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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제 3 편

제 3 장

5


과학은 론문의 발표나 실험보고서의 제출이전에 무엇보다 학자들의 정서와 신념에 의해 발전되고 계승되는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적인 정서가 없이는 진리의 탐구는 언제나 없었으며 또 있을수도 없다는 말은 옳다.

리승기는 어느때든 자기를 봉우리로 자처해본적이 없으며 다만 남들과의 련관속에 존재하는 기슭의 한부분으로 된다고 간주하면서 결코 지어낸것이 아닌 본연의 겸손성에 머물러있었다.

한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여기를 찾아주신 그날부터 벌써 열흘이 지났으나 갈수록 점점 자책이 깊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이와의 상봉은 또다시 리승기의 생활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으로 되였으니 그이께서 풀어주신것은 결코 불수강이나 실무적으로 걸린 문제들만은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과학의 방법들만 아니라 학자의 풍모와 자세를 바로잡아주신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는 신념과 정열만이 필요하며 학자는 공명을 추구하거나 남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리승기였다. 한초한초의 시간을 금처럼 귀중히 여길줄 알고 과학에 모든것을 복종시키고 자신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옳은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그는 밤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자기의 지나온 한생을 총화하듯 하나의 철리를 깨달으며 거기서 맴돌고있었다. 학자는 무엇보다 성실한 인간이 되여야 하며 그것도 남을 사랑하고 참답게 이끌어줄줄 아는 고상한 인간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주위에 무관심하고 관찰의 객관성을 가지는 의미에서 랭정하고 실무적인것은 학자로서 불가피한것이라고 그는 이렇게만 생각해온듯싶다. 허나 수령님을 만나뵙고난 뒤 그가 깊은 자책속에서 깨닫게 되는것은 《인간을 사랑하라!》는 절절하고도 크나큰 느낌이였다. 이것은 방하민 그 한사람에 한에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로 향해진 문제라는것이 명백해졌다.

수령님께서는 림창직과 림창직의 죽음에 대하여 그렇듯 마음을 쓰시고 방하민과 그의 어머니, 이국땅에 묻힌 그 서경조에 대해서까지 얼마나 뜨거운 사랑으로 헤아려주시는것인가.…

리승기는 요즘의 바쁜 속에서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군 하는것이였다.…

그는 지금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압록강너머의 산발들은 저녁어스름에 휩싸이며 우중충해졌다.

아직은 그 산발우에서 서켠하늘이 엷은 노을을 머금고 훤히 열려있었다. 노을의 잔광이 서서히 사라져버리고 거기서 별들이 하나둘 돋아나 깜빡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하늘을 배경으로 중합의 설비들이 주위의 건물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솟아오르고있었다. 온갖 규격의 배관들이 얼기설기 뻗고 배불뚝이탕크들이 산형강들에 얽어매져가며 탑식으로 솟아오르는것이였다.

이 모든것은 점점 어둠속에 묻히고 거기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것은 용접불꽃이다. 꼭대기와 중간의 여기저기서 무수한 용접불꽃이 꽃보라처럼 튕겨오르고 곧추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하늘의 별들도 무색하게 지상에 별천지가 펼쳐지는것만 같았다.

설비와 장치의 제작, 조립을 위해 45일전투를 벌리였다. 특수용접공인 한태호는 밤에도 내려오지 않고 배관우에서 널판자를 깔고 눈을 붙일줄 안다고 《제비》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몸가짐이 날렵하고 머리가 총명한 그한테 신통한 별명같았다.

낮동안 내내 현장에 있다가 방에 들어온 리승기는 방금 장문의 편지 두통을 써놓고 책상머리에서 물러나 창문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참이였다. 그의 책상우에는 봉투에 넣은 두통의 편지가 놓여있었다. 이렇게 장문의 편지를 단번에 두통씩이나 써보기는 일생에서 처음이였다.

아니, 통털어 그가 일본에 있을 때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써보낸 얼마간의 편지외에 그는 생활이 그렇게 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편지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편지 한통은 방하민의 어머니에게 보내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하민에게 보내는것이였다. 방하민의 늙으신 어머님한테 편지를 쓰려고 종이장에 마주앉으니 불현듯 이국땅의 그 늙은 녀인이 다름아닌 서경조의 안해되는분이라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더욱 절절해지고 꼭 서경조를 직접 만나는 심정이 되였다.

그래서인지 리승기는 어린시절에 목포큰아버지라고 부르던 그한테서 받은 사랑과 잊지 못할 일들을 썼다. 그리고 아들과 관련해서는 수령님께서 여기 오시여 하신 말씀의 내용을 적은 다음 2년만 기다리라고 위안하면서 그전이라도 어머니가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나올수 있으면 먼저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적었다.

방하민한테 보내는 편지에도 역시 수령님께서 오시여 하신 말씀을 적었다. 같은값이면 조선박사였으면 한다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소원을 들으시고 수령님께서 몹시 마음이 뜨거워하시였다는것도 썼다. 과학을 공부하고 탐구하는데서 어떤 립장에 서는가 하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신 그 뜻의 새로운 의미로 다시한번 자기를 일으켜세웠다고 하면서 리승기는 이 가르치심을 다같이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자고 하였으며 지난날의 자기는 분명 랭정하고 실무적이고 때로는 편협하기까지 했던것인데 그 모든것을 리해하고 잊어달라고 허심탄회하게 썼다. 리승기는 긴 편지 두통을 쓰고나니 큰일을 치른 흐뭇하고 거뿐한 심정이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가슴속에 타오를 때 스스로가 숭고해질뿐아니라 생활이 더없이 아름다와진다는것을 그는 절절히 체험하는터였다. 이 불꽃을 심어주신분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이시라는것을 깨달았을 때 자기는 과학의 상상봉이 아니라 인간사랑의 높은 령마루에로 치달아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무렵이면 늘 그러하듯 이 방안으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맨먼저 김용석부소장이 들어왔다. 그는 리승기의 책상우에 놓인 두통의 편지를 유심히 보다가 할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 그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갑자르듯 이렇게 말했다.

《아마 이 편지를 받고 방하민선생이 생각이 퍼그나 깊어질겁니다.… 재업동무한테 온 편지를 볼 때만 해도 저는…》

그는 역시 그답지 않게 말끝을 마무리지 못하였다. 그의 이 재촉하는듯 한 목소리속에서 리승기는 문득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기 얼마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리승기는 앉고 김용석은 선채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김용석은 이렇게 말했었다.

《리재업동무한테 온 편지를 보라구 해서 보았는데 그 편지를 보고는 실망을 했습니다. 그가 정말 조국에 다시 나오겠는지 의문이 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리승기는 책상을 정리하느라고 옮기던 두꺼운 책 한권을 떨어뜨리듯 놓아버리며 고개를 들어 김용석을 보았었다.

《나오지 않다니? 그건 무얼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요? 편지에 뭐라구 했는데?》

김용석이 처음에는 좀 주저하는 빛이더니 끝내는 제 속심을 다 털어놓았었다.

《제가 잘못 해석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는 쓰기를 제가 조선에 나와있는 사이 쏘베트과학은 굉장히 더 발전했다구 찬탄을 했습니다. 물론 그건 사실이겠지요. 자기의 지도교수인 알렉쎄예브교수는 화학계에서 거의 1인자로 되였다구 했습니다. 이것두 비슷한 말이 옳습니다. 제가 프랑스와 영국에 갔다올 때 쏘련과학원청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적 있었는데 그때는 곁에서 모두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방선생은 편지에서… 제자에 대한 그의 의리는 변하지 않았다구 하면서 그한테서 큰 방조를 받아 세계적인 론문을 완성할 결심도 적었습니다.… 그 말은 다 옳을수 있습니다. 물론 남한테서 더우기는 자기의 지도교수에게서 도움을 받을수 있지요. 한데 그 편지에는 다분히 자기의 노력보다 남의 힘을 더 믿는것 같은 불쾌한 론조가 많았던것입니다. 속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그때 그렇게 느꼈습니다.》

《속단이 아니라… 편견이 아니였으면 좋겠소.》

리승기는 다소 엄엄한 말투로 상대방의 말을 막았다. 어째선지 김용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편견이라는 말을 미처 예견치 못했던듯 김용석이 더 말을 못하고 리승기를 뻔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김용석은 급기야 할말을 찾은 사람처럼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방하민과의 사이에 있었던 그 모든 일을 다 잊으셨단 말입니까?》

그 말은 제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는 시도나 항변은 아니였다. 그 모든 일이라고 강조하는 김용석의 말속에는 오히려 안타까운 호소가 울리는상싶었었다.

리승기는 할바를 잊은 사람처럼 제앞에 선 김용석을 찬찬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자기앞에 서있는 짙은 눈섭에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몸집이 다부진 사람, 그렇듯 친근한 용모를 가진 김용석이 별안간 다른 사람으로 돼보이는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저 김용석은 그 잊을래야 잊을수없는 김용진의 동생이 분명한데… 처음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형제간의 모색은 놀라우리만큼 같아보였다. 한데 오늘은 왜 그렇게 달라져보이는가? 전쟁때 자동차적재함의 책더미우에서 숨진 그 김용진의 동생이 옳단 말인가. 심중하고 아량있고 그러면서도 원칙성이 강했던 그…

그런데 그 동생은 매사에 흥분하고 열을 올리기 잘하는 사람으로 돼버리고 어제날의 정의감과 의협심이 잘못 번진것만 같았다. 그가 과학행정일군이 된 다음부터인가? 아니, 이미 썩 전부터 그러했던것처럼 느껴졌다. 리승기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으나 내심을 비치지 않고 주섬주섬 책상우의 책과 종이장들을 마저 거두기 시작했다. 그때야 김용석이 제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일종의 사죄의 뜻을 담으면서도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말했었다.

《저두 리재업동무한테 권고를 했습니다. 잘 회답을 쓰라구 말입니다.》

그러던 김용석이 지금 진심에 차서 이렇게 말하고있다.

《아마 수령님께서 오신 내용과 그이께서 방선생과 방선생의 어머니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게 되면 생각이 꼭 달라질겁니다.》

리승기는 김용석이와 있었던 언젠가의 일을 더는 돌이켜보지 않으려는듯 그리고 지금 김용석이 하는 말을 무척 대견해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렇소, 그는 꼭 조국으로 돌아올게요.》

이때 리재업공장장이 들어왔고 뒤미처 신현석실장이 종이장을 들고 급히 문을 열며 기쁜듯이 부르짖었다.

《선생님, 이젠 실험실에서 중합도가 제대로 오릅니다. 보십시오.》

신현석이 내드는 한장의 종이장을 리승기가 받아들었다. 리승기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김용석이와 리재업이도 다가섰다. 그들은 거기에 적힌 실험수치들을 입에 올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만족한 눈길로 마주보았다.

리재업이 창가로 다가서며 불꽃이 날리는 중합을 내다보며 중간공장장답게 조바심을 내였다.

《빨리 저 장치들에 실현시켜봐야겠는데…》

허나 리승기는 침착한 어조로 신현석에게 당부한다.

《제2안을 놓치지 마오.》

새 중합법의 테두리안에서도 두번째 예비안을 잊지 말자는것이다.

네사람은 창문가에 나란히 서서 용접광이 번뜩이고 불꽃이 날아내리는 탑처럼 높이 솟아오르는 중합공정 작업현장을 내다보고있었다.

신현석실장이 현실주의자답지 않게 랑만에 차서 찬탄의 목소리로 시를 읊듯이 말하였다.

《최절정기! 비날론중간공장이 실현되는 최절정기입니다.》

《그런것 같소.》

리승기는 흥분에 겨워 그 말을 긍정하고있었다. 그는 세사람을 내보낸 뒤 다시 책상에 마주앉아 제앞에 가지런히 놓인 그 무슨 비둘기를 그린 항공우표를 붙인 두통의 편지를 자기의 평생의 노력이 깃든 연구보문을 내려다보는 정도이상의 애정을 담아 한참이나 바라보고있었다. 잠시후 그는 천천히 일어나 벽장에로 다가갔다.

리승기는 유리문을 열고 그안에서 자그마한 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는 거기서 새 안경을 꺼내였다. 언젠가 방하민이 갖다준 그 수정안경이였다. 이제껏 잊혀진듯이 그 안경이 그안에 있었던것이다.

리승기는 제가 쓰던 안경을 벗어 그 갑속에 넣고는 새 수정안경을 눈에 썼다. 연한 호박빛이 멋진 테에 눈앞도 더 시원해보인다.

쓰던 안경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이 시각부터 그는 이 안경을 끼려고 결심한것이다.

…청수에서의 마지막날들은 이렇게 흘러갔다.

이무렵 전후에 전선에서 돌아와 대학을 나온 새 세대 화학자들이 청수에로, 청수에로 들어왔다.

이듬해 3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몸소 리승기박사를 부르시여 함흥의 룡흥벌에서 비날론공장의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 크나큰 구획안에 본래의 화학공장이 원료직장, 중간직장처럼 포괄되여 들어왔다.

원래 일제는 비행기용합성연료인 이소옥탄을 생산하려고 노구찌재벌로 하여금 큰 화학공장을 건설하게 하였다. 그러나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공장완성은 일제의 패망으로 중단되고말았다.

해방후 우리의 기술자들이 이 공정들을 바꾸어 초산과 알콜을 우리의 힘으로 생산해내였다. 일본으로 뒤늦게 돌아간 16명의 일본인과학자, 기술자들은 조선사람들이 그처럼 빨리 이 공장을 운영해내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것이 후일 그들이 내놓은 회상담들에 씌여져있다.

그런데 왜놈들이 생산하려던 군수용이소옥탄이 아니라 비날론을 생산하기 위하여 본래의 화학공장에 대비도 안되는 드넓은 구획을 차지하여 비날론공장이 일떠서게 될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비날론공장건설에로 전국, 전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라는 구호를 제시하시였다.

비날론공장건설은 인민들의 입는 문제만 해결하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화학공업의 강력한 기지를 축성하게 될것이며 비날론공장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화학공업의 여러 부문을 급속히 발전시킬수 있게 될것이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제시하신 전투적인 구호에 따라 인민군사단들과 전국의 지원자들이 달려왔다. 《비날론》이라는 말을 유치원아이들까지 노래처럼 다 알게 되였다. 비날론-이 말은 영예와 희망이였으며 긍지와 자부심이기도 하였다. 비날론은 한 시대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말로 되기 시작했다.

한편 청수에 있던 연구소는 흥남에 나와 화학공장시험소건물을 차지하였다. 이때까지의 연구사업을 총화하고 1만t능력의 확대화실험을 벌려야만 했던것이다.

…비날론공장건설장에서는 밤낮이 따로 없었다.

세상을 놀래운 그 유명한 비날론속도가 창조되던 시기는 력사에 찬연히 기록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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