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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제 3 편 오늘의 의미

2

소장방에 소장과 초급당비서, 부소장, 진수현이 둘러앉아 진흥기계공장에 유연생산체계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를 하였다.

병원에서 갓 퇴원한 김응일소장은 진수현이 작성한 연구집단명단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조종장치실을 위주로 그것도 젊은 연구사들만 가지고 이 과제를 해낼수 있을것 같소? 후비를 키우자는건 좋지만…》

《이번에 두어달 지내보니 최일동무네 청년조가 발전이 빠릅니다.》

진수현의 대답에 리윤덕이 가볍게 나무람을 하였다.

《기판정도나 만들어놓고 자신있다고 큰소리요?》

《시작이 절반이지요.》 진수현은 오늘도 다른 사람들앞에서는 리윤덕부소장에게 너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실장동무가 그러다가 고생만 하지 않나 두고보우.》

리윤덕이 퉁명스레 이야기하는데 소장이 권고하였다.

《실장동무, 조종장치실이 기본이 돼서 전투를 한다 해도 말그대로 유연생산체계도입이니까 유연체계실 성원들도 한두명은 더 동원시켜야 할게 아니요. 물론 수현실장이 얼마전까지 유연체계실을 맡았댔지만 정철동무 하나만 데리고는 역시 일손이 딸릴거란 말이요. 념려말고 유연체계실에서 몇명 더 동원시킵시다.》

《일없습니다. 한명이면 됩니다.》

《그럼 정철동무 대신 조용규동무를 붙여주지. 오른팔 노릇을 할거요.》 소장이 말했다.

《리정철동무를 붙여주십시오.》

그러자 리윤덕이 증을 냈다. 《원 고집두, 정철이야 제대군인으로 대학을 졸업하구 재작년엔가 들어오지 않았소. 실력이 있소, 경험이 있소?》

《그 동무는 내가 데리고있어봐서 압니다. 전망이 있습니다.》

《수현실장은 대체 일을 하자는거요, 말자는거요? 어린 사람들을 데리구 무슨 일을 치겠다고 그러오?》 리윤덕이 엄하게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우. 이번에 진흥기계공장에 유연생산체계를 도입하는 전투는 전번에 남산공작기계공장의 유연생산체계도입전투보다 더 의의있고 중대한 과제요. 우리 기계공업의 전반적인 CNC화수준을 한단계 올리는데서 관건적인 의의를 가진다고도 말할수 있소. 진흥기계공장 사람들은 유연생산체계를 도입한 공장에 우리 장군님을 모시자고 궐기도 했고 장군님께 맹세문도 올리지 않았소. 진흥기계공장은 장군님께서 중시하시는 공장이요. 이쯤하면 이번 유연생산체계도입전투의 의의를 넉넉히 짐작할수 있지 않소. 이 전투에 우리 력량을 최대한으로 투입해야 전사된 도리를 다하는것으로 된다고 생각하오.》

소장방에 숙연한 정적이 깃들었다.

세 지도일군의 눈길을 받으며 진수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매번 그런 식으로 중요과제라고 해서 경험자들만 내세우며 일하다간 대가 끊어집니다. 우린 연구소의 래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은 래일을 위해 있는거지요. 우리 연구소의 실태를 봅시다. 해마다 대학졸업생들이 오면 연구실마다 좋은 사람을 골라 받겠다고 신경전을 벌립니다. 정작 받고나서는 중요한 연구과제를 해결하는데 인차 인입시키지 않지요. 정보산업시대에는 젊은 인재가 일을 친다고 자주 외우면서도 실제로는 하찮게 여기고있습니다. 중진들만 데리고 일하기는 쉽습니다. 이렇게 그시그시 무난히 넘기다나면 나중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품이 들고 실패를 거듭해도 젊은 연구사들을 믿고 내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청년들을 중시하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무거운 침묵이 흐른 끝에 김정태초급당비서가 전번에 당위원회에서 토의한대로 청년들을 믿고 적극 떠밀어주자고 말했다.

소장도 그리고 리윤덕부소장도 마침내 수긍하였다.

연구조 명단이 통과되였다.


과제책임자; 진수현

부책임자; 최 일

조 원 ; 리정철

〃 ; 송춘도

〃 ; 지학준

〃 ; 리남웅(※현재 동원중이므로 9월 중순부터 참가하게 됨.)


그날 퇴근길에 리윤덕이 진수현에게 각근히 말했다.

《이제 젊은 사람들 데리구 일하다가 정 힘에 부치면 제기하게. 소적인 지원을 주겠으니…》


유연체계실의 리정철은 뼈대가 굵었지만 얼굴이 창백하고 여위여보이는 청년이였다. 입은 무거웠다.

《못하겠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진수현실장방에 와서까지 버티였다.

진수현은 근기있게 설복하였다.

《정철동무는 아직 자기를 잘 모르고있소. 동무는 언제나 다른 동무들의 앞장에 섰댔지. 정세가 긴장되자 대학생들 가운데서도 남먼저 총을 잡았댔구.…》

《지금은 뒤떨어졌습니다.》

《동무에겐 강의한 군인정신이 있지 않소. 다시 대학에 돌아와서도 뒤떨어진 학과를 보충하면서 다른 대학생들을 점차 따라잡고 나중엔 앞섰단 말이요. 신입연구사들중에서도 정철동무의 발전속도가 제일 빨랐지.》

《거야 초기속도가 아닙니까.》

《초기속도와 각도에 따라 탄도곡선이 규정되는거요.》

《…》

리정철은 더 말을 못했다.

그는 이전처럼 진수현실장의 지도를 받고싶었다.

그러나 자기가 그의 곁에 가게 되면 그를 돕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부담으로 될것 같아 사양하는것이였다.

진수현은 정철에게 자신심을 가지고 폭넓은 문헌조사를 하면서 최량방안을 세워 제기하면 된다고 설복하였다.

정철은 그의 설명을 한참 들으니 여기 형편이 짐작되였다.

이번에 진흥기계공장에 도입하게 되는 유연생산체계는 중앙조종콤퓨터의 지령을 받으며 매개 수자조종공작기계들과 로보트들, 승강대차, 운반대차, 자동창고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가동하면서 소재의 공급으로부터 운반, 가공, 검사, 보관공정들을 자동화할것으로 예견하고있었다.

여기서 유연체계전문가들은 중앙조종콤퓨터에 넣는 웃준위프로그람을 개발하고 조종장치전문가들은 매개 공작기계, 로보트, 대차들에 붙어있는 수자조종장치에 들어가는 아래준위프로그람을 개발하게 되였다.

유연체계실 출신들인 진수현실장과 리정철은 웃준위프로그람을 맡고 아래준위프로그람은 역시 진수현실장의 지도를 받으며 최일네가 맡게 되였는데 그들은 먼저 하던 수자조종장치 《조종7호》개발부터 다그치고있었다.

리정철이 와보니 최일은 과제부책임자답게 이신작칙을 하면서 송춘도와 지학준에게 요구성을 높이고있었다.

《송동무, 오늘 실적이 이게 다요?》

《프로그람짜기야 창조적인 일인데 그 결과가 어떻게 벽돌 쌓듯 시간에 정비례하겠나. 오늘은 생각을 주로 했소.》 송춘도의 늘어진 대답이였다.

《그게 무슨 생각인지는 알만 하오. 주의하라구. 이대로 나가다간 락오자가 되고말아.》

《이제 봉창할 때가 있지.》

최일은 학준에게도 엄하게 굴었다.

《또 게임이군?》

《지금 휴식시간이예요.》

《한가하구만.》

그럴 때마다 학준은 뿌루퉁해서 툴툴거렸는데 정철의 눈에는 그가 제 나이보다 너덧살은 더 어려보였다. 어찌보면 철이 없어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귀여워보이기도 하고…

진수현실장도 그러는 학준이를 보았지만 별로 탓하지 않았다. 학준은 기판과 같은 장치기술면에서는 미숙해도 일단 프로그람작업단계에 들어서자 새 세대의 민감성과 재치로 과제를 맵시있게 처리하군 하였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 지형원교수가 퇴근시간후에 집에서 실장방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 퇴근을 안했구만?》

《예, 일이 좀 밀려서…》 진수현이 대답하였다.

《우리 학준인 어째서 제시간에 퇴근하군 하나? 한창 전투를 벌린다면서…》

《하루 과제를 먼저 끝냈으니 퇴근하는거지요.》

《음, 그러니 그 애 말이 사실이였군.…》

《속도가 빠릅니다. 감탄할 정도입니다.》

《학준이한테 과제를 더 많이 주구 요구성을 높여주게. 그저 어자어자하다간 저 애를 망치기 쉽네.》

《선생님, 지나친 걱정인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네. 내 좀 생각되는바가 있어 하는 소릴세.》

《…》

《남웅인 아직 동원중인가?》

《그렇습니다.》

《자네도 남웅일 방임할셈인가? 그는 분명 수재였네. 둬달전엔가 내가 그를 만나서 요즘 뭘하는가고 물으니 자기는 로바스트, H∞문제의 K방식 풀이법을 좀 다쳐보았다는게 아니겠나. 내가 그건 학계를 놀래울만 한 큰 문제인데 어느 정도까지 추진되였는가고 다그쳐물으니 그는 그저 그러다가 말았다고 맥빠진 소리를 하더군. 기분이 울적해서 말일세. 그를 중시해야 하네. 그런 수재를 계발시킬 대신에 딴데 동원을 보내다니…》

《선생님, 제 불찰인것 같습니다. 그는 인차 돌아옵니다.》

송수화기를 놓은 후에도 진수현은 옛 스승을 생각하였다. 예나제나 한모습으로 제자들을 념려하고 돌봐주는 지형원교수였다.

강직하고 엄격한 교육자였지만 또한 그만큼 뜨거운 애정을 지닌 인간이기도 하였다.

…리과대학 첫시기 진수현은 리윤덕과 같이 학급에서 앞선축에 들었었다.

예과를 거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진급했을 때 그의 머리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동기는 기억하고있지만 원인은 알수 없었다.

그는 농촌지원을 나가서 모를 뜨다가 어떤 특이한 조종체계를 선형상미분방정식으로 서술할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모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호주머니를 뒤졌다.

자기한테도 주위의 동무들에게도 쓸것이 없었다.

그는 첨벙거리며 모판에서 나와 나무꼬챙이를 주어가지고 죽신죽신한 땅바닥에 방정식을 써나가며 생각에 골몰하였다.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종이우에서 전개해보자 하고 멀지 않은 숙소인 작업반실로 신도 신지 못하고 뛰여갔다. 배낭에서 학습장과 원주필을 꺼내들고 방금 뇌리에 떠올랐던 방정식을 재생하자니 잘되지 않았다. 학습장에 씌여진 식은 아까의것과 좀 다른것 같았다.

그는 다시금 랭상모판으로 달려갔다. 거기 땅바닥에 써놓았던 선형상미분방정식이 보고싶었다. 가본즉 벼짚나래를 끌고간 자리와 어지럽게 찍힌 맨발자국뿐 수식은 알아볼수가 없었다.

수현은 미칠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방금전에 떠올랐던 식이 명료하게 상기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머리를 두드려 깨고싶었다.

분명 그 조종체계를 완벽하게 서술할수 있는 식이 떠올랐던것처럼 돌이켜졌으나 300여년전 수학자 페르마가 어떤 책 여백에 써놓았던 방정식처럼 정말 그것이 가능한것이였는지, 일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허황한 상념이였는지 딱히 판단할수가 없었다.

그는 며칠밤을 새며 그 생각에만 옴했다. 자기의 기억력과 착상을 믿을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점점 자신심도 없어졌다. 한해,두해 지나는 사이에 실력도 떨어졌다.

어떤 교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학습내용이 심화되고 높은 수준의 과제들이 중첩됨에 따라 자연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나오기마련이라고 여기였다.

진수현 본인도 자신의 지적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괴로와하였다. 흔히 나이 20대후반이나 30대에 찾아온다는 기억력의 감퇴가 그에게는 너무도 이르게 왔다. 강의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오래 남아있지도 않았으며 숯내를 맡은것처럼 머리속이 몽롱하였다. 더구나 고통스러운것은 밤마다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그것이였다.

그는 육신이 피곤하면 잠이 올가 하여 대학뒤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앞벌에 달려나가 반나절씩 농장원들과 더불어 벼를 베여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허사였다.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져온 약들도, 지형원교수의 부인이 북부지방의 어느 소목장에서 얻어온 우황도 소용이 없었다. 진수현은 학급에서 마감자리로 밀려났다.

2년째 고민하던 진수현은 학업을 포기하기로 작정하고 강좌장이였던 지형원교수를 찾아갔다.

지형원교수는 무섭게 성을 내면서 중퇴란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가고 그를 꾸짖었다.

그후 학부와 대학 당위원회에서는 진수현학생의 문제를 토의하였다. 그의 앞날을 기대할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론의가 오래동안 벌어졌다. 결국 진수현학생을 1년간 휴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지형원교수는 그를 모란봉구역에 있는 집으로 보내면서 락심하지 말라고, 머리가 둔해진게 아니라 입학초기부터 너무 무리하게 학습강도를 높인 까닭에 신경장애가 온것이니 이제부터 1년간은 일체 학업과 관련된 생각을 하지 말며 주로 운동을 하라고 권고하였다.

가을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더니 어느덧 여름이 되였다. 진수현은 낚시질에 재미를 붙였다.

몽유병환자처럼 모란봉기슭을 헤매기도 하고 양지쪽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우울한 상념에 빠져있던 수현은 벌써 몇달째 《제비》자전거를 타고 순화강과 대동강으로 낚시질을 나가군 하였다. 해보니 낚시질은 신선놀음이 아니라 어지간히 품이 들고 피곤하기도 한 중로동이였다.

이젠 미립이 튼 그는 대낚시로 강기슭의 붕어, 납주레기따위나 건지기는 성이 차지 않았다. 강복판에 줄낚시를 던져 잉어, 기념어들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낚시터에서는 고기잡이에 정신이 팔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여라문틀이나 되는 낚시도구를 정비하고 고기들이 좋아하는 떡미끼를 만드느라고 절구질을 하면서 분주히 돌아가는 사이에 머리도 점차 맑아지고 깊은 잠에 들수 있게 되였다. 한번 들은 노래는 3절까지 뜬금으로 외울수 있었고 전화번호들도 따로 적어놓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젠 회복된것이였다.

그러나 대학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갔다. 이제 다시 강의를 받는다 해도 지난날 머리를 앓느라고 2년간을 그저 흘러보냈고 휴학1년까지 하여 도합 3년을 뒤떨어졌는데 어떻게 윤덕이네를 따라간단 말인가?!

이젠 다른 직업을 고르는것이 나을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학교울타리안에서만 살다가 1년 가까이 바깥바람을 쏘이면서 두루 사위를 둘러보니 세상에는 과학자 말고도 여러가지 그럴듯 한 직업들이 있었다.

휴학기간도 거의 끝나가는 삼복철 어느날이였다.

진수현은 헌 밀짚모자에 스프링바람으로 순화강의 자기 《어장》에서 재미를 보고있었다. 낚시줄에 매단 방울이 처음 울릴 때부터 조짐이 달랐다. 《떰벵이》낚시에 물린 네댓kg은 잘될 잉어와 줄다리기를 하는판이였다. 분명 잉어였다. 낚시에 물리자 메기나 붕어처럼 강바닥에 배기지 않고 이놈은 줄곧 떠오르며 요동을 쳤다. 매우 령리하고 기운이 센 놈이였다.

아닐세라! 마침내 물면을 차고 허공에 뛰여오르며 무지개빛 물방울들을 사방에 휘뿌리는것은 순화강에서는 보기드문 뻘건 금잉어였다. 순간 켕겨진 낚시줄에서 핑―핑―하고 활시위소리가 났다.

6호낚시줄이 용케 끊어지지 않고 견디여냈다. 수현은 슬슬 낚시줄을 늦구어주다가 잉어가 돌아서려 하면 지체없이 당기군 하였다. 그때마다 푸들푸들 뛰는 잉어의 맥이 손과 팔죽지를 거쳐 가슴에 마쳐왔다. 심장이 쾌감으로 쿵쿵 뛰였다. 낚시질은 이 맛에 하는것이다! 세번째로 물우에 뛰여오르며 용을 쓰던 금잉어는 이젠 맥이 빠졌는지 물속에서 갈지자를 그리며 차츰차츰 끌려오는것이였다.

진수현은 낚시줄을 우쩍우쩍 당겼다. 이제야 제깐 놈이 견디여내나!… 그는 발돋움을 하고 머리우로 낚시줄을 쳐들며 금잉어에게 첫번째로 공기를 먹이였다. 그러나 아직 마음을 늦출수는 없었다. 진수현은 큰 놈이 걸린 지금은 곁에서 누가 조력을 해주었으면싶었다.

두번째로 공기를 먹이면서 푸른 물면에 쩍 벌린 빨간 잉어주둥이가 솟아오를 때 마침 귀에 익은 목소리가 환성을 올리며 다가왔다.

얼핏 돌아보니 지형원교수였다.

《선생님! 오쿠 좀 갖다주십시오!》 수현은 다급히 웨쳤다.

《오쿠라니?》 교수가 물었다.

《오쿠, 오쿠― 저 고기 건지는 그물…》

《오오, 이 포충망 같은거?》

《네, 그겁니다!…》

진수현은 돌아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강변 모래밭에 어지러이 발자국을 찍으며 이리저리 뛰여다녔다. 잉어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용을 쓰기 시작하였다.

《자, 받으라구.》

교수가 오쿠를 쑥 내밀었다.

수현은 미처 받을 겨를이 없었다.

《잠간만…》

《가만, 내가 건져야 할것 같군.》

《선생님, 할만 합니까?》

진수현은 다행이라싶어 물어보았다.

《해야지. 내 이제 곧…》

모든 일에서 적극적인 지형원교수가 오쿠를 두손으로 꼬나잡고 무릎까지 치는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가 잉어를 마중하였다.

진수현이 긴장해서 주의를 주었다.

《좀 더,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뜨라고 할 때… 주의하십시오! 자! 자!…》

순간 사방으로 튕겨나는 물보라와 푸들쩍 뒤채기는 금잉어와 허공에 쳐들린 빈 오쿠가 고속촬영화면처럼 이상하게 보였다. 금잉어는 뻘건 등심으로 얕은물을 가르며 꼬리를 젓더니 깊은 물속으로 유유히 들어가버렸다.

진수현은 축 늘어진 낚시줄을 놓고 밀짚모자를 벗어던지며 맥없이 모래불에 주저앉았다.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휴― 다 잡았던걸 놓쳤군.…》

《내가 덤비지만 않았어두… 허, 꽤 큰 놈이였던것 같은데… 이젠 어떡한다?!…》

그처럼 엄하던 스승이 지금은 빈 오쿠를 든채 송구한 표정이 되여 제자의 눈치를 살피고있었다.

이 순간 진수현은 자기를 돌이켜보고 흠칫 놀랐다. 진정 부끄러웠다. 이젠 완전한 낚시군이 되여 스승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나중에는 푸념까지 하는 수준으로 굴러떨어진것이였다. 대학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던 나머지 제자의 초보적인 도리마저 잃어버린것이였다.

아, 내 정신이 나아진게 아니라 더 여차해진 모양이구나!…

진수현은 한동안 절망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그는 물가의 버드나무밑에 나란히 앉은 스승에게 자기의 동요와 점점 공허해지던 삶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를 심심히 뉘우쳤다.

그날 교수는 전쟁때 자기가 배우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이전에 공부하기가 싫었던적이 있었지. 난 숙천태생이요. 열두살나던 1950년도 전략적 일시적후퇴시기에 미군놈들과 〈치안대〉놈들한테 온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나는 두살짜리 조카애를 업고 고향을 떠나 추위에 떨면서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평안북도경계를 넘어섰소.

인민군대가 인차 재진격해나오지 않았더라면 나와 조카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을거요. 다시 우리 세상이 오자 나는 정주군 동창리(이전에는 그렇게 불렀소.)에 눌러앉게 되였소. 조카를 읍에 생긴 애육원으로 보내고 난 리인민위원장네 집에 얹혀살면서 이웃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녔소. 전시라 교원력량도 부족했구 나로 말하면 후퇴길에 경난을 겪느라고 한동안 배우지 못했던 까닭에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소. 짬만 있으면 탄알깍지들을 주어다가 줄칼로 자르고 연을 녹여 붓고해서 화약총을 만드는 역사로 시간을 보냈소. 이제 한살만 더 먹으면 나이를 속이고라도 인민군대에 입대해서 전선으로 나갈 생각뿐이였소. 공부하기 싫어한다고 선생님들과 리인민위원장한테 꾸지람도 자주 들었지만 나는 그저 꿈만 했소.

그런데 전선에서 싸우던 대학생출신 군인들이 제대되여 공부하려고 후방으로 들어오는게 아니겠소. 전쟁이 한창인데도 말이요. 이웃 월현리와 주변부락들에 소개된 김책공업대학 강의실들에 숱한 남녀제대군인들이 찾아왔소. 우리 동창리에도 모표와 견장자리가 유표한 군복에 훈장과 메달을 단 금속공학부 학생들이 모여들어 강의실들을 꾸리고 기숙사와 식당칸을 증축하더니 강의를 받기 시작하였소.

그들은 강의와 자습, 토론으로 낮에 밤을 이어갔소.

난 배우는것이 저토록 중요한 일이였는가 하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소.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생겨났소.

1952년 초여름에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김책공업대학 학생들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가 보고싶으시여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동창리로 몸소 찾아오시였소.

그이께서는 마을어구에서 군복차림을 한 대학생을 만나시고 여기 오니 학생들을 만나볼수 있구만라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오. 장군님께서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승리한 조국의 복구건설과 빛나는 래일을 보시였던것이요.

장군님의 뜻깊은 이 말씀은 어린 내 가슴도 크게 울려주었소.

물론 나는 그때 장군님을 만나뵙지는 못했소.

이웃동네의 고중교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이 소식을 듣게 되였고 뒤미처 내 또래 애들과 같이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강의실들과 기숙사를 돌아보았소.

강의실 벽에는 〈학습도 전투다!〉라는 구호가 나붙어있었소.

장군님께서는 교직원, 학생들과의 협의회를 여시고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다그쳐야 하며 여기서 중요한것은 더 많은 민족기술간부를 양성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오.

나는 전선에서 돌아온 이곳 대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전투임무가 맡겨져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소.

그때부터 나도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기 시작하였소. 미진했던 학과를 보충하고 진도를 따라잡았고 앞질러 예습을 하였소. 정 모를것이 있으면 대학생들과 교수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도 하였소.

그들은 나를 무척 사랑해주었소.

그후 전선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대학에 수백점의 과학실험기구들과 기술도서들을 보내주시고 학생들의 실습보장대책도 세워주시였소. 지어 필기도구와 등화용석유까지 보내주시였는데 나도 저녁마다 대학생기숙사에 찾아가 그 등불밑에서 공부하였소.

장군님께서는 적기들의 폭격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피현군으로 대학을 소개시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소.

대학이 옮겨갈 때 나도 따라가게 되였소. 난 벌써 대학 1학년과정안에 따라 공부하고있었던거요.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 난 열여섯살잡이 고중학생이였지만 몇몇 대학생들과 함께 다른 나라에 류학을 떠나게 되였소.…》

진수현은 리과대학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형원교수의 개별지도를 받으며 앞선 동무들을 따라잡기 시작하였다. 3년간의 공백은 너무도 큰것이였지만 그는 교수의 예견대로 뛰여난 학습능력을 보여주었다. 자기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윤덕이와 같은 우수한 축에 속하여 대학문을 나서게 되였다.

지형원교수는 그의 실력에 대해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대학때 그가 앓는통에 선형체계리론의 수학적기초를 충분히 쌓지 못한것이 념려된다면서 졸업후에 짬짬이 풀어보라고 숱한 수학문제를 내주었다. 그리고 수현과 한연구소에 배치되여 합숙생활도 함께 하는 윤덕에게 곁에서 도우면서 같이 풀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진수현은 그 과제들을 꾸준히 수행해나갔다.

한해두해 세월이 흘렀다.

리윤덕은 이따금 그가 푸는 문제들에 조언을 주며 관심을 보이더니 어느덧 지쳐버렸다. 윤덕은 그후 먼저 장가를 들고 합숙에서 나갔다.

어느날 리윤덕이 갑자기 합숙으로 찾아와 수현에게 문제풀이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채근을 했다.

《…내가 그만 실수를 한것 같애. 오늘 지형원선생님을 오래간만에 만나지 않았겠나. 자네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시길래 이젠 수현동무가 과제를 다 한것 같다고 안심을 시켰지. 그랬더니 선생님이 기뻐하면서 조만간에 자넬 만나보시겠다는거야. 그래 어디까지 풀었나? 이거 내가 거짓말한걸로 되면 야단인데…》

대학때 내노라던 리윤덕이도 지형원교수를 무척 어렵게 대하는터였다.

진수현이 오히려 그를 안심시켰다. 자기는 과제를 기본적으로 수행했노라고…

며칠이 지난 일요일 오후였다.

진수현이 합숙 세면장에서 시원히 머리를 감고 호실로 돌아오는데 안에서 윤덕의 말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고도근시안경을 벗고 나갔던 까닭에 눈앞이 뿌옇게 보여서 리윤덕이 혼자 찾아온줄로만 알았다.

그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문대며 호실로 들어섰다.

《자네 또 왔나? 걱정말라니까.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풀었대두그래…》

《수현동무, 선생님이 오셨소.》 한구석에 앉아있던 윤덕이 조심히 알려주었다.

《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수현은 어림짐작으로 인사부터 하며 뒤미처 책상우에서 안경을 찾아 끼였다.

《기본적으로 풀었다?》

지형원교수는 미심쩍은 눈으로 제자의 안경을 흘끔 쳐다보더니 문제들을 푼것을 보자고 하였다.

수현은 학생시절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노력의 결과물인 수학노트 세권을 스승앞에 내놓았다.

교수는 한동안 그것들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다 풀지 못했구만?》

《…》

《선생님, 그만하면 많이 푼셈입니다.》

리윤덕이 변호해나섰다.

《남은건 몇문제 안됩니다.》

《바로 나머지 얼마 안되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앞의 문제풀이들이 필요했던거요.》

지형원교수는 대번에 면박을 주었다.

진수현은 난감한 생각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 나머지 문제들은 제한적이면서도 특수한 함수들에 의한 조종체계를 서술하는 문제가 아니면 전문수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순수 수학문제들이였다. 이것은 벌써 학적인 기초가 아니라 수학계의 첨단과제들이였다.

오랜 교육자인 지형원교수는 서로 눈을 맞추는 두 제자의 속심을 읽었는지 한결 진지하게 훈계를 하였다.

《나도 동무들이 바쁘게 지낸다는걸 모르지 않소. 현장에 나가 개발을 하면서 론문을 준비하고있다는 얘기도 들었소.

물론 어떤 도입론문은 이런 까다로운 수학문제를 풀어보지 않고서도 써낼수 있을거요. 그러나 눈앞의 자그마한 수확물에 현혹되지 말고 누가 통제하든 안하든 멀리 내다보면서 기초를 다지고 자신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하오.

동무들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이 나올수 있었던것은 뉴톤이 2항정리나 미적분학을 먼저 착안했기때문이요. 그만 못지 않게 인력문제를 생각해본 물리학자들도 있었소.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인력을 엄밀한 법칙으로 정립하지는 못했소. 수학기초가 약했던거요. 때문에 그들은 뉴톤을 의심하고 시기하고 뒤다리를 당기기까지 하였소.

일반상대성원리도 비유클리드기하학과 같은 새로운 수학체계가 선행되였기때문에 나올수 있었소.

내가 자주 세계적인 발견들을 실례로 드는것은 바로 동무들이 그만한 높이에서 사물을 보고 포부를 가지며 목표를 정하기를 바라서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과학기술부문보다도 우리의 CNC기술에 더 큰 관심을 돌리고계시오.

동무들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높이에 오르자면 뜻을 멀리 가지고 자질을 향상해야 하오.》

그후 진수현은 지형원교수의 도움을 받으며 그가 내준 문제들을 끝까지 풀어냈다.

교수는 드디여 이젠 내가 더 배워줄것이 없다고 말했다. 진수현은 이제야 진정 대학을 졸업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일을 두루 더듬어보던 진수현은 자기가 지형원교수처럼 남웅에게 관심을 돌렸던가 하고 자책하게 되였다.

자기가 남웅을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대한것만 같았다.

늘 무슨 딴 꿈을 꾸는것 같던 소심한 남웅에게 그런 놀라운 시도를 할만 한 진취력이 있었던가? K방식풀이라?! 그러다가 그만두고말았단 말이지?…

남웅의 일은 과연 미지수였다.

그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하지 않을가? 더구나 그는 유연체계연구조 명단에 올라있지 않는가.

진수현은 그를 두달 가까이 동원을 내보내놓고도 한번 관심하지 않은 자기를 뉘우쳤다.

이제라도 잘있는가 전화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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