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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제5장. 미루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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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당책임비서가 자기 딸에게 보내온 전화내용은 청년작업반원들속에서도 분분한 론의를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그 내용해득에 신경을 쓰면서 수련이 설명해줄것을 바랐는데 당자의 대답이 아주 천연스러웠다.

《약물치료를 예견했다가 결국 수술하기로 락착보았다는 소리예요. 그러면 시간도 오래 끌지 않고 단번에 고칠수 있거던요. 아무래도 반장동진 대홍단에 가야 하니까 응호동무의 면회는 그의 선생노릇을 한 내 몫이예요.》

그럴듯해보여 사람들은 고개들을 끄덕였으나 유금이만은 누나다운 촉감으로 쉽게 얼리워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미전부터 수련이 아버지와 짜고 무엇인가를 기도하고있다는 짐작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는 무슨 권리라도 있는듯 드러내놓고 길떠날 차비를 하는 수련을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은근히 타진해보았다.

《수련선생, 난 수련선생이 우리 응호를 지금껏 성심성의로 도와준걸 고맙게 여기고있어. 그래서 이번 수술에 관심을 가지는것도 리해가 되구. 하지만 아버지가 누나인 나에게가 아니라 왜 부디 수련선생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라고 강조했는지 까닭을 모르겠어. 혹시…》

수련은 얼른 유금의 입에 손을 대고 뒤말을 더 못하게 막으면서 티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반장동지도 참… 대홍단에 갈 사람들의 명단이 책임비서의 책상우에 놓여있다는것쯤이야 알아야지요. 그러니 내게 부탁할수밖에요. 더구나 후민산카리에 대한 최종실험수치가 오늘래일로 나온다는건 언니도 알지요? 이번에 왕고구마를 썩이지 않게 만든것만 봐도 틀림없이 성공이예요. 그건 응호동무도 대단히 관심하는 문제가 안예요. 그것때문에 눈치료도 제대로 못하면서 지금껏 애썼는데… 그걸 알려주면 응호동문 마음이 편해서 수술도 성과적으로 치를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응호동무가 수술을 받게 되는 날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던거예요. 이렇게 딱 날자가 맞춰줬으면 해서 말예요. 정 믿어지지 않으면 내대신 반장동지가 대홍단으로 가는 길에 대학실험실도 들리고 동생에게 알려주기도 하시라요.》

유금은 곱게 웃는 수련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으나 아무런 미심쩍은 기색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만약 무슨 다른 긴요한 목적이 있다면 이렇게 쉽게 양보할수 없을것이다. 문제는 대학실험실에 들리고 병원에도 가보고 할 시간이 자기에게는 있을것 같지도 않거니와 우정 보영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것이였다. 전승절날에 있었던 충돌이 가슴에 맺혀서라도 보영은 자기를 만나지조차 않을것이다. 차라리 수련이 자기를 대신한다면 그를 한사코 멀리하는 응호에게 마음을 돌릴 따뜻한 계기가 조성될수도 있었다. 하여 유금은 아주 의심을 털어버릴수는 없었지만 한발 물러서고말았다.

《좋아, 대홍단참관이 닷새라니까 내가 돌아와서 수술립회를 설 시간은 있지만 그사이엔 우리 응호를 수련선생에게 맡길수밖엔 없구나. 우리 어머니도 그걸 알면 기뻐할거야. 요즘 다리가 불편하여 더 움직이기 힘들어하거던. 내대신 잘 돌봐줘.》

《걱정말고 참관이나 잘하고 오세요.》

동생 응호를 위해 수련에게 이것저것 준비해주고 자기도 길떠날 차비를 하느라 유금은 좋이 두어시간이나 팽이돌듯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작업반을 누구에게 맡길지 걱정스러워 은근히 속을 썩였다. 건웅이 있었더라면 그저 한마디 《부탁해요.》 하면 될수 있겠으나 그는 이미 도자기작업반장으로 정식 임명받고 오방골에 아주 눌러앉아있는터였다. 더구나 수련이 자리를 비우는 조건에서 준우한테는 착실한 조력자를 골라 붙여주어야 했다. 왕고구마씨받이가 품도 많이 들거니와 섬세한 조작이 필요했기때문이였다.

그의 걱정이 가닿았던지 오후에 느닷없이 김건웅이 딸랑딸랑 자전거종소리를 울리며 작업반에 들어섰다. 약간 기름얼룩이 간 작업모밑으로 굽실굽실한 머리칼이 살짝 내밀린 건웅은 더워서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유금을 만난것이 무등 반가운지 얼굴에 온통 웃음꽃을 피우고있었다.

《마침 있었구만요. 헤여진지 벌써 1년은 지난것 같은데요.》

유금도 어떤 구원자를 만난 기분이 되여 그가 내미는 손을 꼭 잡았다.

《건웅동무, 정말 오래간만이예요. 이렇게 소풍할 시간을 다 낸걸 보니 일이 잘되는 모양이지요?》

《뭐 그럭저럭… 이번에 왕고구마때문에 고생을 했다지요? 이렇게 떨어져있으니 마음뿐이지 도와주지도 못했습니다.》

건웅의 얼굴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떠올라 유금은 가슴이 뭉클해났다. 함께 있으며 늘 의지하게 되던 기둥이 훌 뽑히워나갔을 때 며칠간이나 일손이 잡히지 않았던 유금이였다. 그렇다고 앙탈을 부리며 못 데려간다고 붙잡을만큼 생각이 짧고 린색한 그도 아니였다. 군적인 도자기생산은 물론 건웅의 앞날을 위해서도 응당 떠밀어보내야 했었다.

《왜 갑자기 해연이가 보고싶던게지요?》

유금이 롱비슷이 말하자 건웅은 손을 홰홰 내저었다.

《아니, 반장동무가 쩍하면 해연일 오방골로 거짓심부름시켜 보내는데 어디 그리워할 기회나 가져봅니까?》

그것은 사실이였다. 건웅과 화해한지는 이미 오랬으나 해연은 도자기작업반으로 가자는 청만은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친언니와 같은 정속에 품어주고 이끌어준 고마운 유금이의 곁을 떠나면 배반으로 된다는것이였다. 건웅도 자기 욕심만 부리고 청년작업반을 외면할번 했다면서 그 생각을 적극 지지해주었으므로 유금은 노상 떨어져살다싶이하는 그들의 상봉을 우정 조직해주군 했던것이다.

《그렇다고 농사일을 해보고싶어 손이 근질거려서 온건 아닐텐데?》

건웅은 한참 껄껄 웃고나서 솔직히 고백하였다.

《실은 효분이를 모셔갈가 해서 왔습니다.》

《효분일?…》

《예, 전기사정이 좀 긴장해서 메탄가스로 발동기를 돌리기로 했는데 어디 가스가 제대로 나와야지요. 효분이야 온 겨우내 온실에서 메탄가스를 생산해봤으니 그 물거름의 배합비률을 완전히 파악했을게 아닙니까. 하루이틀 조작만 잘해주면 즉시 돌려보내겠습니다.》

마침 효분이 어디선가 콩콩 뛰여나오다가 건웅을 띠여보자 《건웅오빠!》 하고 부르짖으며 냉큼 그의 목에 매달렸다. 그러자 건웅은 질색하여 한길이나 뛰며 효분을 야단스레 떠박질렀다.

《놔라, 다 큰게 망측스레… 누가 보았단 큰일나겠군.》

《씨― 반가와서 그러는데…》

유금은 못마땅해서 눈을 빠는 효분이와 낯까지 지지벌개서 눈을 허둥거리는 건웅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허리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효분아, 건웅동문 해연이가 질투할가봐 벌벌 떠는거란다.》

《그 언니가 날 질투해요? 이 쬐꼬만 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효분은 자기의 봉긋하게 부푼 앞가슴에 눈이 갔는지 귀뿌리를 붉히며 혀를 쑥 내밀어보였다.

《우리 오빠 빼앗아간 그 언니 미워. 참, 어떻게 왔어요?》

《널 모셔가겠단다.》

유금이 튕겨주자 효분은 눈이 동그래져서 건웅을 쳐다보았다.

《나를 왜요?》

그러나 건웅의 설명을 듣고난 효분의 눈은 반대로 성이 나서 매서운 세모꼴이 되여버렸다.

《이제 보니 미운건 건웅오빠였군요. 난 싫어요. 청년작업반을 버리고 간것만도 한구멍 펑 뚫려 속상해죽겠는데 그것도 모자라 돼지때문에 잠잘 짬도 못 내는 나까지 홀려내려구요? 안 가요. 그렇잖아도 지금 종축돼지 〈돌미산〉이 막 새끼낳이를 시작하려고 해서 시간도 없어요!》

잔뜩 토라진 효분은 건웅에게 맵짜게 쏘아붙이고 힝 돌아서버렸다. 뜻밖의 반격에 옹색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건웅을 보기 딱하여 유금은 얼른 효분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지 마, 효분아. 너도 청년원이 청년절날에 개관식을 하게 된다는걸 알지? 바로 건웅동무의 도자기작업반이 그 건설에 한몫 단단히 했으니 그걸 리용할 우리가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하고 적극 도와주는게 도리지. 그렇지 않아?》

어째서인지 효분은 눈에 대바람 눈물을 함뿍 담고 울먹울먹 말했다.

《그걸 몰라서 그러는게 안예요. 보영언니가 준우선생이랑 반장동지의 가슴에 못을 박은것만도 분해죽겠는데 응호오빠가 또 관리위원장동지때문에 쓰러졌으니 어디 뒤숭숭해서 살겠어요? 그런 판에…》

《응호가 어떻게 됐다구요?》

건웅은 처음 듣는 소리였는지 깜짝 놀라 유금을 돌아보았다. 유금은 잠시 잊었던 동생의 일이 새삼스러운 아픔으로 가슴에 마쳐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거기에 효분이 또 자기의 올곧은 성미 그대로 덧쐐기를 박았다.

《난 반장동지한테도 의견이 있어요. 왜 보영언니가 와서 당치않은 행패질을 할 때 원칙적으로 호되게 비판하지 못했어요? 우정이 중해서요? 원칙을 떠난 우정도 우정이예요?》

입에 담기는 소리는 아무것이나 마구 내뱉는것 같지만 효분의 말속엔 깨여버릴수 없는 단단한 씨가 배겨있었다. 유금은 얼굴이 타들었으나 효분의 손을 끌어당겨 꼭 감싸쥐며 진심으로 속삭였다.

《고맙다, 효분아. 내 꼭 명심하겠어. 그리고… 너무 속을 태우지 말아. 모든 일이 다 잘될게다. 너같이 의롭고 용기있는 청년들이 있지 않니. 그러니 마음놓고 건웅동무를 도와줘. 부탁한다.》

그다음 건웅을 향해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결혼식은 언제 하겠어요?》

건웅은 조금전 효분의 항의도 받은지라 심각해있다가 놀라서 벙벙히 쳐다보았다.

《?…》

《해연이와 빨리 결혼해야 집이랑 배정할게 안예요.》

비로소 건웅은 비주름히 웃으며 도리질을 했다.

《아직 가을걷이도 멀었는데 무슨 벌써… 천천히 하지요.》

《또 무슨 구실을 대자는거예요?》

유금은 이미 건웅이 늙어가는 반장 보기가 미안해서도 장가들지 못하겠다고 한 소리가 있던터여서 두말 못하게 오금을 박았다.

《아니, 우리 미루벌에선 이제 뭔가 미루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해요. 내 생각엔 청년원을 개관할 때 동무들의 결혼식도 함께 하는게 좋을것 같군요. 그럴 생각으로 첫날옷은 이미 다 물려놓았어요. 그러니 고향의 부모님들께도 그렇게 소식을 알려주세요.》

…수련에게 변명처럼 말한대로 유금은 참관단의 일정이 빠듯이 물려있어 응호의 병문안을 가볼 시간조차 낼수 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준우에게는 지금껏 이악하게 농학지식을 쌓아오는 이악쟁이 해연을 붙여주었으므로 마음놓였지만 어째서인지 응호곁에 있을 수련의 차후 행동만은 자꾸 미심쩍어지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유금은 차칸에서 한 참관단에 속한 초예를 만나 그간 회포를 나누느라고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초예는 노상 미루벌일대를 팽이처럼 팽팽 돌아치면서도 도자기같이 매끈한 얼굴이 한점도 볕에 타지 않은채 점점 더 이쁘게만 번져지고있었다. 혀 또한 팽이같이 사릉사릉 잘 돌았는데 어떻게 엿들었는지 청암에 내려왔던 보영의 행실이며 관리위원장 주룡천의 무모한 농약씻기로 빚어진 사고, 응호가 분무도중 실명직전에 이르러 도병원에 후송되고 그 간호차로 수련이 함께 있다는 소식까지 모르는것이 없었다.

《…주룡천관리위원장은 자자부레한분이 아니니까 일단 마음을 고쳐먹으면 뜨락또르처럼 씨엉씨엉 좋은 밭갈이에 나설테지만 보영인 까치한가지로 소란스러운데다가 제 배가 고프면 남의 먹이도 냉큼 가로채 먹는 고약한 버릇을 쉽게 못 고쳐. 하지만 두고봐. 그대로 견디고 배기는가.… 그건 그렇고 내가 말야, 너의 조언대로 레이자빛을 리용하여 흑반병연구에서 한걸음 더 내짚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종자처리에 새로운 원소를 리용하자는 자기의 안이 지지를 받은 다음 수십가지의 원소들을 써보았는데 최근에야 린과 붕소의 혼용처리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얻어냈다고 한다. 거기에 레이자빛처리도 병합했더니 결과가 훨씬 좋아졌다는것이였다. 조직배양에 의한 무비루스고구마싹생산을 배합하는것도 절반이상의 흑반병발생을 억제할수 있다고 그는 장담했다. 그래서 감자의 조직배양체계가 확립된 대홍단을 품들여 찾아가게 되였다고 초예는 신이 나서 말했다.

아닌게아니라 대홍단에 도착한 그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홍단을 찾으시여 대홍단은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하신 말씀을 정히 새긴 명제비앞에 꽃다발을 진정한 다음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신덕, 농사, 신흥, 서두로동자구 등의 호함진 감자밭이며 새로 일떠선 현대적인 감자가공공장과 대홍단식료공장 등을 참관했는데 조직배양체계를 돌아본 초예가 그중 소득이 컸다고 뻐기였다. 유금이 역시 전야를 누비는 뜨락또르며 종합수확기같은 많은 기계수단들을 앞세우고 흥겹게 일하는 그곳 농장원들앞에 위압되고 부럽기도 하여 넋을 잃을 정도였다. 파종으로부터 김매기와 수확, 가공에 이르기까지 손로동을 거의 볼수 없으니 과히 그럴만도 했다. 선군8경의 하나로서의 대홍단에서 놓칠수 없는것이 더 있었으니 모든 농장원들의 살림집들이 하나같이 희한한 궁전처럼 멋지게 세워진것이였다. 그들은 주인들이 권하는 맛좋은 갖가지 희귀한 감자음식들까지 실컷 대접받으며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유금은 밤마다 바로 이러한 무릉도원같은 세계를 미루벌에도 그대로 펼쳐주시려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토록 마음쓰시며 큰 작전을 펼치고계신다고 생각하니 감사의 정에 목이 꽉 메여오르고 보다 힘껏 일하여 그날을 앞당길 불같은 맹세로 가슴이 벅차져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준우의 연구를 힘껏 뒤받침하여 수확량을 결정적으로 늘이는것과 함께 씨왕고구마재배를 빨리 완성하여 종자저장과 같은 품이 많이 드는 공정을 완전히 없애는것이 첫째가는 과제였다. 고구마씨의 안전한 수확도 기계로 할수 없을가 하는 구상까지 떠올랐다. 물론 자기가 따로 하고있는 린산염에 의한 싹증식방법도 시급히 완성해야 했다. 또 대홍단의 완전한 방풍림이 어떤 효과를 보는가를 직접 목격한만큼 그저 강진범이 심어준 과일나무들로 만족하지 말고 주동적으로 더 빈틈없이 조성해야 할것이다.

사리원에 도착한것은 21일 오전 10시였다. 유금은 응호의 수술이 아직 하루 남아있다는 안도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사이 무슨 이상이 없었는지 걱정되여 체신소부터 들렸다. 도인민병원에 전화를 걸어 수련이든가 가능하면 응호와 통화를 나눠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병원의 당직의사는 제꺽 《가만, 귀익은 이름들인데…》 하며 무슨 대장인가를 벌컥벌컥 번져보더니 뜻밖의 소리를 하였다.

《그들은 오늘 수술을 받기로 되여있소. 벌써 시작했을거요.》

《뭐라구요? 수술은 래일 하기로 되였댔는데요. 혹시 잘못 보고…》

유금이 깜짝 놀라 미처 입도 채 떼지 못했는데 상대방은 신경질을 부리며 그의 말을 탁 잘라버렸다.

《병원이 뭐 제개비집안인줄 아오? 동문 대체 누구요?》

가슴이 철렁해난 유금은 례절이고 뭐고 제 먼저 전화기를 내동댕이치다싶이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병원을 향해 미친것처럼 내달리는 유금의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버렸다. 어째서 가족측에 알려왔던 수술날자를 제 마음대로 변경시킨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립회자가 올수 없게 되는데 그런 수술도 있을수 있단 말인가?

숨이 턱에 닿아 헐떡헐떡 병원계단을 뛰여오를 때에야 유금은 당직의사의 말이 아주 이상했다는 기억을 겨우 더듬어낼수 있었다. 그는 응호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표현한것이였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는가? 아니, 분명 《그들》이라고 말했어. 그렇다면 눈을 상한 응호 말고 또 한명 수련은 뭣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가?

한순간 유금은 너무도 놀라운 판단이 머리를 때려 복도에 폴싹 주저앉을번 하였다. 각막!… 응호가 각막을 상했으니 수련은 이미전부터 자기의 각막을 떼주려고 결심했고 그것이 알려지면 누나인 이 유금이 나설것 같아 아주 태연하게 둘러치고는 오늘의 수술대에 함께 누운것이였다. 바로 날자도 그가 요구하여 하루를 앞당겼을것이다!

유금은 눈앞이 탁 흐려져서 소경처럼 벽을 짚으며 허덕허덕 수술장앞으로 갔다. 그러면서 복도로 오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퀭해서 쳐다보는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정신없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나를 뭘로 만들었니? 뭘로? 친누나라는건 이렇게 펀펀해있고 넌 그처럼 귀한 눈을 떼주고… 날 매정하고 렴치없는 년으로 만든 널 내 용서할줄 알아? 가만두지 않겠어, 절대로 가만두지 못해!…》

누군가 반색하며 앞을 막아서서야 유금은 눈물범벅이 된 눈을 쳐들었다. 앞에는 놀랍게도 윤도영군당책임비서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서있었다.

《유금반장이구만. 언제 도착했소?》

아니, 놀라울것은 조금도 없었다. 자기 딸이 남에게 각막을 떼여주는 이 시각 아무리 책임적인 사업을 하기로니 아버지로서 어찌 무심할수 있으며 시간을 내여 달려오지 않을수 있으랴.

《솔직히 말해주세요, 수련선생이… 책임비서동지의 딸이 우리 응호에게 각막을 떼주고있지요?》

유금은 초조감에 사무쳐 몸까지 떨며 다급히 따져물었다. 윤도영은 그 사실을 유금이 안다는것이 좀 뜻밖인듯 미간을 치켜올리더니 소리없는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아마… 그런 모양이요.》

《너무합니다!》

유금은 윤도영의 옷자락을 찢어져라 힘껏 비틀어대며 울음으로 항변했다.

《이렇게 하면 난 뭐가 됩니까? 왜 이런 무서운 일을 딸에게 시켰습니까, 예?》

《쉿!―》

윤도영은 입에 한손가락을 곧추 세워보인 다음 유금의 어깨를 조심히 껴안아 대기실의자에 앉히면서 조금 쉰듯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보 유금반장, 병원에서야 정숙을 지켜야지. 특히 조국보위초소에서 자기 눈을 바친 영예군인으로서 우리 군의 자랑인 응호에게 다시 광명을 안겨주는 아주 책임적인 시각인데… 지금 수술이 거의 끝나고있으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구. 헌데 무서운 일이라는 소리는 썩 맘에 안 드누만. 사랑도 일종의 권리가 있는데 그건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기를 바칠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거요.》

《그럼… 책임비서동진?…》

《허허, 내가 뭐 애인들을 당권으로 갈라놓기라도 할가봐 겁냈소? 어차피 앞으론 서로 사돈이 되겠은즉 맘을 푹 갈아앉히라구.》

유금은 그만 윤도영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그의 옷자락을 푹 적시기 시작했다. 윤도영책임비서는 단순히 딸의 신상이 걱정되여서만이 아니라 군의 호주로서의 자격으로 응호의 수술립회를 맡아나선것이였다.

《고맙… 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유금은 꺽꺽 터져나오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한손으로 막은채 토막토막 끊어지는 소리를 겨우 짜냈다. 그리고는 격정에 못이겨 처음으로 선생이라는 존칭을 버리고 수련을 애정담아 불렀다.

《내 귀한 수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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