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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8

최일이 알아보니 새 실장 진수현은 나이 많은 연구사들부터 한사람씩 만나 담화를 했는데 오후에는 청년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학위가 있다고 해선지 리남웅이부터 실장방으로 불리워갔다.

그다음엔 송춘도, 지학준이 순서였다.

《만나보니 어때, 실장이?》

최일이 묻자 리남웅은 입을 가리고 또 하품을 하였다. 얼굴이 초췌한 남웅은 언제 보나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인상이였다. 무슨 딴 꿈을 꾸는것 같기도 하고…

《실장? 모르겠어. 날 보고 조직자적수완이 어떻고 하면서 무얼 책임지고 해볼 생각이 없는가고 묻는데 과학자가 무슨 시간이 많아서 사람다루는 일까지 하겠나 그거야. 아마 실장은 여러 실로 옮겨다니면서 사람과의 사업은 도통한 모양이지.》

남웅의 심드렁한 대답이였다.

춘도의 평가는 또 달랐다.

《수현실장이 겉으로는 조용해보이는데 듣던바대로 야심은 보통이 아니구만. 세계 최첨단급의 수자조종장치를 꿈꾸는것 같더란 말이야. 한데 실제적인 타산은 부족해. 그 방도라는것도 왕청같은거구. 그래서 첫 대면에 난 철저한 사물분석에 토대한 판단과 결심만이 우리 실에 실리를 가져올수 있다고 암시해주었지. 지금 실정에선 성능지표도 적당히 설정하고 D―3형장치개발방향으로 나가는게 합리적이라고 한참 설명했더니 납득이 안 가는지 고개만 젓더군. 여기 물계에 아직 어두울수도 있지.》

《D―3형? 기껏 생각했다는게 그건가. 그런 식으로 남들의 뒤꽁무니나 따라가다간 아킬레스처럼 언제 가도 거부기를 앞설수가 없어.》 최일은 줴논의 역설에 빗대고 핀잔을 주었다.

《두고보라구. 그게 제일 현실적인 방도라니…》

《현실적이다? 하…》

최일은 커다랗게 웃으며 박사원으로 돌아왔다.

지학준이 그를 데리러 왔다. 새 실장이 부른다는것이였다. 나까지? 하긴 나도 실 성원이니까 한번 얼굴이나 익혀두자는거겠지.

실장방으로 들어가니 진수현은 고도근시안경을 끼고도 사업노트를 눈에 바투 대고 보는것이였다. 눈이 몹시 나쁜 모양이였다.

《합숙생이라고 했던가요?》 첫 질문이였다.

《예, 불편한건 없습니다.》 최일은 이전부터 윤덕실장의 친절한 호실방문 같은건 질색하던터였다.

《박사원에 들어갔다던데 일정계획은 어떻게 세웠소?》

《별다른건 아닙니다. 올해엔 문헌연구를 하고 래년엔 실험결과와 맞추면서 론문초고를 쓰고 후년에는…》

《3년 6개월은 너무 긴것 같지 않소? 1년 특설반으로 단축할수는 없을가?》

《실장선생, 이게 어떻게 얻어낸 시간이라구 떼운단 말입니까!》

《1년도 못돼서 론문초고를 쓴 실례도 있소.》

《그거야 어떤 급의 론문인가에 따라 다르지요.》

《론문주제는?》

《한마디로 대규모프로그람론리소자를 쓰는 기판설계에 대한 연구입니다.》

《소자계렬은?》

《A―18입니다.》

《신통한데? 임창만동무가 쓴 론문과 련관이 있는거구만!》

《예?! 그것과 내게 같단 말입니까?》

최일은 기분이 상했다.

《같다는게 아니라 련관이 있다는거지. 창만동문 자료전송체계에 대한 론문을 썼소. 최동문 혹시 작년에 진흥기계공장에 나갔을 때 론문의 실마리를 잡은건 아니요?》

《그렇습니다.…》

최일은 그 기막힌 사연을 다는 표현할수가 없었다. 새 실장도 작년의 그 내막을 알고있는가?!

역시 뭔가 짐작을 하는것 같기도 하였다.

《음-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최동무의 론문은 안될것 같소.》 매정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 론문은 머지않아 낡은것으로 평가될거요.》

《창만동무의 론문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까, 서로 련관이 없지 않다니 말입니다?》

《임동무는 인차 론문을 발표하게 되오. 그런데 최동문 3년6개월후에야…》

《좋습니다. 나도 최대한 집필을 다그치겠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는게 좋지 않을가?》

《뭐라구요?!》

최일의 희고 기름한 낯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 침착한 사나이에게 어떤 말을 골라 항변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최동무가 생각하던 A―18소자보다 A―20을 쓰는게 좋을것 같소.》

《?》

그는 어리벙벙해졌다. A―20계렬의 소자가 벌써 나왔단 말인가?! 이 실장이 정말 세계적인 수준을 뛰여넘으려는게 아니야?

《이 대규모프로그람론리소자를 축으로 해서 기판을 만든 다음 프로그람적인 설계를 가지고 장치를 제작하자는거요.…》 실장은 최첨단급 CNC장치의 놀라운 지표들을 내리꼽으면서 이런 장치를 만든 경험을 가지고 큰 론문을 쓰는게 어떤가고 최일을 설복하였다.

최일은 생각을 굴렸다. 최첨단급의 수자조종장치이니 전망계획에나 넣자는건가?…

《언제까지 개발하자는겁니까?》 최일이 물어보았다.

《거야 우리가 할탓이지. 한 1년이면 안될가?》

진수현실장은 공정계획까지 이야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1년이 아니라 8개월안에 세계적인 수자조종장치를 만들어낸다는것이였다.

최일은 새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과연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나타난것이였다.

눈앞이 다 어질어질하였다. 수현실장은 한수 더 떴다. 그다음에는 이 조종장치의 조작체계를 도스에서 리눅스형으로 넘기자고 하였다.

최일은 의아해졌다.

《저- 그렇게 해서는 실시간을 담보하기 힘들겁니다.》

《내 생각엔 될것 같은데?》

《리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되나 안되나 시험해봐야지.》

《해보나마나지요. 이거야 초보적인 상식이 아닙니까!》

《정말 안될가?》

《…》

최일은 기가 막혔다. 다시 생각해보니 신임실장이 수자조종물계에는 퍼그나 어두울뿐아니라 론리적인 판단같은건 무시하고 되나 안되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땅파기로 내미는 사람같았다. 글쎄 우물자리를 찾는거라면 여기저기 짐작으로 뚜져도 보겠지만 이거야 고도기술분야가 아닌가.

아마 신임실장은 부임을 앞두고 수자조종장치의 발전전망에 대한 일반 소개서를 읽고 그것을 지금 제 말로 옮긴 모양이였다.

무식한 사람이 무모해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실장선생, 다른데 가서 리눅스와 실시간성에 대한 화제는 꺼내지 않는게 좋을겁니다. 남들이 웃을수 있습니다.》

《… 그렇소? 리해 안되는데?…》

《그렇다면 시간은 좀 가지만 얘기를 합시다.…》

최일은 새 실장을 깨우치느라고 한참 수자조종장치 강의를 하였다.

새 실장은 그 무슨 귀중한것을 알게 된 사람모양으로 몇줄씩 사업노트에 꼬박꼬박 적어넣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사뭇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최일의 리론을 반박하기도 하였다. 담화는 어느덧 론쟁으로 번져졌다. 두 사람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렸다.

최일은 목소리를 높여 자기를 주장하다가도 몇번이나 그의 측면공격을 받아 아슬아슬한 국면에 처하군 하였다. 말이 오갈수록 최일은 그를 점점 다시 보게 되는것이였다. 신임실장은 여전히 침착하고 친절하였다. 그에게서는 무시할수 없는 실력과 더불어 자신을 억제할줄 아는 사람의 강한 의지력이 엿보이는것이였다.

론쟁은 일단 끝났다. 후에 실험해보아야 승부를 가를수 있었다.

그러나 론쟁의 여운은 컸다.

최일은 자기의 이전 론문을 그대로 추구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버리고 세계 최첨단으로 비약하는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였다. 까짓거 한번 모험해본다?

지도교원 변대식박사는 그를 은근히 부추겼다.

《모험이라구? 아니 그건 전투나 같소. 기왕 몸을 내대고 돌격할바에야 최첨단고지를 점령해야지.》

젊어서 전쟁을 겪은 로병의 말이였다.

최일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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