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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1장 앞자리

1


퇴근시간이 지난지도 이슥하였다. 수도의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방직공장 정문으로 천필마냥 끝없이 흐르던 방직공들의 물결이 차츰 뜸해져갔다.

하루의 로동이 가져다준 벅찬 희열과 즐거움이 노래로, 웃음으로 넘쳐나던 넓은 구내길에 저녁어스름이 한겹두겹 내려앉고있었다.

직포종합직장 1직포직장 다기대공들인 강은심과 성춘영이 퇴근차비를 하고 나선것은 그무렵이였다.

감나무가 늘어선 종합직장 앞마당을 나설 때는 그래도 닭알빛의 짧은 소매 달린옷을 차려입은 춘영의 날씬한 자태가 희읍스름하니 드러났었다. 하지만 현대화가 마감고비에 이른 염색종합직장을 지나 정문이 바라보이는 영생탑부근에 이르자 인츰 어둠에 물들어져 은심의 연보라빛옷색갈과 다를바 없어졌다. 한발 처져걸으며 춘영의 자태를 홀린듯 지켜보던 은심은 은연중 살아나는 아쉬움을 가느다란 한숨에 담았다.

그 소리에 춘영의 걸음발이 떠졌다.

《왜 그래?》

은심은 그의 곁에 다가서며 나꿔채듯 한손을 꼭 잡았다.

《시샘이 나서…》

《시샘?… 하긴 오늘일은 안됐다. 용서해라. 직포에서 제일가는 혁신자를 잠시잠간 눌러놓은 〈도덕〉없는 이 춘영일…》

《하하…》

가슴밑굽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은심의 호함진 웃음소리가 어둠에 물든 구내를 흔들었다.

《아니, 얜…》 하며 춘영이 바빠맞아 주위를 흘끔거렸다.

《처녀애들이 보면 웃겠다. 나이꽤나 건사한분들이 호들갑을 피운다고…》

은심은 여전히 웃음끝을 가무리지 못했다.

《보겠으면 실컷 보라는거야. 호호… 제 친구를 〈도전〉해나선것이 〈도덕〉없는 일이라면 처녀들을 〈도전〉해나선것은 뭐라 해야겠는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흔고개가 래일모레동동인데 넌 아직도 처녀들 찜쪄먹게 몸매가 여전하니… 갈수록 빵처럼 둥글둥글해지는 이 몸이 시샘을 안하게 됐어?》

《넌 참, 별걸 다… 시샘할게 따로 있지.》

춘영의 어조는 어딘가 시들하게 울렸다.

그제서야 은심은 제 기분에 들떠 친구로서 아니할 롱담을 꺼들었다는것을 뉘우쳤다.

춘영은 어려서부터 무용을 한탓인지 몸맵시가 류달랐다. 키는 그닥 큰편이 아니나 갸름한 얼굴에 상큼한 목이며 처녀들도 무색케 하는 호리호리한 몸매로 하여 사람들의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내기가 일쑤였다. 내놓고 시샘을 하는 처녀들도 있었다.

춘영은 늘 그런것에 습관되여있었다. 너무도 응당한 부러움이라는데 대한 자부도 컸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춘영의 그 자부심에 해진 뒤의 그늘처럼 엷은 음영이 비끼기 시작했다. 때로 그의 얼굴에 내비치는 쓸쓸한 웃음에서, 말없이 내려뜨는 눈길에서 은심은 춘영의 마음속고통을 아프게 읽게 되였던것이다.

가정을 이룬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는 춘영이였다. 그래서인지 뜨겁고 열렬하던 그들부부의 애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자존심이 강한 춘영은 남들의 부러움이 동정으로 바뀔세라 여간 마음을 쓰지 않고있는터였다.

은심은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진심으로 바랐다. 가정생활의 불협화음을 헌신적인 로동과 뛰여난 실적으로 가실수만 있다면, 하여 자기들 둘이 직장의 쌍벽을 이루는 혁신자라 할지라도 그가 더 앞자리에 섰으면.

은심이 전에없이 즐거운 롱담을 건늬게 된것도 실은 그 진심의 충동이기도 했다. 좀전에 그들은 직장사무실에서 이해 생산경기중간총화에 대한 기쁜 소식에 접했다. 이달에도 그들이 속한 1직포직장의 생산실적이 종합직장은 물론 공장적으로 제일이였던것이다. 개인별실적에서는 춘영이 단연 1등이였다. 전달 은심이 세웠던 최고기록을 뛰여넘은 놀라운 실적이였다.

이 기세로 나가면 이미 첫 분기안에 년간계획을 끝내고 2년분계획수행에 진입한 두 기대공의 실적은 다시금 몇달안에 《돌파!》라는 성공의 계선에 이르게 될것이라며 직장장 김록균이 얼마나 만족해하는지 몰랐다.

은심과 춘영은 현재 직포종합직장적으로 제일 많은 대수를 맡고있다. 이들이 새해 첫 전투를 앞두고 종전의 두배되는 다기대를 맡을것을 제의해나섰을 때 일부 일군들속에서 의견들이 없지 않았다. 한창나이의 쌩쌩한 처녀직포공도 아닌, 언제 어떤 사정에 발목이 매일지 모르는 가정부인들에게 그 많은 기대를 떠맡긴다는것은 도제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일이라고들 했다. 했으나 그들은 끝내 그 많은 기대를 맡아안았으며 (그것도 현장에서 제일 손로동이 많은 7호단위 북직기) 마음이 놓이지 않아하는 일을 맨 앞장에서 당당히 해내고있었다.

은심은 오랜만에 춘영의 밝은 웃음을 보는게 기뻤다. 탄력있는 경쾌한 걸음새를 보는것이 사뭇 흥그러웠다. 그래서 자신도모르게 시샘아닌 《시샘》을 하게 된것인데 그것이 춘영의 마음속앙금을 휘저어놓게 될줄이야.

허나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였다. 구내등이 켜지자 은심은 사무실에서 받아안은 흥분의 여파런듯 자신심에 충만된 춘영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은심이, 솔직히 말해 우리의 이번 성과는 전적으로 네 덕이라고 할수 있어.》

춘영의 그 말에 은심은 눈이 둥실해졌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7호단위로 옮길것을 발기한게 누구지?》 하며 춘영은 새해정초에 7호단위 북직기를 맡게 되던 때를 상기시켰다.

원래 은심과 춘영은 다른 호단위에서 철편식자동직기를 맡고있었다. 철편직기는 북직기의 다음세대라고 할수 있다. 90년대에 들여온 이 직기는 당시로서는 그중 현대화된것으로서 정말 보배스럽다 할 정도로 생산에서 큰 은을 냈었다. 그러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여러가지 난문제로 하여 정상적으로 가동할수 없었다.

그러다나니 아무리 기능높고 경험많은 기대공들이라 해도 날을 따라 무리로 서버리는 기계를 막아내지 못했다. 몇년어간에 혹심한 마모로 자기의 수명을 다한채 부속으로 헐리우는 직기도 더러 있었다.

처녀시절부터 남다른 꿈을 안고 위훈을 쌓아가던 은심과 춘영에게 있어서 그것은 정말이지 가슴을 쥐여뜯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때 공장야간대학에 다니던 땅크병출신인 은심의 남편 리대철이 수리공들과 힘을 합쳐 제일 골치거리던 씨실공급기를 대담하게 떼내고 공기식으로 새롭게 개조해서야 철편직기는 어느 정도 자기의 생명력을 되찾게 되였다.

지난해부터 철편직기 호단위들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을 때 은심이 불쑥 전옥실영웅이 작업반장을 하는 7호단위로 옮기자는 의향을 춘영에게 내비쳤다.

춘영은 처음 동의하지 않았다. 이제껏 해를 거듭하며 이루지 못한 일을 봉창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끝내는 은심의 주장을 따르게 되였다. 일단 마음만 동하면 이여의 다른것은 생각지 않는 내밀성이 강한 은심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다기대라는 귀맛좋은 소리가 춘영의 마음을 움직여놓았던것이다.

소폭의 천을 짜는 북직기는 광폭의 천을 짜는 철편직기에 비해 동체가 작은데다 생산량이 절반밖에 안되였다. 따라서 다기대를 맡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더더욱 절실하게 제기되고있었다. 북직기가 추세였던 천리마시대에 다기대운동의 봉화가 세차게 타오르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그때문이기도 했다.

다기대운동은 많은 영웅을 낳았다. 70대, 80대의 다기대운동으로 천리마속도를 창조한 사람들… 그들의 작업반장인 전옥실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지금의 7, 8, 9호단위를 차지하고있는 북직기가 그때의 그 기대들이다.

허나 이제는 시대적으로 뒤떨어졌다. 설비상태로도 낡은 북직기는 능란한 기능과 함께 많은 잔손질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 기대를 맡아 이전의 기록을 돌파한다는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제일 많은 대수를 맡는다는 의미에서는 철편직기에 비해 훨씬 유리하였다.

춘영은 오늘에 와서 자기들이 직포에서 제일가는 다기대공이 되고 계획완수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데는 그때 7호단위로 방향전환을 주장한 은심의 공로에 의한것임을 새삼스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세월을 거슬러올라가면 희망의 봄언덕에 인생의 첫 리정표를 세우던 그 시절부터 은심은 그의 운명전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거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은심은 남이 보지 못하는것을 앞질러 내다보는 남다른 《눈》을 가지고있다. 뿐더러 늘 봐야 빨갛게 달아있어 학교때 《연지볼》로 불리우기 일쑤이던 그의 두볼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인양 내심의 열정과 진취적인 성격을 은근히 드러내보이고있었다.

은심은 춘영의 말에 재미있게 웃었다.

《호호… 친구를 위해 〈덕〉을 쌓았다니 듣기 좋구나. 어쨌든 난 오늘 기쁘다. 너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

《정말이니?》

《정말아니구.》 하고 은심이 웃음을 거두며 고개까지 끄덕여보이자 춘영은 흥분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은심이!》

《응?》

《이쯤 되면 우리 목표를 다시 정해야 하지 않을가?》

《어떻게?…》

《아까 직장장동지도 기대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던,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나도 언제부터 생각해본건데 이젠 승산이 보이는것 같애. 우리 대담하게 3년분과제를 목표로 하자!》

은심의 둥실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퍼져갔다.

3년분! 지난해의 2년분계획수행보다 1.5배 더되는 방대한 새 목표였다.

춘영이 참지 못하고 마주선 은심의 한팔을 당겨잡았다.

《이젠 온 공장이 우릴 보고있어. 누구나가 우릴 따라앞서려고 해. 이런 때 우리가 한본새로 나갈수야 없지 않아.》

절절한 그 어조를 타고 확확 풍겨나는 춘영의 후더운 입김이 은심의 마음에도 이름할수 없는 격동을 불러오는듯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온 나라가 준마를 타고 더 높이, 더 빨리 달리는 이때 오늘에 만족해있을수 없지. 우리 날아서라도 기어이 3년분을 해내자꾸나.》

은심의 열띤 화답소리에 이어 두 녀인은 달아오른 손을 꼭 맞잡았다.

그들은 다시금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은심이,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명상에 잠긴 춘영의 속삭임이였다. 꿈많은 중학시절에 이어 이 구내길에 첫걸음을 내짚던게 엊그제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가 하는 감개가 초여름의 훈훈한 저녁기운과 더불어 은심의 가슴에도 뿌듯이 차올랐다.

《그래, 마음은 아직 단발머리시절때나 다름없는데 어느새 남편과 가정을 가진 주부들이 되였으니 호호… 한데 정혜한테선 왜 여적 소식이 없을가?》

리상과 포부가 하늘에 닿았던 그 시절을 돌이켜볼 때면 자연 림정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젖어들군 하는 은심이였다.

춘영이 나직이 한숨을 내그었다.

《호― 이젠 6년이 지났어. 그애한테서 소식이 없는지가…》

림정혜… 중학시절 그들과 한아빠트에서 살던 가장 가까운 짝동무였다. 학교수학소조에서 뛰여난 수재로 인정받던 림정혜는 한학급 친구들인 은심과 춘영이 하루아침에 영웅이 될 포부를 안고 방직공장에 자원진출할 결심을 표명하자 자기도 그들과 한전선에 선다는 의미에서 한덕수경공업대학 방직공학부를 지망했었다. 녀성들의 창조와 혁신의 활무대이기도 한 방직부문에서 조국을 빛내는 세개의 금별이 될것을 약속하며…

경공업대학을 졸업하고 방직연구소 연구사가 된 림정혜는 춘영이 결혼한 그 이듬해에 같은 실의 한 연구사의 소개로 조선인민군 군관과 결혼하였다.

어느 한 발전소건설에서 남다른 위훈을 세우고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가 된 그의 남편은 인차 김일성군사종합대학추천을 받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부대가 새 발전소건설장으로 이동해가면서 남편이 대학입학을 한해두해 미루게 되자 림정혜는 갓 돌을 넘긴 아들 정호를 데리고 바늘따라 실가는 격이 되고말았다.

세 친구는 석별의 정을 나누며 오래지 않아 있게 될 상봉의 그날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림정혜는 그후 발신지가 서로 다른 곳에서 몇번 소식을 보내여왔다. 그러다 편지마저 스르시 끊어져버렸다. 그전에 한아빠트에서 살던 그의 부모들마저 시주변의 맏아들네 집으로 옮겨앉아 통 소식을 알수 없게 되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지금쯤 두툼한 학위론문을 준비하고있는지도 모르지. 속으로는 우리와 말없는 경쟁을 걸면서 말이야.》

은심의 말에 춘영은 바싹 조바심을 쳐댔다.

《옳아, 방직공학박사가 되겠다던 그 꿈을 정혜는 쉽게 버리지 못할걸. 뭐든지 꼭 해낼거다.… 은심이, 안되겠어, 더 분발하지 않다간. 정혜가 박사메달을 척 달고 나타나서 우리더러 뭘하고있었냐 물으면…》

《애두, 방금 우리도 새 목표를 내걸지 않았니. 중요한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를 찾는거다.》

《방도? 그거야 기대를 더 맡는외에 뭐가 더 있겠어. 그게 날개 하나를 더 다는 격이야. 내 그래서 아까 직장장동지한테 그 요구를 한거다.》

방금전 은심과 춘영은 직장장의 부름을 받았었다. 그들이 사무실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이미 두사람이 먼저 와있었다. 작업반장 전옥실과 담당수리공 리렬이였다.

Τ자형으로 놓인 긴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던 직장장이 전에없이 은심과 춘영을 향해 손을 내들었다.

《어서 오오, 그동안 수고들이 많았는데.》

긴걸상에 앉았던 전옥실이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좁혀주었다.

셋이 자리를 나란히 하자 김록균의 길쑴한 얼굴에 의미있는 웃음발이 퍼져갔다.

《허, 그렇게 앉고보니 아주 좋구만. 어제날의 7호단위 영웅직포공과 오늘의 7호단위 혁신자들… 어드래, 리렬이!》

그 무슨 새로운 발견을 한것처럼 흐뭇이 읊조리던 김록균이 맞은켠의 리렬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는 대답을 피하듯 씁쓸히 웃기만 했다.

김록균은 민망스런 눈길을 마주치는 은심과 춘영을 일별하며 껄껄 웃었다.

《허허… 갑자기 희떱게 군다는 식인데 아니, 난 우리 1직포에서 맨 선참으로 새 세기의 영웅방직공이 나오게 할 결심이요. 이번 생산경기가 그걸 확고히 담보해주고있소. 은심동무, 춘영동무, 기뻐들 하오. 오늘 생산경기중간총화가 있었는데 동무들이 공장적으로 단연 앞자리를 차지했소.》

흥분에 뜬 김록균의 말에 춘영은 목소리를 떨며 반문했다.

《네? 공장적으로 말입니까?》

《그렇지 않구. 우리 직포종합직장은 물론 방적, 견방, 염색 통털어서 제일 앞자리란 말이요. 이번엔 춘영동무가 은심동무보다 한발 더 앞섰는데 이렇게 여러해째 1, 2등을 우리 직장에서 고수해나가고있다는게 얼마나 큰 성과요. 그것도 가정부인들이 말이요. 딴 직장장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그래 내 그들앞에서 장담했소. 새 세기에 들어와 6년이 지난 오늘 우리 직장에서 제일먼저 〈장훈이야!〉 하지 않나 보라고 말이요. 어떻소? 반장동무!》

김록균의 자신만만한 눈길이 이번에는 전옥실에게로 향해졌다.

이미 70고개를 훨씬 넘긴 전옥실은 한창때의 자신이 돌이켜지는지 주름진 얼굴에 소리없는 웃음을 담았다. 그러다 대답을 재촉하는듯 한 김록균의 눈길에 옆에 앉은 은심의 손을 당겨쥐였다.

《정말 쉽지 않은 동무들인데 우리가 옆에서 더 잘 도와줘야지요.》

《옳습니다. 전세대 영웅들의 위훈이 깃든 7호단위에서 새 세기의 영웅이 나오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지요.》하며 김록균은 벅찬 심정을 이기지 못하듯 마주한 책상을 두팔벌려 힘껏 그러잡았다.

《난 동무들이 오늘의 성과에 절대 만족해선 안된다고 보오. 지금 공장분위기를 보면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전투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올해구호를 받들고 직장마다 다추, 다기대공들이 경쟁적으로 나오고있소. 그러니 절대로 탕개를 늦추지 말아야 하오. 더 높은 목표를 내걸고 남보다 더 빨리, 그래서 마지막까지 기수의 영예를 지켜야 해.… 음, 우리 1직포가 경쟁에서 뒤진다는건 말도 안되지.》

김록균이 긍지높이 자기 직장을 내세울만도 하였다. 압착솜을 타개여 실을 뽑는 공정으로부터 염색한 천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다 갖추고있는 방직공업의 총체라고도 할수 있는 여기 공장에서 직포부문은 특히 중요하면서도 그중 힘든 공정이라고 할수 있다.

공장일군들이 큰 회의나 주요행사를 준비할 때면 언제나 《직포》를 선참으로 꼽는것이 그때문인지도 모른다. 직포종합직장안에서도 1직포는 예나지금이나 이름그대로 맨 앞장에 있다.

젊은 시절부터 1직포에서 수리공을 거쳐 부직장장, 직장장이 된 김록균이 스스로 력사가 깊은 직장이라고 일컫는것은 공장의 10명남짓한 로력영웅중에서 4명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는데 있었다. 그것도 북직기구간인 7호단위에서 쉽지 않은 력사가 창조된것이다.

60을 넘보는 지금에 와서도 7호단위에 대한 그의 기대는 변함이 없었다. 자기 인생의 총화와도 기인되였다.

김록균은 믿음에 찬 눈길로 두 녀인을 바라보았다.

《직장에선 은심동무와 춘영동무가 소리치며 앞장에서 계속 나갈수 있게 적극 밀어줄 결심이요. 그래 부직장장동무와 여기 옥실반장과도 합의를 봤는데 래일부터 반장동무를 전적으로 동무네 7호단위 보조공으로 붙이기로 했소. 그러니 알만 하겠지?》

묻는다기보다 두 기대공에 대한 직장의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알라는 눈치였다.

은심은 놀라운 눈길로 김록균과 전옥실을 번갈아보았다.

(나이많은 반장어머니를 우리한테 붙이다니?)

어려서 부모잃고 고아가 되였던 자기를 사랑의 품에 안아 온 나라가 다 아는 영웅으로 내세워준 당의 은덕에 숨이 지는 순간까지 보답하겠다며 현장을 뜨지 않고있는 전옥실이였다. 작업반은 물론 교대안의 양성공들을 도맡아 기능을 높여주고 젖먹이시간이면 애기어머니들의 성실한 교대자가 되여 뛰여다니는 그, 그런 그를 전적으로 7호단위에 붙여준다는것은 은심과 춘영에게 날개를 달아주는것이나 다름없었다.

더할나위없는 특혜였으나 작업반생산을 생각할 때 선뜻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또 전옥실영웅의 년로한 몸에 과중한 부담으로 될수도 있었다.

은심은 미안한 마음을 참을수 없었다. 고마운 일이나 자기들만을 위한 특혜에 동의할수 없었다.

《직장장동지, 우린 일없습니다.… 반장어머닌 신입공들에게 더 필요합니다.》

언뜻 춘영을 돌아보고난 은심은 앞으로 생산을 더 낼수 있는 방도를 최대한 짜내면 자기들 힘으로도 얼마든지 해낼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록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제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음, 방도도 찾아야지. 하지만 중요한건 직장안에 다기대공들을 위하는 분위기를 세우는거요. 왜? 2년분완수를 바라보는 동무들한텐 이 마지막고비가 결정적인 순간이기때문이요. 마라손에 비유하면 극한점이라고도 할수 있지. 바싹 긴장해서 빨리 〈결승테프〉를 끊어야지 그렇지 않다간 딴 직장에 선손을 떼울수 있소.》

김록균의 말에 리렬이 짙은 눈섭을 쭝긋거렸다. 그러다 아무래도 안되겠던지 언짢은 투로 한마디 했다.

《은심동지 말이 옳다고 봅니다. 일은 뭐 우리 7호단위만 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선수본위가 딴 기대공들의 손맥을…》

《여보, 여보, 리렬이!》

김록균의 한층 높아진 어성이 리렬을 밀막았다.

《동문 제 호담당도 모르는 사람같구만. 그러니 동무네 호단위에서 의견이 있을수밖에.》

춘영의 눈초리가 눈에 띄게 깔끔해졌다. 약간 쳐들린 턱이 더 뾰족해보였다.

김록균이 조금 어조를 달리하며 계속했다.

《동무가 남달리 성실하고 직기에 대한 탐구심도 강해서 중요한 7호단위를 맡겼는데 그렇게 나오면 안되지. 동문 아직 생산단위의 경쟁법칙, 그 생리를 잘 모르는것 같애. 그러니까 별치 않은 고장을 놓고도 무슨 연구랍시고 30분씩이나 기대를 세워두는 일이 다 있지? 내가 일을 연구적으로 진지하게 대하는걸 반대하는건 아니야. 하지만 립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구. 한메터의 천이라도 더 짜겠다고 애면글면하는 기대공의 심정을 말이요. 그럴 때 손맥이 풀린다 하는거요.》

《네? 》

놀란것은 리렬이만이 아니였다. 은심은 아래입술을 감물었다. 7호단위는 다기대구간인것으로 하여 기대공이 춘영과 자기 둘뿐인것이다.

(춘영이 또 불만을 쏟아놓은게구나.)

얼마전 그런 일이 있었다. 북침대를 개조하여 귀중한 가죽을 절약할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자 흥분한 리렬은 춘영의 기대에서 떼낸 북침편을 들고 곧장 편직사 직장장이 된 대철을 찾아갔었다.

그때 춘영은 로골적으로 은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이건 정말, 담당수리공이라면 호단위생산부터 신경써야지 창안이요 뭐요 하며 들떠다니지 않나. 딴 호단위에 불리워가선 찰떡같이 들어붙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지 않나. 에이…》

《남들은 그래도 기능이 높은 보배덩일 차고있다고 부러움이 여간 아니던데.》

춘영은 은심의 두둔에 코웃음을 쳤다.

《흥, 기능높은 수리공이 그 하나만이야? 경쟁심도 없이 잔뜩 어져빠져가지고… 그러니 처녀 하나 쟁취못해 삼년석달 저 모양이지.》

직포직장마다 작업현장은 여러개의 호단위로 나뉘여져있다. 그 매 호단위마다 담당수리공이 있어 설비관리와 고장퇴치를 맡아보는데 그들의 역할이 직포공들의 생산계획수행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컸다.

《사탕 한알이 생겨도 자기 입이 아니라 수리공의 입으로》 하고 직포공들사이에 자연스레 오가는 친밀한 그 말이 결코 우연한 소리가 아니였다.

김록균은 두 기대공앞에서 리렬에게 언성을 높인것이 안되였는지 인츰 느긋한 표정을 짓고 직포공과 수리공과의 합심을 듣기 좋게 강조하였다.

마감에 제기할것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춘영이 기다렸다는듯 일어나 기대대수를 늘이는것이상 큰 방도는 없다고 했다.

김록균은 잠시 고개를 기우뚱했다.

《지금기대만으로 안될가?… 은심동무도 같은 생각이요?》

현장의 형편을 알고있는 은심은 뭐라고 말을 할수가 없었다.

춘영은 무조건 대답을 받아낼 잡도리인듯 례의 그 고운 얼굴과 어조에 애바른 빛을 가득 담았다.

《직장장동지, 어떡허나 해내겠으니 기대만 더 주십시오. 우린 그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도움을 청하듯 춘영은 전옥실에게도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음―》

김록균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사실 기대를 더 달라는 요구야말로 얼마나 좋은것인가. 그만큼 더 날아보겠다는것인데 어떡허나 기대조절을 해서라도 선두에서 나가는 이들한테는 날개를 달아주어야 했다.

《알겠소. 내 설비과장과 토론중인 문제가 있는데 아퀴를 지은 다음 보자구.》

그 말에 춘영은 문제가 다 해결되기라도 한듯 희열에 떠 은심을 돌아보았다. 그와는 반대로 은심의 얼굴에는 알수 없는 의혹이 엷게 비껴있었다. 설비과장과 토론중인 문제가 대체 뭐길래 기대를 더 맡는 문제와 련관시키는걸가?…

직장장실에서 받아안은 그 의혹이 다시 슬몃거리자 은심은 저도모르게 혼자소리를 했다.

《설비과와 토론한다는건 무슨 소릴가?》

《응?》

춘영이 듣지 못한듯 했다.

은심은 춘영의 기분을 흐릴세라 저어하며 계속했다.

《기대를 더 맡는 문제 말이다. 너무 특혜를 바라는 일이 아닐가? 우리를 위해 놀고있는 기대가 어데 있다구.》

《못은 뭐 짬이 있어 들어간다던? 여러 생각할것 없어. 오직 하나, 있는 힘껏 내달려 오늘의 앞자리를 끝까지 고수하는것, 이것이 직장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의 처녀적 꿈을 위해서도…》

춘영의 말이 갑자기 두부모 잘리듯 했다. 뒤쪽에서 자전거의 다급한 종소리가 울렸던것이다.

그들은 넓은 차도로가 좁다하게 걷던 자신들을 깨닫고 황급히 인도로에 올라섰다.

그들이 틔여준 길을 따라 자전거 한대가 질주하듯 씽하니 지나갔다.

《리렬동무구나.》

춘영이 뒤모습을 보고 제꺽 알아맞혔다.

《어데 가게 저렇게 급해하는거야?》

《보면 모르겠니? 또 최미래의 합숙을 찾아가는 길이겠지.》

직장장실에서 있은 일때문인지 춘영의 말투에서는 어딘가 비웃음이 느껴졌다.

리렬은 원래 직포수리직장의 대보수작업반에서 보수공으로 있다가 직포직장 수리공로력이 보강되면서 3년전부터 1직포의 교대수리공으로 옮겨왔었다. 지난해 공장야간대학을 졸업한 그는 두건의 가치있는 창의고안을 하여 처녀들뿐아니라 종합직장 일군들속에서도 호평이 대단하였다. 단지 서글픈 일은 서른고개에 올라선 오늘까지 아직 한 처녀의 심장을 완전《점령》못하여 속을 태우고있는것이다. 그가 바로 춘영을 친언니로 따르는 《준마처녀》 최미래이다. 처녀들속에서 돌아가는 말이 미래 역시 리렬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닌것 같은데 줄듯말듯 하면서 고무줄 한가지로 질질 늘군다는것이였다.

키가 늘씬한데다 크고 시원한 눈매를 가진 미모의 처녀 최미래를 생활은 그저 관상용으로만 놔두지 않았다. 아름다운 꽃송이에 나비들이 모여들듯 사방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처녀는 주저없이 대답하군 한다. 자기에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자기가 기다린다는 소린지 아니면 총각이 기다린다는 의미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그 말은 주위사람들로 하여금 최미래가 리렬을 영 생각지 않는것은 아니라는 단정을 하게 했다. 하면서도 해를 거듭하자 처녀가 지내 태가락을 부린다고 말들이 분분했다.

은심도 처녀가 지내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리렬이 무에 짝지는게 있는가. 제대군인에 대학을 졸업하고 기사자격을 받았겠다. 현장에선 기계수리에 능해 직포공들마다 담당수리공이 되였으면 하고 탐내는 보배덩이총각이다.

은심이 리렬을 더욱 마음들어하게 된것은 남편 리대철을 도와 철편직기의 씨실공급기를 공기식으로 대담하게 개조한 때부터였다.

남편도 그런 연고로 해서인지 이번에 새로 일떠선 현대적인 편직사직장의 직장장이 된 다음에도 성실하면서도 창조적지향이 강한 리렬을 여간만 탐나하지 않았다.

은심은 춘영이가 최미래의 친언니가 되기라도 하듯 기회때마다 퉁을 놓군 하였다.

《처녀가 턱을 지내 쳐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저러다 꽃시절을 놓치면… 옆에서 너무 무관심한것 같애.》

《흔치 않은 총각이다. 이번에 우리 7호단위 담당수리공이 되자마자 북침대부터 새로 개조한걸 보지, 숱한 가죽을 절약하게 됐대.》

지금도 은심은 그런 의미가 담긴 눈길로 춘영을 보았다.

춘영은 허거픈 웃음을 앞세웠다.

《흥, 처녀땐 업고라도 다닐듯 곰살궂게 굴다가도 가정만 가져보지. 남편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가.… 창안이 곧 인간됨을 말해주는건 아니야. 덤빌 필요가 없어. 기껏 퇴겨보라는거다.》

은심은 피끗 그의 남편 문광혁을 상기했다. 한때 그가 그랬지. 평양기계대학을 졸업하고 방직공장에 현실체험을 나와있던 그 시절 춘영을 너무도 뜨겁게 열렬히 사랑하여 짝이 없던 내가 다 외로운 한숨을 남몰래 쉬군 했지. 한데 지금은…

그들은 말없이 공장정문을 나섰다.

차도로 하나를 사이둔 방직기계공장이 마주쳐왔다. 무리등 휘황한 공장정문이 다시금 문광혁의 생각을 불러왔다.

경공업과학원 방직기계고속화연구소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그가 오랜 탐구와 고심끝에 완성한 우리 식의 새 유연창대직기의 제작을 위해 지난해 여름 한동안 이 공장에 나와있었던것이다.

그때까지만도 문광혁은 아이가 없는 춘영이 위축감을 느낄세라 여러모로 마음쓰며 남편의 성실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아직도 삼삼하다. 갑자기 퇴근길에 소낙비가 들부어지던 날 공장 접수실처마밑에 우르르 몰려들어 비를 긋고있는 은심이네 가까이로 우산을 들고 뛰여오던 문광혁의 모습이.

남편을 알아본 춘영이 숫저운 속에서도 제비처럼 우산밑으로 날아들자 가뜩이나 입담이 센 녀인들은 때를 만난듯 부러움의 소나기를 와짝 쏟았다. 쉽지 않은 원앙새부부라느니, 녀자는 역시 곱고봐야 한다느니, 아들딸 셋을 낳아주고도 저런 따끈한 사랑 한번 못받아봤다느니… 정녕 봄날의 쟁글쟁글한 볕발같던 그들의 사랑이였다.

춘영은 무심한듯 걸음을 재우쳤다. 어느새 기계공장 정문을 지나 그옆에 있는 뻐스정류소를 가까이하고있었다.

춘영을 따라잡은 은심은 헤여지기에 앞서 그의 가방 한귀퉁이에 준비해가지고나왔던 인삼술 한병을 찔러넣어주었다.

《이건 뭐니?》

은심은 부러 명랑해졌다.

《너의 랑군님한테 드리는 〈진상품〉이다.》

춘영은 굳어진듯 은심을 보았다.

《어떻게… 넌 잊지 않았구나. 고맙다.》

오늘이 춘영의 생일이였던것이다.

춘영의 잦아드는 입속말에 은심은 놀랐다. 내가 잊지 않았다고? 그럼 문동문… 분명 남편을 빗대고 하는 소리다.

하지만 은심은 내색을 안했다.

《애두 참, 별소릴 다… 어쨌든 오늘은 여러모로 좋은 날이다. 우리의 새 목표를 위해서 문동무와 축배! 알겠지?》

은심은 춘영의 대답을 듣지 못한채 그와 헤여져야 했다.

춘영이 대답을 서두르지 않은데다 인차 뻐스가 와 멎었기때문이다.

은심은 그늘진 마음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춘영이, 너무 마음쓰지 마. 문동무도 너의 성과를 알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거야. 너의 일욕심에 더 반하게 됐다던 동무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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