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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제 3 편

제 3 장

1


6월 하순, 대지는 한껏 신록에 푸르렀다. 논판들에는 모살이를 하고난 벼포기들이 거름독이 올라 검푸르게 우줄우줄 자라며 아지를 치고있었다. 신의주교외의 벌판을 지나 의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몇대의 승용차가 달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열려진 차창으로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벼포기들이 해볕에 춤추는듯 한 벌판을 끼고 달리던 차는 나지막한 등성이의 강냉이밭을 량쪽으로 헤가르며 쾌속으로 미끄러져간다.

벌써 정초부터 쉬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에 나서신 그이께서는 흥남에 가셨다가 평양으로 올라오시여 중요한 회의들을 지도하시였으며 그리고는 다시 저 멀리 길주의 영예군인들을 찾으시였고 백암령을 넘으시여 량강도안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련이어 당중앙위원회 6월전원회의를 평양에서 소집하시고 며칠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2기 3차회의에서 중요한 연설을 하시였다. 그런 후에 지금 평안북도에 오시여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는중이였다. 중요한 회의들이 련속 진행되고 현지지도의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있었다.

도로표식비는 의주까지 4키로메터를 가리켰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운전사를 향해 말씀하시였다.

《차를 세우시오.》

그이께서는 앞쪽으로 걸어가는 한 로인을 발견하신것이였다. 로인은 등에다 괴나리보짐같은것을 지고 남자용넙적고무신우에는 뽀얗게 길먼지가 올라있었다.

웬 영문인지 몰라 눈이 둥그래지던 로인이 벙거지처럼 전이 처져내린 물바랜 밤색모자를 급히 벗는것이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알아본 로인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로인에게 물으시였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장군님… 전… 저… 의주까지 갔다가 거기서 뻐스를 타구…》

《의주라면 거기까지 같이 가십시다. 거기서 또 어디로 더 가십니까?》

로인은 부관쪽을 바라보며 말해야 되겠는지 망설이는 눈치더니 대답을 재촉하시는듯 한 수령님의 눈길을 우러르며 말했다.

《예, 거기서 뻐스를 타구 청수까지 갑니다.》

《그럼 우리와 같은 곳으로 가는구만요. 어서 차에 타고 같이 가십시다.》

《예?…》

황송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로인을 부관이 뒤차로 데려가려 했으나 그때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 만류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로인님과 같이 타구 가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관이 열어준 문으로 로인을 먼저 태우신 다음에야 자신께서 차에 오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로인에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먼길을 떠났습니까?》

《예, 그저 좀 다녀올 일이…》

당황해하고 송구스러워하는 로인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안히 앉으라고 이르시다가 《가만, 등에 진건 벗어서 이쪽에 놓으시고… 별로 크지도 않은데 좌석에 그냥 놓아두십시오.》라고 하시였다.

그제야 로인은 수령님께서 하신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올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는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청수에 아들녀석두 그렇구… 조카사위벌되는 사람이… 리승기박사밑에서… 돌에서 실을 뽑는다구 하면서 너무 수고하길래…》

《그래, 이게 무엇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져보시다가 자그마한 토기단지를 손으로 감촉하시였다.

로인이 대답했다.

《토봉꿀입니다.… 과학자들이란 죽을둥살둥 모르면서 제몸은 통 돌볼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옳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짐짓 이제와는 다른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이번에 가서 단단히 혼 좀 내우십시오. 몸이 쇠약해지면 과학두 무엇두 다 못한다구 말입니다.… 그래서 로인님이 직접 이번길에 곁에서 지켜보며 이것으루 몸보신을 잘 시키십시오.》

그러자 이제껏 앉을 자리에 못 앉은것 같아 오밀조밀해하던 로인은 마음이 풀려 제법 성수가 나서 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두 협동조합에 나가 아직 일하는 몸이구 요새는 강냉이애벌김이 바쁜데 아 글쎄 아들녀석이 신접살림을 펴구 이사를 했지, 또 그녀석 말이 제 사촌매부되는 사람이 몸을 너무 돌보지 않으니 나더러 와서 좀 신칙해달라구 편지에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올시다.… 한데 우리 애녀석은 전쟁때 리승기박사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실험공일을 하다가 대학엘 갔댔습니다. 그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구 딴데루 가려는걸 알구 저두 부랴부랴 달려와서 아들자식을 불러앉혀놓구 대판 욕을 해주었습니다. 하여튼 이래저래 그녀석이 다시 청수로 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래 아드님이름은 뭐라구 합니까. 참, 로인님의 성함은 어떻게 부르시구?》

《제 아들은 오정해라구… 전 오원배라구 합니다.》

여기서 오원배는 마음이 흥떠지면서 그만 가문자랑까지 꺼내고말았다.

《전 본시 의주태생이나 청수동에서 많이 살았습니다.… 왜놈들과 끝까지 싸우려던 그 독립군대장 오동진이와 항렬로는 오촌조카벌이 됩니다.》

《그렇습니까? 오동진선생네 가문이시구만요. 허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반가우시여 로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기가 오른 오원배는 가슴에 두손을 포개여얹고 어떤 감회에 잠긴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이래뵈두 김형직선생님을 두번이나 만나뵈왔습니다. 청수동에 오시여 연설하시던 모습이 지금두 저의 눈앞에 삼삼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만 끄덕이실뿐 말씀이 없으시였다.

승용차는 어느덧 옥강리를 지났다. 도로는 압록강을 왼쪽에 끼고 뻗어있었다. 차는 압록강의 흐름을 거슬러올라가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님께서 자주 다니시던 이 근방의 산천을 다시 눈여겨보시려는듯 차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로인은 그때의 저를 뉘우치듯 이렇게 말하고있다.

《참, 그때 오동진오촌숙이 날 못 따라서게 했지요. 앓는 홀어머니를 두고 안된다는거였지요. 나두 젊었을 땐 혼자서 일본놈 대여섯은 단번에 제끼는 힘장사였답니다. 그때 나두 따라나섰더라면…》

그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부터 시선을 로인에게로 돌리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랬더라면 우린 산에서 만날번도 했습니다.》

이 《산에서》라는 말뜻을 로인도 이내 알아차린듯 하였다.

《제가 항일빨찌산에요? 아, 그렇게야. 장군님을 모신 그분들이야 모두 어떤분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로인님과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혁명은 보통사람들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두요.…》

로인은 두손을 가슴에 얹으며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저같은거야…》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래 오동진선생을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언제입니까?》

《그게… 그렇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다음 청수동에 왔댔지요. 밤이였는데 나보구 술을 내놓으라구 해서 한되병 내놓았습니다. 그 술을 마시면서 사나이통곡을 터뜨렸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돌아가시니 자기는 앞이 막막해진다구 말입니다.…》

오원배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인을 위로하듯 그의 무릎에 손을 얹으시며 생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그랬을겁니다. 두분은 참 자별한 사이였댔으니까요. 우리 아버님께서 청수동에 가신것만도 일곱번인가 된다고 합니다. 삭주근방까지 세면 더 많구요.》

《오실 때마다 중요한 연설과 회의들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우리 오동진아주버니의 안내로 동주성에 올라… 그게 어느해던가… 시를 읊으시였습니다.》

1918년 늦은가을의 추운 어느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동지들과 함께 (지금의 벽동군 동주리에 있는) 동주성 완월루에 오르시여 달빛어린 강산을 바라보시다 시 한수를 읊으시였다.

《그 시를 나도 압니다. 로인님두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구말구요.》

로인은 잠시 길옆을 따라 흘러내리는 압록강의 물결을 바라보더니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달밝은 완월루에 높이 올라서

동주성 바라보니 감개 깊어라

북변강 배사공의 구슬픈 저 노래

구봉산기슭에 메아리치네


네 모습 예로부터 아름다와서

길손의 시흥을 불러줬건만

왜놈의 학정아래 눈물지으니

달빛도 산천도 빛을 잃었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 멀리 어디엔가 솟아있을 동주성을 바라보시는듯 차창밖의 먼 하늘에 시선을 보내시며 로인의 뒤를 이어 나직하면서도 힘주어 읊으시였다.


굶주리는 민중아 슬퍼말아라

짓밟힌 동포야 일어나거라

판가리싸움에 이몸 바치니

사나이 총검이 분노에 운다


무도한 왜적들을 쳐물리치고

동주성 완월루에 다시 올라서

목청껏 독립만세 높이 부르자

무산민중 새 사회 세워나가자


차안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차의 가벼운 진동만이 느껴왔다.

문득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인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선렬들의 뜻을 받들어… 그래서 우린 지금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라는 인민의 락원, 인민이 주인된 사회를 말입니다.》

오원배는 감심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장군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왜 이렇게 험한 길로 일년내내 현지지도의 길우에서 지내십니까. 그 로고의 천만분의 일도 우리 백성들이 헤아리지 못하고있습니다.》

《로인님, 그래두 다니면서 봐야 기쁜 일두 있고 생각도 깊어집니다. 옛글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구 한번 보는것이 백번 듣는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내 이번에두 신의주쪽에 갔다가 갈에서 실을 뽑게 된걸 보구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비오는 날 배를 타구 갈밭이 있는 섬에 다녀오자구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구 〈수상님, 위험합니다.〉 해서 〈일없소. 이런 길이면 백번두 더 나서겠소. 비바람을 좀 맞으면 뭘하오.〉 하고 말해주고 우산을 들고 배전에 내려섰습니다.》

《저런, 비가 쏟아지는데 배우에서… 제발 장군님, 다시는 그런 험한 바다길에 나서지 말아주십시오. 바다란 변덕이 심해서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난 산에서 싸울 때 별의별 경난을 다 겪은 사람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다가 로인한테로 약간 몸을 기울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래 청수에 갔을적에 돌에서 실을 뽑는걸 실험실에서라두 한번 보셨댔습니까?》

《네, 신기하긴 신기합니다. 헌데 지금 어찌나 고생들을 하는지…》

《과학이란 그런겁니다. 어떻게 일조일석에 되겠습니까. 석회석과 무연탄에서 실을 뽑는 그 일도 신심이 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원료, 우리의 기술로 하니까요. 꼭 될것입니다. 몇년후에 그 실로 짠 천으로 지은 옷을 맨먼저 로인님이 입어보셔야지요. 아드님두 조카사위두 거기 있구 이렇게 정성이 지극하게 그들을 도와주구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참말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만은 변함없이 끝까지 믿어주고계신다는 말을 다 들었습니다. 장군님께 충정하겠다구 맹세다진 과학자어른들이 왜 못해내겠습니까.…》

그리고나서 오원배는 과학자들을 자랑하고싶고 또 제가 한 처사를 허물없이 말씀드리고싶은 심정에서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장군님, 사실… 거기서 일하던 한 연구사가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다나니 처가 덜컥 세상을 하직했을 때… 난지 석달밖에 안되는 갓난애까지 애들이 셋이나 되여 녀자들이 선뜻 들어서려구 못했습니다.

나한테 조카벌되는 녀맹사업을 하는 애한테 혼사말이 왔는데 그 애가 망설인다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밤중에 거기 당도해서 자는 아를 불러앉혀놓구 한바탕 해대였지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돌에서 실을 뽑는 장한 일을 하는 그런 과학자들의 발꿈치에나 네가 가느냐, 난 네가 그 집에 들어서는걸 보구야 가겠다 하구 말했습니다.… 허허허.》

오원배는 2년전 그때 일이 떠오르며 저로서도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인의 손을 찾아쥐시고 못내 대견해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잘하셨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문득 생각이 나신듯 그 손을 놓으시고 등받이에 몸을 젖히신채 승용차의 앞시창으로 마주 흘러오는 길을 내다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연구사동무가 미처 손을 쓸새없이 잘못되였습니다.… 그 동문 나의 명의로 된 표창장을 준 동무였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중한 어조로 말씀하시다가 더 뒤를 잇지 못하시였다.

오원배는 조용히 말씀드리였다.

《저두 그 선생을 잘 압니다. 우리 정해한테서 편지로… 불상사가 생겼다는걸 알구 이번 길에 들려보자구 사실… 그 유가족의 애들이 너무 어려서 어쩌는지… 에미곁에서 떨어질수 있으면 당분간 우리 집에라두 데려다두었으면 좋겠는데.》

《로인님…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 모두 잘 도와줍시다.… 그렇게 되느라니 그 일을 책임지고 하는 리승기박사의 심정인들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다같이 도와줍시다. 인민이 그를 돕구 내각수상이 그를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습니까?》

오원배는 연신 고개만 끄덕이며 말을 못한다.

김일성동지께서 하시는 말씀속에 울리는 그 진정이 목메여와서 더 입을 열지 못하는것이다.

승용차가 청수에 들어섰을 때는 정오가 가까운무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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