안 먹고 술을 과음한 사실을 고백하였다.

결국 사고와 함께 나약해진 정신력이, 정신적허탈이 빚어낸 병이였던것이다.

이것은 최경천에게 심각한 인생의 교훈을 주었다. 인간의 파멸을 초래하는 타락이란 이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실패와 시련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희망을 포기하는 인간은 불피코 정신육체적으로 병들기마련이다.

《옳습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인간은 죽지 못해 생존하는 식물인간과 같지요. 반대로 신념의 대가 굳건한 정신적강자는 죽음도 이겨내는 법입니다. 신념의 대란 무엇이겠습니까?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장군님께서 하라시는대로만 하면 반드시 잘살수 있다는 믿음, 그것을 어떤 역경속에서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배짱이고 의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표를 기어이 실현하기 전에는 죽을수도 없고 죽을 권리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비상한 자각이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힘을 낳게 하고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게도 하는것이지요.》

박수혁의 말은 마디마디가 최경천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병원들에서는 여러가지 치료대책도 세워주었다. 약물주입, 침치료, 뜸치료와 같은 고려치료, 입원치료, 료양치료, 식사조절법, 보약치료…

수혁은 여러 병원들에서 자기의 특성에 따라 내린 각이한 처방들을 다같이 적용해보자고 했다. 즉 위궤양을 회복시키는데 특효가 있다는 온천에 가서 료양을 하면서 약물치료와 고려치료, 식사료법과 보약치료를 배합하자는것이다. 그것이 빠른 시일내에 건강을 회복할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라고 그는 확신성있게 주장했다.

최경천은 좀 아름차다고 생각했는지 선뜻 응하지 못했다.

박수혁은 이것저것 다른 생각할 필요없이 오직 치료에 전심하라고 하면서 이튿날로 그를 료양소에까지 태워다주었다. 치료기간은 한달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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