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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 회

제 3 편

제 4 장

3


급행렬차가 평양역을 떠날 시간이 림박하였다.

방하민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5분전이였다. 그런데도 그의 건너편 하단침대자리는 여전히 비여있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주의를 돌리지 않고 조용해지는 홈을 어디라없이 내다보았다. 빨간 모자를 쓴 조역(지금의 운전지휘원)이 돌돌 말아서 쥔 푸른 기발을 펴는것이 떠날 시각이 되였음을 말해주었다.

방하민은 차가 빨리 떠났으면싶었다. 차가 달리느라면 열린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것이다. 또 게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해난다. 어쨌든 기차에 탄 사람은 차가 빨리 떠나 순조롭게 달리기를 바라며 출발역이건 도중역이건 지체하는걸 달가와하지 않는 법이다.

허나 다시 상대편빈자리에 눈길을 돌린 방하민은 이 자리의 주인이 갑자기 려행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어떤 일로 지체하여 지금쯤 바삐 서두르며 역기다림칸을 지나 출구로 막 달려나오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부지중 그쪽에 눈길을 보냈다. 마침내 이 자리는 남는 자리거나 도중역에서 오를 자리가 분명하다고 여기게 되였다.

그래서 방하민은 아는 사람도 아닌 그 누구를 공연히 기다리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져 더는 밖을 내다보지 않고 와이샤쯔바람의 웃몸을 제끼고 편안히 기대앉았다.

그런데 렬차가 당장 떠나려 하는 그때에 웬 사람이 급히 승강대에 오르는것이 얼핏 보이였다. 아닐세라 한사람이 급한 숨을 톺으며 방하민의 상대편자리옆에 와섰다. 숨소리가 어지간히 높은 손님은 손수건으로 대머리의 이마에 솟은 땀발을 훔칠념도 미처 못하고있었다.

그때 차가 떠나기 시작했다. 60이 넘어보이는 그 손님은 한팔에 양복웃도리를 걸치고 다른손에는 그저 밤색가죽들가방을 들었을뿐 행장은 간편했다.

《미안합니다.》

손님은 제가 늦게 들어온걸 사죄하듯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차가 떠날번 했는데…》

방하민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흔히 그러하듯 차가 떠나서 얼마간 달릴 때까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차가 떠나서 얼마쯤은 대체로 각기 제 생각에 잠기기마련이다. 누구나 어디서 어디로 떠나든지 그때의 감정상태가 있는 법이니 그것을 가라앉히고 정돈해야 하지 않는가.…

한데 유감스럽게도 상대편손님은 땀을 좀 들이고나자 《미안합니다. 제 좀 눕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침대에 누워버리는것이였다.

《네, 어서 그러시오.》

말동무를 바라던 방하민은 좀 서운했으나 이렇게 응대를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낮시간에 벌써 침대에 눕는걸 보니 몹시 피곤한 모양이야. 점심을 치르고나와 식곤증에 몰리거나… 아니문 어제 밤 늦도록 바쁜 일에 몰려 잠을 설쳤을수 있지.)

일주일전에 조국에 나온 방하민은 어째서인지 요즘 마음이 자꾸 너그러워만져서 자못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그는 일어서서 눕자마자 잠이 든 상대방의 대머리에 해빛이 비치지 못하게 창가림을 그쪽에 밀어 막아주기까지 하였다.

제 혼자 생각에 잠기고싶었던 방하민은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렬차의 차바퀴소리가 장단맞게 들려왔다. 방하민은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푸른 들판, 흰 구름덩이 떠가는 하늘, 멀리 보이는 공장의 원경… 2년만에 돌아오는데 그 기간이 10년이나 되는것 같았다.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는 다시 과학원에 가겠는지, 어디서 연구사업을 하겠는지 협의해보자고 하면서 며칠 기다리라고 하였다.

이번에 가족과 함께 쏘련에서 나온 방하민은 서문려관에 두 방을 내주어 림시로 거기에 기거하게 되였다. 요즘 늙은 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대학에 들어갈 나이의 손자를 앞세우고 모란봉으로, 만경대로 평양시내에 안 가는데가 없었다. 천리마동상이 일떠서는 만수대언덕에 가앉아있기도 하고 대극장건설장에 가서 한참이나 구경하기도 했다.

그사이 방하민은 함흥에 갔다오기로 하였다.

비날론공장건설장을 우선 보고싶었던것이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전국이 떠드는데 거기부터 가보지 않을수가 있는가. 저기를 보라, 화물렬차방통에 백묵으로 큼직하게 《비날론》이라고 쓰고 그아래에 큰 화살표를 그려놓은것이 눈에 띄운다. 그곳 건설장에 보내는것 모두가 긴급물동일것이다.

순천을 지나서부터 렬차는 강줄기를 끼고 달리기도 하고 산속에 숨듯이 기여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렬차는 요리조리 강줄기와 숨박곡질하듯 분수령을 향해 오르고있다. 철길은 강기슭을 따라 계곡으로 나있기마련이여서 렬차는 지금 강의 흐름을 거슬러오른다. 분수령을 넘어 동해사면에 들어서면 렬차가 강의 흐름을 쫓아서 나란히 내려갈것이지만 지금은 자꾸 거슬러오르기만 한다.

방하민은 해빛에 번쩍이는 강의 흐름을 내다보았다. 저아래쪽강기슭에서 벌거숭이애들이 미역을 감으며 물장구를 치고있었다.

물줄기는 아래로 흘러간다. 한데 렬차는 흐름을 거슬러오른다.

어느덧 방하민의 상념도 추억을 거슬러오른다. 옛날추억이랄것없이 지난 2년간생활부터 불시에 머리에 되새겨졌다.

차창에 기울였던 몸을 제대로 돌리고앉은 방하민은 간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가락맞게 들리는 차바퀴소리…

몇달전에 알렉쎄예브교수가 자기를 부르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교수는 도이췰란드에 갔다온 피로도 풀새없이 방하민을 부른것이다.

방하민은 의아한 생각을 밀어버리고 그사이의 론문진척정형을 설명하였다. 새로운 합성수지에 관한 주제도 알렉쎄예브교수가 준것이고 그 진행과정도 일일이 교수의 지도와 방조에 의해 이루어진것이다. 박사론문은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다.

교수가 도이췰란드에 간 사이에 방하민은 몇가지 실험보고서를 론문의 자료로 보충하였다. 교수가 도이췰란드에 갔다오자바람으로 론문을 다 보고 방하민을 부른것이였다. 워낙 요구성이 높기로 소문난 교수가 이번에도 역시 다되였다고는 말할수 없겠으나 어쨌든 방하민은 그한테 어느 정도의 만족은 주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교수는 전혀 딴 이야기를 꺼내는것이였다.

《내 이번에 도이췰란드에 갔다가 여러 화학연구소들을 다녀봤소. 라이프찌히에서는 라이프니쯔연구소에 갔댔소. 그 연구소가 수지전문고분자화학연구소란걸 알거요. 거기 소장인 프레므니쯔교수를 만났는데 책 한권을 주면서 자기는 이 책에 조선의 리승기박사의 연구보문들을 적지 않게 리용했다는거요. 5년전인가 조선대표단이 왔을 때 거기에 함께 온 리승기박사를 몰라보고 무슨 프랑스학자소릴 하다가 창피를 당한 일까지 솔직히 터놓더군.… 난 이미 폴리비닐알콜계섬유를 발명한 리승기박사를 이름으로 알고는 있지만 이번 프레므니쯔교수가 주는 책을 보고서야 더욱 그가 30년대부터 고분자화학을 위하여 기울인 노력과 수준을 보았단 말이요. 그러니 결국 조선의 화학계가 만만치 않다는 그 말이요.… 사실 동무도 거의 10년만에 만났는데 보니까 동무수준도 몰라보게 발전했으니 이것 역시 그것과 떼여놓을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말이요, 하민동무도 내 성미를 알겠지만 난 후비를 위해 내 노력을 아낄 생각은 하나두 없소.》

교수는 잠간 말을 끊고 의아쩍게 쳐다보는 방하민한테로 다가서며 그의 손을 찾아쥐고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내가 이리저리 재고 숨기는 성미가 아니란걸 알겠으니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하지. 물론 론문은 이것으로도 기본상 완성되였다고 볼수 있소. 그러나 난 리승기박사가 이 론문을 한번 검토해보고 그 의견을 내가 들어봤으면 좋겠소. 아무래도 귀국할 때도 되였으니 나가서 완성하여 우편으로 제출해도 좋소. 아니면 리승기박사가 주심사자가 되여도 좋고… 그가 나한테 보증을 요하면 즉시에 응할 결심이요.》

교수는 뒤짐을 지고 흥분에 못이겨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언젠가 당신의 어머니가 같은 값이면 조선박사라는 말을 했다는 얘길 듣구 내가 웃었지. 그리고 롱담으로 당신을 웃겼지.… 그러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에선 당신의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현명하오.… 동무의 론문도 조선에 나가면 아마 거기 실정에서 보충하거나 고쳐야 할 부분이 꼭 있을거요. 조선의 화학계가 보는 눈이 있을거란 말이요, 촉매나 보조약제는 물론 반응법에서도.… 이번에 도이췰란드에 갔다와서도 내가 강하게 느낀바요. 우리 실정과 도이췰란드의 실정이 또 다르다는것을…》

이 순간에 방하민은 교수한테 언짢거나 못마땅한 생각은 꼬물도 없었다. 오히려 그를 더욱 존경하고싶어졌다. 그 론문자체가 도이췰란드나 미국, 쏘련에서 개발하고있는 합성수지이면서 그 방법이 서로 다른것만큼 조선식으로 마무리해야 함은 아주 지당하게 여겨진것이였다.

방하민은 이 이태동안에 일어난 자기의 마음속 변화를 알렉쎄예브교수가 너무도 속속들이 알아주는것 같아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알렉쎄예브교수의 말을 들으며 서있는 그 순간에 방하민은 누구보다 리승기와 리재업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았으며 심지어는 김용석의 얼굴조차 그리운 심정속에 떠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방하민은 리승기의 편지도 받고 리재업의 편지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한테로 온 리승기의 편지도 보았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 편지를 올린 어머니의 심정과 그 소망도 날을 따라 더욱 방하민의 가슴을 뜨겁히였다.

어머니가 리승기한테서 편지를 받은 직후에 방하민이 집으로 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 저번때 네가 여기로 또 들어왔다구 노여운 소리를 해서 안됐다. 네가 조선에서도 박사칭호를 받을수 있는 론문을 완성해놓구두 다른걸 더 배워가겠다구 들어온걸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이 편지에 그게 다 씌여있더구나.…》

그러자 방하민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쩌릿해나며 《어머니!…》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며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았다. 어머니는 잘못 알고있는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을 까밝힐수도 없었다. 이 순간에 그는 조국에 있는 학자들 특히 편지를 그렇게 써보낸 리승기한테로 쏠리는 뜨거운 마음을 체험했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조국에선 돌에서 실을 뽑는 공장을 크게 짓는다는데 거기서도 네가 많은 일을 했구 또 이제 하게 될거라구 그렇게 여기 씌여있지 않니? 그걸 읽어보렴.…》

어머니는 돋보기를 끼고 편지를 몇번이나 읽어본 모양이였다.

방하민은 그 편지를 매만질뿐 얼른 읽지 못했으며 어머니한테 어떤 대답도 할수가 없었다.

방하민이 알렉쎄예브교수앞에 서있는 바로 그 순간은 그의 2년간생활의 총화이기도 하였다. 쏘련과학계도 어제날과는 달라진것 같았다. 동년배연구생들도 큰 나라 행세로 재세를 부렸다. 쏘련은 우주개척분야에서 요란하게 성과를 떠들었다. 반면에 고전유전학과 릐쎈꼬의 환경설간에 치렬한 투쟁이 절정에 오른 30년대에는 그것이 정치투쟁처럼 되여 저명한 학자들이 씨비리로 쫓겨가는 사태가 벌어지더니 지금은 그 득세하던 릐쎈꼬학파가 비난의 대상으로 되고있었다. 거기다 대면 화학계는 아주 조용한편이였다. 그래서 그만큼이라도 론문을 완성할수 있은것이였다.

아들은 어머니한테로 갔다. 조선에 나가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아들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대번에 눈물을 흘리였다.

방하민은 어머니를 모시고 안해와 아들과 함께 양아버지인 서경조의 묘소에 찾아갔다. 서경조의 령전에 서고보니 고인의 목소리가 울리는것 같았다.

《조선에 나가라. 나가서 우리 나라 학문의 기둥이 되거라. 그래서 5천년력사국이 이 세상 만방에 빛을 뿌리게 하라.》

이 말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서경조가 그한테 자주 한 말이였다. 오늘은 더욱 절절히 새겨지는 간절한 부탁이였다.

묘소에서 돌아온 아들과 어머니는 고인이 남긴 생전의 유언도 있고 해서 꼭 서경조의 유골을 조국땅흙속에 안치하기로 상론을 하였다. 어디다 모실것인가? 그의 고향은 머나먼 전라도 목포이다. 거기에는 그의 밭은 친척도 없거니와 아직은 분렬의 장벽이 막고있다. 그래서 그들은 서경조가 생전에 조국땅에서 마지막으로 인연을 맺었던 그 청수동골안에 자리를 잡아 유골을 안치하기로 하는게 어떨가 하고 의논을 했었다. 그러면서 서경조의 유골을 청수동에 가져가는것은 오원배나 리승기와 꼭 상론을 하고 그들의 동의를 구해야 할 일처럼 생각되였다.

한데 리승기는 지금 앓고있다지 않는가. 고질적인 신경증이 도졌다고 하는데 문병도 할겸 기회를 보아 그 문제를 비칠수 있었으면 하였다.

과학원에 가니 화학연구소의 대부분 성원들과 함께 려경구소장도 흥남에 가있다고 했다. 려경구가 다시 자기를 화학연구소에 두려고 할수 있었으나 방하민은 알렉쎄예브교수의 권고대로 리승기가 있는 연구소에서 공업화와 함께 각종 합성수지의 공업화도 예견한다니 더욱 그러하다.…

어느 역에 섰던 렬차가 급작스레 몸을 떨며 떠나는 바람에 방하민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상대편자리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을 자던 손님이 역시 차의 충격때문인지 깨여나 일어나앉으며 《지금 어디까지 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방하민은 차창밖을 내다보며 짤막히 대꾸했다.

《양덕인것 같습니다.》

방하민은 전쟁때 산업성 부국장시절에 《윌리스》를 타고 지나가본 기억이 났다.

《벌써 이렇게 왔군그래.》

손님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잤군. 6시가 넘었으니 무려 4시간이나… 한데 아직 날이 어둡지 않소그려.》 하고 마감말을 방하민을 쳐다보면서 하였다.

《여름날이 아닙니까.… 저녁무렵이 신선해서 좋습니다.》

이러루한 무의미한 대화들이 오갔다.

《렬차식당에 가지 않겠습니까?》

손님이 일어서며 하는 말이다.

《그렇게 합시다.》

방하민도 선선히 응해나섰다.

똑같이 팔소매를 거둔, 흰 와이샤쯔바람으로 앉았던 두사람은 저마다 말코지에서 양복저고리를 벗겨입고서 침대칸 다음에 달린 식당칸에 갔다.

같은 식탁에 마주앉아 저녁밥까지 나누고 돌아오니 두사람은 대번에 친근감이 생기면서 서로 상대방을 알고싶은 호기심이 동하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우인 손님이 먼저 물었다.

《어디에 계신지? 무슨 일로?》

방하민은 이 머리벗어진 장년의 사나이를 무랍없이 대하고싶어졌다.

《전 과학원 화학연구소에 있다가 2년동안 쏘련에 연구원공부를 갔던 사람인데 일주일전에 나왔습니다.》

《아, 그런가요? 난 중앙병원 의사인데 함흥에 두달째 내려가있습니다. 그동안 몇번 오르내렸는데 이번걸음은 참…》

로의사는 몸을 궁싯거리며 고쳐앉았으나 무언가 흥분에 겨워 더 말을 못한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생 처음 너무 이렇게 어깨가 무거워져 저희 동료들인 의학박사님네들을 찾아다니며 협의를 하고 론쟁을 하다나니 어제 밤은 거의 새우다싶이 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제가 여직껏 잠을 자게 된 리유를 설명하는것 같았다.

《글쎄 좀 들어보시오. 당과 정부에서는 한 학자의 치료를 위해 한다하는 력량으로 치료진을 무어주었단 말입니다. 하루에도 몇번째 평양과 함흥에서 전화가 오가기도 합니다. 해방전에야 상상이나 할수 있었습니까.…》

방하민은 뇌리를 치는 예감에 단박 짐작이 갔으나 그가 누군가고 물어볼수가 없었다. 자기는 리승기의 문병도 가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고싶었으나 웬일인지 선뜻 입을 열수가 없는것이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토록 쉽게 이루어질것 같던 리승기와의 상봉이 이 순간에는 불시에 매우 어려울것처럼 생각되였다. 과연 자기의 출현이 그한테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겠는지, 그한테서 받은 따뜻한 편지는 편지이고 서로 마주치면 달라지는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자기가 조국에 나온다는 편지를 보냈으니 놀랄것은 없겠으나 어쨌든 지금의 건강상태에서 그의 그 신경증이라는 병에 자기가 어떤 영향을 주게 되겠는지 자못 우려가 되였다. 그렇다, 비날론중간공정에서 물러나 론문을 철회하고 쏘련으로 들어간 자기를 리승기만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주겠는지 예측할수 없는 일이다.

방하민의 기색을 살피던 로의사가 무중 이렇게 물었다.

《리승기박사를 아시겠지요?》

방하민은 약간 놀라며 대답했다.

《네, 알구말구요.》

그러자 로의사는 제사 불시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는듯 손으로 이마를 슬쩍 다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 이름은 림세진이라구 부르는데 미안하지만 성함은 어떻게?》

《제 말입니까?… 전 방하민이라구.》

그러자 림세진이 무릎을 가벼이 치며 《방하민선생!》 하고 부르짖었다. 《이렇게 만나는군.》 흡사 오래동안 찾던 사람을 만나 그 이름을 부르고 이 우연한 상봉을 기뻐하는것 같았다.

방하민은 퍼그나 놀라서 그를 마주보았다. 저로서는 도무지 알수 없는 사람인데 성미가 지내 푸접이 좋아 그러는게 아닌가.

하지만 림세진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글쎄, 내 예감이 맞았지.》

그 예감이란 기껏해야 몇십초전에 생겨났을것이지만 림세진은 마치 방하민을 만나자마자 그런 예감을 가진것처럼 말했다. 흔히 나이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촉감이 무디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부하는 그런 때와 비슷하였다.

림세진은 서둘러 설명했다.

《내 방하민선생이름을 한달전부터 알구있었소. 내 기억하지 않을수 없었지.》

방하민은 다시한번 놀라며 의아쩍게 물어보았다.

《그건 어떻게요?》

림세진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선생이 보낸 편지의 겉봉에서 이름을 보았는데… 용서하시오만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수 없게 일이 그렇게 되였구려.》

《건 도대체 뭔데요? 무슨 일루…》

림세진은 설명하였다. 리승기박사한테 오는 방하민의 편지는 물론 일체 편지나 방문이 거절되여왔다는것, 특히 방하민의 편지를 놓고는 그것이 병치료에 어떤 영향을 주겠는지 도무지 가늠할수 없었다는것이다.

《부인의 말이 그 편지는 꼭 환자의 정신상태에 좋은 영향을 미칠거라구 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그는 이름을 알면서도 대지 않음이 분명하다.) 좋지 않을수도 있다는겁니다. 물론 그 사람도 편지내용이나 인상이 좋든 어떻든 그저 환자한테 지나친 흥분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나의 처방을 따라 그렇게 말했을겝니다.》

림세진은 당사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밖에 말할수 없는듯 지어 어줍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그래서 그랬는데 요즈음은 상태가 회복기에 들어서서 편지쯤은 내용이 어떻든 상관하지는 않게 되였습니다.》

방하민은 어지간히 불쾌하였다. 리해는 되였지만 림세진의 말투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리승기한테 평생의 적수라도 된단 말인가. 이제 와서 그와 학문상으로 키를 다퉈보려 한다는것은 도리여 자기 모멸감만 더해주는노릇이다.

좀 가만있었으면 좋으련만 로의사는 더 수다스러워졌다.

《그래 그 편지는 말이지요, 환자의 병치료에 도움이 될거였던가요? 아니면 환자를 불쾌하게 자극할수 있는 요소라두 혹시?…》

방하민은 무뚝뚝하니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도움이 되였을겁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괜찮습니다. 의사선생들이야 응당 그렇게 세심히 치료를 해야지요.》

방하민의 목소리에 비낀 약간의 비양조를 느끼지 못했는지 아니면 숫제 거기에 무관한듯 림세진이 말했다.

《리해해준다면 고맙소.》

방하민이 《뭘요.》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한데 한가지 소청이 있습니다. 이번 림선생이 가시면 저의 편지를 그 리승기선생한테 줘야겠습니다.》

《아니 그럼, 방선생은 리승기선생을 만나지 않구요?》

《만나두 리선생이 그 편지를 읽은 다음에 만나겠습니다.》

림세진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인다.

《하긴 그 편지가 꽤 두툼한걸 보았소. 사연이 깊어보였단 말이요. 사실은 그래서 더욱 망설이고 부인한테 맡겼던거요.… 그 얘긴 그만합시다.》

사죄의 뜻이 담긴 미소를 띠우던 림세진이 불시에 심중한 표정을 지었다.

《방선생은 리선생과 인연이 깊은 사이같은데 내 얘기 좀 들어보시오. 그리구 이번 기회에 리선생을 만난다구 하니 이 일을 꼭 알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일입니까?》

《내 아까두 얼핏 말했지만 그새 함흥에서 평양으로 몇번 오르내렸지만 이번걸음은 참말 흥분과 감격에 찬 길입니다. 어제 밤 잠두 제대루 자지 못한것두 바로 그래서였구… 난 지금 이 기차가 몹시 더디게 생각되지요. 내 마음은 함흥에 가있습니다. 빨리 가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리승기박사를 하루빨리 회복시켜보려는 마음뿐입니다.》

《그럼 수령님을 직접 만나뵈옵구 무슨 가르치심을…》

《그렇소. 난 의사로서보다 인간으로서 느낀바가 정말 많소. 학자들한테 기울이시는 수령님의 사랑 말이요.… 리승기는 행복한 사람이요. 수령님의 사랑을 그처럼 받고있으니 그는 아마 백살은 문제없이 살거요. 두고보우, 내 말이 맞지 않나.》

이때 방하민은 학자로서 리승기를 인정하고 그를 위해주고싶은 심정에서 문득 중얼거리듯 말했다.

《리승기선생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구있는 학자입니다.… 애국자이지요.… 그런 애국자이니 큰 사랑을 받을만 한 자격이 있지요.》

큰 사랑을 받는것이 응당하다고 여기는 의미가 아니다. 방하민으로서는 보다 자책의 심리에서 한 말이였다.

허나 림세진은 그것이 리해할수 없는 말이기나 한듯 상대방을 치떠보며 약간 어성을 높였다.

《무슨 소릴 하우? 그가 애국자이기에 사랑을 받는건 옳소. 하지만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요. 수령님의 사랑이 있어서 그가 참된 애국자로 된거란 말이요. 안 그렇소?》

방하민은 급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요. 제 말두 바루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인데.》

그제야 림세진은 함께 긍정을 하며 마주 고개짓을 하였다.

《내 얘기를 들어보면 똑똑히 알게 될거요. 어제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았는데 그때 느끼기를 수령님만큼 리승기를 잘 아시는분은 없다고 생각되였소.… 그건 리승기박사의 치료문제때문이였는데…》

림세진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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