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59 회

제 3 편

제 3 장

2


네명의 방사공이 비날론의 첫 방사공들이라고 할수 있었다.

김병주는 화학전문학교를 나온 25살의 청년이다. 그는 요즈음 열흘째나 낮에 일하고도 밤에 리승기박사와 같이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맨처음에는 원사이며 교수인 리승기박사가 청년들이 있는데서 《병주동무, 이 시각부턴 전적으로 나와 같이 일해야겠소.》 하는 바람에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병주는 밤마다 방사노줄을 잡고 리승기박사의 잔소리를 듣느라니 그만 화딱지가 나는데다가 감기까지 와서 이틀이나 합숙방에 누워버렸다.

리승기가 달려왔다. 누구를 심부름시키지도 않고 그가 직접 찾아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김병주는 감기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황급히 일어나 미안해서 어쩔바를 모르다가 리승기를 따라나섰다.

병주는 소가죽옷을 앞에 두르고(방사액인 망초액때문에) 일하는데 어떨적엔 폴리비닐알콜을 온몸에 뒤집어쓰는 때도 있었다. 머리칼보다 가는 노줄구멍이 메여 실이 끊어져서 다시 이으면 또 끊어지군 하였다. 려과부분이 말썽인가 하면 이번에는 망초의 비중때문에 애를 먹었으며 그러다간 치차뽐프에서 치차쪼각까지 튀여나오기도 하였다.

잘하자고 하는 일이 조급하면 더 안되는 때가 많은 법이다.

그래도 리승기는 줄창 병주의 곁에 붙어있기만 한다. 마침내 병주는 볼부은 소리로 리승기한테 물었다.

《선생님께선 어째 자꾸 나만 못살게 구십니까. 다른 동무보다 제가 더 잘하지두 못한데 말입니다.》

그러자 리승기는 이 어린 청년앞에서 뭐라고 말할지 제사 오히려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다가 급기야 중얼거리는것이였다.

《이보라구, 병주동무가 제일 낫길래 그러는거지.》 그러면서 리승기는 안경을 벗어들고 별로 이상하게 눈을 껌뻑거리는데 아무리해도 그 표정과 눈깜작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 없을뿐아니라 평상시에 이 침착한 성미의 학자한테 과연 이렇게 간절한 표정을 조급히 내비칠 때가 있었던지 도무지 그것을 기억해서 찾아낼수 없었다. 분명히 이 학자한테는 비상한 일이 기다리고있음이 틀림없다.

병주의 곁으로는 리승기박사만 아니라 중간공장장 리재업이도, 김용석부소장도 뻔질나게 왔다가군 하였다. 언제보나 리재업은 소리없이 나타났다가 몇마디 조용히 조언을 주고 어느새 사라졌다. 한데 김용석은 커다란 철문이 열려진 출구로 들어서면서부터 큰 목소리로 《수고하누만, 수고해.》 하고 부르짖고는 성급한 걸음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혀 이리저리 들여다보는것이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쳐들고 그 시커먼 눈섭밑의 부리부리한 눈초리로 병주를 바라보는것이 고무나 신심을 주기보다 어떤 추궁과 위압감을 더해주는것만 같았다.

그런대로 병주는 일주일이 지나 실뽑기를 아주 능숙하게 처리할수 있게 되였다.

리승기는 병주의 귀에 대고(이런 동작 또한 리승기한테서 처음 보는 일이다.)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내 혼자 결심이 아니야. 다 토론하구 결정한 문제지.》

《뭐라구요?》

병주는 두눈이 떼꾼해졌다. 제가 지금 하는 이 실뽑기가 도대체 무슨 비상한 일로 된다는것인지, 그것도 그렇거니와 리승기의 여느때없는 얼굴표정과 말투들이 이상하기만 하였다.

리승기는 병주한테 다시 몸을 기울였다.

《이제껏 왜 말하지 않았나 하면… 미리 말해놓으면 병주동무가 손이 떨려 일이 잘되지 않을가봐 그랬단 말이요.》

병주는 여전히 대답을 못하고 서있다.

리승기는 슬그머니 병주의 옆구리를 줴지르는것이였다.

《그래두 모르겠나? 오늘 당조직에서 불러 지시를 줄거네.》

《그럼 제가?…》

그제야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비날론중간공장을 돌아보러 오실수 있다는 소문을 상기한 병주는 제가 어떤 자리에 서겠는지를 짐작한듯 그만 몹시도 놀란 표정이 되였다.

리승기는 병주한테 일렀다.

《이제 수령님께서 오시면 동무가 그이께 처음으로 비날론의 방사를 보여드리는 영광을 지니게 되네.… 동무의 기능에 이제는 덤비지만 않으면 돼. 절대 덤비지 말라구. 안되는걸 억지로 보여드리려구 하는것두 아닌거구. 알겠나?》

《알겠습니다.…》

병주는 여전히 얼떠름해 서있었다. 그러니 그가 우리 나라 비날론의 첫 방사공으로 되는 영예를 지니는셈이 아닌가.

병주한테 다시한번 그 작업공정의 조작을 시켜보고나서 리승기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은 일찌기 들어가 푹 자라구.》

바로 그 이튿날 정오가 가까운무렵에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비날론중간공장에 도착하신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초산과 알데히드, 합성과 중합방사 등 공정별로 차례차례 안내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설명을 들으시다가 웃으시고 말씀하시였다.

《화학공장이란 그저 탕크와 배관이구 눈에 보이는건 계기판뿐이니 그속에서 무슨 조화가 벌어지는지 볼수 없거던.… 사실이야 저속에서 내용물들이 뒤엉키며 복잡한 반응과 합성들이 진행되고있을테지만…》

리승기는 그이께서 유심히 바라보시는 그 눈길을 마주 대할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무엇인가 다른것을 묻고계시는것만 같으시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분위기도 좋지만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당신네들의 심중은 지금 복잡할테지. 가슴아픈 희생, 간난신고와 우여곡절이 허다하지 않는가. 그걸 나한테 속임없이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이의 시선은 이런 뜻을 담은듯싶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탕크와 배관속에서 룡트림하고 뒤채기는 화학적인 내용물처럼 사실상 몹시 어려운 처지에서 헤매이는 자기의 처지를 그이앞에서 숨길수 없다는것을 리승기는 똑똑히 깨닫고있었다.

알데히드에서 합성으로 넘어갈 때였다.

두 공정은 벽체 하나를 사이두고 한 건물안에 있었다. 문을 나가 돌아다니기 말째여서 연구사들과 운전공들이 벽에 키낮은 문이라도 내려고 거기를 까고 문틀만 세워놓은채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허리를 굽히시고 거기를 지나 합성으로 넘어가려고 하시자 리승기는 제때에 편한 길로 안내해드리지 못하는 자신이 민망하고 송구스러웠다. 순간순간 제 생각에 옴해있다나니 미처 이런점을 료량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나무람하였다.

합성으로 넘어가는 첫어구에는 크고작은 배관들이 깔려있어 자칫하면 배관들짬에 발이 미끌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정력적인 걸음새로 배관들을 타고넘으시며 합성탑앞에 이르시였다.

리승기는 문도 없는 문틀과 험한 곳에서 그이를 미처 막아서지 못한 자책감과 함께 이 합성탑을 지나 빨리 방사공정에 갔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을 달랠수가 없었다. 비록 이 합성이 심장부라고 해도 어째선지 이 합성에서 그이를 오래 지체시켜드리고싶지 않았다. 빨리 방사에 가면 샘물처럼 맑고 투명한 망초용액속에서 노줄을 통해 흘러나오는 수천오리의 비날론실을 보여드릴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벼운 진동음에 귀기울이시며 묵묵히 합성탑을 지켜보시면서 얼른 걸음을 옮기려 하지 않으시였다. 지금은 별로 설명을 청하지도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거기를 떠나지 못하시고 뒤짐을 지신채 합성탑주위를 몇걸음사이로 오락가락하시였다.

리승기는 그이의 심중에 떠도는 무거운 생각을 다 헤아릴수는 없었다. 그이께서 지금 다름아닌 림창직이도 생각하고계신다는것만을 명백히 깨달았다. 그는 죄스러운 마음과 함께 가슴저미는 상실감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몇걸음 걸어나가다가 얼핏 고개를 추켜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팔을 껴들어주시는것이였다.

당황한 리승기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배관을 타고넘으면서 그이를 부축해드리려고 하였다.

다음공정에 가시여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띠우시고 활기에 넘쳐 별로 더 많은 설명을 청하는듯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리승기가 자유자재로 설명을 할수 있도록 기분을 부추겨주시였다. 그러시다가 손을 쳐드시여 저안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가고 물으시고는 미소를 지으신채 리승기의 말을 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념려와 걱정이 아니라 신심과 고무를 더 주시려고 마음 쓰시는것만 같았다. 리승기의 표정과 몸자세, 설명과 말투에서 분명히 마음속을 꿰뚫어보신 그이께서는 얼핏 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이 연구집단에서 흐르는 내적인 흐름 즉 매개 성원들의 기분상태, 정신상태까지를 가늠해보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중요하게 보시는것은 설비나 장치가 아니였다. 리승기와 그의 연구집단을 버티여내게 하는 정신적인 주추돌과 기둥이였으며 그들의 사색과 활동속에 존재하는, 결코 헝클어져서는 안되는 그 마음의 내재률인것이다.

탐구의 온갖 애로와 함께 희생의 쓰라린 슬픔까지도 그이께서는 깊이 마음쓰시는것이다.

리승기는 될수록 리해가 쉽게 공정을 설명하느라고 온 정신을 기울였지만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시선을 감촉할 때마다 속에서 뜨거움이 자꾸만 치받쳐오르는것을 누를수가 없었다. 방사공정에 들어서서야 이러한 흥분이 한결 가라앉는것만 같았다.

그때에 방사공 김병주는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노줄구멍만 지켜보며 뒤를 돌아다보지조차 못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맑은 용액속으로 흘러나오는 실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환하게 웃으시였다.

《정말 좋은 일이요.… 훌륭하오, 훌륭해.》

그이께서는 병주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

《수고하누만, 수고해.》

그제야 병주는 놀라듯 몸을 돌리며 김일성동지께 굽석 허리를 굽혀 인사드리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병주의 마음을 아시고 손짓으로 노줄구멍으로 나오는 실들을 가리켜보이시였다. 빨리 그쪽을 보라는것이였다. 그러시면서 병주의 곁에 바투 다가서시며 물으시였다.

《노줄이 몇구멍인가? 응?》

병주가 곧바로 서서 대답하려고 했으나 수령님께서는 그의 잔등을 두드려주시며 주의를 잃지 말고 노줄구멍을 지키라는듯 고개짓으로 그쪽을 가리키시였다. 병주가 대답을 드린다.

《0.08mm짜리가 2 000구멍입니다.》

《2 000구멍?》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느다란 실들이 련이어 흘러나오는것을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참 대단하오, 대단해.》하고 다시금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맑은 용액속으로 줄줄이 뻗어나오는 실들을 들여다보시며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만시름이 가시는듯 한 밝은 미소로 리승기를 돌아보시는데 흡사 그 미소는 이제는 한결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고 리승기더러 위안해주는듯도 싶었다. 하여 합성에서 그리 가볍지 않은 마음을 은연중 서로 나누던 분위기가 여기 와서는 말끔히 가셔지는것만 같았다. 그 순간 리승기는 연구사업의 온갖 애로는 아무것도 아닌듯이 느껴지고 모든것이 잘되여나가리라는 밝은 생각에 가슴이 열리는것만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자 주위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방안에 들어갈게 있습니까. 저기 나무그늘아래가 좋구만.… 다들 오라구 하시오.》

그이께서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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