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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64 회

제 3 편

제 4 장

2


리승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었다. 건망증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해낼수 없는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정상상태가 아니라는 의식-그것으로 자기를 자각하는 그런 순간이 찾아드는것인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그의 뇌리에는 건망증과는 관계없이 뚜렷이 남아있는 광경속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세부들이 새로이 떠오른것이다. 자리에 눕게 된 그때부터도 이것만은 의식속에 깊이 남아 사라지지 않은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안개가 흐르는 아침이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를 부르시여 같이 비날론공장터전을 잡아보자고 하시였다.

화학공장과 련결된 룡흥벌, 그 갈대와 부들기가 무성한 진펄을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비날론공장건설부지로 마음속에 점찍어두신지 오래건만 그리고 공업경영학자들, 경제일군들과 같이 잡아보셔도 되겠건만 굳이 비날론의 발명자이며 폴리비닐알콜공업의 공업화를 위해 전쟁때부터 여태 많은 세월을 바쳐온 과학자와 함께 터전을 잡아보자고 하시는 그 뜨거운 사랑과 진심에 리승기는 어린애처럼 가슴이 설레이고 눈앞이 자꾸 흐려와 안경을 벗어들지 않을수가 없었던게 아닌가.

안개가 흐르고있었다. 해묵은 갈대의 웃초리와 껑충한 부들기의 길다란 마른 잎새들을 싸늘한 젖빛의 안개가 휘감고있었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해무가 아니라 진펄에서 솟구치는 안개발이였다. 몇발자욱앞에서부터 안개는 더 짙어보였다.

안개로 하여 주위가 얼른 구분되지 않았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큰 길가에서 벗어져 진펄쪽으로 몇걸음 들어서시였다. 그이의 신발이 진창이나 물속에 잠길것만 같았다. 허나 거기에는 개의치 않으시고 그이께서는 시야를 가리는 안개의 장막을 걷어보시려는듯, 그너머의 모든것을 한품에 안아들이시려는듯 한팔을 드시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쭈욱 옮겨가시며 말씀을 하시였다.

중절모를 쓰시고 코트를 입으신 그이께서 손을 드시여 여기서 저기로 가리켜보이시며 팔을 옮기실 때 그 힘찬 충격으로 안개발은 물결처럼 흔들리고 그이의 팔소매를 따라 안개가 바삐 흘러가며 그 소매끝에서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것만 같았다.

그이께서 갈밭의 진펄속 약간 둔덕진 곳으로 길없는 길을 찾아 걸어가실 때 리승기는 앞장에 설수도 없고 뒤에서 그이께서 내시는 길로 따라만 갈수도 없어 얼마나 송구했던가.

그때의 그 감정상태가 가슴속에 되살아오르고 그날 아침의 광경이 리승기가 아닌 딴사람이 그것을 보는것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리승기는 다른 리승기를 보듯이 기억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리였다.

(승기, 그때 자넨 그이앞에서 갈대와 잡초들을 헤치고 그이께서 발디디실 자리를 봐올려야 했었네. 안 그런가?)

그것이 한해전 일같기도 하고 며칠전 일같기도 하다. 공간은 눈앞에 있었으나 시간은 머리속에 없었다.

리승기는 침대에 일어나앉았다. 창가림을 밀어버리고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고싶었다.

그는 안해를 불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안해한테 손짓으로 창가림을 밀어달라고 하였다. 안해는 직사광을 피하도록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생각하며 어쩔가 저쩔가 망설였으나 남편이 한달만에 처음보는 단호한 손짓을 해보이자 더는 주춤거리지 못하고 창가에 다가가 자그마하게 드리운 추돌같은것을 잡아당기였다. 드르륵… 가벼운 미끄럼소리와 함께 창가림이 량쪽으로 밀려나고 방안에는 한낮의 볕이 활짝 쏟아져들어왔다.

리승기는 두눈을 간잔지런히 쪼프리였다. 너무나 밝은 빛이 갑작스레 비쳐들기때문이였다.

안해는 당장이라도 림세진이 들어서면 제꺽 다른 추돌을 잡아당겨야 하지 않을가싶어 창가에서 물러나지 못한채 당황한 눈길을 출입문쪽에 보내다가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침대에 앉아 창유리너머 바깥을 내다보는 남편의 눈에서 여직껏 보지 못하던 때아닌 영채를 분명히 가늠해본 분이는 저로서도 퍽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평상시에 안경알때문에 남편의 눈에 어리는 미묘한 빛을 가려보기 힘든 때도 있었건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안경유리알너머에서 눈의 생기와 불꽃이 더 뚜렷해지는것만 같았다. 남편의 눈에서 밖을 내다보려는 천진한 어린애의 그것과도 같은 호기심, 주위에 대한 막을수 없는 관심의 빛을 알아보자 분이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그는 당장 남편의 팔을 껴들고 함께 창가에 다가가 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고싶어졌다.

이때 림세진이 방안에 들어왔다. 분이는 저으기 당황해나서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의사는 창가림이 거두어진것을 얼핏 살펴보면서도 별로 타내는 기색없이 례의밝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분이한테 눈을 끔쩍해보였다. 분이는 눈치를 채였다. 엊저녁에 하겠다던 그 무슨 학자의 처에 대한 얘기를 지금쯤 할수 있다고 여기는 의사의 결심이 대뜸 알려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이다. 마치 림세진이 밖에서부터 리승기의 눈길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맞히고 다시없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들어온것만 같았다.

아무튼 분이는 짐짓 급한 태를 지어 두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아이구머니, 내 정신 봐. 풍로에 올려놓은게 끓어넘쳐나지 않는지 모르겠네.》 하고 딴전을 부리며 서둘러 나가버렸다.

림세진은 그 두툼한 입술에 삐주름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옆 의자에 앉아 정상적인 진찰시간임을 환자한테 납득시키려는듯 손맥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뒤이어 혈압계로 혈압을 재여보기도 하고 체온계를 끼우기도 하더니 감탄의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정말 희한하거던요. 나이는 쉰다섯인데 혈압도 정상이구 심장이 또 얼마나 든든한지. 혈압도 심장기능도 나보다 훨씬 월등하단 말입니다. 부럽습니다, 부러워.…》

그러자 리승기가 어째선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알겠다는것인지, 고맙다는것인지 그 뜻을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런 반응을 보고도 림세진은 기뻤다. 그래서 그는 유쾌한 이야기도 무랍없이 펴놓을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리선생, 내 우스운 얘기 하나 할가요?》

리승기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가만, 편히 누워서 들어주시우.》

그러나 리승기는 눕지 않고 오히려 흰 내의바람의 두다리를 침대밖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림세진은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우선 손이 허전해진 그는 흔히 신경과의사들이 쓰는 니켈도금을 한 그 자그마한 쇠망치를 들고 한쪽 손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두 알겠지만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참 많은 일화를 남겨놓지 않았습니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다같이 그를 숭배했지만 전혀 상반되는 철학적견해들을 제창했거던요. 내 생각엔 그건 말이지요, 소크라테스철학에서 모순된 두 측면을 각기 반영했다고도 볼수 있지요. 아, 그건 그거고…》

이야기군인 림세진은 상대방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어리손을 치고 전주곡을 울리는것이 분명했다.

《리해하기 어려운 책을 두고 그가 뭐라구 했는지 압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리해할수 있는 부분은 퍽 훌륭했다, 리해할수 없는 부분도 틀림없이 훌륭할게라구 생각되지만 그건 너무 깊어서 잠수부가 아니면 도저히 알수 없다… 하구 말입니다. 아주 기지가 있잖습니까?》

리승기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여보인다. 그런 긍정만으로도 족하다고 여긴 림세진은 이제라고 생각하며 쇠망치로 세게 한번 손바닥을 탁 치고나서 말했다.

《한데 그한테는 악처로 유명한 안해가 있었단 말입니다. 어찌나 극성스러운지 장마당에까지 따라나가 남편의 옷을 벗기려고 접어드는 녀자였답니다.… 우리 옛글에도 〈일일지화는 묘시주요, 일년지화는 협착화요, 일생지화는 성악처라〉 하지 않았습니까.(하루의 화는 아침에 마신 술에 있고 일년동안의 화는 발을 조이는 신발에 있고 일생의 화는 악처를 만나는데 있다는 뜻.) 소크라테스의 제자까지도 제 스승한테 말하기를 〈사모님이 악쓰는 목소리는 우리도 참을수가 없습니다.〉하자 소크라테스는 〈게사니가 꺅꺅 울어대도 자넨 아무렇게 생각않겠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그래도 게사니는 알을 낳아주거던요.〉라구 했는데 글쎄 그 철학자란 사람은 〈내 마누라도 자식을 낳아주거던.〉하구 말했다는겁니다.》

여기서 능청스러운 의사는 벗어진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는척 하면서 두눈을 쪼프리고 리승기의 기색을 살피였다. 그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보자 림세진은 그만 성수가 나서 제꺽 말을 이어갔다.

《제 안해가 그런 악처인데도 그는 젊은이들에게 말했지요. 〈어쨌든 결혼하시오. 좋은 안해를 얻으면 행복해지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테니까.〉하구 말입니다.》

림세진은 숨돌릴 사이없이 제가 절정으로 치부하고있던 일화를 꺼냈다.

《크싼팁페라는 그 소크라테스의 안해는 때때로 남편의 머리에 물을 끼얹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한데 그럴 때면 소크라테스는 〈우뢰끝에 소나기가 오는것은 당연한 리치이지.〉 하구 천연스레 말했습니다.》

리승기의 얼굴에는 소리없는 밝은 웃음이 활짝 피여올랐다. 그것을 본 림세진은 덩달아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내여 껄껄거리며 웃었다.

리승기는 여전히 큰소리없이 무던히도 오래 웃더니 침대머리맡에 놓인 수건으로 눈구석을 훔치기까지 했다.

림세진은 그를 너무 흥분시켜 신경을 피로케 하는게 아닌가 하는 위구가 들어 《이젠 그만 좀 누우시우.》 하고 권고했다.

리승기는 베개에 팔굽을 얹고 비스듬히 몸을 뉘이면서도 여전히 얼굴에는 미소가 남아있었다. 그는 차츰 온화한 표정이더니 웬일인지 출입문을 찬찬히 바라본다. 누구를 기다리는듯 한 그 눈빛… 무시로 드나드는 안해이건만 지금 조급히 기다려지는것일가. 그런 심리적충동이 분명하다면 방금 있은 얘기에서 오는것일가. 그렇지, 그것은 심리의 련쇄반응일수 있다. 환자가 정서와 심리의 정상상태로 돌아오는것이라고 림세진은 믿고싶어졌다. 《리선생은 참 행복합니다. 얼마나 현숙한 부인의 사랑을 받고있습니까?》 하는 말이 튀여나올번 해서 가까스로 참았다.

그렇듯 변함없이 사랑이 깊은 리승기의 내외간을 생각하자 림세진은 갑자기 그들이 한없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앞에 심장병으로 늘 앓군 하는 안해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녀때부터 풍만한 몸매에 너그러운 성미를 가진 안해였건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못한듯이 느껴졌다. 물론 꼭 그렇다고 말할수는 없으나 흔히 장기환자를 대하는 그런 동정에 가까운 사랑에 불과했다고 정도이상으로 자기를 비하하며 뉘우치는 림세진이였다. 문득 그는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전쟁때 작가들앞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애국심은 고향과 부모처자를 사랑하는데서 나온다고 하셨지.… 순식간에 자책은 여러모로 번져갔다. 그리고보니 자기는 해방된지 10년 지났으나 두만강가의 고향마을에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부모 또한 동생들한테 맡기고 살아왔으며 두 아들과 딸자식한테도 그리 큰 사랑을 기울이지 못했던것 같이 느껴졌다. 의사란 사람이 근친들에 대한 사랑부터 부족하고 메말라있었다니… 단번에 일생을 총화하는듯 한 심정이였다.

안해를 기다리는 리승기의 눈빛에서 자기의 한생을 총화하게 되다니… 어쩐지 자존심이 깎이는 일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였다. 리승기의 그러한 사랑이 큰 과학탐구의 정서와 의지를 가져온것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가보냐.

환자의 심리와 정서를 자극하려던노릇이 결국 이렇게 쓸쓸히 자기를 돌이켜보게 될줄은 몰랐다. 심리의 련쇄반응은 결국 자기한테까지 번져진셈이였다.

허나 림세진은 락천가라 이런 우울해지는 심정에 오래 머물수는 없었다.

그는 도정신을 하며 잠시동안의 사색에서 깨여나 의자에서 일어섰다. 리승기의 눈길이 향해진 그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문을 열고 오래 찾을 필요는 없었다. 분이가 어떤 하회를 기다리듯 문밖에서 서성거리고있었던것이다. 림세진이 짐짓 밝은 어조로 부르짖었다.

《자, 따끈한 물 좀 가져오시우.》

분이는 얼른 가서 물주전자를 들고왔다.

림세진은 분이가 남편한테로 빨리 올수 있는 길을 틔워주듯 문간의 한쪽에 나서 팔을 벌리며 웨치듯 말했다.

《자, 약을 드실 시간입니다.》

정확한 투약시간을 요구하던 림세진이다. 아직 그 시간까지 15분정도 있었으니 그는 숫제 그것을 잊어버리고있었다. 이때를 놓치면 모든 일을 영 그르치게 될듯싶어 조바심을 치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 이튿날에 림세진은 《환경변화》라는 새로운 신경병학적처방을 내리였다. 박사를 승용차에 태워 멀리 높은 산줄기를 넘는 령마루까지 갔다왔으며 호수와 강가의 낚시터에 나가 낚시질구경도 시키였다.

그런데 림세진은 리승기를 한사코 비날론공장건설장에만은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이를테면 환경변화라는 그 처방에 맞지 않는다는것이다. 딴은 그럴법도 하다. 비날론의 발명자가 나타나면 건설자들이 와- 몰려들것이고 그러면 정신을 못 차리게 신경이 무리한 자극을 받게 되겠는데 지금상태에서는 그것까지 허용할수가 없다. 자칫하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고 우려한것이였다.

하루는 림세진이 이제 환자를 탁구도 시키고 장기도 두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야 정신적인, 육체적인 환경변화에 좋다는것이다.

분이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말했다.

《고중에 다니는 우리 둘째아들녀석이 배워주면 돼요. 장기도 잘 두고 탁구도 꽤 해내거던요.》

그러자 림세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아니, 그런게 아니라… 저, 부인은 탁구도 장기도 모르겠지요?》

분이는 너무나 뜻밖이여서 대꾸를 못했다.

《꼭 부인이였으면 좋겠는데…》

분이의 얼굴에는 그 특유해보이는 결곡한 표정이 떠올랐다. 입술을 오무리고 순간에 결심을 내리는것 같았다.

《제가 이제부터 탁구도 장기도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한테 배워주구, 그러면 같이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림세진은 손을 들어 말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아니, 이제 배워서 언제? 시간이 없습니다.》

《한주일정도만 저한테 여유를 주실수 없습니까?》

분이는 간절한 눈매로 림세진을 쳐다봤다.

림세진은 할말을 잊은듯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달밝은 여름밤이다.

뒤울안 담장밑의 탁구판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아무리 달이 밝아도 작은 탁구알이 빗맞기 일쑤여서 밤에는 거기서 탁구를 치기 어렵다. 그래서 분이는 처음에 혼자서 탁구채로 고무공을 벽에다 쳐올리는 동작을 쉬임없이 해보았다. 주먹만 한 하얀 고무공이였다. 어쨌든 손놀림이나 방향가늠을 숙련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달빛속에서 주의력을 집중하고나면 시력부터 몹시 피로한건 사실이나 그만큼 낮에는 손이 말을 잘 듣는것 같았다.

고중에 다니는 둘째아들한테서 기초동작을 배운 분이는 아들녀석도 혀를 내두를만큼 어찌나 눈썰미가 있었던지 얼마 안 가서 아들애와 마주서서 얼마든지 서로 공을 떨구지 않고 받아낼수 있게 되였다. 딸이 입었던 운동복까지 제법 선수처럼 차려입은 분이는 마흔다섯을 넘긴 나이에 탁구를 배우느라고 뛰여다니였다. 그 모양이 스스로도 민망스럽고 남한테 보이기가 창피했으나 차츰 그런것에는 아랑곳없이 더 극성을 부렸다. 처음은 아들이 일부러 져주었다.

그것으로도 분이는 너무 기뻐서 아들을 시까스르면서 골려주었다. 후끈 달아오른 둘째녀석은 다음번에는 어머니한테 져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아들이 제 실력을 발휘해야 어머니와의 대전에서 이기는 그런 때가 오기 시작했다.

분이는 낮에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를 붙잡고 뒤뜰로 가서 이젠 정식 대전까지 해보는 판이다. 남편이 젊었을 때 정구를 쳐보았으므로 탁구판에서도 그리 숙맥은 아닐것이니 자기의 탁구솜씨가 일정한 궤도에 올라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분이는 죽기내기로 해대였다.

어느 일요일 분이와 둘째아들은 정식으로 한번 대전을 하게 되였다. 물론 딸애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아들애를 다 함께 공원으로 놀러내보내놓고 단둘이 마주섰다. 시작하자 연거퍼 네알을 실점당한 아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가만 어머니, 좀…》 하더니 안경을 벗어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이게 제 안경이 아니라는것이다. 안경도수가 다르니까 공을 보는데서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럼 그게 누구거란 말이니?》

《글쎄요.… 오라, 이게 그 애것이구나. 고 맹꽁이같은것… 안경테두 색갈이 좀 다른데 그걸 쓰고가다니.》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 안경을 쓰다나니 있을번한 일이다. 아들과의 대전에 긴장해있던 분이는 웃지도 않고 《자, 그럼 빨리 너한테 맞는걸 골라쓰구 나오렴.》 하고 재촉을 했다. 아들이 나오자 조바심을 치며 기다리던 분이는 《자, 이젠 내가 처넣기할 차례지.… 옛다, 받아라.》 하고 공을 먹였다.

공은 그물우를 지나 넘어갔다. 공이 자기한테로 날아오자 분이는 제법 걸어치기 비슷한 타격솜씨까지 발휘하였다.

부름을 받고 며칠간 평양에 올라간 림세진의사가 내려오기 전에 얼마든지 남편한테 배워주며 마주설수 있을것 같았다.

아닌게아니라 뜨락산보를 나온 리승기는 안해와 아들애가 치는 탁구를 보고는 자기도 치고싶은 생각이 난다고 하였다. 그랬으나 분이는 일부러 남편의 당길심을 부쩍 돋구느라고 탁구채를 남편한테 주지 않았다. 무엇인가 하고싶어하는 욕망이 아직은 아이들처럼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림세진이 내려오기로 된 그전날 아침에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분이는 남편한테 탁구채를 쥐여주었다.

두사람은 서로 가볍게 공을 주고받았다. 몇번 쳐보다가 리승기가 말했다.

《정구와 비슷하구만.》

분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배구두 비슷하구 공다루는 체육은 다 비슷하지. 어쨌든 반가운 일이야.)

오히려 리승기는 한수 떠서 말한다.

《한데 정구보다는 쉬운것 같애.…》

분이는 남편의 기분을 돋구어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쉬울게 뭐예요? 나한테 이기자면 꽤나 련습을 해야 할거예요, 장기는 내가 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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