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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제 3 편 오늘의 의미

12

이튿날 아침 진수현실장은 눈을 검진하려고 안해와 함께 평양 제5병원으로 떠났다.

실장이 없는 연구실의 분위기는 쓸쓸하였다.

최일은 청년들이 모인데서 구동프로그람을 맡지 않겠다던 송춘도를 호되게 다불러댔다.

《…송동무의 속심은 뻔합니다.

이 동무의 언행을 분석해보면 저속한 사고과정을 빤히 알수 있습니다. ―인간은 리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다.― 나는 이런 일가견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과연 인간이란 리득이 있으면 쫓아가고 불리하면 돌아서는 그런 단순한 존재겠는가? 그렇다면 이건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인간은 리해타산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훌륭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실장선생님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는 무슨 요란한 구호를 웨치고 큰소리는 치지 않지만 늘 연구실과 연구소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그때문에 묵묵히 자기 노력을 바치고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도 여러번 옮겼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자기의것을 나눠주다나니 자기는 얼마 가진게 없습니다. 외국에도 여러번 갔다왔지만 그때마다 연구소에 필요한 자료나 실험설비들을 사오느라고 자기 집에 들여놓은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동무들도 그 집에 드나들면서 보았을것입니다.

집안에 번쩍거리는게 있었습니까.

송동무는 그런 살림살이를 보고 여유가 없이 고박하게 산다고 내놓고 비웃었습니다. 전번에 난 그런 송동무를 보고 너무도 어이없고 입에 올릴 가치가 없어서 혼자 묵새겼습니다만 오늘은 내킨김에 말하는겁니다.

동무는 선배들중에서 어떤 사람을 존경하고 어떤 사람을 타매해야 하는가를 혼동하고있습니다.

송동무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론 나도 지난 기간에 결함이 많았고 송동무를 잘 돕지도 못했습니다. 난 턱없이 자고자대하면서 걸핏하면 송동무를 수공업자라고 몰아주었고 청년조에서 내보내자고 제기까지 했댔습니다. 무서운 편견이였습니다. 사실 송동무에게는 재능이 있습니다. 처음 몇년간은 우리 젊은 연구사들중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던 송동무가 아닙니까. 문제는 동무의 그릇된 관점을 고치는것입니다. 난 송동무가 마감단계에서 중요한 드라이버(장치구동프로그람)를 맡아 개발하면서 동무들의 믿음을 다시 찾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모두 송동무를 도와줍시다.》

리정철도 송춘도를 엄하게 비판하였다.

《송동무는 자기의 과오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과학이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과학을 홀시하는 나라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군님께서 사상과 총대와 함께 과학기술을 중시하시는 뜻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이 3대기둥중에서 하나만 넘어가도 나라가 기울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지금 사회주의를 지키는 주요전선에서 판가리싸움을 벌리고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는데 송동무는 저만 살겠다고 후방으로 뛰려고 합니다. 도주병이나 다른게 무엇입니까. 이런 수치는 전투행동으로 씻어야 합니다.》

한켠에 앉아있던 리남웅과 지학준이도 송춘도를 도와 장치구동프로그람을 완성하겠다고 한마디씩 하였다.

송춘도는 자기를 위해 힘을 써줄것 같던 리윤덕이 이렇다할 약속도 희망도 주지 않고 훌쩍 떠나가버리자 의기소침해지고말았다. 그는 지금 동무들의 일깨움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이젠 장치구동프로그람을 맡겠다고 대답하는수밖에 없었다.

저녁무렵에 진수현이 연구실에 나타났다. 연구사들이 그를 둘러쌌다.

《아니, 입원하지 않고?…》

세포비서가 물었다.

《당장은 무슨 신통한 대책이 없다는군요.》

《그래도 입원치료를 받으면 좀 나을게 아닙니까.》

《지금은 어쩐지 안정이 될것 같지 않습니다. 한두달 있다가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그때가면 내 눈에 맞는 처방이 나올수도 있겠지요.》

진수현이 반롱조로 말했지만 연구사들은 지금 그를 억지로 입원시키기는 어렵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진수현은 조종장치 《조종7호》가 완성될 때까지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수가 없는것 같았다.

낮에 밤을 이어 마감전투가 벌어졌다.

송춘도는 최일과 남웅의 도움을 받으며 구동프로그람을 짜나갔다. 주역을 맡고 앞서나간다기보다 량쪽의 부축을 받으며 끌려가는 형국이였다.

고민도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노라던 이 송춘도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1년가까이 방심한탓에 자기만 아득하게 뒤떨어지지 않았는가! 정보기술분야에서는 지식의 로화주기가 이젠 3년이 아니라 1년미만으로, 몇개월로 줄어든것 같았다. 이젠 정말 잠간 딴 눈을 팔아도 락오자가 되는 판이다.…

어디 가서 발언권을 세우자고 해도 실력이 없이는 안된다는것을 송춘도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를 이끌어주느라고 최일이 누구보다도 애를 썼다.

최일은 《조종7호》의 성공이 확실히 눈앞으로 다가오자 더욱 기분이 뜨고 온몸에 활력이 넘쳐났다. 코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연구소마당에서 점심때마다 벌어지는 연구실간의 배구경기에서도 최일이네 팀이 패권을 쥐게 되였다. 온 운동장이 최일이 판이였다. 그는 앞선에서 타격을 하다가도 자주 뒤로 물러나 방어하면서 정철과 학준을 공격선에 기둥으로 내세우군 하였다. 언제나 송춘도를 련락수 3번위치에 세우고 그에게 공을 집중시켰다. 최일은 아무리 뛰여다녀도 힘든줄을 몰랐다.

어느날 저녁 지능공학실의 대리실장을 하는 임창만이 번들거리는 기타를 들고 최일을 찾아왔다.

창만은 지금 2월의 명절을 맞이하여 연구실마다 예술소조공연준비로 흥성이는데 여기서는 왜 잠잠한가고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면서 이 임창만이 밀어주겠으니 《조종7호》개발뿐아니라 예술공연에서도 장훈을 불러야 할게 아닌가고 자존심을 자극하였다.

예술가의 가정에서 자라난 최일이라 은근히 마음이 동하기도 하였지만 잠시 생각해본 끝에 왼고개를 쳤다. 무대에 내세울만 한 신통한 인물이 없고 맞춤한 대본이 없기때문이였다.

이런 일에는 능수인 임창만은 여기 학준이며 춘도, 정철이들의 예술적취미와 소질에 대해 일일이 꼽으면서 청년들로 기타5중주곡 같은거야 얼마든지 준비할수 있지 않는가고 튕겨주었다.

최일이 들을만 해있자 창만은 그것말고도 연구실 28명전원이 출연하는 교성곡을 련습해서 중심실의 면모를 과시해보라고 덧붙였다.

《아니, 교성곡을?!…》

최일은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어림도 없다는투로 말했다.

《임동무, 교성곡이 얼마나 힘든건지 알고나 그래?》

《거야 물론 고급한거지. 하지만 예술이란 대담한 심장을 요구한다구. 자, 이 악보를 우선 좀 보라니까.》

그것은 혁명시인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에 나오는 시 한대목을 따서 인민예술가 김옥성이 작곡한 교성곡 《압록강》이였다.


이 나라 북변의 장강―

2천리 압록강 푸른 물에


첼로군과 남성저음의 웅글은 목소리가 오선지에서부터 흘러나오는듯했다.

명곡이 주는 웅심깊은 내용과 아름다운 서정이 최일을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눈앞에는 석양노을에 물든 압록강기슭으로 다가오는 이 나라 빨찌산들의 대렬과 선두에서 날리는 붉은기가 점점 선명한 화폭으로 떠오르는것이였다.

임창만이 열이 올라 부추겨댔다.

《비전문가들이 모여서 하는 공연 수준이라는게 어슷비슷해지기 쉬운데 여기서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지휘자의 수준이 어떤가 하는데 따라 좌우된다구. 최동무야 어려서부터 상당한 정도로 예술교육을 받았다면서…》

《누가 그러던가?》 최일이 제편에서 놀랐다.

《수현실장선생님이 알려주던데. 한번 솜씨를 보이라구. 지휘가 기본이야.

우리 합창조성원들도 괜찮지. 연구사들이 못해낼것 같나? 거의다 고등교육을 받은데다가 보고 들은것두 많구 예술적인 감각들도 있지 않나.

처음에 발동이 되기가 좀 힘들뿐이지.… 지휘할 때는 결함보다도 우점을 먼저 지적해주는게 좋아. 열의를 떨어뜨리면 안되거던…》

한참 구수한 소리로 최일을 설복한 임창만은 가져온 기타를 최일에게 내밀었다.

《이건 초급당비서동지가 전해주라던건데 여기서 공연준비를 하는걸 한번 나와보겠대. 잘해보라구.》

최일은 연주가의 눈으로 기타를 이모저모 들여다보았다. 도색의 질과 나무결만 보아도 좋은 악기라는것이 알렸다. 줄들을 튕겨보니 음량은 크지 않으나 부드러우면서도 맑은 소리가 났다.

그는 음높이를 귀로 가늠하면서 손짐작으로 음계를 짚어나갔다. 그는 바이올린에는 익숙한터이지만 기타는 처음 만져보는것이였다.


그날 퇴근무렵이 되자 최일은 실험실에 청년들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저녁에 1시간씩 머리도 쉬우면서 문화적소양도 쌓는 겸 예술공연준비를 하겠노라고 알려주었다.

이전처럼 박석훈선생의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독창이나 중창 같은 종목을 준비하던 관례를 깨고 기타5중주곡과 교성곡을 련습해야 한다는 소리에 청년들은 모두 입을 딱 벌렸다.

제일 놀란것은 송춘도였다.

그는 교성곡은 물론이고 기타5중주도 힘들다면서 제나름의 방도를 내놓았다.

《…그러니 최동무, 기계대학시절에 전기기타수로 활약했다는 저 막냉이나 하나 잘 준비를 시켰다가 독주를 하게 하는게 어떻소? 하긴 학준이도 모르겠어. 멀끔한 외양덕분에 소리 안 나는 기타나 메고 몸을 흔들면서 전반적인 조화나 맞췄겠지. 뭘 변변히 하겠어.》

《흥, 신발문수가 같으면 다 같은 사람인줄 알아요?》

학준이 코방귀를 뀌였다.

《적어두 송동지처럼 골목에서 속성법으로 익힌 기타수준과는 구별된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우리모두를 대표해서 무대에 나가보지 뭐.》

《송동무, 조직사업두 채 끝나기 전에 무슨 말이 그리 많소?》

최일이 엄하게 지적하였다.

《자, 이제 악보들을 내주겠는데 첫 한주일간은 개별련습을 합시다. 그 다음에 모여서 맞춰보기로 하고… 물론 비전문가들인것만큼 힘들수 있습니다. 나두 기타는 처음이요. 하지만 배우겠소. 여기 자신없는 동무들은 누구요?》

손들고 나앉는 청년은 하나도 없었다.

최일은 임창만이 찍어준 악보라면서 그 여백에 적은 이름에 따라 일일이 나눠주었다. 그 악보들은 중주곡인만큼 음역과 선률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것이였다. 그중 학준이에게 차례진 악보가 독주곡처럼 제일 연주하기가 까다롭고 《콩나물대가리》가 많은것이였다. 학준은 벌써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악보를 읽어나갔다.

송춘도의 악보는 그다음으로 힘든것이였다. 아마 제일 쉬운 악보는 남웅이나 최일에게 차례졌을거라고 그는 짐작하였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기타를 탈수 있는 성원은 벌써부터 큰소리를 치는 학준이와 해주1중학교 기숙사에서 기타와 친숙해진 자기 그리고 군대에서 군무자축전에 좀 따라다닌것 같은 리정철이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 집에서 홀로 교측본을 놓고 기타를 배우며 어떤 시름과 싸운다는 소문이 도는 남웅이까지 손에 꼽으면 제일 생둥이는 최일이였다.

그런데도 이 예술방면에까지 책임자로 자처하는게 아닌가!

송춘도는 진심으로 공연준비가 우려되였다.

(잘되긴 코집이 앵그러졌어.)

그는 저녁 개별련습시간을 지키지 않고 실험실에 혼자 남아 프로그람작업을 마저 하였다.

저녁녘이면 저쪽 프로그람실은 떠들썩하였다. 그야말로 사람이 사는것 같았다. 나많은 축들은 발성련습을 하기도 하고 《압록강》노래를 각이한 성부로 목청껏 불러보기도 하였다. 걺은이들의 서툰 기타소리도 뒤섞여 울렸다.

그러나 그 결말을 훤히 내다보는 춘도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는 장치구동프로그람을 검토하는것이 더 실속이 있어보였다.

오늘도 개별련습시간에 실험실에 남아 프로그람작업을 하는데 김정태초급당비서가 들어왔다. 비서는 송춘도곁에 앉아 콤퓨터화면을 쳐다보았다.

《〈드라이버〉로구만. 이젠 거의 되지 않았소?》

《예, 검사단계입니다.》

《송동무가 이번에 수골 많이 하누만.》

《아닙니다.》

송춘도는 낯을 약간 붉혔다.

《지금까지 최동무한테서랑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 담당자라는게 이런 뒤거두매라도 제대로 해야지요.》

《음… 예술소조련습엔 안 참가하오?》

김정태비서는 노래소리가 울리는 프로그람실쪽을 고개짓하며 물었다.

《나 말입니까? 이번주에는 개별련습들을 합니다.》

《송동문 자신있는게구만. 기타솜씨가 있는 모양이요? 허허…》

《겨우 선률이나 뜯습니다. 마구잡이로 배웠지요. 한데 5중주나 합창이 제대로 될것 같지 않습니다.》

《어째서?》

《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송춘도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회전의자를 삑 돌려 비서와 마주앉았다. 《우선 책임자능력이 문젭니다. 열성은 좋은데… 난 최일동무의 실력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전혀 다른 세계지요. 기타연주의 초보도 모르면서 5중주를 지휘하고 게다가 교성곡까지 도맡아 형상하겠다니 말이 됩니까. 원래 욕망이 좀 앞서는 축이지요. 저러다간 시연회에도 못 나가보고 흩어질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임동물 데려다가 지도를 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임동무야 우리 실 출신이 아닙니까.》

송춘도의 진심의 소리에 김정태비서도 의논조로 나왔다.

《글쎄, 임동무는 연구소적인 지휘자니까 여기에만 붙일수야 없겠지. 모처럼 최동무가 지휘를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좀 두고보는게 어떻겠소. 그 〈타잎〉부터 멋지지 않소, 허허… 듣자니 최동무가 이전에 상당한 예술가였다는 소문도 돌던데…》

《예술가요? 최동무가 말입니까?! 하하하…》

송춘도는 허리가 끊어지게 웃어댔다.

비서도 벙글서 웃었다.

《원 송동무도, 사람이야 우선 믿고봐야지. 저 기타소리는 누구 솜씨같소? 잦은 가락을 넘기는것 말이요.》

《그야 학준이겠지요.》

《허허…》

비서는 움쭉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작업을 그만하구 프로그람실에 가서 구경도 하고 기타련습도 좀 해보우. 그러다간 송동무가 5중주단에서 뒤꼬릴 차지할수 있소.》

비서는 웃으며 나갔다.

송춘도는 남아서 프로그람작업을 마무리하고 저녁 8시쯤 되자 일어섰다.

저쪽 프로그람실에서는 거의 다 퇴근했는지 홀로 기타를 타는 소리만 들려온다. 아마 학준이일것이다.

송춘도는 복도건너편의 프로그람실문을 열었다.

《학준이, 이젠 그만…》

그는 말꼬리를 삼켰다. 방에 남아있는건 학준이가 아니라 최일이였다. 제법 악보까지 들여다보면서 연주를 하고있었다.

《최동무였구만?》 송춘도는 제 눈을 의심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어느새 이 정도로 발전했소? 기타는 처음이라고 하더니…》

《송동무, 나야 오래전에 실패한 바이올린수가 아니요.》

《뭐, 바이올린수?》

《놀라긴… 여기 좀 앉으라구. 내가 아직 말 안했지. 그렇지…》

최일은 언제인가 애인에게만 터놓았던 어릴적의 이야기를 송춘도에게도 들려주었다.

송춘도는 이전과는 달리 친절하고 웅심깊어보이는 최일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한주일이 지나자 최일은 기타5중주련습을 지도하였다. 그는 아직 기타가 손에 익지 않았지만 가요 《흰눈덮인 고향집》의 서정적이면서도 숭엄하게 흐르는 곡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깊이있게 형상하도록 동무들을 이끌어갔다.

그는 이전처럼 걸핏하면 성을 내고 소리치는 일이 없이 진중하면서도 밝은 얼굴로 연주자들의 감정을 유도하였다. 그간 최일이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기를 수양해온 덕분일것이다.

교성곡 《압록강》의 련습도 예상외로 잘되였다. 임창만이 말하던것처럼 연구사들은 식견도 있고 리해력도 빠른데다 일단 발동이 되기만 하면 예술의 세계에 아낌없이 열정을 쏟아붓는것이였다.

지휘자인 최일은 그들에게서 곡이 요구하는 감정과 소리들을 뽑아낼줄 알았다. 그는 창만이 대준대로 꾸중보다도 칭찬을 더해주었다. 나많은 사람들도 잘한다는 소리는 좋아하였다. 노래가 잘 안되여 결함을 지적하는 경우에는 제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간수준의 사람을 지적하여 전반의 열의가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4살때부터 바이올린을 켠 그는 건반악기를 전문한 사람들보다도 음감이 더 예민하고 정확하였다. 그는 음악에서 환기된 감정에 깊이 빠져있었다.


이 나라 북변의 장강―

2천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2월의 명절무대에 출연하여 합창을 지휘하는 최일을 본 많은 연구소사람들은 참으로 타고난 예술가라고 감탄하였다. 관람자들은 미숙한 비전문가들의 공연에서 오로지 뜨거운 친근감과 감동―완성의 경지를 체험한것이였다.


프로그람작업이 완전히 끝나자 수자조종장치를 도색한 철함에 넣고 가공중심반과 정합을 맞추었다.

드디여 3월 14일 오후 5시부터 유연체계시험공장에서 세계최첨단급의 CNC장치 《조종7호》의 련동시험이 시작되였다.

《조종7호》와 결합된 가공중심반이 화력발전소용급수뽐프날개의 정교한 곡면을 깎아나갔다. 처음엔 황삭가공, 그다음엔 정삭가공… 전자뇌수 《조종7호》가 저절로 기계를 조종하고있었다.

최일네와 실장, 연구소와 본원의 일군들이 《조종7호》의 사고와 작업과정을 몇시간째 감시하였다.

최일은 볼수록 전자뇌수가 대견하였다. 얼마나 령리한가! 지령을 재빨리 해득하고 그에 맞는 가공프로그람을 작성해나간다. 전자뇌수가 연구사들에게서 배운 가공기능과 지식의 보물고는 기대공의 기억한계를 훨씬 넘는 방대한것이였다. 또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한가! 미크로메터급의 정밀도로 공작기계의 여러축들을 동시에 조종하면서 그 가공수치들을 매 순간 알아보고 도면대로 수정해나가기도 한다. 성실하고 미덥기도 하다! 언제한번 졸거나 헛눈을 팔줄 모르고 연구사들이 배워준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심한다. 그뿐이랴, 친절하기도 하다! 전자뇌수는 운전공에게 그라프까지 그려보이면서 자기의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때로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하며 사전에 예고하기도 한다.

5시간 20분 28초만에 《조종7호》는 공작기계를 조종하여 정교한 뽐프날개를 가공해내고 사람들에게 작업이 끝났음을 알리였다.

도면대로 가공되였는가를 확인하려고 시험공장장이 직접 여러가지 계지(크기, 형태 등을 검사하는 측정기구)들을 뽐프날개에 대보았다. 계지와 곡면사이에 눈에 보일가말가한 실틈이 나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최일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실패?!…

이어 그 까닭이 밝혀졌다. 가공된 뽐프날개가 아니라 계지가 약간 부정확한것이였다. 계지판에 인볼류트곡선같은것을 그리고 칼로 따낸것은 역시 사람의 손이였다.

계지를 다시 만들어야 하였다. 그것도 이 뽐프날개곡면에 거꾸로 맞추어서…

CNC장치 《조종7호》는 완전성공이였다.

18세기 후반기부터 시작되였다고 하는 공작기계력사에서 또하나의 기록이 세워진 특기할 순간이였다.

진수현실장이 최일의 손을 잡으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최일의 눈에는 창조하는 사람의 기쁨, 그 기쁨의 눈물이 뜨겁게 감돌았다. 얼핏 수현실장을 바라보니 그도 구석쪽으로 돌아서서 근시안경을 벗고 슬그머니 눈굽을 훔치는것 같았다.

자정이 거의 되였지만 흥분한 최일이네는 일군들이 만류하는데도 두번째시험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서 청탁한 미세한 홈이 있는 정밀뽐프축을 깎았다.

새벽녘에 시험이 끝나자 최일은 현장에 홀로 남았다.

그는 《조종7호》의 두리를 거닐며 지난 1년간을 돌이켜보았다. 꼭 1년이였다. 희망과 좌절, 동요와 분발… 우여곡절도 많았다. 힘에 겨운 나날이였다. 앞으로 한생을 이렇게 분투하면서 고심하면서 창조하면서 살고싶었다.

(이젠 은경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지!) 그는 가슴이 후련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 온기가 있는 《조종7호》의 본체를 쓰다듬다가 저절로 눈이 감기여 그 자리에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그리고 깊은 잠에 들었다.

이 사랑스러운 청년은 자기네가 조국앞에 얼마나 큰일을 해놓았는가를 다는 알지 못했다.

이튿날 기자들이 《조종7호》가 가동하는것을 보자고 찾아왔을 때 그는 시험공장장의 방으로 옮겨져 여전히 자고있었다.

그를 흔들어깨웠지만 인차 눈을 뜨지 못하였다. 처음엔 단잠을 깨운다고 버럭 화를 내는것이였다.…

《전자우편―〈우리들의 세계를 견학합시다〉

오은경동무 앞

안녕하십니까?

〈조종7호〉가 끝내 완성되였습니다. 이 수자조종장치는 그 성능으로 보아 진흥기계공장에 도입하게 되는 유연생산체계에서 말단조종장치들로 널리 리용할수 있을것입니다. 은경동무가 설계하는 자동승강대차에도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4월초에 우리 동무들이 〈조종7호〉를 가지고 진흥기계공장으로 가서 유연생산체계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나는 론문집필때문에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종7호〉를 개발하면서 머리속에 무르익혀온 내용이므로 몇달어간에 다그쳐끝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나는 론문을 심의에 제출하고 진흥기계공장으로 가서 유연생산체계마감전투에 참가하려 합니다.

그때 만납시다!

안녕히.

3월 15일 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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