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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7


관리국정문을 빠져나온 승용차 한대가 시내중심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한창 출근시간이여서 거리는 승용차와 뻐스, 전차들로 꽉 차 물결처럼 흐르고있었다. 바람이 지동치듯 불어 가로수의 아지들을 세차게 흔들어놓는다. 그러나 바람을 맞받아 걸음을 다그치는 사람들의 얼굴마다엔 활기가 넘쳐보인다. 거리의 곳곳마다엔 《인민생활향상대진군》, 《최첨단돌파》 등의 표어들이 나붙어있다.

주병호는 지금 윤재철국장의 과업을 받고 식료연구소로 가는 길이다. 고기가공전문가인 동생을 하루빨리 공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박수혁이가 외국갔다와서 뚱딴지같은 설비현대화문제를 들고나오지만 않았던들 연구사동원문제가 이다지나 긴급하게 나서진 않았을것이다.

주병호는 아직 국장앞에서 수혁이 한 말을 일언반구도 내비치진 않았지만 어쩐지 불안스러웠다.

구이로가 어떤 설비인데 함부로 손을 댈 엄두를 낸단 말인가? 그것도 최경천이같은 무책임한 사람을 믿고 해보겠다고 하니 말이다.

수혁이가 외국에 갔다온 체면도 세우고 뭔가 표나게 실적을 내보려는 야심으로 설비개조문제를 들고나온것 같은데 제때에 눌러놓아야 한다.

일단 국장에게 제기되면 일은 복잡해질게 뻔했다. 담당처장인 자기가 개입 안할수 없고 실패하는 경우 책임문제가 돌아오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박수혁이가 외국에 갔다오더니 꽤 담이 커지고 공명심에 분별을 잃을 정도가 된 모양이다. 절대로 방임해두어선 안된다. 그런걸 바로잡으라고 담당처장도 있는것이 아니랴.

수혁이가 제품의 질제고문제를 전면에 걸고 설비타령을 하는 이상 현존설비조건에서도 한계단 질을 높일수 있는 가공조법을 탐구하도록 속히 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 적어도 관리국협의회가 있기 전까지는… 그러면 수혁이도 다른 말을 못할것이 아닌가.

그래서 부랴부랴 연구사문제를 국장에게 제기하고 자기가 솔선 맡아나선것이였다.

차안의 록음기에서는 최근에 새로 나온 노래 《우리 집사람》이 구성지게 울려퍼지고있다. 건드러지면서도 절절한 맛이 있는 민요풍의 서정가요이다. 노래자체가 가사와 곡이 독특한데다가 음색이 독특한 인기있는 남성가수가 부르는 노래여서 더욱 들을 맛이 있고 흥취가 난다.

여느때같으면 참지 못하고 따라불렀을 음악애호가 주병호였으나 오늘은 그러고싶지 않았다. 눈을 꾹 감고 자기 생각에 옴해버렸다.

그의 눈앞에는 수혁이와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던 중학시절의 추억이 토막토막 떠올랐다.

그때의 수혁이는 한번 가위질을 하려면 열번, 스무번을 재여보고 또 재여보는, 아이답지 않게 신중한 소년이였다.

시험칠 때 제일먼저 시험지를 바치는 1번수가 주병호였다면 맨 마지막까지 앉아있는 버티기선수는 수혁이였다.

문제를 다 풀어놓고도 시간이 될 때까지 착실히 앉아 열번, 스무번이라도 검산하고 검산하고 또 확인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매번 바치는 순서는 꼬리여도 실수라는것을 몰랐다. 그러나 속도순위를 고려하는 경우엔 뒤로 밀려나기가 일쑤였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의 물음에 남먼저 자진하여 답변하는 법이 없었다. 지명해서 물어보기 전에는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만 대답을 굴려보는것이였다. 몇번씩 입안에서 굴려보는 사이에 대답할 기회는 지나가버린다.

병호가 보기에도 그 꼬장꼬장한 성미가 답답하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활동형의 성격에 환상과 모험을 즐기던 병호에게는 도저히 손발을 맞출수 없는 짝패였다. 그래도 한아빠트에 살면서 동무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두 아이는 학교 콤퓨터실에 공부를 하러 나갔다. 병호는 콤퓨터교원인 이모부가 열쇠를 주었다고 뻐기였지만 사실인즉 이모부의 열쇠뭉치에서 슬그머니 빼낸것이였다. 그의 가방속에는 이모부가 콤퓨터를 수리할 때 쓰군 하는 공구주머니까지 척 들어가있었다.

언제부터 콤퓨터의 내장을 뜯어보고싶어 안달이 났던 그는 이제나저제나 이런 기회만을 노려왔던것이다.

그런줄을 꿈에도 모르고 따라온 수혁은 콤퓨터앞에 단정히 마주앉아 건반을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덧 몸이 쑤셔나기 시작한 병호는 하던 공부를 집어치우고 수혁에게 자기계획을 말했다.

수혁은 쌍겹진 오목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데거― 너 정신나가지 않안? 그러다 망가뜨리면 큰 변날려구?》

《쳇, 겁쟁이같은게… 망가뜨리긴 왜 망가뜨린다고 그래? 분해한 순서 반대로 조립하면 될텐데, 넌 배우겠다는 애가 호기심도 없니?》

이 말에 수혁은 어느 정도 마음이 흔들린듯 했다. 그러면서도 선뜻 응해나서진 못했다. 이것저것 걱정과 타산이 많았다.

《나두 뜯어보면 좋겠는데 콤퓨터선생님한테 승인받아야 하지 않을가? 그러다 고장나면 어쩌는가 말이야?》

《걱정두 팔자다. 콤퓨터선생이 우리 이모부이구 이렇게 열쇠까지 척 맡겼는데 승인한게 아니구 뭐가? 고장나면 수리하면 되는거구. 싫으면 그만둬, 내 혼자 할테다.》

병호가 결단성을 보이며 나사틀개를 꺼내들고 접어들자 수혁은 할수없이 그의 옆에 붙어앉았다. 함께 뜯어보는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패가 무슨 일을 칠가봐 걱정이 돼서 지켜보자는 자세였다.

결과는 뻔했다. 고장난 콤퓨터를 수리할 재간이 없었다. 일직선생이 돌아보기 전까지 철수해야 했다.

바빠맞은 병호는 콤퓨터실문을 잠그고 달아나 황급히 열쇠를 이모부의 열쇠뭉치에 다시 매달아놓았다.

이튿날 소동이 일어났다. 장본인이 누군가고 교장선생님이 학생모임에서 따져묻자 병호보다 먼저 머리를 숙이고나선 애는 바로 수혁이였다.

(그렇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야 건늘만큼 고지식하고 마음도 깨끗했던 수혁이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까지 무분별해지다니… 과연 무엇이 그의 성격을 변화시켰단 말인가?)

그러자 문득 중학시절의 또다른 추억이 떠오른다.

수혁이가 남보다 두각을 나타낼수 있었던 기회는 오직 축구경기장에서뿐이였다. 일상생활에선 지나친 신중파이고 사색형인 그가 이상하게도 체육마당에만 나서면 남에게 양보를 몰랐다. 무자비한 공격, 땅크와 같은 완력…

아마도 그의 진짜본성과 기질은 양보를 모르는 체육인으로서의 그것이였던지도 모른다.

참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외피속에 감추어져있던 그 기질이 지금에 와서 때를 만나 자기의 위력을 발휘하고있는것인가 하고 병호는 허거프게 웃으며 생각했다.

어쨌든 기질은 기질이고 한아빠트, 한학급에서 살며 생활한 친구를, 더우기 다른 구역으로 이사간 후에도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었고 제대후 대학시절엔 반려자까지 붙여준 친구를 모욕하고 무시하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할수 없는 도덕적인 배신행위였다.…

차는 어느덧 식료연구소 정문앞에 멎어섰다.

접수를 하고 들어가 소장부터 만났다. 사람좋게 생긴 소장은 림정우연구사가 지금 하던 일을 마무리하면 곧 보내겠노라고 선선히 응해나왔다. 그러다가 불쑥 생각난듯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헌데 한가지 말짼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우리 정우연구사의 나이가 지금 몇인지 압니까?》

《아, 왜 모르겠습니까? 나이가 서른둘이지요. 장가보내는 문제때문에 그러는게 아닌가요?》

《허허, 바로 맞췄습니다. 무슨 총각이 따르는 처녀들을 거들떠도 안보고 사업에만 몰두하니… 지금 맡은 과제만 끝내면 무조건 매련을 보자고 했던건데 이제 또 거기 가서 새로운 과제에 달라붙게 되면 아까운 나이를 또 한살 넘기지 않겠습니까?》

《아, 그 〈미치는 증세〉때문에요? 하긴 공부에만 집착하느라 처녀 하나 홀려내지 못한 학자님이니까, 하하.…

소장동지, 그 문제는 전적으로 저한테 맡기십시오.》

《처장동무한테요?》

《제 동생문제인데 응당 이 형이 책임져야지요. 그러찮아도 보아둔 처녀가 있답니다.》

《아, 그랬댔소? 그렇다면 내 마음을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공장사업을 성심성의로 도와주시는 소장선생님께 제가 인살 드립니다.》

《뭘요? 장군님께서 그토록 관심하시는 타조고기가공문제를 돕는거야 우리 식료연구소의 응당한 본분이지요.》

《그럼 제 동생을 잠간 만나보고 가겠습니다.》

《어서 그러십시오.》

소장은 친절하게 문밖까지 나와 고기가공연구실을 가리켜주었다.

흰 위생복을 입은 림정우가 실험탁에 마주앉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실장이 등뒤로 다가가 불러서야 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해서 돌아보다가 벌씬 웃음을 지었다.

《아니, 형님 오셨군요.》

키가 훤칠하고 기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준수하게 생긴 동생의 모습을 보니 새삼스레 대견한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제대군인당원에 대학졸업생 이렇게 안팎으로 미끈한 남자한테 어느 처녀인들 반하지 않으랴.

《머리쉼도 할겸 밖에 좀 나가자꾸나.》

두사람은 청사앞 정원의 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군데군데 쌓인 눈이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려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가시만 남은 장미꽃나무덩굴이 애처롭게 떨고있다.

《겨울이 발악을 하는걸 보니 봄도 멀지 않았구나. 인생도 이렇게 해마다 봄을 맞는다면 얼마나 좋겠니?》

《형은 오늘 별스레 감상에 빠진것 같군요.》

《바루 너때문이지.》

《예?!》

어리둥절해하는 동생에게 주병호는 다짜고짜 품속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내밀었다.

《좀 봐라. 이중에 어느 처녀가 제일 안겨오는지?》

그것은 7~8명의 관리국처녀들이 무대에서 중창을 하는 사진이였다. 주병호가 직접 찍고 깨워서 나누어준것인데 다행히 한장 남아있었다.

정우는 얼결에 받아보고는 씩 웃으며 도로 내미는것이였다.

《뭐, 다들 곱구만요.》

주병호는 그만 실망했다. 그가 점찍어둔 처녀는 오른쪽 제일 끝에 선 처녀인데 뛰여나게 아름다왔다. 부모들이 다 성기관에 있고 본인은 원산경제대학졸업생이다. 특별히 안겨오는 처녀를 짚으라면 동생도 의례히 이 처녀를 짚으려니 했는데 모두거리로 다 곱다니?…

《그러지 말구 한명한명 자세히 뜯어보라니까? 다 고운것같애도 개개의 얼굴이 다 특성이 있단 말이야. 황홀하다든가, 매력있다든가, 귀엽다든가, 복스럽다든가, 리지적이든가.… 하여튼 마음드는 녀자를 선택만 하면 이 형님이 무조건 성사시키겠다.》

《그러니 형님은 절더러 처녀의 얼굴만 보고 일생문제를 결심하라는거예요? 참…》

《무슨 소릴? 내용두 모르는 처녀를 소개해주겠니, 아무렴? 이 형님이 다 파악이 있는 처녀들이길래 담보하는거지.

우리 관리국처녀들은 하나같이 쭉쭉 빠지구 예쁘기도 하지만 모두가 다 대학, 전문학교졸업생들이다. 너와 짝이 기울지 않아. 배경들도 그쯘하고 간단치 않은 집 딸들이야.》

《그런 집 처녀들은 대개가 과학자의 성격과 생활을 리해하지 못하더군요. 하여튼 난… 생활속에서 서로 파악되고 진정으로 공감된 정신적인 결합을 원해요. 인간의 마음이란 한순간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볼수 있는 물질이 아니잖아요?》

《원,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해서야 언제 장가를 가겠니? 너처럼 잘생긴 남자가 늦도록 장가를 못 가면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한다. 뭔가 하나 모자라지 않는가 하구.…》

《하하.…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하라지요. 생각은 인간의 자유니까요.》

《너 무슨 사고방식이 그러냐? 상하좌우를 둘러볼줄 알고 그에 맞게 처신할줄 아는게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이야. 너는 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형님의 말씀이 리해됩니다. 하지만 과학자는 범인간과는 달라서 사면팔방 정신을 팔구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다가는 아무런 일도 할수가 없습니다. 연구사업자체의 요구가 그렇지 않습니까?》

주병호는 한숨을 쉬고말았다. 담배를 꺼내 한대 피워물고 동생에게도 내밀다가 그만 걷어넣었다. 림정우는 술과 담배를 일체 입에 대지 않는다는것을 상기했던것이다. 식료연구사가 돼서 그럴가? 남자가 술, 담배도 할줄 모르고 처녀를 달고다니는 멋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과학자의 생활이란 참 따분한것이라고 주병호는 새삼스레 생각했다.

담배를 피우다말고 그는 결론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너한테 방임해둘순 없어.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구 처녀 하나 사귀지 못한 네가 무슨 재간에 자체로 대상자를 골라?

어쨌든 네 사업을 리해할만 한 학력과 마음을 갖춘 처녀라면 되겠지?》

《그런 처녀가 쉬울것 같습니까?》

《걱정말래두. 넌 그저 빨리 공장에 와서 제품개발할 생각이나 해라.》

《참, 그 공장설비가 굉장히 멋있다지요? 참관갔다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감탄하더군요.》

《너도 와보면 눈이 휘딱 뒤집어질게다, 하하.…》

《제 하던 일을 다그쳐끝내고 즉시 나가겠어요.》

《전활 해라. 차를 보낼테니.》

주병호는 자기의 손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길로 공장에 나간 주병호는 박수혁지배인에게 연구사가 곧 오니 가공설비는 절대로 다칠 생각을 말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그러나 수혁은 설비개조의 필요성을 완강히 주장했다. 훈연공정이 없이는 제품의 질제고도, 새로운 가공조법의 실현도 불가능하다는것이였다. 외국에서 떠온 훈연증자로의 도면을 펼쳐놓고 진지하게 파고들어 설명을 하는데 나중엔 주병호도 그 우월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좋네. 그럼 새로운 훈연설비를 수입해들여올것을 내 관리국에 제기하겠네.》

《수입이라구? 관리국에 무슨 돈이 많아서?》

《그럼 방법 있소? 꼭 필요하다면야 돈을 쓰는 수밖에…》

《지금 쓰는 구이로가 있지 않나?》

《그건 못 다친다지 않아?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소?》

주병호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승산없는 모험에 기대를 걸지 말구 수입안을 제기하자구. 다시한번 말하지만 구이로를 뜯어고친다구 하다가 망쳐놓으면 책임질 방법이 없어. 이건 중학교때 콤퓨터를 뜯어보다가 망가뜨린따위의 사고와는 대비조차 할수 없는거란말이야, 알겠나?》

《그러니까 자넨… 끝내 수입안을 제기하겠다는건가?》

《자네가 설비개조를 끝내 주장하는 한에서는!》

주병호를 노려보는 수혁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번뜩이였다. 책상우에서 틀어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나라에 손실을 끼치면서라두… 제 한몸만은 상하지 않게 안전한 길을 택하겠다?!…》

주병호도 격분해서 마주 쏘아보았다.

《난 자네처럼 제 공명을 위해 무분별한 모험은 하고싶지 않아!》

《공명을 위해서라구?! 내가?》

《그럼 뭔가? 아니라면 개조안을 포기하란 말이야!》

《아니! 난 절대 물러설수 없네! 개조의 가능성을 외면하구 수입안을 제기하는데는 더더구나 동의할수 없구!》

주병호의 얼굴엔 차디찬 랭소가 흘렀다.

(끝내 친구의 의리를 짓밟겠단 말이지.…)

《좋네! 어디 관리국회의에서 제기해보자구!》

그는 씹어뱉듯 내치고 벌떡 일어나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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