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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 장


드넓은 미루벌에 또다시 봄이 왔다. 해빛은 자못 따사로와 떡가루같이 호함져보이는 적토빛토양은 금시 겨울잠을 털어버리고 달콤한 아지랑이를 한껏 피워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너무도 박절하고 야속한 세상의 떠밀리움만을 받아온 이 고장을 가긍히 여겨 매해 봄 한철에만 주군 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혜택일뿐이다. 그만큼 지겹고 지겨운 미루벌…

미루벌은 신생대 3기말~4기초 백두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화산이 분출되던 시기 균렬을 따라 용암이 흘러내려 덕땅으로 형성되였다. 곡산군의 북동쪽에서 시작되여 신계군과 수안군을 포함하는 미루벌은 연 420㎢의 넓이를 가진 엎어놓은 접시모양을 하고있었다. 미루벌을 덮은 현무암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점차 무연한 소나무숲을 키워낸 땅으로 변하였다.

예로부터 이 고장에는 《버버리 곡산가듯》이라는 고사가 전해지고있다. 버버리란 벙어리의 준말로서 곡산이 어디냐고 물어보거나 두리번거릴것도 없이 끝없이 뻗어나간 소나무숲속의 외가닥오솔길을 발가는데로 따라가면 곡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고사이다.

그 소나무숲에 첫 농경지 비슷한것이 생겨난것은 조선봉건왕조초엽이였다.

립동이 지난 어느날 이른아침, 땅이 비옥하여 곡식이 잘되고 동네앞의 금계천에는 물고기가 많아 살기좋은 곳으로 불리우는 신성벌의 양지마을에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미세한 색다른 냄새도 가려내고 바스락소리에도 귀를 쭝깃거리는 동네개들이 동구밖에 나타난 검은 무리들을 향해 무섭게 짖어댄것이였다. 관가의 라졸들이였다.

검은 옷에 뻘건줄이 감긴 모자를 쓴 라졸들은 승냥이떼처럼 짖어대는 개들을 피해 무춤거리다가 객기를 부리며 발길질을 하였다. 지어 칼을 뽑아드는 놈도 있었다. 발길에 채워 깽-깨깽 비명을 지르면서도 기를 쓰고 짖어대는 개들의 울부짖음이 마을의 아침공기를 찢어발겼다.

이른아침부터 선잠에서 깨여나 내몰리우는것이 시푸녕스러운데다가 개무리까지 끈질기게 덤벼드는데 약이 오를대로 오른 라졸들은 그 밸풀이를 마을사람들에게 해댔다. 알뜰한 녀인들이 겨울김치를 담그려고 초절임한 배추포기들은 울타리안에 여기저기 휘뿌려졌고 장독들도 깨여져 걸쭉한 장들이 라졸들의 발에 짓밟혔다. 놈들은 성칼스럽게 꽥꽥거리며 마을사람들을 모두 금계천기슭으로 끌어갔다.

라졸들을 거느리고 나온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형방아전이 살기를 띠고 마을사람들앞에 나섰다.

《에, 이 양지마을이 주동이 되여 달포전에 관세가 높다고 아우성치면서 박종산신성부사님의 직인을 빼앗고 빈함에 넣어 지경 30리밖으로 내던졌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사시절 농사를 지어 북데기까지 털어바쳐도 각종 명목의 관세를 다 물수가 없었던 그들이였다. 관가에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사정도 해보았다. 하지만 더더욱 피나게 긁어내는 량반통치배들의 학정은 마을사람들에게 참을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끝내 참을수 없었던 양지마을사람들은 린근마을과 합세하여 관가에 쳐들어갔다.

당시 봉건법에는 고을부사가 직인을 빼앗기고 30리 지경밖으로 내던져지면 봉고파직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역시 량반세상이였다.

형방아전은 더욱 목청을 돋구었다.

《새로 부임하신 부사께서 양지마을 불량민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소요가 계속될것인즉 신성벌의 불화근원을 송두리채 들어내라는 령을 내리셨다. 죄는 죄대로 간다고 이 시각부터 너희들은 양지마을에서 살수 없다!》

와― 터져오르는 울부짖음속에서 마을의 좌상격인 박우물집 홍로인이 은발수염을 후들후들 떨며 추상같이 소리쳤다.

《조상전래로 이 땅에 태를 묻어온 우리를 어느 누가 살라말라 당치않은 령을 내린다더냐? 부처님이 굽어보신다!》

그러나 라졸들은 《부처님》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들에게 오라를 지워 관가로 끌어가는 한편 마을을 온통 불살라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직접 호송하여 개쫓듯 백여리지경밖으로 내던져버렸다. 대낮에도 컴컴한 인적없는 소나무숲속이였다. 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보겠으면 두번다시 양지마을에 얼씬말라는 폭언을 쏟아붓고 라졸들은 되돌아갔다.

기신없이 늘어졌던 사람들이 이마를 선뜩케 하는 차거운 감촉에 눈을 떠보니 솔숲사이로 어설프게 보이는 재빛하늘을 꽉 메우며 까밋까밋한 눈송이들이 펄펄 날리고있었다.

이번에도 박우물집 홍로인이 사람들을 일궈세웠다.

《저 산중턱에 눈을 그을 우묵진 곳이 있는데 그리로 갑시다. 그놈들이 좋아하라고 여기서 맥놓고 죽겠소?》

그들은 그 우묵진 땅에 토굴집을 짓고 간난신고를 다하며 겨울을 보냈다.

드디여 봄이 왔다. 그들은 이른새벽부터 여러겹으로 꼰 칡바줄을 소나무에 걸어 뿌리채 뽑는 역사질을 시작했다. 농사지을 땅을 얻어야 했다.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것은 종일 돌아다녀도 호미날에 걸치는 돌멩이 하나 보이지 않는 황금단지같은 땅이였다.

그들은 감지덕지하였다. 부처님이 량반들이며 라졸들에게 천벌을 주지는 않았어도 자기들 또한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움때문이였다.

홍로인네 일가는 젖먹이손자를 밭머리에 눕혀놓고 걸음마를 떼는 아이들까지 봄여름내 밭에서 살며 애오라지 자기들을 먹여살릴 열매를 바라고 두손이 모지라지도록 땅을 가꾸었다.

하지만 그 땅을 굽어보는 아호비령은 씨붙임이 끝나기 바쁘게 서리찬바람으로 곡식싹들을 휩쓸었고 뒤따르는 가물은 사람도 이랑도 모두 숯등걸처럼 태워버렸으며 목마르게 기다려온 한줄금의 비발은 또 그것대로 금시 온 벌을 발뽑지 못할 진흙탕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가을은 그들앞에 설렁거리는 고추토리같은 조이삭 몇대만을 겨우 남겨주었다.

홍로인은 저주로운 그 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 생겨먹기는 이렇게 멀쩡하건만 씨앗을 묻고 자래워도 열매를 익히지 못하는 이 병신같은 땅아!…》

이미 홍로인의 턱에는 말라버린 강냉이수염같은 수염 몇오리만이 쇠잔하게 드리워져있었다. 지금까지 홍로인의 의지대로 생활의 다반사를 풀어나가던 마을사람들은 의기소침해져버린 그의 모습에 절망하였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서 둘째좌상으로 불리우는 목이 앙바틈한 연로인이 일가식솔들을 거느리고 홍로인앞에 송구스러워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형님, 난 정말이지 형님과 떨어져서 살것 같지 못하오만 이 풀싹 같은 애어린 생명들은 어찌하겠소이까. 내 기름진 땅을 찾고 형님을 모시러오겠으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소이다.》

그는 짐을 진채로 홍로인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리였다. 뒤따라 머리가 땅에 닿을듯이 절을 올리는 녀인들의 흐느낌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

연로인처럼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대신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방황하던 타지방의 사람들이 이 적갈색토양에 혹하여 주저앉기도 했다.

그무렵 조정에서는 어지러운 당파싸움이 그칠새 없었다. 때를 만난듯 탐관오리들도 백성들을 수탈하여 제 배를 불리기에 피눈이 되였다. 깨와 백성은 짜면 짤수록 기름이 많이 얻어진다는 말이 생겨난 곳이 이 고장이였다.

사람들의 피와 살을 불악귀처럼 모질게 발가내는 량반통치배들에 대한 반항으로 전국도처에서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정부에서는 폭동에 나섰던 주모자들을 처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인간이 숨을 쉬고 생존하기가 힘든 불모지로 추방하여 구겨박히게 하였다. 당시 봉건정부에서 정배지로 점찍어놓은 곳은 황해도 신계, 곡산, 평남도 양덕, 맹산, 량강도 삼수, 갑산이였다.

우리 나라의 유명한 방랑시인이였던 김삿갓(김병연)이 강보에 싸여 던져진 곳도 여기 미루벌이였다. 선천방어사였던 할아버지가 조정의 당파싸움에서 밀려나 삼대를 멸족당했는데 다행히 그의 하인이 김삿갓을 강보에 싸안고 도망쳐 은둔하였던것이다. 여기서 이름을 숨기고 자란 그는 삿갓을 쓰고 한생 방랑시인으로 수많은 유명무명의 시를 쓰다가 말년에 무슨 미련이 있었는지 이 불모지에 와서 세상을 하직하였다.

실학파의 정다산도 곡산부사로 밀려왔다. 곡산의 정배지를 이때에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곳이라는 뜻에서 《밀례》라고 불렀다.

양지마을의 정깊었던 사람들이 거의 떠나간 후 갈범같이 펄펄하던 홍로인도 솔가리처럼 말라가더니 어느날 밭고랑에 쓰러졌다. 그는 자기를 구완하려고 식솔들이 권하는 미음 한숟갈, 물 한모금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림종무렵에야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통탄스럽구나. 밀리고 밀리는 이 모진 땅에서 너희들에게 남길것이란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이 전부니 … 용서해다오.》

자식들은 뿌리가 뒤엉킨 소나무밑에 아버지를 안장하였다. 그들은 아버지를 외로이 두고 떠날수가 없어 그만 그 땅에 주저앉고말았다. 밀려나고 미루어버리는 눈물겨운 환난끝에 미루벌이라는 지명으로 고착된무렵이였다.

조선력사의 갈피에 흔적을 남긴 곡산농민폭동이 일어났다. 미루벌이주민들의 폭동이 전국에 파급될가봐 질겁한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후세에 매국역적으로 락인찍혀진 을사오적 리완용을 대신이랍시고 파견하였다. 리완용은 게딱지같이 널려있는 토굴집들을 돌아다니며 미루벌을 쌀이 쏟아지는 곡창지대로 만들겠다고 정부의 이름을 걸고 맹약하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여나 하는 미련과 기대를 품고 일일천추로 기다리던 소식대신 《시일야방성대곡》의 피절은 통곡소리가 미루벌에 흘러들었다. 뒤따라 《쾅!… 콰쾅!…》 굉음이 울리더니 귀신같은 불덩이가 날아들어 사람들의 눈을 뒤집어놓았다. 눈앞에 서있던 토굴집들이 날아나 페허가 되고 마주서있던 사람들이 사지가 찢기고 시체가 되여 나동그라졌다. 일제놈들의 침략의 마수가 미루벌에도 뻗쳐지기 시작한것이였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몽골에 일부 남아있는 야생말을 제외하고는 말의 순종이 멸족되여가고있는 형편이였다. 하여 왜놈들은 1930년 미개척지인 미루벌에 《동양척식회사》의 말종자개량을 위한 종마장과 방목지, 군마훈련장을 꾸렸다. 그리고 산천경개가 아름다와 우물속에서 룡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룡현팔경》으로 이름 높은 명승지들에 저들의 호화로운 사택들을 지어놓고 이 고장 토배기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해뜨는 아침, 달뜨는 저녁이면 수풀속으로 흐르는 시내물가에 퍼더앉아 흰구름을 읊조리던 정다산의 시조가 랑랑하고 절승경개를 노래하던 김삿갓의 찬탄에 새들이 화답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던 곳이 백주에 말의 란무장으로 화하였다.

하지만 악착한 왜놈들의 세상이 오래 갈수는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혈전만리길을 헤치시여 조국해방을 안아오신것이였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낟알을 주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미루벌만은 해방의 열광속에서도 여전히 쪼들린 가난의 허울을 벗지 못하였다.

1949년 9월 21일이였다. 일촉즉발의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고있는 분계연선지대를 시찰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중부지대를 아직 밟아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비발이 뿌려지고있는 잡초무성한 미루벌에 오시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병이 위급하다면서 빨리 평양으로 가실것을 바라는 일군들의 간청을 받으신 상태였다.

《여기서 평양까지 얼마요?》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고나서 아득한 평양의 하늘가에 시선을 보내시며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정숙동무, 내 이제 곧 떠날테니 부디 힘을 내여 기다려주오!》

해방은 되였지만 가난한 생활고에 허덕이고있는 인민들의 생활이 못내 가슴에 걸려 늘 깊은 잠에 들지 못하시던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목이 메이시는것을 강잉히 참으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정숙동무는 자기때문에 우리가 미루벌을 돌아보지 않고 왔다면 더 괴로와할거요. 동무들도 일을 뒤로 미루는것을 제일 싫어하는것이 그의 천성이라는걸 알거요. 해방된 오늘에까지 미루벌을 더이상 미루어둘수는 없소.》

그 순간 비바람을 타고 누군가의 애된 목소리가 한적한 산천의 고요를 깨뜨리며 청아하게 들려왔다.


방아방아 찧어라

수수방아 찧어라

좁쌀방아 찧어라


그 노래소리에 반주를 하듯 《찌쿵―쿵― 찌쿵―쿵…》 물레방아소리가 들려왔다. 허름하게 대충 웃설미를 한 물레방아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저기서 좁쌀방아를 찧고있구만.》

그이께서는 아프게 뇌이시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방아간에는 이마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물레방아를 돌리고있던 농민과 동그스름한 얼굴생김이 비슷해보이는 두 처녀애가 쪼그리고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뜻밖에 나타난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 후닥닥 뛰쳐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큰절을 올리는 물레방아간주인의 손을 잡아주시며 머루알같이 까만 두눈을 반짝이는 두 처녀애에게 물으시였다.

《왜 수수방아, 좁쌀방아만 찧고있느냐?》

언니인듯 키가 좀 큰 처녀애가 수줍게 말씀올리였다.

《여긴 좁쌀과 수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작은 처녀애가 장한듯이 뒤를 달았다.

《감투밥과 고깔밥도 있습니다!》

《감투밥과 고깔밥?…》

그이께서는 처음 들으시는 말이여서 의아쩍게 반문하시였다. 그러자 동행했던 나이지숙한 리일군이 제꺽 말씀드리였다.

《미루벌사람들은 흰쌀밥이 너무 귀해 조상들의 제사를 차릴 때 조밥을 사발에 담고 그우에 살짝 흰쌀밥을 씌웁니다. 조밥을 감투밥이라고 부르고 흰쌀밥을 고깔처럼 씌우면 고깔밥이라고 부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비발이 굵어지고있는 재빛하늘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길은 엉망진창으로 변해가고있었다. 진창길에서는 발을 옮겨디디기가 헐치 않았다.

미루벌사람들은 비오는 날이면 아예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어쩔수 없어 들길에 나섰다가는 신발을 잃기가 일쑤였기때문이였다. 진창에 빠지면 신발을 벗기웠다가 봄갈이때에 짝짝이 신발들이 나타나군하는 일도 례상사였다. 이 벌의 많은 전설들속에는 신발잡아먹는 땅속귀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고 그 일군이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오래도록 구질거리는 미루벌전경을 바라보시다가 황금으로 제방을 쌓는 한이 있어도 저수지를 건설하여 미루벌을 개간해야겠다고 하시며 계속 말씀을 이으시였다.

《미루벌의 흙이 찰떡처럼 질기구만. 사람 못살 땅이래도 내버리지 말아달라고 발을 붙들고 놓지 못하며 하소연하는것만 같소. 나도 시간이 있으면 미루벌농민들과 함께 여기서 농사를 짓고싶소.》

그날 그이께서는 쏟아지는 비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험한 진창길을 오래도록 걸으시며 미루벌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었다.

이튿날인 9월 22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서거하셨다는 부고에 접한 미루벌사람들은 평양하늘을 우러러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못나고 못난 이 땅때문에 김정숙어머님의 생의 마지막시각까지 위대한 수령님을 지체시킨 죄스러움에 가슴이 터진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렬한 전쟁의 나날은 물론 그후에도 여러차례나 미루벌을 찾아주시였다.

한번은 종파분자들이 나라의 농업문제를 토의하는 중요회의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 미루벌협동농장들을 페지하자고 주장해나섰다. 회의를 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여 휴회를 선언하시고 점심도 건느신채 곧장 농업지도일군들과 함께 미루벌로 나오시였다. 그리고는 거친 땅을 이곳저곳 손으로 파보시며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피로 지킨 드넓은 이 땅을 우리가 미루어버린다면 미루벌농민들은 어떻게 하며 경지면적이 적은 우리 나라에서 어디에다 농사를 짓겠소. 어머니들을 생각해보시오. 지난날 우리 어머니들은 천이 없으면 자기단벌옷이라도 뜯어 자식들에게 옷을 해입히고 쌀이 없으면 자기 머리태를 팔아서라도 쌀을 사서 밥을 해먹였소. 이런 타산을 모르는 사랑을 지녀야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칠수 있습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함께 오시여 삽을 들고 작물의 뿌리깊이도 가늠해보시면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누운질인 이 토양은 수분계와 공기계가 나쁘다고, 가물때에는 땅이 굳어서 작물의 뿌리발육에 지장을 주는 강산성토양인만큼 미루벌의 토양구조에 맞는 농사방법을 확립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 몸소 홰불을 드시고 뒤엉킨 잡초를 헤치시며 저수지자리를 잡아주신것도 그때였다.

미루벌은 그 넓은 지경을 샅샅이 훑어도 돌멩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호미자루에 날을 박아넣을 돌멩이조차 없어 두 호미를 마주대고 때려넣어야 하는 곳이 미루벌이였다. 화산분출로 생긴 돌은 유독 곡산군의 막바지 청암리에 다 모여 쌓여졌는데 그때문에 사람들은 그 봉우리를 돌미산이라고 불렀다. 뜻깊은 기념일이나 기쁜 일이 있으면 미루벌사람들이 먼저 찾는 곳이 바로 돌미산이였다.

그곳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미루벌에 남기신 사랑의 령도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해 세운 사적비가 정히 세워져있었다.

…지난 세기 90년대초엽, 청암농장에서 미루벌의 산 증인이라 할수 있는 장춘삼로인은 자기가 모는 말파리에 앉아 눈앞에 우뚝 솟은 돌미산을 바라보고있었다. 청암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떠나는 세 처녀가 꽃다발을 안고 그 돌미산에 오른것이였다. 장춘삼은 그들을 말파리에 태워 떠나보내던중이였다.

봄빛은 호듯호듯 내려쪼이고 이따금씩 이름모를 새들이 머리우에서 무리지어 날아갔다. 그 새들을 좇아 파아란 봄하늘에 눈길을 보내는 그의 머리속에는 새삼스럽게 세 처녀가 무척 어렸을 때의 일이 불쑥 떠올랐다.

어느날 장춘삼은 말파리를 몰아가다가 신작로에서 나어린 세 처녀애들이 무엇때문인지 옥신각신 다투는것을 보았다. 한 애는 왕왕 울고있었다. 그는 급히 말파리를 멈춰세우고 뛰여내렸다.

그러자 눈이 커다란 처녀애가 냉큼 달려왔다.

《할아버지!》

《아이구, 우리 유금이가 벌써 책가방을 멘 학생이 되였구나.》

장춘삼은 홍로인의 외손녀를 알아보고 담쑥 안았다. 아이들을 남달리 귀애하던 홍로인이 이렇게 귀엽게 번진 외손녀를 안아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랴. 가슴이 아릿했다.

홍로인이란 미루벌을 처음 개간한 홍씨가문의 후손으로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유격대의 임무를 받고 《치안대》에서 공작하다가 체포되여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장춘삼도 유격대원으로서 주로 홍로인과의 련락임무를 수행했는데 그의 최후를 직접 목격하고 가슴터질듯한 비분과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몸부림쳤었다. 해방전 량부모를 잃은 자기를 누구보다 위해주고 장가까지 보내준 홍로인이였다. 하여 의리상으로 유금의 어머니 홍순희를 오랍동생같이 돌보아왔고 이제는 그의 딸도 친손녀처럼 여기는터였다.

《그래 무슨 일로 다투느냐, 응?》

유금이 미처 입도 떼기전에 얼굴이 둥실한 다른 처녀애가 또 쪼르르 달려왔다. 보영이라는 애로서 그의 아버지 주룡천은 이곳 청암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을 하고있었다.

보영은 장춘삼의 다리에 감겨들며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 초예는요 생일이 늦어서 이번에 학교에 입학 못하고 유치원에 남았어요. 그런데도 우리하고 함께 학교에 가겠다고 떼질을 막 쓰잖아요. 그래서 내가 쫓았더니 저렇게 울보가 됐지요 뭐.》

《원, 저런. 친한 사이에 그럼 쓰나.》

그들이 유치원을 함께 다닌 다정한 소꿉동무라는것을 잘 아는 장춘삼이였다. 그러니 혼자 떨어진 초예가 얼마나 속상했으랴. 초예가 일찍 어머니를 잃은 애라는 생각에 더 동정심이 갔다.

유금이도 같은 심정이였던지 장춘삼의 손을 잡아흔들며 애원했다.

《할아버지, 초옌 벌써 구구표랑 가갸표랑 모두 외우고있어요. 같이 공부하면 우리보다 나을수 있어요. 할아버지가 학교에다 잘 말씀드릴수 없나요, 예?》

장춘삼은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작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차마 외면할수 없어 그들옆에 말파리를 끌어다댔다.

《좋다. 얘들아, 우리 함께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청을 드려보자꾸나.》

《야!》

한쪽에서 눈물을 똑똑 떨구던 초예가 언제 울었더냐싶게 방글거리며 달려왔다. 그러자 보영이는 새암이 났는지 제먼저 냉큼 말파리에 뛰여올랐다.

유금이 장춘삼에게 따스한 입김을 뿜으며 귀속말을 하였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초예가 외토리로 될가봐 눈물났는데 이젠 우리랑 함께 공부하게 되였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그만 장춘삼은 너무 기특하여 그의 볼을 다독여주었다.

《우리 유금이가 용쿠나!》

다른 사람을 위해 궂은 일, 마른 일을 탓하지 않고 기꺼이 맡아나서는 홍씨일가의 금옥같은 품성이 나어린 외손녀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듯싶어 장춘삼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조그마한게 벌써 귀한 의리심의 싹을 키워올리고있지 않는가.

어쨌든 장춘삼의 설명이 납득되였는지 교장선생은 초예를 며칠 공부시켜보고 다른 애들한테 짝지지 않으면 정식 입학시키기로 약속하였는데 그 결과는 학교를 만족시켰었다.

바로 그 애들이 이제는 커서 대학으로 가는것이였다.

까만 승용차가 장춘삼앞에 소리없이 멎어선것은 이때였다.

《아바이, 마침 잘 만났습니다. 그사이 건강하셨습니까?》

승용차에서 검은 양복을 단정히 입은 군당책임비서(당시) 윤도영이 내렸다. 미루벌토배기인 장춘삼을 만나면 늘 미루벌의 유래를 묻기도 하고 농사일을 의논하기도 하는 그였다. 그는 차안에서 크지 않은 종이꾸레미를 꺼냈다.

《이게 월룡리에서 작년에 새로 심었던 담배품종인데 맛보십시오.》

그는 꾸레미옆에 따로 넣은 맞춤한 담배종이에 잘게 썬 마라초를 챙겨넣고 두툼하게 말아서 내밀었다. 장춘삼은 담배에 불을 붙여 두볼이 오무라들도록 길게 연기를 들이켜본 다음 벙글써 웃었다.

《월룡리담배맛이 전국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곡산에서는 상줄에 들것 같수다.》

《그렇다니 됐습니다. 건사하고 피우십시오.》

마침 돌미산의 푸른 숲속에서 처녀들의 랑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암리의 세 처녀들이 대학으로 떠나면서 돌미산사적지에 자기들이 피운 꽃들을 드리려고 올라갔지요.》

장춘삼의 설명에 윤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봄날씨가 사나왔는데 용케도 꽃들을 피웠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꽃들을 피워안고 돌미산사적지에 드리며 인생의 큰 걸음을 떼는 미루벌의 새 세대들이 기특한 모양이였다.

드디여 돌미산을 내린 세 처녀가 윤도영을 발견하고 《책임비서동지!》 하고 부르며 달음쳐왔다. 윤도영은 그들의 인사에 반색의 미소를 지었다.

《이게 청암관리위원장의 딸 주보영이구만. 그다음 동문 리유금, 동문 송초예. 그렇지?!》

장춘삼은 좀 놀랐지만 인차 감심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윤도영은 이곳에 온지 몇해 되지 않았지만 미루벌의 토배기들보다 사람들도, 미루벌도 더 잘 알고있는것이였다.

이때 머리우에서 끼륵끼륵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연푸른 봄하늘에 선두기러기를 따라 정연한 대렬을 지은 기러기떼가 날고있었다.

《야, 기러기!》

처녀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처럼 부르짖었다. 한손을 이마에 얹은 유금이만은 기러기떼가 사라지는것이 몹시 아쉬운듯 쓸쓸히 뇌였다.

《우리 미루벌을 떠나고있구나.》

《가을이 깊어지면 추위를 피하여 우리 나라에 왔다가 봄이면 북방으로 되돌아가는 기러기요. 말하자면 철새들이지.》

윤도영이 눈길로 기러기를 따르는 세 처녀에게 물었다.

《동무들도 오늘은 나란히 대학으로 가고있는데 졸업후엔 함께 미루벌에 돌아올수 있을가?》

《…》

뜻밖의 질문이였는지 처녀들은 즉시 얼굴에서 웃음을 가무렸다. 유금은 우뚝 솟은 돌미산에서 그 대답을 찾기라도 하는것처럼 눈길을 떼지 않았고 초예는 귀엽게 생긴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있었다. 보영이만은 꽃술처럼 말려올라간 긴 속눈섭을 치켜올리며 책임비서의 물음에 선뜻 대답 못하는 동무들에게 원망의 눈길을 던졌다. 그리고는 제먼저 냉큼 대답했다.

《책임비서동지, 미루벌의 딸들인 우리가 어찌 철새들처럼… 우린 방금 돌미산에 올라 평양하늘을 우러러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한생 미루벌의 딸로 살겠다고 맹세를 다졌습니다.》

그제야 초예도 보조개를 파며 약간 코멘 소리로 또랑또랑 대답하였다.

《옳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꼭 고향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유금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만 끄덕이였다. 윤도영은 기분이 좋아 환하게 웃었다.

《그래, 좋은 일이요. 하지만 떠날 때 다진 결심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거요. 아직 우리 미루벌사람들의 생활은 도시생활에 비해 어렵고 할일도 많소. 그래서 선뜻 뿌리내리기 힘들어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없지 않거던. 그래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루벌을 잘 꾸리는데 앞장서라고 인민군대에서 단련된 제대군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였소.》

《그렇습니까?》

세 처녀는 환성처럼 부르짖으며 목소리를 합쳤다.

《명심하고 꼭 돌아오겠습니다!》

윤도영은 감심하여 장춘삼에게 말했다.

《유격대아바이, 이 귀한 미루벌의 딸들을 승용차에 태워 대학으로 모셔가려고 하는데 딴의견이 없습니까?》

《허, 그러면 책임비서의 사업에 지장이 있지 않겠수?》

《아니지요. 미루벌의 좋은 래일을 당겨오는 일인데 그거야말로 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지요.》

윤도영은 제가 직접 처녀들의 짐을 승용차에로 날라갔다.

차는 아득히 펼쳐진 적토빛들판을 꿰지르며 댕기오리처럼 뻗어나간 길을 달려 잠간사이 제우제산을 올라섰다. 창밖으로 아찔하게 내려다 보이는 신곡저수지가 출렁이고있었다. 미루벌사람들이 가물이 들면 산봉우리에 올라 비를 내려달라고 소며 돼지를 잡아 하늘에 빌던데라고 제우제산이라 이름지어진 곳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은정에 떠받들려 신곡저수지가 일떠섬으로써 물걱정을 모르게 된것이였다.

윤도영은 세 처녀가 지망한 학부들을 묻고나서 생각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유금이와 초예는 농산과를 지망하고 보영인 육종과를 지망했다, 다 미루벌의 농사를 본때나게 잘 짓자는거니 아주 좋은 결심들을 했소.》

마침내 승용차는 높고낮은 살림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소재지에 들어섰다. 도시 한가운데로 유유히 흐르는 은하의 물결우에 연초록색으로 물들여진 아지를 드리우고 흐느적이는 버드나무가 유표했다. 그 아지너머로 풍치수려한 도시를 품안고 위용있게 서있는 경암산기슭의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당시) 건물이 바라보였다.

대학정문앞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신입생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라고 쓴 대형직관판이 대학입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두팔을 활짝 펴고 반기듯 서있었다.

먼저 차에서 내린 윤도영이 짐칸에서 짐들을 꺼내여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공부를 잘하라구. 미루벌의 새 세대다운 모습을 보여줘야지.》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그들은 나란히 머리를 숙여 군당책임비서 윤도영에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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