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 회


4


이른아침 인혁은 돌격대대장인 1작업반장 정장선을 데리고 공사구역쪽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공사구역을 다시금 밟아보고 벼가을을 한껏 다그치도록 대책을 세우기 위해 날이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선것이였다.

바투 깎은 총이 센 머리에 얼굴이 길둥그렇고 체격도 끌끌한 정장선은 걸음이 날랜 인혁을 씨엉씨엉 따라걸었다.

진펄이 가까와지자 건조한 절기인데도 땅이 질척질척하고 길섶은 온통 물쑥, 쉽싸리 등이 엉킨 푸르죽죽하고 누런 풀덤불이여서 그들의 아래도리는 감간사이에 이슬에 휘적시여졌다.

아침해가 옥련봉마루에서 장바 한길이쯤 올리떠서야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마판진수렁구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들이 공사구역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마판진수렁의 먼 저쪽기슭에 느리게 움직이는 누군가의 형체가 인차 눈에 띄였다. 자세히 보니 그는 누런 논벌을 우측에 끼고 수렁터의 둘레를 느릿느릿 돌고있었다.

《비서동지, 저 사람이 누굴가요? 우리 농장사람은 아닌것 같은데요.》

《글쎄…》

인혁은 먼 눈에도 키꼴이 후리후리하고 그 걷는 모양이 퍽 눈에 익은것 같으면서도 그게 누구였던지 선뜻 뇌리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정장선이 확신성있게 말하였다.

《아, 군당책임비서동집니다. 저 보십시오. 풀색작업복에 검정모자를 쓴거랑 활개를 젓지 않는 큰 걸음이랑 책임비서동지가 분명합니다.》

인혁에게도 정장선의 말을 듣고보니 대뜸 류순기책임비서라는것이 알렸다.

《음, 맞소. 반장동문 눈이 아주 밝구만.》

《비서동지, 관리위원장동지 목소리는 십리 가지만 제 눈은 십리를 봅니다.》

《그럴것 같소, 허허허…》

인혁은 정장선이와 헤여져 류순기쪽으로 부리나케 걸음을 다우쳤다.

류순기는 이슬에 젖어 번들거리는 목 긴 장화를 신고 마치 수렁터둘레를 보폭으로 재이듯 성큼성큼 돌아보고있었다.

《책임비서동지,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류순기는 인혁에게 우선우선한 얼굴을 돌리며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인혁동무요? 지나다 좀 들렸소.》

《요즘 상당히 바쁘실텐데 어떻게?…》

그는 류순기가 옥천강발전소건설장에 나가 거의 살다싶이하고있다는걸 잘 알고있었다.

《아무리 바빠두 인혁이(그는 둘일 때에는 주로 이렇게 불렀다.)일이자 내 일인데. 허허… 어쩐지 오늘은 좀 밟아보구싶더군. 어서 걷기요.》

류순기는 주춤거리지 않고 앞장에 서서 묵묵히 진수렁구역을 돌았다.

하긴 지난 기간 여기 뙈기논을 정리할 때도 몇번 나와본 책임비서이다.

《인혁이, 노루등에 좀 올라가보지 않겠소?》

《예.》

류순기는 노루등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인혁동문 시간을 내서 소문난 농장들에 가본다면서?》 하고 너부죽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까지 지었다.

인혁은 언덕길로 책임비서를 따라걸으며 대답대신 시뭇이 웃었다.

《좋은 일이지. 그래, 삼룡리에 가본 소감은 어떻소?》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굉장한 공사를 해제낀 그곳 일군들이 막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루빨리 공사를 벌려야겠다는 조급증도 생기구요.》

《인혁동무의 일욕심은 여전하구만.》

《저야 아직 젊지 않습니까?》

《젊다? 하긴 나보다야 퍽 젊었지.…》

류순기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가지런히 걷고있는 중키의 인혁의 아래우를 유심히 살피며 혼자소리처럼 말을 이었다.

《별스럽거던. 김인혁이 하면 지금의 인혁이 아니라 우리 군당에 처음 소환돼왔을 때의 모습이 앞선단 말이요.》

인혁은 따라웃으며 어줍게 응대하였다.

《아마 제 철없을 때의 어설픈 모양이 인상에 새겨졌던 모양입니다.》

《허허… 그럴지도 몰라. 난 지금두 몸에 꼭 맞는 닫긴형검정양복에 눈빛같은 흰 목달개를 달고 처녀처럼 수줍음 잘 타던 인혁의 말쑥한 모습이 생동히 안겨온단 말이요. 어느덧 거뭇거뭇해진 얼굴에 어깨두 퍽 넓어진 중년일군이라.…》

인혁은 그윽한 회포에 젖은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였다.

그들은 어느덧 노루등마루에 올랐다.

류순기는 마른 풀섶에 펄썩 앉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였다. 그는 자기옆에 바투 앉은 인혁에게 담배를 한가치 내밀었다.

《전 안 피웁니다.》

《지금두 안 피우오?》 하고 류순기는 가치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타불을 켜달았다.

《그건 참 좋은 습성이요. 나두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도 종시 못 끊었단 말이요.》

그는 담배 한모금 깊숙이 빨고는 연기를 후 내뿜으며 벌가운데 모지라진 함지박처럼 곯아빠진 마판진수렁에 이윽히 눈길을 주었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더 험상스럽구만. 저 수득수득한 진수렁판만 통짜로 메꾸면 록새벌이 정말 멋들어지겠소.》

《예, 우스운 비유같지만 미인의 얼굴에 흉한 김같은 저 수렁을 없애지 않고서는 다른걸 아무리 비다듬는대야 금주땅의 면모가 도무지 살아날것 같지 못합니다.》

《허허, 미인얼굴의 흉한 김이라… 아주 그럴듯한 비유요.》 류순기는 인혁의 말을 되뇌였다. 《좌우간 인혁동무가 진짜 담이 큰 결심을 했소. 록새벌모습만 미인으로 변모되는게 아니라 토지를 수십정보나 공짜로 얻게 되니 이 얼마나 큰 리득이요.》

인혁은 머리를 짓숙이고 변명하듯 말하였다.

《저야 뭐… 농장원들의 의사를 따랐을뿐입니다.》

《물론 그랬을테지. 그러나 발기자가 있어야 그 의사들이 한데 묶어질게 아니겠소.》

류순기는 흡족한 표정으로 인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생뚱같은 말을 불쑥 꺼내였다.

《인혁동무, 이제 우리 일어서는김에 제창 이 노루등을 짊어지여다 저 진수렁을 단숨에 메꾸어볼 생각은 없소?》

인혁은 어리뻥하여 그를 쳐다보다가 롱말로 알고 빙그레 웃었다.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

《왜, 내 말이 동화같이 들리오? 허허허, 생각은 그렇게 크게 굴려야 한단 말이요. 물론 우리 둘의 힘으로야 어방도 없지. 하지만 록새벌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그 애착심만 한덩어리가 되면 못해낼게 뭐가 있겠소. 이보다 더 큰 산두 능히 허물지. 그렇잖소?》

인혁은 그제야 책임비서의 말에 깨도가 된듯 《녜, 그렇습니다.》하고 공감하였다.

류순기는 잠시 록새벌을 내려다보다가 자못 심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인혁이, 나두 오늘 정작 공사를 앞두고 돌아보니 솔직히 일이 헐치 않겠소. 게다가 한번 혼을 뽑은 공사여서 결코 만만치 않을거요.》

그는 담배를 몇모금 빨다가 후 내뿜으며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자연의 암초, 사상적암초 다 각오해야 하오. 토지정리를 국가에서 해줄것만 바라지 말고 지방들에서 자체의 힘으로 하기 위한 결심을 가지는것이 중요하오. 그런데 이 공사의 원동력은 무엇이겠소. 토지정리를 하면서 사람들의 사상을 발동하는 사업에 진심을 바치는거요. 사람들의 정신적힘을 발동하면 두려울것두, 못해낼것두 하나 없소.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거던. 당일군 몇몇사람의 힘으로는 어방두 없소. 농장의 모든 일군들이 진심으로 군중의 정신력을 최대한 폭발시키기 위한 사업에 떨쳐나서도록 잘 이끌어야 하겠소.》

《예, 명심하겠습니다.》

인혁은 류순기의 말을 심중히 새겨들었다.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말이였다.

류순기가 돌아간 후 인혁은 1작업반 농장원들과 어울려 마판진수렁 주변논에서 한겻은 좋이 손싸게 벼베기를 하였다.

인혁의 옆에서 벼베기에 여념이 없던 정장선은 낫질을 멈추더니 불쑥 말을 걸었다.

《비서동지, 공사를 돌격식으로 와짝 내밀려면 기술력량부터 잘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혁은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기술력량이라니? 기술력량이야 마련된거구 토지건설기술설계도 추진하고있질 않소.》

《그렇지만 련달아 시공조직설계도 해야겠지요. 또 농장원들에게 신심을 주려면 전경도도 그려붙여야겠지요. 그리고 대장간을 지으려면 강판마름질도 미리 해야겠지요?》

인혁은 그만 어리뻥해졌다.

장선은 공사의 준비공정을 앞질러가며 웅근 목소리로 흥에 겨워 이야기하였다.

《허허, 1반장에게는 군급책임일군과 견줄만 한 틀과 재력이 갖춰져있소.》

장선은 인혁의 롱에는 하등 개의치 않고 자기의 절박한 생각을 마저 터놓았다.

《비서동지, 내 안타까와서 하는 말입니다. 왜 농장일군들은 설계와 제작에서 펄쩍 나는 한정길동무를 외면합니까?》

《한정길?!》

《거 있지 않습니까. 5작업반 기술원을 하다가 농약건으로 무보수로동을 하는…》

인혁은 그제야 깨도가 된듯 《아, 알겠소. 내 미처 그 생각까지는 못했소.》하고 말하였다.

장선은 그런 재목을 념두에 두지 않는데 대한 불만스러운 눈길로 인혁을 쳐다보며 열을 올려 말하였다.

《비서동지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농장에서 지금 요긴하게 쓰는 4마력원동기에 의한 약제분무기며 고주파발생기, 수동프레스, 비알곡먹이종합분쇄기, 이동식만능분쇄기들은 오래전에 국가발명권을 받은건데 그건 모두 그 동무가 창안제작한겁니다.》

인혁은 처음 듣는 말이여서 그만 얼떨해졌다.

《그뿐인줄 압니까. 그의 손이 한번 간 제작품은 전문공장제품만치 정교합니다. 강판 다루는 솜씬 또 어떻구요. 무슨 조화인지 나같은것들은 15㎏짜리 메로 죽을 힘내기를 해도 못 펴는 강판도 그가 직각자로 재며 몇번 조기고 쇠짝지발로 제끼고 하면 엿가락같이 고분고분해지고 마치 다림질한것처럼 반반해진단 말입니다. 그런 보배덩이를 그저 로력자로 파묻어두면 되겠습니까.…》

인혁은 머리가 뗑해졌다. 자기 사업의 허점을 장선은 예리하게 투시한것이였다.

(그런데 관리위원장은 왜 여직껏 한정길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었을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기술력량을 동원하기 위한 협의회때 그의 이름을 얼핏 들은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누군가 한정길을 인입시키자는 말을 피뜩 꺼냈다가 아무 반응도 없는 수환의 눈치를 흘끔 보고는 더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더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은 일이 떠올랐다.

장선은 얼마전에 한정길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였다. 돌격대대장인 장선이 공사준비가 저으기 걱정되여 우정 그를 찾아가 방조를 청했으나 자기는 그 일에 비치지 않겠노라고 딱 자르더라는것이였다.

《〈그러루한 일에 계속 비치다가 과오까지 범한 내가 두번다시 그런 전철을 밟겠나. 로동단련을 하면서까지 주제넘게 농장적인 큰일에 나서고싶지 않네.〉 이러질 않겠습니까. 비서동지, 공사준비를 다그치자면 한정길동무를 꼭 인입시켜야 합니다.》

그날 오후 인혁은 낫을 꽁무니에 찌르고 5작업반에 나갔다.

논틀길에서 만난 5작업반장 정순실은 밑도끝도없이 어리광조로 《리당비서동지, 난 막 안타까와 죽을 지경입니다.》하고 말하는것이였다.

《허허… 5반장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난사는 난사로군.》

순실은 방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글쎄 지난 모내기때두 비서동지가 4작업반을 담당하시더니 우리반을 허양 떨구고 1등 하잖나요. 그래 속상했는데 가을걷이까지 또 담당하시면…》

《아따, 그게 걱정거리라면야 내 5반에 지원포를 꽝꽝 쏴주겠으니 1등자리를 쟁취해보우.》

순실은 그 큰 몸으로 냉큼 뛰염을 하며 인혁의 팔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아니문, 이 비서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것 같소?》

인혁은 부지중 코마루가 찡해졌다.

(그 승벽은 여전하군.)

문득 남들이 정순실을 두고 《울보반장》이라고 하던 말이 떠올라 속으로 웃었다.

20대의 처녀반장때 순실은 자기 반이 앞서지 못하면 포전에 풀썩 주저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짜군 했다고 한다. 누가 옆에서 반원들이 다 보고있다고 조용히 귀띔하면 《보면 뭐래요. 반을 앞세우지 못하는게 무슨 반장이나요.…》하며 그냥 눈물을 짰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나 극성스러웠던지 작업반을 모내기, 김매기, 가을걷이 등 경쟁에서 번번이 첫자리에 추켜올렸다고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나이지긋한 그를 가끔 울보반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인정이 무르고 수더분하여 정겹게 대하며 따르고있었다.…

순실은 당비서의 말을 들으며 한정길이 일하는 포전쪽으로 걸어갔다.

《비서동지, 우리 기술원동무를 그저 로력자로 묻혀두긴 정말 아깝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모판부식토대용으로 우리 지방에 흔한 초무연탄을 쓸수 있게 연구한것두 바로 그 동문데 그만 본의아닌 사고를 저지르고…》

《아, 그렇소?!》

인혁이도 전에 초무연탄연구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사람이 바로 한정길이라는 말에 그는 저으기 놀랐다.

한정길의 작업장에 이르자 순실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비서동지, 저 동뭅니다.》

한정길은 웃몸을 깊숙이 구부리고 걸싸게 벼를 베고있었다. 낫날이 해빛에 눈부시게 번뜩이고 벼이삭들은 그의 뒤덜미를 후려칠듯 휘감겼다풀렸다 하며 와슬렁와슬렁 물결쳤다.

그의 일솜씨에 탄복한 인혁은 순실이더러 가보라고 눈짓하고는 꽁무니에서 낫을 뽑아들고 논판에 들어섰다. 인혁은 저만치 앞선 그를 바싹 따르려고 낫질을 부지런히 하였다.

한돌이를 다 베고난 인혁은 서느러운 바람에 땀을 들이는 한정길의 옆에 가앉았다.

인혁은 남다른 고뇌를 겪고있을 한정길이 어쩐지 몸도 체소하고 소심하며 주눅이 든 사람일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정작 만나보니 의외로 멀끔하고 다소 구부정하기는 하나 키꼴이 후리후리하며 차돌같은 가쯘한 이발과 리지적인 눈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이였다.

《한정길동무, 내 여기에 온지는 오랜데 이제야 인사를 나누게 되여 안됐소.》

그는 펄쩍 뛰며 《비서동지, 무슨 말씀을… 이렇게 찾아주신것만두 고마운데.》하고 어줍게 몸둘바를 몰라했다.

《아니요. 내 일하는 방법이 서툴다보니 초무연탄을 연구한 유명한 사람이 곁에 있는것두 오늘에야 알았단 말이요.》

인혁은 초면인 그의 앞에서 자기를 반성하는 투로 말했다.

《비서동지, 말씀을 낮추십시오. 제같은게 유명하다니요. 그저 소박한 착상을 도입해봤을뿐인데요 뭐.…》하고 바빠하며 얼굴을 붉히였다.

그것은 그가 매우 순박한 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있게 하였다.

《아니요!》 하고 인혁은 단연히 한정길의 겸양을 부정하며 정색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작은것이지만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탐구하여 성공하는 그것이 유명하지 다른게 유명이겠소. 유명해도 요란하게 유명하지.》

바람받이의 마디마디 휘여든 뽕나무가 일매지게 늘어선 수로뚝너머에서 무르익은 가을향취가 풍겨오고 농장원들의 활기어린 목소리, 웃음소리가 류달리 정답게 흘러왔다.

인혁은 목에 흰수건을 걸친채 수굿하고 앉아있는 그를 무등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성미도 서글서글해보여 대번에 친숙감이 느껴졌다. 더구나 그가 도안의 모든 농장들에서 모판부식토로 널리 리용하는 초무연탄을 연구한 당자여서 더더욱 의젓하고 기품이 있어보였다. 도안의 흔하디흔한 초무연탄을 농장의 특성에 맞게 실용적으로 쓸 생각을 하고 연구도입했다는것은 사실상 대단한것이였다.

일부 편협한 일군들은 그의 연구를 시답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농장에 진출해왔으면 착실하여 맡은 일에 전심할 대신 전문연구사들도 관심하지 않는 문제에 머리를 쓰구 들떠서 돌아친다느니, 오를수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막연한 일감을 붙들고 수년세월을 허탕치는것 같다느니 하며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이 일군들가운데 있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도 한정길은 주눅이 들기는커녕 대용부식토연구에 근기있게 몰두하여 마침내 보란듯이 성공하였다는것이다.

인혁은 그를 번쩍 안아올리고 세상을 향하여 《왜 이렇듯 귀중한 보배덩이를 아직 모르고있소!》 하고 웨치고싶었다. 아니, 당장 그를 업고 온 금주리를 한바퀴 휭 돌고싶은 심정이였다.

《한정길동무, 동무처럼 기술에 능한 일군이 이번 공사에 당장 필요하오. 내 불찰로 동무를 공사에 미리 인입시키지 못했소. 그래서 부랴부랴 이렇게 찾아왔소.》

공사에 대한 말이 나오자 별안간 그의 낯빛이 심중해졌다.

장선의 말을 듣고온 인혁인지라 그가 공사에 발을 선뜻 들여놓기 주저한다는것을 순간적으로 직감하였다.

《솔직히 내가 동무대신 벼를 베는 한이 있더라도 동무를 당장 데려가고픈 심정이란 말이요.》

한정길은 한동안 덤덤히 앉아 쑥꼬챙이로 작업신발에 발린 진흙을 긁어내다가 너무 소탈하고 허물없이 구는 인혁에게 마음이 끌렸던지 시원스레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비서동지, 저라구 왜 록새벌사람인데 그 공사를 외면하겠습니까. 전에 일부 사람들이 필요할 땐 련속 불러대다가 한번 과오딱지가 붙자 알던 사람같지 않게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그에 대한 반발심이라 할가, 며칠전에 장선반장이 왔을 때 제가 너무했던것 같습니다.》

하고 그는 먼 논벌에 눈을 주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새 나도 좀 생각해봤습니다. 수렁지정리가 지금 한창 좋은 계절입니다. 우선 다음영농공정이 없거던요. 그러니 시간적제약을 받지않는데다 땅도 누기도가 22%정도이고… 좀 약점이라면 봄철보다 해가 짧아서 작업시간이 길지 못한건데 낟알을 걷어들이는 차제로 로력을 집중하면 땅이 얼기 전에 능률을 부쩍 올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인혁은 그가 내심으로 공사때문에 머리를 많이 쓰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이 고마왔다.

《비서동지도 파악하셨겠지만 원래 이 벌의 기반암이 고생대 흰 바위와 돌비늘짜개바위 등으로 조성됐는데 그 기계적조성이 치밀해서 물이 잘 스며들지 못하고 바람갈이가 잘 안됩니다.…》

인혁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과연 초무연탄을 연구할만 한 재사였다.

《웅뎅이만 해두 수십개구, 물량만도 가량없습니다. 그걸 메꾸자면 밑물도 뽑아야 하는데 벌써 비서동지가 수렁밑물을 얼마 떨어진 하천쪽으로 뽑을 묘안을 착상했다두만요. 사실 그게 제일 급선무같습니다.…》

농업대학졸업생으로서 토양학에 조예가 깊은 인혁이도 그의 다방면적인 박식에 재삼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혁은 사뭇 흥분된 마음으로 벼를 베며 그와 허물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저물녘에야 자리를 떴다.

인혁은 금시 하늘을 날듯 한 기분이였다. 그렇듯 보물같은 인재를 비로소 알게 된것이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