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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3

진수현은 그길로 도이췰란드에서부터 가져오는 작은 꾸레미를 들고 리과대학 부학장인 지형원교수댁으로 찾아갔다.

새살림동은 솔밭가운데 있어서 청신한 기운이 돌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수선하였다.

수행장치실, 로보트실, 유연체계실 이번엔 또 조종장치실?… 네번째 새 출발은 자신이 없었다. 도이췰란드 의사들도 경고했었다. 《아흐퉁 (주의)!》 눈을 더 피로하게 하면 완전 실명이 올수 있다는것이였다. 암흑이 다가온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도 과학의 한 분야였다.

이제 생소한 조종장치실로 옮겨가서 전망문제에 힘을 넣느라면 그 연구실의 현행실적은 이전보다 도리여 떨어질수도 있었다. 이전부터 조종장치실을 걱정하면서 최첨단급 CNC장치개발도 모색해온터이지만 그건 아직 이웃 사람의 생각에 불과한것이였다. 생각처럼 진척되겠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씨앗은 손에 쥐였다 해도 그 결실까지 지금 내다볼수는 없었다.

여기 유연체계실에도 할일은 많았다. 연구실의 력량이 자라고 앞이 내다보이게 되니 일감은 더 많아졌다. 말그대로 이제 한창 나래를 펴게 되였다. 마침 크고작은 기계공장들에서도 유연생산체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그간 정을 붙인 이 사람들과 또 어떻게 헤여진단 말인가. 리정철이랑은 아직 능력이 약한데… 아니, 안될 일이다.…

그가 교수네 집에 들어서자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부인이 맞아들이며 옛날 기숙사생이 왔다고 반가와하였다.

수현은 리과대학시절에 이 집에 와서 생일을 쇠던 일들이 떠올라 어느덧 눈굽이 달아올랐다.

교수는 지금 서재에서 누구한테 큰소리를 치고있었다.

《손님이 왔습니까?》 진수현이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애꿎은 제 손자보구 저런다네. 늘 욕설인걸… 일없네, 어서 들어가자구.》

《여기서 잠간 기다리겠습니다.》

《원, 령감 성미두…》

부인이 먼저 서재로 들어가고 수현은 전실 의자에 앉았다. 교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았다.

《집에 들어와서도 콤퓨터작업을 하는줄 알았는데 게임을 놀고있어? 대체 네가 지각이 있느냐 말이다.》

《잠간 머리쉼을 했어요.》 작년에 연구소에 들어온 애젊은 학준이가 볼부은 소리를 한다.

(선생님의 그 요구성은 여전하군.…) 진수현은 혼자 싱긋 웃었다.

지학준은 교수가 총각시절부터 맡아 키운 조카의 아들이였다.

전쟁시기에 지형원의 집안에서 살아남은건 그와 어린 조카뿐이였다. 정전직후 열여섯살이던 그는 조카를 애육원에 맡기고 쏘련(당시)류학을 갔다. 5년만에 귀국하여 대학 강의를 하면서 조카를 데려다가 교직원합숙에서 함께 살았다.

그후 지형원은 조카와 그리고 자기 아들딸 4남매가 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중에서 과학자가 나오지 못한것을 두고두고 한탄했었다. 그러던 교수는 작년에 중구역에서 사는 조카의 아들 학준이가 평양제1중학교를 거쳐 평양기계대학을 최우등으로 마치자 천하를 얻은듯이 기뻐하면서 그의 손목을 끌다싶이 하여 현대화연구소의 리윤덕실장네 조종장치연구실에 입직시키고 이 집에서 다니게 하였다. 이 넓은 집도 장차 학준에게 물려준다고 하였다.

학준은 껍질을 갓 벗긴 파 밑둥처럼 말쑥하고 호리호리한 청년이였다. 진수현이 보기에도 학준은 영민하고 참하게 생겼다.

교수는 자주 손자를 저렇게 꾸짖는 모양이였다.

《…네가 아직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데 바로 문제가 있는거야. 너는 지능나이는 이전 세대보다 앞선것 같지만 철은 확실히 덜 들었단 말이다.…》

부인이 끼여들었는지 서재가 금시 조용해지더니 문이 열리며 학준이가 뿌루퉁해서 나왔다.

뒤미처 교수가 어색한 낯으로 내다보더니 진수현을 서재로 불러들였다.

교수는 나이 70고개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머리칼이 검고 성미가 대쪽같았다.

진수현은 그에게 도이췰란드에 갔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교수는 눈을 내리감고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당연한 귀결이지. 자네가 왕년에 품을 들여 기초를 다진게 이번에도 은을 낸거네.》

진수현이 대학을 다닐 때에도 교수는 리과계통을 전문하는 학생들일수록 리론적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고 가르치군 했었다.

교수는 진수현이 CD자료들과 교수사업에 필요한 기술도서 몇권을 꺼내드리자 책장을 들쳐보기도 하고 콤퓨터로 펼쳐보기도 하였다.

《역시 오늘의 조종기술은 통합화, 지능화, 무인화 추세야. 전망적으로는 그렇지, 자률분산조종체계에로 지향할거네. 점점 가속도야. 우리가 할 일이 많네.…》

스승과 제자가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학술론의를 하는데 부인이 거듭 찾았다. 아래방에 저녁상을 차려놨다는것이였다.

진수현은 외국출장길에 술 한병 들고 오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언제나 이 모양이다.…

《이 사람은 오늘 여기 오래 앉아있을새가 없소.》 교수가 뒤늦게 부인에게 하는 소리였다.

《집에서랑 눈이 까매서 기다리겠는데 내가 주책없이 자꾸 말을 시켰구만.》

교수내외는 수현과 함께 현관까지 나왔다.

《학준인 제 방에 있소?》 교수가 부인에게 물었다.

《밖에 나갔어요. 뾰로통해서…》

《데려오우, 데려와.》

그 소리에 부인은 대꾸없이 땅거미가 깃든 마당으로 나가며 사위를 살펴보았다.

교수는 심란한 어조로 수현에게 말했다.

《저 학준이녀석때문에 정말 야단났네. 한마디루 철이 없어. 조국이 큰걸음을 내딛고있는데 아직두 그 품에서 잠투정을 하면서 안온한 꿈만 꾼단 말이네. 일을 적당히 하면서 고생하기를 두려워하거던. 내가 윤덕이 그 사람한테 안타까운 소리를 했더니 도리여 지나친 우려라면서 학준이에 대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더군. 그래두 그 사람을 믿구 학준일 맡겼댔는데. 헛참, 학준이는 아직 어리다고 치구, 조종장치실의 젊은 사람들에게 정말 문제가 있네. 남웅이는 우리 대학에서 학위론문을 통과시켰는데 조종장치실에 들어가선 7~8년이 되도록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있네. 다른 청년들도 같구같아. 쏘프트웨어시대에 젊은 연구사들이 서른살이 되도록 나먹은 연구사들의 심부름군노릇을 하고있단 말일세. 그래두 윤덕이 그 사람은 실적이 높다고 떠받들리고있다면서? 래일은 누굴 데리구 조종장치를 개발하겠는가 말이네. 그 사람이 부소장으로 되였다는데 정신차리라구 단단히 일러주게. 더 늦기 전에 곁에서 도와주라구. 자네들이야 동창생이 아닌가.…》

진수현은 스승과 작별하였다. 집으로 가는 길이 별로 멀어보였다.

그는 조종장치실을 맡는 문제를 두고 생각에 잠겨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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