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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제 2 편 청 년 조

11

최일은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예견했던 파형들이 오씰로그라프에 나타나는게 아닌가!… 그는 기판의 여러 검사점들에서 나오는 파형들을 또 한차례 훑어보았다. 틀림없었다. 기판이 성공한것이였다! 지학준이도 희한한듯 자꾸 눈을 슴벅이였다.

《학준이! 지능공학실에 가서 임동무를 데려오라. 아직 퇴근 안했을거야. 임동무가 이걸 봐야 해. 여, 춘도! 정신차리라구. 실장선생님한테 알려야겠는데 그냥 졸고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는 느침을 흘리며 꺼불꺼불 졸고있는 송춘도를 흔들어깨우고 실장방으로 달려갔다.

송춘도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제길… 룡궁구경을 한참 했구만. 배가 깨져서 물속으로 들어가니 붉은 산호, 푸른 산호들사이로 보이는게 분명 룡궁이였어. 수염이 기다란 룡왕이 숱한 중신들을 모아놓구 태풍이니 침몰이니 파형이니 하구 저희끼리 떠들어대더란 말이야. 궁전마당엔 금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구. 이게 천도 비슷한거구나 하고 자꾸 따먹었는데 암만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맛도 모르겠더란 말이야. 혹시 감기올 징조 아니야? 에- 에취! 》 요란하게 재채기를 하던 그는 두눈을 흡떴다. 《가만있자, 저 파형 좀 보라?! 이게 아직 꿈이야?…》

최일은 복도에서 실장과 마주쳤다. 실장은 집에 갔다가 밤참을 가져오는 길이였다.

《제 파형들이 나옵니다!》

진수현은 부리나케 실험실로 뛰여들었다. 그는 제 손으로 기판을 시험해보았다. 뒤미처 나타난 임창만이 파형들을 보고 환성을 올렸다.

이 소식을 듣고 김정태초급당비서와 리윤덕부소장 그리고 청년조의 고문격인 김승길이 모여들었다.

《이번 기판제작은 수자조종장치개발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A―20소자의 규모가 원체 커놔서 여러가지로 애를 먹었습니다.》 리윤덕이 비서앞에서 도맡아 설명을 하였다. 《이 소자는 〈팬티움―훠〉의 CPU와 맞먹는 기능을 가지고있지요. 설계와 제작에 앞서서 그에 맞는 방식부터 규정하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더구나 경험이 어린 청년들로 연구집단을 무었으니 수현실장이 고생을 할수밖에 없었지요.》

진수현이 덧붙였다.

《최일동무가 조장으로서 기판설계로부터 제작, 시험까지 주관하면서 새롭게 해결한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청년조가 첫번째 계단을 쌓았구만!》

당비서가 기뻐하며 최일의 어깨를 툭 쳤다.

최일이 진심으로 말했다.

《창만동무의 몫이 큽니다.》

《춘도동무와 학준동무도 다 제 몫을 했지 뭐.》

임창만이 싱긋 웃으며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진수현이 미소를 지으며 최일을 내세우고싶은듯 말했다.

《최동무, 한번 써보라구.》

기판의 A―20소자내부에 프로그람을 써넣으라는 소리였다.

최일이 신이 나서 건반을 쳐나갔다.

기판을 이모저모 살펴보던 리윤덕부소장이 이번에는 콤퓨터화면을 보더니 다시 기판의 A―20소자에 손끝을 대보다가 《엑! 뜨거워…》하고 손을 털던 끝에 귀불을 만졌다.

진수현이 급히 기판의 전원을 차단하였다. 그리고 검사해보니 A―20소자는 벌써 타버린 뒤였다. 여러 사람이 그 소자를 만져보았다. 아직도 뜨거웠다.

사람들의 낯색이 모두 변했다.

최일의 낯은 아예 꺼멓게 질렸다.

리윤덕은 한바탕 속히운 사람처럼 노기를 띠고 의심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최동무, 아까 파형들이 제대로 나오긴 나왔소? 죄다 확인했는가 말이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소자가 탔소? 이상하지 않소?》

《…》

《서둘러 만세를 부른건 아니요? 역시 최동무답거던. 이 기판이 그렇게 만만해보이던가. 매사에 신중해야지.》

《…》

모욕을 느낀 최일은 리윤덕을 치떠보았지만 아래입술만 피가 나게 깨물었다.

진수현실장은 꿈을 꾸는 사람모양으로 기판만 멍하니 지켜보고있었다.

그래도 대범한 소리를 하는것은 김정태비서였다.

《첫술에 배 부르겠소?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배운다는 소리가 있지 않소.》

《어쨌든 실장동무, 맥을 놓지 말구 더 분발해서 기판의 결함을 찾아보기요.》

리윤덕의 말에 진수현은 비로소 생각에서 깨여나며 딴 소리를 하였다.

《기판엔 이상이 없는것 같은데…》

《허허, 금시 소자를 구워먹구두 셈평이 좋군. 그럼 대체 어디에 결함이 있단 말이요?》

《타버린 저 소자 자체에 결함이 있지 않을가요?》 진수현은 다른 사람들앞이라 리윤덕에게 경어를 썼다.

《무슨 소리요! 그 소자야 물건너온건데.》

《최동무네는 기판의 결함을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보 실장동무, 누가 실패했다구 동무네한테 책임을 따집디까? 그렇게 자꾸 아래사람들을 두둔하지만 말구 진지하게 결함을 찾아보우. 여유를 가지고 자신들을 좀 랭정하게 돌이켜보란 말이요.》

리윤덕의 훈시에 이어 비서가 념려하듯 말했다.

《밤도 깊었는데 오늘은 이만합시다. 부소장동무, 우리가 먼저 자리를 떠야 이 동무들도 퇴근할것 같소.》

두사람은 먼저 장치실에서 나갔다.

진수현은 그제야 생각난듯 초저녁에 가져왔던 빵과 단물을 내놓았다. 청년들이 요기를 하였다.

그다음 진수현은 최일에게 이젠 퇴근하자고 말했다.

최일은 듣지 않았다.

《먼저 들어들 가십시오.》

《또 밤을 새울 잡도리요?》 실장이 근심스레 물었다.

《오늘 밤엔 잠이 올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동무해주지.》 임창만이 말했다.

《나두 남을래요.》

학준이까지 이렇게 나서자 퇴근하려던 송춘도는 시계를 보며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고말았다.

혼자 남아 기판을 검토하려던 진수현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래, 이 젊은이들과 같이 또 밤을 새보자!…

그는 기판을 만지면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두 이 기판에는 결함이 없는것 같소.》

최일은 다시한번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수현실장은 말이 적고 랭철하면서도 어딘가 바위같이 무겁고 완강한데가 있었다.

임창만도 놀라운듯 물었다.

《실장선생님은 정말 그렇게 믿어집니까?》

《그렇소. 결함은 이 A―20소자에 있는것 같소. 최동무, 이 소자를 다른걸로 교체해보는게 어떻소?》

《그럽시다.》

최일은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고데를 달구어 못 쓰게 된 소자를 기판에서 조심히 떼여냈다. 매우 정밀한 작업이였다. 그다음 새 소자를 기판에 때붙이려니 저도 모르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최동무, 내가 좀 해볼가?》 임창만이 나섰다.

《그래두 땜때기야 이 실험공출신이 좀 낫겠지.》

임창만은 SMD고데를 넘겨받아가지고 간격이 0.2mm미만인 소자의 발들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서 고급한 솜씨로 하나하나 기판에 때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진수현이 손수건으로 이따금 닦아주었다.

마침내 새 소자를 기판에 붙였다.

이젠 어떻게 기판을 검사한다? 최일은 오늘만은 실장의 눈치를 보게 되는것이였다.

《최동무, 전원을 넣어야지.》 진수현이 깨우쳐주었다.

최일은 주춤하였다.《실장선생님, 그러다가 비싼 소자를 또 구워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전원을 넣는건 바쁘지 않을것 같습니다. 기판을 검사해서 이상이 없다는게 확인된 다음에…》

《신중한건 좋은데, 전원을 넣어 증명하는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소?》

진수현실장의 결심은 드팀이 없었다.

순간 최일과 그의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최일은 그가 자기네를 믿고있다는것을, 그리고 기판을 깊이 알고 지금껏 뒤에서 떠밀어주었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였다.

최일은 스위치를 돌려 기판에 전원을 넣었다.

숨가쁜 한초한초가 흘러갔다. 이번에 또 A―20소자가 타버리면 기판에 결함이 있다는것이고 소자가 일없으면 기판이 성공했다는 결론을 지을수 있을텐데…

소자가 점차 따스하게 달아올랐다. 온도가 오르다가 《정상체온》에 이르자 그 곡선이 수평을 그리였다. 30분… 1시간… 2시간… 변함이 없었다.

역시 기판은 성공이였다. 아까는 소자가 불량이였던것이다.

최일은 기쁨이 지나쳐 울고싶었다.

진수현실장은 여전히 A―20소자에 손을 대보고있었다. 《〈머리〉가 따뜻하구만. 최동무네가 두달반만에 〈어린애〉를 하나 만들어냈소!》

임창만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하, 그러니 우리들이 산모인셈인데, 이거 무얼로 젖을 먹인다?》

《산유 먹이지요. 프로그람말이야요.》

지학준의 소리에 모두가 와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진정 갓난아기와 같았다. 지금은 그저 울음으로 제 의사를 알리고 젖을 빨줄밖에 모르는 아기라고 할수 있었다.

이 전자뇌수는 이제 프로그람을 넣어주는데 따라 탁아소, 유치원을 거쳐 중학생수준에 오르게 되고 나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계를 조종하게 될것이였다. 말하자면 최일이네는 보모, 교양원, 교원, 대학교원으로 자신들을 준비하면서 초보적인 의사표시밖에 모르는 이 《아기》를 가르쳐야 하였다. 학술용어로도 이런 프로그람작업을 가리켜 《가르친다》고 표현한다.

어머니가 되기는 쉽지만 어머니구실을 하기는 힘들다는 말처럼 기판제작보다 프로그람작업은 몇배나 품이 들고 어려운 작업이였다.

그러나 최일이네는 래일을 내다보며 기뻐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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