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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제 4 편 새세대들

9


중앙조종실에서 남웅과 정철은 이마를 맞대고 추리해나가던 끝에 병원에 있는 진수현과 같은 곬을 타게 되였다. 새형의 비루스작간이 아닐가?

리남웅이 송춘도에게 물었다.

《전번에 윤덕동지가 보냈던 기억기를 이 관리체계의 어느 콤퓨터에 꽂은적은 없소?》

《글쎄, 잘 생각나지 않누만.》

송춘도가 심상한 소리를 하였다.

《정확히 말해보우.》

정철이가 심각해서 주의를 주었다.

《외부에서 특이한 비루스가 들어온것 같아서그래.》

그제야 송춘도는 정신을 차렸다.

《사실은… 내가 그걸 저 콤퓨터에 꽂구 한번 펼쳐본 다음에 인차 빼냈는데…》

《그 기억기가 지금 윤덕동지한테 있지?》

남웅이 물었다.

《응, 어제 돌려주었지. 좋아하지 않더군.》

리남웅은 두말하지 않고 리윤덕에게로 갔다. 윤덕은 아직도 중앙조종실곁에 웅기중기 모여선 공장일군들앞에서 연구사들이 개발한 프로그람을 가지고는 곤난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있었다.

《언젠가 지배인동지도 이런 취지의 얘길 한바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실속이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내 거듭 말하지만 장치나 프로그람이나 다 신용이 있고 력사가 있는 씨멘스회사 같은데서 구입하는게 그저 등탈이 없습니다. 자금은 좀더 들어도 그게 종당엔 리득이 되지요.》

윤덕은 가까이 오는 남웅을 보자 위로하듯 그의 잔등을 어루만졌다.

《동무네의 이번 실패를 손실로만 계산해서는 안되지 않을가. 도입은 힘들다 해도 우리의 연구토대는 한편으로 계속 쌓아야 할테니까. 날 만나자고? 왜, 여기서 얘기하지?》

《따로 좀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리남웅은 의아해하는 윤덕을 뒤에 달고 현장 한구석으로 갔다.

《무슨 비밀얘기요?》

리윤덕이 미소를 지었다.

《돌려드린 그 프로그람도구 있잖습니까, 기억기안에 있는것 말입니다.》

《응, 그런데?》

《그걸 좀… 다시 봤으면 해서 그럽니다.》

《원, 그 말을 꺼내자구 이런 으슥진데로 데려왔나? 면구해할게 따로 있지! 그러잖아두 동무네가 이걸 도로 달라고 나올줄 알았소. 진작 그랬어야지! 이런 파악있는 개발도구로 프로그람을 짰더라면 체계마비같은건 당초에 오지도 않았을거요.》

그는 자못 너그러운 태도로 그 기억기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여 남웅에게 내밀었다.

《내 이걸 손에 넣느라고 얼마만 한 대가를 치렀는지 아오?》

《이걸 검사해봐야겠습니다. 비루스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남웅이 조심스레 말했다.

《뭐요?…》

리윤덕은 한대 맞은 사람처럼 놀라더니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니 나한테 실패의 원인이 있다는건가?!》

그래도 이전에 자기가 데리고있던 젊은이들이라고 한껏 아량을 보이던 윤덕은 그들이 겨눈 의심의 화살에 찔리자 감정을 자제할수가 없었다.

《똑바로 말하오! 이를테면 내가…》

《저, 검사해봐야 알겠습니다만…》

《동무네가 짠 프로그람이나 검사해보라구. 이번에 유연체계를 말아먹은 그 공명심이나 스스로 검토해보란 말이야!》

《조용하십시오, 사람들이 봅니다.》

리남웅이 난처해하자 윤덕은 더 무섭게 화를 냈다.

《동무넨 언제부터 이렇게 됐소? 이전에 나랑 같이 있을 땐 그래두 도덕같은건 있었지? 수현이 그 사람탓이야. 야심은 커서 무얼 자체로 개발한다고 법석하더니, 당초에 젊은축들을 데리구 무슨 일을 치겠다구 그래. …》

《우리 실장선생님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실수 있습니까?》

리남웅이 섭섭한듯 말했다.

《전번에 공구측정장치를 시동할 때도 실장선생님이 윤덕동지를 돕자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

《걷어치우라구.》

윤덕의 목소리엔 어쩐지 힘이 없었다. 리남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홀시하는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지요.》

《뭐라구?!…》

리윤덕은 기가 막혔다.

《윤덕동지.》

이번에는 송춘도가 나타났다.

《그 기억기를 다시 봅시다. 내가 거기에 미련을 가지고 두번째로 열어봤는데 그때 관리체계가 오염된것 같습니다.》

《자네까지 이걸 의심하나?》

리윤덕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송춘도가 서글프게 말했다.

《이젠 이 기억기뿐아니라 윤덕동지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헤딴데 눈이 팔려 앞을 보지 못했댔지요. …》

《이보라구, 만일 이 기억기에 문제가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할텐가?》

리윤덕은 자기가 미리 비루스검사를 해보았기에 당당하게 묻는것이였다.

《아니요, 거기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송춘도가 침착하게 말했다.

《새형의 비루스일수 있습니다.》

《좋네. 마음대루 검사해보라구. 하지만 문제가 없을 땐 자네들이 책임질줄 알게!》

리윤덕은 그 책임이 어떤것인지는 미처 념두에도 없이 말이 나가는대로 내뱉았다. 그만큼 그는 흥분상태에 있었다.

젊은 연구사들은 그 기억기를 망체계에서 떨어진 콤퓨터에 접속시켜놓고 비루스검사를 시작하였다. 리윤덕과 공장기술자들도 거기에 참여하였다.

서관범사장은 그 어떤 예감때문인지 낯이 어두워져서 조종장치실 주위를 자꾸 오락가락했다.

3시간만에 그 기억기에 숨어있는 새형의 비루스를 찾아냈다. 그것은 다른 파일에 자체를 복제하여 전파되는게 아니고 하나의 프로그람으로 동작하는 특이한 비루스인데 깊이 잠복해있다가 때없이 나타나 체계를 마비시키는것이였다. 그에 맞는 왁찐프로그람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염된 프로그람들을 모두 지우고 다시 태워야 하였다.

서관범사장은 윤덕을 나직이 꾸짖었다.

《동문 여기에 더 있어서는 안되겠소. … 먼저 돌아가오. 이 유연체계도입이 끝나고 내가 올라갈 때까지 자기를 돌이켜보오. 과오는 여러가지요. 동무의 그릇된 관점때문에 우리 가정이 입은 손실같은건 셈에 넣지 않더라도 말이요.》

리윤덕은 수치와 모멸감을 묵새기며 회사로 올라갔다.

그는 이튿날 아침에도 번민하였다. 출로는 여전히 막막하였다. 사장이 하던 말소리만 귀전에서 맴돌았다. 《…우리 가정이 입은 손실…》

아닌게아니라 자기가 남웅에 대해 지나친 험구를 한게 사장 딸 진주의 혼사를 깨는 빌미로 된것 같기도 하였다.

이제라도 진주에게 남웅에 대한 옳은 인식을 주어 그 둘사이를 다시 붙여놓을수는 없을가?…

우선 자기가 진주에게 사죄부터 해야 할것 같았다. 얼굴이 뜨거운 노릇이지만…

그는 아침에 회사에 나가자바람으로 진주네 안과전화번호를 누르다가 그럴것없이 직접 그곳으로 찾아가기로 작정하였다.

제5병원 정문에 이른 윤덕은 창문들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거기에 진수현이 입원해있다는 생각에 주춤하였다. 그는 발길을 돌려 병원 맞은편의 공원에 들어섰다. 이제 무슨 낯으로 진수현을 만나겠는가?!… 누런 락엽들이 하늬바람에 우수수 날리다가 의자에 쭈그리고앉은 그의 구부정한 등과 어깨에 한두잎 내려앉았다.

윤덕은 진수현과 더불어 걸어온 먼 로정을 돌이켜볼수록 아픔과 가책이 가슴을 에이였다.

(그러니 그가 옳았단 말인가?!…)

윤덕은 여태까지 그가 세상살이를 할줄 모른다고만 생각해왔었다.

사실 진수현은 어디 먼데 갔다가도 제 집안 물건보다 연구실에서 쓸것들을 먼저 사왔고 자기가 맡은 실 사람들과 연구소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그것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왔다. 그러느라고 연구실도 몇번 옮기면서…

리윤덕은 실장과 부소장시절에 그런 숨은 노력을 애써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관점을 내심 자연스러운것으로 여겼다. 그는 이러니저러니해도 사람이란 결국 자기의 리익을 좇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윤덕은 평소에 자기 리해관계와 일치될 때에는 호방하고 통이 큰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도 보이고 생색도 냈지만 자기가 손해를 보게 될것 같으면 자주 외면하군 하였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중에는 조국의 장래운명도 안중에 없는 속물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생각할수록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리남웅이도 어제 말했었다.

《우리 실장선생님이 윤덕동지를 돕자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리윤덕은 비로소 자기 우월감과 편견을 떠나서 진수현을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그가 자기 한사람에게 준것만 꼽아보아도 대학시절 제도용연필로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소자들과 장치들, 문헌들 그리고 묻혀버릴번 했던 론문과 초정밀공구측정장치를 시동할 때의 지원… 물질적인것은 더 세지 않더라도 그가 변변치 못한 이 동창생을 념려해준것은 그 몇번이며 따로 만나 권고하고 충고한것은 또 몇번이였던가!… 난 여태까지 그를 내 결함을 과장하여 나를 욕보이고 내앞에 그늘을 던진 사람으로만 보아오지 않았는가, 내 인생을 망친것은 역시 내자신이였는데…

이제 그를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돌아가자, 가버리자! 이제 진주를 만나 사죄를 하려는것도 다 가식이고 무엇을 수습해보려는, 궁지를 모면해보려는 너절한 타산이 깔린것이였다. 그냥 돌아가자!…

리윤덕은 공원의자에서 움쭉 일어나 어깨의 락엽을 털며 돌아가다가 또 멈춰섰다.

진주에게 남웅에 대한 진실만은 알려줘야 할게 아닌가.…

그것 역시 뻐근한 의무였다.

진주를 찾아가는 걸음은 느렸다.

정작 진주를 병원 3층의 측면로대로 불러내고보니 지금이 근무시간이고 적절치 못한 장소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갈마들었다. 리윤덕은 얼굴이 뜨거웠지만 내친김에 남웅에 대한 자기의 비난이 무근거한것이였다고 사죄를 하였다.

《…내가 그를 오해했댔소. 잘못 평가했댔소. 남웅동무는 역시 성실하고 량심적인 청년이였소. 나때문에 그와 갈라지게 됐다면 진주동문 아마 날 용서할수 없을거요.…》

진주는 비난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굽에는 눈물이 감돌고있었다.

《모든게 저의탓인걸요. 저는 자신을 용서할수 없어요. 물론 이런 이야기가 이전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거예요.… 그래요, 너무도 늦었어요.》

《그럼… 수고하오.》

리윤덕은 자신이 듣기에도 그닥 적절치 못한 인사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떴다.

《진주선생, 여기 계시는줄도 모르고… 공장에서 비루스를 찾아냈대요.》

진주를 찾아다니던 진수현의 안해가 로대로 나오다가 리윤덕을 알아보았다.

《아니, 부사장선생, 그간 안녕하세요?》

《안녕하오?… 참, 수현동무가 어느 호실에 입원했소?》

이제는 윤덕이 슬그머니 그냥 돌아갈수가 없게 되였다.

리란희는 그에게 입원실을 대주다가 진주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보고 놀랐다.

《진주선생… 왜 그래요? 예?!》

《…》

녀의사가 벽쪽으로 돌아서서 참고참았던 설음을 터뜨리며 소리없이 흐느껴울고있었다.

리윤덕은 가슴이 무너지듯 괴로운 한숨을 토하며 돌아섰다. 진수현을 만나자, 너는 그앞에서 솔직해야 한다, 이젠 자기를 깨끗이 돌이켜보자!

그래도 그는 여전히 주저하면서 입원실로 들어섰다.

두눈을 붕대로 처맨 진수현이 침대에서 금시 내려선 자세로 두손을 뻗쳐 허공을 더듬었다.

《누구요, 당신이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리윤덕은 진짜 앞을 못 보는건 자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그럼 의사선생이요?》

《여보게, 나야, 내가 왔어. …》

리윤덕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굽을 부축하여 도로 침대에 앉히고 얼없이 그앞에 서있었다.

《누구라구? 윤덕동무요? 응, 마침 잘 왔군! 그러잖아도 만나고싶었네.》

그 말에 윤덕은 속이 뜨끔하였다.

《나한테 할 얘기가 많을거네. … 물론 공장소식은 알고있을테지, 내가 구태여 얘길 하지 않아도…》

《알고있네. …》

진수현이 무겁게 대답했다.

《여기 좀 앉게.》

리윤덕은 그의 곁에 앉아 가쁜숨을 톺아올리던 끝에 제김에 열을 올렸다.

《왜 더 말이 없나, 응? 수현이, 속시원히 꾸짖지 않구…》

《…》

《내가 정말 한심한 놈이였지. 그런 주제에 도리여 자네를 원망했댔네. 자네가 왜 그처럼 연구소후비문제로 신경을 쓰는지 알수가 없었거던.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 그런 부차적인 문제를 가지고 부소장인 나를 비판해서 곤경에 몰아넣었다고 자네를 좋지 않게만 생각했단 말일세. …》

《…그렇게 리해해주니 고맙구만.》

진수현이 따뜻이 말했다.

《윤덕이, 난 최일이나 남웅이같은 젊은이들을 볼 때면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우리 장군님의 명언을 되새겨보게 되네. 얼마나 뜻이 깊은 말씀인가. 우리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잘 받들자면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면서 더 많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전에는 물질적재부가 풍부한 나라를 부강한 나라라고 일러왔지. 지금은 인재가 많고 지적자원이 풍부한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부르고 있네.

최일이나 남웅이세대는 분명 우리보다 더 앞서게 될걸세. 학준이세대는 그보다 더 앞서게 될거구. 그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주자구.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나.》

《무슨 얘긴지 이젠 좀 알것 같네. …》

리윤덕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오늘만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 지내보니 래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늘도 없구만. 버림받은 외토리가 된 나처럼 말일세! 수현이, 난 이젠 다된 페물이야.》

《아직 늦지 않았네. 나이 마흔여덟이면 한창 일할 때지. 전망계획을 세울수 있구말구. 그 K방식의 풀이가 가능할것 같더군. …》

《K방식이라니?!》

《자네가 남웅이하구 합작하게 된 론문말일세. 여기 어디에 놓았댔는데?》

《?!》

진수현은 눈이 안 보이는지라 침대머리의 사물함어방을 헛손질하며 그 론문을 찾는 모양이였다.

《입원한 뒤에 할일이 있어야지. 그래 식들을 좀 전개해보았네. 어떤 때는 진주의사가 읽어주는 덕에 머리속으로 방정식들을 더듬어보았네. 입원실이 조용해서 뭘 생각해내긴 그저그만이야. 풀릴것 같더라니! 이제 보라구. 가만… 내가 금시 여기 어디에 놓았던것 같은데…》

《…여기 있네. … 여기 있어. …》

리윤덕의 더운 눈물이 그만 론문용지에 후두둑 떨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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