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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제 3 편 오늘의 의미

9

송춘도는 며칠째 기분이 없었다. 자기가 《종합편의》곁의 소공원에서 실장에게 불손하게 처신한 일이 돌이켜질수록 후회가 막심하였다. 물론 그것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도전이였다고 할수 있었다. 원래 약은 축인 송춘도는 여태 부소장 리윤덕을 믿고 그가 자기를 어디 좋은데로 보내주기를 기다리며 새 실장과는 큰 마찰이 없이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데 남웅의 경우를 보니 부소장이 거의다 성사시켰던 회사에로의 조동도 수현실장이 안된다고 막아나서자 허사로 되고말았다. 그랬다, 문제는 수현실장이였다. 실장의 부아를 돋구고 그의 눈밖에 나서 어디든 갈데로 가라고 자기를 내쳐두도록 처신하는게 상책이라고 송춘도는 타산하게 되였다. 그래서 부드러운 송춘도로부터 일약 거친 송춘도로 표변하여 우정 무례하게 실장에게 대들었던건데 결과는 자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저급하게 행동했음을 자인하는것으로 끝나고말았다. 실장은 엇서나가는 이 송춘도를 미워하고 배척할 대신에 오히려 더욱 진지한 태도를 보이며 끈덕지게 설복하는게 아닌가.…

이 변압기사건으로 아예 위축된 송춘도는 조종장치실을 더욱 뜨고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서해안의 백호화학공장에서 전반공정의 조종체계가 마비되였다고 연구소에 구원을 청해왔다. 진수현실장이 책임지고 공장에 가보기로 되였는데 실장은 나많은 경험자들이 아니라 젊은 연구사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송춘도는 마침내 자기 능력을 보일 때가 왔다고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그는 날이 갈수록 최일에게 핀잔을 받고 꼴을 먹는터였다. 프로그람작업실적이 낮아서였다.

원래 프로그람을 작성하는것은 창조적인 로동이여서 그 정량이 일정하지 않았다. 온종일 콤퓨터앞에 앉아있어도 궁리가 트이지 않으면 프로그람을 한행도 짜지 못하는 수가 있고 때로는 단위시간에 몇배의 실적을 내는 수도 있었다. 령리한 송춘도는 남먼저 프로그람을 짜놓고 남은 시간에 콤퓨터화면을 여전히 마주하고앉아서 무슨 딴 생각을 굴리기도 하고 이따금 기회를 보아 외출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실적은 다른 청년들과 비슷하던것이 석달, 넉달째 접어들면서 점점 뒤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최일과 리정철, 학준은 저녁식사후에 스스로 연구실에 나와 프로그람을 짰다. 리남웅도 두어달동안 회사에 갔다오느라고 뒤떨어진것을 보충하려는지 밤작업을 하였다. 여기서 기록보유자는 유연체계실에서 온 리정철이였다. 제대군인출신인 그는 그야말로 무쇠같은 의지를 가지고 프로그람을 짜나가는데 하루 5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송춘도는 그들을 따라가기가 점점 더 힘에 부쳤다. 그의 지혜도 맥을 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열성을 내자니 언제가야 성사될지 모를 《조종7호》라는 환상에 현혹된 최일네처럼 짐작이 없이 내달리기도 싫었다. 그래 우울하게 지내던차에 백호화학공장에 실질적인 일감이 생겼다는게 아닌가. 드디여 이 송춘도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이고 최일의 코대를 눌러놓을 기회가 온것이였다!

그런데 최일은 제가 뭐라고 이 일에도 참모장격으로 나서면서 공장에 가는 인원은 많아야 필요없다고, 네명이면 충분하다고 실장에게 건의하는것이였다. 그 필요없다는 인원중에 송춘도도 들어있었다.

최일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백호화학의 전반조종체계가 마비되였다니 유연체계실에서 웃준위프로그람을 전문하던 실장선생님하구 정철동무는 물론 가야 할게구 그담에 나하구 남웅동무까지 네명이면 될것 같습니다.》

송춘도는 비위가 상했다.

《인원선정은 민주주의적으로 토의해서 합시다. 실속없이 리론이나 풀면서 현장수리경험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나는게 좋을거요. 공연히 헛걸음 하지 말고…》

《이보라구, 춘도동문 자기 실력을 알아야지.》

최일의 그 말에 송춘도는 두눈에서 불이 일었다.

《아무 소리나 먼저 하면 장땅인가? 정말 기분 잡치누만.》

《최동무.》 실장이 중재하듯 말했다.

《이번에 현장경험을 쌓는겸 다같이 가보는게 좋을것 같소.》

송춘도는 여봐라는듯이 최일을 쳐다보았다. 이제 공장에 가서 어디 보자!

백호화학공장 기사장이 소형뻐스를 가지고 전문가들을 모시러 왔다. 진수현과 최일, 리남웅, 리정철, 송춘도, 지학준을 보자 기사장은 《허, 젊은 동무들이구만요!》 하고 감탄인지 우려인지 뜻모를 소리를 했다. 뻐스는 구급차처럼 지체없이 공장으로 내달렸다.

기사장은 나란히 앉은 실장에게 공장이 숨죽은 경위와 그 증세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진수현은 뒤에 앉은 청년들에게 주의해서 들으라는 손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기사장도 반쯤 뒤로 돌아앉아 큰소리로 설명하였다. 백호화학공장은 1년전에 설비를 일식으로 들여온 자동화된 공장인데 가동중에 갑자기 중앙조종실의 주콤퓨터―뇌수가 마비되였다는것이였다. 생산국의 기술자들을 부르자니 우선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 이곳 현대화연구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것이였다.

최일과 리정철 그리고 그들에게 뒤질세라 송춘도가 번갈아 질문을 던지자 화학쟁이로서 조종체계물계는 잘 모르는 기사장은 일일이 대답하기에 진땀을 뺐다. 청년들이 저마끔 《그럴수 없겠는데요?》, 《경고신호를 못 봤다니 말이 됩니까?》, 《바떼리관리를 어떻게 했습니까?》, 《정전이나 전압파동을 주의해야지요.》하고 캐묻고 힐난하는 바람에 60객의 기사장은 자주 수건을 꺼내여 이마와 목덜미의 진땀을 훔쳤다.

《젊은 동무들》이라고 부르던것이 어느새 공경스레 《선생님들》로 바뀌였다.

연구사들은 그의 말만 듣고서는 《병든 뇌수》의 병명과 원인을 짚어낼수가 없었다.

소형뻐스가 나는듯이 달려 2시간만에 공장에 도착하였다. 은빛배관들이 사방 10여리에 그물처럼 얽히며 뻗어나갔고 여러개의 합성탑과 거대한 구형의 탕크들이 해빛에 번뜩이고있었다.

송춘도는 공장구내에 들어서자 물에 든 고기처럼 몸짓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는 기사장과 나란히 걸으며 어엿한 자세로 《숙소는 어덴가요?》하고 물었다.

기사장이 눈치있게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크, 이거 벌써 점심때가 됐군! 숙소가 멀지 않은데 먼저 식사부터 하고 숨을 좀 돌립시다.》

《중앙조종실부터 가봅시다.》

최일이 송춘도쪽을 흘겨보더니 부책임자로서 기사장을 독촉하였다.

송춘도는 최일이 지내 초조해서 전전긍긍하는것이 가소롭게 보이였다. 큰 전문가일수록 몸가짐이 정중하면서도 태연하고 여유있어야 하며 조급한 속심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게 아닌가. 요술사가 쉽사리 진속을 드러낸다면 관중은 그를 보고 솔직하다고 찬양하는게 아니라 서툴다고 도리여 비웃을것이다.

수현실장과 젊은 연구사들은 중앙조종실의 주콤퓨터앞에 모여서 마비된 《뇌수》를 진단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뒤에서는 공장일군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있었고 유리간막이 저쪽에서는 숱한 기술자, 기능공들이 근심스레 바라보고있었다.

사실 이 화학공장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면 중앙조종콤퓨터는 그 뇌수라고 말할수 있었다. 지금 그 《뇌수》가 병들었다. 뇌조직이 어떤 물리적손상을 입은게 아니라 순수 정신적인 장애가 온것이였다. 때문에 그 진단도 뇌수를 수술해서 헤쳐놓고 들여다보는식으로 하지 않는다. 중세기 유럽에서는 머리속에서 《귀신》이 달아나게 한다면서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기록도 전해지고있지만 현대에는 정신병치료를 크게 물리적인 방법과 심리적인 방법으로 갈라서 하고있다. 지금 송춘도네가 하고있는 고장진단과 그에 따르는 퇴치과정은 정신병치료의 심리적인 방법처럼 콤퓨터와 대화하면서 이루어지는것이였다. 유연체계전문가인 리정철이 건반을 치고 마우스를 움직이면 다른 연구사들은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콤퓨터의 반응을 분석하고 토론하였다.

그곳으로 점심밥들을 날라왔다.

연구사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론의를 계속하였다. 이를 주도하는것은 실장이 늘 내세워주는 최일이였다. 그러나 현장경험을 자부하는 송춘도가 점차 우세를 차지하였다. 춘도는 원천프로그람이 지워졌다고 예언하였다. 리정철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하였다.

진단이 계속되였다. 어느덧 송춘도의 말이 옳다는것이 확증되였다.

이제는 원천프로그람을 찾아서 콤퓨터에 써넣어주어야 하였다. 그것은 외국기술자들이 공장을 가동시켜주고 가면서 남겨놓은 CD안에 압축되여있었다.

《이제야 땅 짚고 헤염치기지요!》 송춘도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공장 간부들이 황홀해서 올려다보았다.

그 원천프로그람을 써넣자면 우선 읽어야겠는데 도무지 읽어지지를 않았다.

모두가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랐다.

《우리한테 있는 프로그람도구로는 버션(판번호)이 낮아서 읽을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송춘도가 결론하였다.

《버션이 9는 되여야 읽겠는데 우리건 8이니 될턱이 없지요.》

《그럼 9짜리는 어데 있습니까?》

지배인이 초조해서 물었다.

《어느 다른 연구소나 기관에 있을수도 있잖습니까?》

《우리 나라에 들여온 도구중에는 이 8짜리가 최고일겁니다.》 송춘도가 알려주자 지배인의 얼굴이 컴컴해졌다.

당비서가 그래도 행여나해서 물었다.

《무슨 다른 수가 없을가요?》

《수입하기 전엔 안됩니다.》

송춘도의 무게있는 대답에 지배인, 당비서, 기사장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말았다. 절망의 파문이 기술자, 기능공들에게로 퍼져갔다.

《방법이 없을가?》 뒤전에 서있던 진수현이 연구사들을 둘러보았다. 《이 도구가 신비한건 아니요. 버션 8에 기능을 추가해서 9를 만들었을거요.》

《우리가 9를 만듭시다.》 최일이 호응하였다.

《시간랑비야.》 송춘도가 고개를 저었다.

최일은 벌써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실장선생님, 여러가지로 조합을 해서 읽어봅시다.》

《음, 동무들에게 설명해보오.》

최일은 프로그람도구8을 갱신하여 9를 만들수 있는 자기의 착안을 동무들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청년연구사들은 모두 흥분하였다.

최일이 돌파구를 열자 리남웅이 알고리듬을 작성하고 리정철이 프로그람을 짜나갔다. 학준이도 기발한 재치로 그 프로그람을 함축할수 있는 방안을 귀띔하였다.

송춘도는 뒤늦게나마 안된다는 주장을 철회했지만 이 프로그람작업에 보탬을 줄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홀연 그는 자기 머리가 텅 빈 구새통처럼 느껴지는것이였다.

프로그람작업이 한창인 중앙조종실로 저녁식사를 날라왔다. 최일이네는 일에 열중하여 먹는둥마는둥 하였다. 한켠에 꿔온 보리자루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송춘도는 창피한 생각에 음식이 당기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었다.…

《그렇지!》 마우스를 움직이던 리정철이 중얼거렸다.

《엉?! 읽는구만!》 최일이가 열에 떠서 소리쳤다.

드디여 원천프로그람이 화면에 펼쳐진것이였다.

지체없이 그것을 써넣기 시작하였다.

《이젠 됐습니까?!》 당비서가 기뻐하며 진수현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PLC와 주콤퓨터간의 통신이 안됩니다. 통신프로그람도 지워졌습니다. 이것도 살려내야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겁니다.》

《그럼 됐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눈들을 좀 붙이는게 어떻습니까?》

당비서가 미안한듯 권고하였다.

《최동무?…》 실장이 그의 의향을 물었다.

《다그칩시다, 공장이 멎었는데…》 최일의 대답이였다.

야간작업이 계속되였다.

공장사람들은 젊은 연구사들의 열의에 감동되였다.

아침에 통신이 회복되였다.

시험적으로 전반공정을 돌려보았다. 제대로 돌지 않았다. 아직도 《뇌수》가 혼란된 사고를 하고있었다.

기진맥진한 지배인이 진수현에게 이젠 어떻게 하면 좋은가고 물었다.

진수현은 이제 퇴치할건 큰 고장이 아니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무직업자》인 송춘도에게 파라메터설정을 다시 하라고 일감을 맡겼다. 송춘도는 이 일에 달라붙어 다소 체면을 세울수 있었다.

다시 시동하였다.

성공이였다.…

근 20여시간에 걸치는 쉬임없는 전투끝에 화학공장이 돌게 되자 구내에 환성이 터져올랐다.

아침에 세면을 못했던 연구사들은 점심때 새로 꾸린 공장 목욕탕에 안내되여 유쾌히 첨벙거렸다. 그들뿐이였다. 자연미를 내느라고 벽에 굴피들을 붙였는데 뜨거운 김이 뽀얗게 공간을 채웠다. 최일이네는 큰 욕조에 들어가 아이들처럼 새된 소리를 지르며 물장구를 치고 물싸움까지 벌렸다.

송춘도는 구석에서 목욕바가지에 물을 떠놓고 얌전히 세면을 하였다. 그의 고민은 컸다. 다시 생각해보니 최일의 말이 옳았다. 자기는 공장에 괜히 따라와서 망신만 한것이였다. 그는 몇달동안 허송세월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그간 몰라보게 키가 자란 최일이네가 추진하는 조종장치《조종7호》며 리정철의 체계관리프로그람이 정말 빛을 볼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것이였다.

연구사들은 점심식사에 초대되여서야 시장기를 느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지배인이 최일에게 장가를 갔는가고 슬그머니 물어보는것이였다.

당비서가 참견하였다. 《혹시 사위삼고싶어 그러는게 아닙니까?》

《그럴수도 있지요! 우리 공장에 끌어올수만 있다면야… 아닌게아니라 탐이 납니다그려, 하하…》

식사후 연구사들은 연구소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공장사람들이 너무 잡아끄는 바람에 정양소구경까지 하게 되였다. 지난밤을 꼬박 새운 연구사들은 정갈하고 푹신한 침대에 눕자마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 송춘도 하나만 얕은 잠에 들었다가 괴망한 꿈을 꾸고 소스라쳐 깨여났다.

연구사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장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귀로에 올랐다.

소형뻐스가 전조등을 켜고 내달리자 학준이의 선창에 따라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물결우에 별빛은 반짝이고

돌아가는 배길에 꽃보라 뿌리네

달리는 배전에 출렁이는 물결은

자랑찬 하루일을 이야기하네

아― 날리는 만선기 바라보며

포구로 돌아가는 배길은 좋다네


진수현도 청년들과 더불어 노래를 불렀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년말까지 틀림없이 《조종7호》를 완성할수 있을것 같았다. 최일네가 오늘 또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서지 않았는가!… 그는 오늘 풀이 죽은 송춘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는 그도 채심할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송춘도는 고민끝에 딴 생각을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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