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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제 2 편 청 년 조

2

최일은 기판구성도를 그려서 진수현실장과 김승길에게 보이고 조언을 받은 다음 낮에 밤을 이어 콤퓨터앞에서 회로설계를 해나갔다.

그는 리남웅과 송춘도가 맡은 세부회로와 요소정수계산도 눈에 차지 않는지 자주 그들을 제껴놓고 제가 손을 대군 하였다.

그러면 리남웅은 무료하게 앉았다가 하품을 하기 일쑤였다. 병든 닭처럼 졸기도 하였다.

송춘도는 자기가 일껏 주장했던 D―3형장치개발이 이렇다할 론의도 없이 무시되고 청년조가 전혀 파악이 없는 방향으로 내달리는것을 어이없이 지켜보았다.

(성공이나 할걸 가지고 저러는지?…)

송춘도는 최일이 하던 연구사업들이 시작은 장엄했지만 실속없이 룡두사미로 끝나는것을 한두번만 보아오지 않았다.

그는 새 실장이 이번에 최일을 내세워 만들려고 하는 1류급의 CNC장치《조종7호》(최일은 벌써 이름까지 달아놓았다.)라고 하는 물건이 허공에 뜬 구름처럼 아득하게만 보였다.

춘도에게 리해되지 않는것은 수현실장에 대한 리윤덕부소장의 태도였다. 지도일군의 한사람이라는 자각때문인지 혹은 정말 승산이 보여서 그러는지 윤덕은 수현실장의 혁신과제에 큰 관심을 돌리고 가끔 청년조의 작업실에도 들려보군 하였다. 그리고 매 연구실들에서 젊은 사람들을 동원시켜 연구소청사꾸리기를 대대적으로 벌리면서도 조종장치실의 청년조성원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에 송춘도는 리윤덕부소장을 만났다.

리윤덕은 런닝그바람으로 마당에 뻗치고 서서 퍼런 뼁끼를 발랐던 나무창문틀을 뜯어내고 산뜻한 수지창틀로 갈아대는 작업을 지휘하고있었다.

뒤마당쪽에서는 차고를 늘이고있었다.

그 기초구뎅이를 파느라고 젊은 연구사들이 흙투성이가 되여 곡괭이, 삽을 휘두르고있었다.

승용차들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새형의 콤퓨터탁과 회전의자들도 실어온다고 했다. 확실히 윤덕부소장은 손탁이 세고 전개력이 있었다.

그가 팔을 걷고 연구소의 채를 잡으니 청사부터 때벗이를 하였다.

나긴 난 사람이라고 송춘도는 생각하였다.

리윤덕은 실장시절에도 그러했었다.

그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확실히 보일뿐아니라 연구사들과 연구실, 연구소에 직접적인 리득을 가져올수 있는 적절한 과제들을 제기하고 일감을 끌어들였으며 그것들을 믿음직한 경험자들에게 맡겨 어김없이 해결하게 하였다. 실장으로서 여러 연구사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잘 리해해줄줄 알았고 사업에서 신축성도 있었다.

상급일군들은 그를 좋아하였고 아래사람들도 저 최일이처럼 까다로운 축들을 내놓고는 그를 싫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부소장으로 올라갔다.

그가 지금 병약한 소장을 대리하다싶이 하고있으니 소장이 되는것도 시간문제일것이다.

새 실장은 어떤가?!- 춘도는 골살을 찌프리며 생각했다.

물론 그가 보기에도 진수현은 실력도 있고 노력가인것은 사실이였다. 듣자니 진수현이 뒤떨어진 연구실들을 차례로 맡아서 추켜세우며 그 전망문제에 힘을 넣느라고 남다른 고생도 많이 한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맡았던 연구실이 제 궤도에 오르고 큰 실적을 내기 시작할즈음이면 그는 또 다른 연구실로 가서 《기초- 생땅을 파는 일》을 시작하군 하였다. 매번 노력한데 비하면 그 결과는 크게 두드러지지 못했으며 그의 열매를 남들이 차지하는 수가 많았다.

게다가 너무도 고정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가 하면 리윤덕은 구변이 좋고 소탈하며 실적이 높았다.

송춘도는 리윤덕이 실장을 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날 송춘도는 리윤덕과 함께 퇴근하였다.

송춘도가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부소장동지한테 이렇게 묻기는 좀 뭣한데, 우리 혁신과제가 되긴 될것 같습니까?》

《응? 송동무가 요새 지친 모양이구만. 우리 집에 좀 들렸다 가지, 이야기도 나누구…》

리윤덕의 집에 들어간 송춘도는 새삼스레 방안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전보다 집안이 더 달라져보였다.

두터운 주단, 묵중해보이는 가구들, 누런 액틀속의 풍경화, 신형가정용전자제품들… 부엌은 더 번쩍거렸다.

이 기물들중에는 리윤덕이 외국출장길에 사온것들도 보였다.

그의 안해도 살림군이였는데 건재상점 점장이였다.

《이 사람은 또 늦어지누만. 요즘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리윤덕이 부엌에서 군소리를 하며 《봉학맥주》와 마른 안주를 들여왔다. 함께 마셨다.

어제날의 다정한 실장과 연구사의 관계로 돌아간것 같았다. 찬 거품이 맥주잔우로 부그그 끓어올랐다.

《송동무가 아까 뭘 물어봤더라. 그렇지, 수현실장의 혁신과제가 가능한가, 어떤가 하는 질문이였지. 난 될수도 있다고 보고싶은데, 실장의 방향은 옳아! 물론 목표가 너무 높으니까 그 끝은 아직 알수 없지만… 그렇다고 송동무처럼 처음부터 머리를 기웃거리는 태도는 나도 찬성할수 없는걸?》

《하, 그럼 누구한테 터놓구 물어보겠습니까!》

《알아, 안다구. 내가 탓하는건 아니야…》

《부소장동지, 우리 실장이 좀더 현실성있는 과제를 제기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소장동지도 전에 말씀했지만 현재 가능성이 보이는거야 D―3형장치개발이 아닙니까. 실장이 새로 와서 그런지 여기 물정을 너무 모르는것 같습니다.》

《차차 깨도가 되겠지. 그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 사람은 제 결심을 인차 돌리지 못하는 형이야.》

《그럴것 같더군요, 독틈에두 용수가 있다는데 이건…》

《같이 지내보지 않구는 얼마나 외곬인지 다 몰라. 대학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나? 저 사람이 안경은 꼈지만 뽈은 괜찮게 찼어. 좌측날개였지. 한번은 평성사대팀하구 붙었댔는데 만만치 않은 상대였어. 사대엔 체육학부까지 있었거던. 우린 우리대로 중앙대학이라고 지고싶지 않았구. 경기가 치렬해지다가 1 대 1 동점으로 연장전을 하는 판이야. 그땐 〈금꼴제도〉에 따라서 연장시간이 다되지 않아도 어느 한 팀이 먼저 꼴을 넣으면 경기는 그 순간에 끝나게 돼있었어. 우리 선수들이 젖먹은 힘까지 짜내며 달리는데 나도 응원대장으로 북통을 두들기며 따라다녔지. 갑자기 호각소리가 나더니 주심이 우리 벌구역안에 들어와 방어를 하는 수현이 그 친구의 손을 가리키더란 말이야. 핸드(손다치기)! 이런 기절할 일이라구야. 낙자없이 11m벌차기에 걸렸지.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어. 우리 대학 선수들이 주심을 에워싸고 손다치기가 아니라면서 법석 항의를 들이대더군. 내보기에도 손다치기가 아닌것 같았어. 량편으로 갈라진 두 대학 응원단까지 옳다, 아니다 하고 발을 구르며 고함을 지르는 판이야. 우리 리과대학 학생들이 더 분격했지. 주심이 바로 사대체육교원이였거던. 그 주심은 아우성을 치는 관람석과 선수들을 뗑해서 둘러보다가 어쩔수가 없는지 수현이 그 사람한테 공이 동무 손끝에 맞지 않았는가구 물어보더란 말이야. 주심이라는게 참, 기가 막혀서 …》

《그래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긴, 졌지! 수현이 그 사람이 주심의 물음에 예 하구 대답했거던. 곧이곧대로 손다치기라고 자인했단 말이야.…》

《하하하…》

송춘도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리윤덕이도 히죽이 웃었다.

《지금은 웃지만 그땐 나두 미칠것 같았어. 두드리던 북통을 땅에 메쳐서 깨버리고말았지.》 리윤덕이 맥주를 쭉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사람은 고지식한게 좋지. 수현실장이 새로 부임해서 첫판에 크게 소리를 내보자고 하는데 그앞에서 다른 내색 말구 잘 받들어주라구. 앞으로 수현실장도 안착이 되구 부서일도 정상궤도로 돌아갈거네.》

《알겠습니다.》

송춘도는 어쩐지 맥이 풀렸다.

그는 이튿날 제시간에 퇴근하였다. 청년조원들은 남아서 작업을 좀더 하는것으로 되여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이였다. 그는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콤퓨터와 마주앉아 가망이 보이지도 않는 기판의 세부회로를 그리고 요소들의 정수계산을 하며 온종일 최일의 잔소리를 듣다가 밖으로 나오니 속이 활 열리는것 같았다.

송춘도의 《처가》집은 10만산이라고 부르는 낮은 고개를 넘어 평성시내 복판에 있었다.

시내《종합편의》앞을 지나가는데 전자제품수리공들이 유리문밖으로 뛰여나와 그를 끌어들였다. 수리공들은 반가와하며 며칠째 학수고대했노라고, 매일 이맘때면 연구사선생이 틀림없이 지나가더니 요즘은 통 볼수가 없으니 웬일인가고 묻는것이였다.

《그저 그러루한 일이 좀 있었지요.》 송춘도는 건숭 대답했다.

그러나 수리공들이 다투어 물어보는 여러가지 문제들에는 선선히 리론적인 해명을 주었다.

여기서 수리하는 TV나 록화기, 록음기, 랭동기들에는 갖가지 전자장치들이 붙어있었고 그속에는 간단한 프로그람들이 내장되여있었다. 그래서 이전처럼 회로도와 기판을 대조해보면서 테스타로 재보고 저항이나 정류소자 같은것들을 교체하던 재래식기술만 가지고는 수리공노릇도 해먹기 힘들게 되였다.

수리공들은 송춘도연구사가 여기에 들릴 때마다 자기들이 그간 애를 먹던 고장개소나 풀리지 않던 문제를 내놓고 학술적인 방조를 받군 하였다.

춘도는 오늘 가정용전자제품들에 들어있는 간이형수자조종장치에 대한 《소강의》를 한참 해주고나서 집으로 향했다.

아직 초저녁이였다.

아마 지금도 최일이네는 실험실에서 기판설계를 마무리하느라고 여념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니 송춘도는 한편으로 미안한감도 들었다.

그러나 실장이나 최일이 추구하는 방향은 너무도 생소하고 그만큼 막연한것으로 여겨지는 송춘도였다. 자기가 주장하던 D―3형장치개발문제는 원두쟁이 쓴외보듯 하는 최일이네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저 청년조의 일은 언제 끝이 나겠는가?

송춘도는 당장 하늘의 별이라도 딸것처럼 덤비는 최일이나 그를 떠밀어주는 수현실장이 참으로 현실감각과 타산이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는 재능과 판단력에 대해서는 자부하는 젊은이였다. 황해남도 삼천군태생인 그는 소학교 3학년부터 수학소조에 다녔고 해주제1중학교를 거쳐 리과대학을 나왔다. 그후 연구소에 다니면서 중학시절부터 이어지는 기숙사, 합숙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좀 일찍 장가를 갔다. 평소에 언행이 느리고 부드러웠지만 사물을 찔러보고 리해득실을 계산하는 면에서는 기민하였다. 그는 최일이 이번에도 실현불가능한 룡꿈을 꾸고있다고 재빠르게 넘겨짚었다. 송춘도는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 집에 들어섰다.

《오늘은 어떻게 일찍 들어와요? 전투 끝났어요?》귀여운 안해가 열싸게 물었다. 송춘도는 그의 능금볼을 콕 찔러주었다.

《그렇게 쉽사리 끝난다면 좋게?》

《그럼 언제 끝나요?》

《나두 모르겠어―》

그는 침대에 길게 드러누웠다.

《자기두 청년조라면서 모른대? 참, 이번에 책임자 안해요? 윤덕부소장은 젊은 사람들가운데서 거길 첫 손가락에 꼽지 않았어요, 아니예요?》

《몰라. 어떤 경우에나 승산여부를 먼저 가려보는게 중요하다구. 따라서 파악이 없는 일은 책임지는게 아니지.》

《알쏭달쏭한 소리만 해요. 혹시 새 실장의 눈에는 들지 못한게 아니예요?》

《흥, 그럴수도 있지.》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괜찮은 실장이라던데. 전번에 식량 타러 갔다가 은정구역 사람들한테서 들은 소린데 새 실장은 박사에 공훈과학자라면서요. 윤덕부소장보다 더 높지 않아요?》

《됐어, 그렇게 대비하는게 아니야. 둘중에 누가 먼저 부소장으로 올라갔는가 보라구. 우에서두 다 보는 면이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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