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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회

제4장 새 출발

24


보름이 지나자 춘영은 수술경과가 좋아 산보도 하게 되였다.

두손이 모자라게 구럭지를 들고 최미래가 면회를 왔다. 그는 구럭지를 내려놓자마자 《아유.》 하며 아부재기를 쳤다.

《처녀가 고쯤한데 벌써 힘들어하면 시집살이는 어떻게 하지?》

춘영의 웃음섞인 그 말에 최미래는 부끄러움도 잊은듯 들까불었다.

《수고했다는 소리대신 교양부터 하려드네. 그런 교양이 나한텐 필요없어요. 시부모가 며느리를 귀해하는 집에 들어가면 되지요 뭐.》

《하긴 남편될 사람을 보면 시부모들이 그쯤하겠어.》

《아니, 누굴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예요?》

춘영은 처녀가 너무도 달라진데 놀랐다. 갓 7호단위에 왔을 때에는 저렇지 못했다. 리렬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수가 적어지고 서늘한 눈가에는 어딘가 그늘이 져있었다. 한데 며칠새에 한결 더 고와지고 성격도 활달해졌다. 흔히 청춘남녀가 서로 련애를 할 때 제일 고와진다고들 하지만 최미래는 실지로 아름다운 처녀였다. 화장품이 별로 은을 낼것 같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생신한 얼굴에 사슴의 눈같이 크고 선하게 생긴 눈매, 곧게 선을 그운 코날… 여기에 오늘따라 향취마냥 내뿜기는것은 활력에 넘친 자부심과 들뜬 행동거지였다. 이 모든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춘영이 입술을 약간 실그러뜨렸다.

《누군 누구겠어? 내가 늘 어져빠졌다고 하던 그 사람.》

《네?》

최미래는 팩 했다. 방금전의 그 활기는 씻은듯 사라졌다. 처녀는 구럭지의 과일을 꺼내놓더니 불현듯 창턱으로 다가가 《창대직기》를 손에 들고 춘영의 앞에 와 섰다.

《언니, 이걸 나한테 돌려주지 않겠어요?》

《돌려주다니? 놔둬라, 그건 누구도 다치지 못해.》

춘영의 엄격한 소리였다.

《이걸 깎아 만든게 그 사람인데두요?》

《그 사람이 준게 돼서 더 기념으로 건사하련다.》

이번에는 최미래가 입을 딱 벌렸다. 춘영이 그 사실을 다 알고있었던것이다.

춘영은 아무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산보나 나갈가?》

그들은 복도의 계단을 내려 산원공원으로 들어갔다. 춘영의 팔을 끼고 공원으로 들어서는 최미래의 눈앞에는 여전히 며칠전에 현장에 나타났던 리렬의 모습뿐이였다.

…7호단위의 새 직기도입은 현재 절반계선을 넘어서고있었다. 그간 돌격대원들과 밤을 새우며 현장바닥을 새로 다지는 일을 하던 최미래도 오늘부터는 기대를 잡게 되였다. 자칭 기술고문이 된 장옥이 직기가동시에 류의할 점에 대해 열성껏 설명해주었다. 유연창대직기에 대한 리렬의 기술학습강의록을 매일이다싶이 들여다보았지만 눈엔 익고 손엔 설다고 온몸의 신경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면 장옥이나 반장언니처럼 자기도 앞을 내다보고 미리 실험공단계를 거쳤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군 했다.

그가 자기 맡은 직기를 돌려놓고 새 부분구조의 이름을 익히느라 책을 들여다보는데 그우에 손바닥만한 쪽지가 슬며시 놓였다.

《〈빨간머리수건〉이 보고싶었소.》

최미래는 화뜰 놀란 사슴처럼 몇발자국 앞으로 내짚었다. 가슴이 너무 쿵당거려 고개조차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다! 그렇게 보고싶던 사람, 그다지도 무정하냐고 하루밤에도 수십번 꿈속에서 욕을 하던 그 사람.

이번에는 두손이 그의 얼굴을 버쩍 들어올린다.

《어마나!》

기겁을 해서 올려다보니 아니 글쎄 장옥이가 흐뭇해서 웃고있지 않는가. 그는 최미래가 더 어쩌지 못하게 집게처럼 틀어진 손을 풀지 않고 그의 고개를 무작정 뒤로 돌려주었다. 리렬이 어느새 저쪽으로 가고있었다.

부끄러웠지만 그 덕분에 최미래는 그립던 얼굴을 볼수 있었다. 한다하는 연구사들과 어울려 돌아가는 그를 보니 저도모르게 신뢰감이 북받쳐올랐다.

《됐어, 그만 보라구. 얼굴이 얼마나 뜨거운지 이 손이 막 델 정도구나.》

장옥은 리렬이 시험적으로 만든 프로그람조종반을 실험하기 위해 나왔다는것을 알려주었다. 프로그람조종반은 여러개의 색등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신호장치인데 직기의 운전대옆에 붙어 날실과 씨실의 끊어짐과 고장원인을 자동적으로 감별해냄으로써 직포공들이 멀리서도 신호등을 보고 직기가 서게 된 원인을 제꺽 알수 있게 되여있었다.

그날저녁, 서로 약속이 없었지만 두 청춘남녀는 합숙앞 은행나무밑에서 오랜만의 상봉을 하였다. 정작 리렬을 만나자 최미래는 수집음에 아무말도 못했다. 가슴속에 차곡차곡 다져넣었던 처녀의 설분은 눈석이마냥 다 녹아내린듯 가슴속엔 오직 그에 대한 긍지가 그들먹이 차올랐다.

《미래! 그간 내가 미웠지?》

귀전을 간지럽히는 살틀한 그 말에 최미래는 눈물이 콱 솟구쳤다. 잊지 못할 공원의 그밤이 떠올랐다. 앞으로 준마처녀는커녕 룡마처녀의 꿈도 꾸지 못하겠다던 격한 그 웨침이 다시금 흉벽을 아프게 허볐다. 하지만 그때처럼 가슴에 맺혀서가 아니였다. 그렇게 살지 못한 저자신에 대한 자책이고 원망이였다.

이즈음에 처녀는 처음으로 총각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그것은 화약심지에 당긴 불과도 같이 확 타올라 깊은 밤 처녀를 설핀 잠으로 시달리게 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퇴근길을 기계공장 정문앞으로 향하게 한적도 다 있었다. 그러나 리렬은 그의 시야밖으로 아주 사라져버린듯 했다. 며칠전엔 얼굴모습까지도 잘 살아나지 않아 한밤중에 《창의고안명수들》속에 붙은 사진을 먼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사랑이, 그리움이 이렇게 《홍수》같은줄은 몰랐다. 울바자마냥 촘촘히 세웠던 처녀의 자존심을 순간에 떠밀어버리고 이 가슴에 오직 그의 모습만이 꽉 채워지게 될줄은…

처녀는 이러한 자기의 심정을 어제밤에 꾸었던 꿈장면에 담아 나직나직 이야기했다.

《난 어제도 꿈을 꾸었어요. 동문 하늘을 날며 나를 소리쳐 부르는데 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따라갈수 없었어요. 저만 높이 날면 난 어떡허냐고, 함께 데려가달라구 안타까이 졸랐어요.… 그러다 끝내는 한발자국도 따라오르지 못한채 깨고말았어요. 난 꿈에서 깨여나 후회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높이 세우면서자신에 대한 요구는 높이지 못했다고요. 이젠 내가… 내가 동무한테 짝이 기운 처녀가 되고말았어요.》

《미래!》

리렬은 끝내 자기의 격한 심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는 미래의 두어깨를 와락 부여잡으며 눈물을 머금은 처녀의 눈을 태울듯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지금껏 이 심장을 그리도 태우던 처녀, 그 미래가 정녕 옳은가? 분명 미래였다. 사랑하기에 그토록 높은 요구를 내세웠다던 처녀.

《미래, 다신 그런 소릴 마오. 그렇게 말하면 난 뭐가 되오.… 나도 이번에야 자신이 뒤떨어졌다는걸 알았어. 대학을 졸업하고 창의고안을 여러건 했다고 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비해볼 때 난 너무도 먼 거리에 있었소. 부끄럽지만 눈높은 한 처녀의 요구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았소. 허허… 난 이번에 문광혁동지와 함께 일하면서 정말 눈이 튼것 같애. 기계도 기계지만 오늘의 시대에 대해서, 우리 청년들의 리상에 대해서 말이요. 지식경제시대에 사는 오늘날 현실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의 리상은 응당히 여기에 발을 맞춰야 하오.… 지금 조국은 이 땅에 사는 공민들모두가 최첨단을 자기의 목표로 할것을 요구하고있소. 세계를 향해 나갈걸 바라고있소. 여기에 발을 맞추지 못할 때 그것은 결국 자기자신을 위한 리상이 되고마오. 미래! 우린 새 세대요. 그러니 대담하게 더 큰 목표를 안고 살자구. 우리의 목표가 높을수록 조국은 그만큼 더 높이 비약하게 될게요.》

리렬의 불같은 호소에 처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살며시 가져다댔다. 총각의 심장이 울리는 세찬 박동이 처녀의 가슴에 쿵쿵 마쳐왔다. 그 박동에 맞춰 함께 높뛰기 시작하는 자기의 심장소리를 처녀는 흥분속에 듣고있었다.

그날 최미래는 리렬을 명찰표가 붙은 자기들의 감나무로 이끌었다. 감동된 리렬이 자기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미래가 보고싶을 때마다 상봉의 그날을 그리며 짬짬이 창대직기모형을 만들어왔다는것, 그것이 기술혁신조의 기념품이 되여 춘영에게 가게 된 사연도 다 털어놓았다.…

춘영은 걸상에 나란히 앉은 처녀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미래, 진정으로 하는 소린데 너 리렬일 단단히 붙들어라. 자칫하단 놓칠수 있어.》

《흥, 금방까지도 어져빠진 총각이라고 비웃던 언니같지 않군요.》

제법 토라진 소리를 하는 최미래를 춘영은 은근한 웃음속에 지켜보았다.

《하긴 세상에 자기 애인을 흠하는 사람을 좋아할 녀자가 어디 있겠니. 하지만 나도 이젠 그에 대한 견해가 달라졌다. 그의 높은 리상에 대해서 그리고 창조적인 두뇌랑 타고난 손재간을 보면서 저런 남자도 쉽지 않다고말이야. 한마디로 보배덩이같은 남자지. 호호… 어진 성격이야 어디 가겠니? 한데 생활에선 차라리 그런 남자가 낫겠더라.》

춘영의 그 말에 이번엔 최미래켠에서 역습이다.

《어마나, 아저씨가 어때서요? 아직까지 아이도 낳지 못한 언니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고 리해해줬어요?》

여느때라면 이런 말을 탕탕 하지 못했을 최미래였다. 그러나 지금은 꺼리낌없이 말하고있다. 그것이 또다시 춘영의 눈물주머니를 흔들어놓았다.

《야참, 언닌 달라졌어. 눈물이란 전혀 모르는 녀잔줄 알았는데 고만한 말에도… 내가 잘못했어요.》

《아니, 그게 아니다. 넌 다 몰라. 지금의 내 심정을… 난 그저 모든게 꿈만 같다. 내가 아이를 낳을수 있다는것이, 때늦게나마 내가 설 자리를 알게 된것이.》

춘영은 눈시울을 슴벅이며 밝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미래, 내 그래서 리렬동무가 널 주고싶어 깎은걸 우리 집 장식장에 가보로 건사하자는거다.》

《가보로요?》

《응, 너도 봤지? 우리 집 장식장에 있는 〈춤추는 처녀〉도자기말이야. 그건 나의 실현하지 못한 리상을 상징하는 장식품이였어. 난 힘들 때면 그걸 보며 앞으로의 결심을 굳히군 했지. 이제 보니 신통히 허영에 뜬 내 모습에 지나지 않겠지. 그 도자기대신 그 〈창대직기〉를 놓을 생각이다. 남편의 창조의 넋이 깃든 그 직기를 보며 나도 은심이 뒤를 따라 새 출발을 하자는거야.》

최미래가 감탄했다.

《야, 그럼 아저씨가 얼마나 좋아할가? 반장언닌 또 얼마나 기뻐하구.》 하며 최미래는 새 직기도입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갔다.

그간 7호단위에 대한 새 창대직기도입은 거의 마감단계에 이르렀다. 2대의 기대로 첫 실험을 한데 이어 계렬생산된 새 직기들의 가동률은 예상외의 효과를 나타내고있다. 소음이 적고 고속에 광폭의 직기다보니 현재 날실을 메운 직기 몇대로도 7호단위의 계획을 초과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예전 북직기에 비해 4배의 능률을 내는것으로 된다. 물론 기대마다 예견치 못했던 새로운 결함들이 소소히 나타나군 했지만 기대공들과 문광혁을 비롯한 기술혁신조 성원들의 긴장한 탐구와 노력에 의하여 즉시즉시 제거되군 한다고 한다.

춘영은 이 소식을 이미 알고있었다. 며칠전에 면회왔던 은심이 그런 기세로 나가면 작업반의 년간계획은 한달내로 문제없다고 했다.

《그럼 나도 인차 퇴원해야겠다. 새 직기도입에 땀 한방울 바치지 않고 기대를 잡을순 없지 않아.》하고 춘영이 서두르는 소리를 하자 은심은 례의 그 호함진 웃음을 터뜨리며 그러지 않아도 문광혁이 《춘영이가 기대를 떠나선 하루도 참지 못하는 성민데 내가 그를 대신해야지요.》 하며 현장에서 침식을 하다싶이 하고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해진 춘영이였다.

그들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있을 때 공원으로 급히 들어서는 녀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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