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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3 회

제 3 편

제 4 장

1


1960년 봄빛이 짙어갈무렵 리승기의 방은 마치 병원의 어느 한 입원실로 된것만 같다.

리승기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흰 모스링천창가림에 봄날의 해볕이 가리워졌고 창문은 꼭 닫겨져있어 정원에서 피여나는 정향꽃의 진한 향기마저 방안에 흘러들지 못했다.

한낮이면 더러 창문을 열어놓을수도 있는 절기이건만 평양에서 내려온 이름난 신경과의사인 림세진박사는 한사코 그렇게 못하도록 하였다. 바깥의 소음과 외계의 영향이(학명으로는 멜란콜리라고도 할수 있는) 울성신경증에 제일 나쁘다는것이다.

오직 안해만이 리승기의 방에 드나들수 있게 되였다. 그것도 약시간이나 환자가 청하는 경우에만 허용되였다. 안해는 불안한 마음으로 밖에서 서성거리다가는 차를 끓인다든가 탕약을 권한다든가 하는 구실로 다시 방안에 들어가군 했다. 환자는 그래도 안해가 침대옆의 의자에 앉아있으면 잠시나마 안정감에 잠기는지 눈을 스르시 감고 조용히 누워있는것이였다.

안해는 안타까왔다. 일생에서 가장 벅차고도 빛나는 시기에 남편이 다시금 저 1948년에서 시작되였다고 말할수 있는 신경증에 그리고 전후에는 의주병원에서(그것이 6년전이다.) 모진 고난을 겪던 그 신경증에 다시 눕게 된것이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이름을 헛갈리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건망증과 의지상실감이 주요한 증상이였다. 심지어 문턱도 용케 넘을수 있겠는가고 주저할 정도로 만사에 자신이 없어하고 뒤로 물러나앉는 형편이였다. 무엇을 물어보면 다 아니라고만 부정하다가도 어떤 때는 그저 덮어놓고 긍정하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림세진은 그 원인이 정신적인 긴장과 과로의탓만은 아니라고 하였다. 1만톤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공업화로 너무도 갑자기 확대되는 꿈같은 현실은 감격과 함께 막중한 정신적부담, 정서와 심리의 격변을 가져왔으며 따라서 이것은 흥분과 제지의 균형을 잃게 하고 의지력상실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울성신경증을 정신착란증의 시초라고 보았다. 림세진은 그 견해를 반대하면서도 자기의 중임때문인지 내심으로는 깊은 우려를 느끼고있었다. 허나 그는 환자가족들앞에서는 그런 빛을 보이지 않고 이런 병이 완쾌된 실례를 일부러 과장해서 들어가며 아무렇지도 않을뿐더러 회복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흔연한 태도를 짓는것이였다. 그러한 그가 밤마다 숙소에서 동서고금의 정신신경병학서적들을 탐독하면서 환자상태를 연구하고있다는것을 아무도 몰랐다.…

분이는 탁자우에 차잔을 올려놓고나서 눈을 감은채 누워있는 남편의 얼굴을 애절한 눈매로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따끈한데 좀 자셔보시지.…》

남편은 그저 머리만 베개우에서 알릴락말락 흔들어보였다.

안해는 남편에 대한 열렬한 애정에 북받치다가도 이런 순간이면 남편과 다정히 얘기를 나누군 하던 이 방안이 불시에 텅 빈것 같아 가슴깊이 흘러드는 공허감에 몸을 떨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방안에는 의사의 지시로 아무것도 놓은게 없었다. 과학서적을 비롯한 일체 책들은 물론 신문과 잡지도 못 보게 했다. 그의 침대머리맡에 늘 놓였던 라지오도 보이지 않았다. 외계와의 완전한 차단이였다!

안해는 또한 병문안을 오는 방문객들을 막아나서는 보초병과도 같이 마당가에 서있어야 할 때도 많았다.

한번은 림세진이 없는새에 분이를 설복하고 두 연구사가 남몰래 숨어들듯이 리승기의 방에 들어가서 순전히 환자를 위안하려는 마음으로 약간의 과장을 섞어 저들이 맡은 공정의 연구성과를 이야기한적 있었다. 한데 리승기는 다 듣고있으면서도 그걸 믿는지, 안 믿는지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일상시에는 보통 과묵한 성미여도 학술상 론의에서만은 결코 우유부단하지 않던 그 결단성, 명석한 분석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라는듯 밖에 나선 한 연구사는 가벼운 한숨을 짓고 다른 연구사는 머리를 기웃거리는것이였다. 사람들이 왔다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면 림세진이 분이를 울타리밖으로 데리고나가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분수없이 행동하며 무식한가, 더구나 화학쟁이들이란 약을 만드는 사람들인데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내린 의사의 처방을 이렇게 안중에도 두지 않으면 되는가고 노발대발하면서 빠블로브의 신경학설까지 한참이나 풀어대는것이였다.

분이는 남편보다 나이가 우인 머리가 허연 로의사가 그토록 남편의 병치료에 온갖 지성을 다 하는것에 그만 눈물이 찔끔 나와 흡사 제자신이 잘못하기나 한듯 조용히 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림세진은 그만 입이 벙해 서있다가 도리여 자신을 뉘우치는지 《미안합니다.》 하고 먼저 집안에 들어가고마는것이였다.

분이는 눈물을 닦다말고 멀리 건설장을 바라보았다. 큰 규모로 일떠서는 방대한 건축공사가 한창인 비날론공장건설장에서 울리는 건설의 동음이 여기까지 들려오는듯싶었다. 남편이 온 일생을 바쳐온 그 념원이 깃든 거기로 마음이 끌려 그자신이 밤이면 잠시라도 가두지원대와 함께 인민군군인건설자들에게 달려가 더운물이라도 더 권하려고 애쓰는것이였다.

공업화실현을 위해 연구사들이 마지막준비실험에서 밤낮으로 분투하고있는 때에 남편은 여지없이 그 대오에서 떨어져 외진 곳에 내동댕이쳐진것 같은 일종의 과장된 서러움과 애달픈 마음을 잠시도 놓을수 없는 안해였다. 자기가 남편을 대신할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데라도 뛰여들고싶었다. 아들과 딸들을 화학부문 대학에 보내고 사위들도 화학전문가들로 고른것조차 이런 순간에는 남편을 대신하고픈 안해의 안타까운 심정을 결코 위안해주지 못하는것이였다.

안해는 남편에게 다시금 조용히 묻는다.

《그럼 자시고싶은게 무어 있어요?》

남편의 식성을 잘 아는 안해로서는 공연한 말이다.

리승기는 안해가 무엇을 먹고싶으냐는 말에 도리여 머리가 아파나는지 미간을 약간 찡그리고 고개만 흔들고는 천정을 멀거니 쳐다본다.

안해는 가만히 한숨을 지으며 도로 나오고말았다.

분이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문밖에서 두손을 모두어잡고 서성거리였다.

의사는 환자의 채식주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뭐니뭐니해도 아무 병이나 단백질섭취량을 증가시켜야 하지 않는가. 림세진의사가 환자의 식사상태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것 같아 자못 의아스럽고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분이는 간호학을 어지간히 알고있다. 산골소학교를 겨우 마치고 나온 분이는 그후 외가의 후원으로 간호원양성소에서 공부할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그때 그는 나이팅게르(간호학의 창시자)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세상에서 남을 위해 자신의 지성을 바치는 이보다 더 고상한 인도주의적인 직업은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리승기가 일본땅에서 고독과 모멸속에서 갈길을 잃고 방황할 때, 더구나 그가 병약한 몸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분연히 현해탄을 넘어 그한테로 달려갈 때 분이는 조선이라는 이 불행한 나라의 인재를 제몸으로 떠받쳐주고 희생적으로 보살펴주려는 불같은 열정에 휩싸였던것이다.…

마당에서 승용차소리가 났다. 병원에 갔던 림세진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분이는 마당에 나갔다.

림세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무슨 신통한 치료대책이라도 찾은가싶어 분이는 그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림세진은 날씨가 꽤 더워지기 시작했다느니, 오다가 비날론공장건설모습이 하도 장관이여서 차를 세우고 길에 나서서 먼장에서나마 지켜보았다느니 하면서 약간의 너스레를 피웠다.

분이는 언짢은 생각이 앞섰다. 비방으로 될 치료법이나 협의하고 온줄 알았더니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하긴 림세진은 워낙 락천가였다. 그는 롱담과 너스레를 좋아하였다. 그것은 그가 다년간 신경과의사로서(이 부문에서 가치있는 론문도 집필하였다.) 많은 환자들과 맞다들 때 쓰는 첫번째 무기이며 방패라고 하였다. 사실 우울해하거나 신경질을 부리고 정신분렬증상까지 일으킬수 있는 환자들한테는 이것이 무척 필요한 일이며 지어 어떤 경우에는 약보다 몇배 더 위력하다고 볼수 있다. 신경이 예민한 환자는 주위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을 아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정한 정신적안정을 주면서 락천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것이 림세진의 지론이기도 하였다.

직업적인 습관으로 남의 표정변화, 특히는 상대방의 눈빛에 예민한 림세진은 분이의 근심어린 얼굴을 흘낏 살피고나서도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괜찮아질겁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두고보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분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오면서 한가지 우스운 일화를 생각해냈는데 오늘 저녁쯤 리선생한테 가겠습니다. 옛날 어떤 학자의 처가 아주 못된 녀자로서 말하자면 악처였는데… 배를 그러쥐게 하는 그 녀자 얘기가 생각나더란 말입니다. 아마 그 일화를 들으면 환자는… 실례의 말입니다만 훌륭한 안해를 둔 행복감을 느낄수가 있고 그러면 부인의 지성과 사랑을 새로이 감득하게 될겁니다.》

《아이 선생님두, 무슨 말씀을…》

《거야 사실인걸 어찌겠습니까. 한데 미안하지만 그 얘기를 할 때 부인은 곁에 없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건 어째서 그럽니까?》

분이는 머밋거리다가 조용히 물으며 림세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림세진은 손짓으로 제지시키는 시늉을 하며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아 아, 그건 의사의 처방에 속합니다. 부인한테는 따로 얘기를 하지요.》

분이는 의사의 분부라 그대로 하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실린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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