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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 회

제 3 편

제 2 장

5


화학이 다른 과학보다 더 많은 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방하민의 말은 옳았다. 그런 경우 대체로는 그들의 죽음과 부상이 이렇게나 저렇게 새로운 법칙과 교훈을 남기기마련이다.

하지만 방하민은 숫제 그런 학술상의 문제들을 더듬어볼 여유를 잃고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공포감과 함께 고정식을 계속했더라면 이런 사고는 없었으리라는 반발심을 어쩔수 없었다. 외국에서 이미 파악된 고정식이고 자기가 가져온 문헌자료도 아주 신빙성있는데 그것을 따랐더라면 아무리 고정식이 장치가 복잡하다 해도 비등식처럼 이런 결과야 초래할수 있었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여기 실정에서(그는 벌써 남의 일을 말하듯 이렇게 생각했다.) 장치를 공업화단계에서 해결하기 힘들다고 해서 비등식으로 빨리 넘는것은 학문에 너무 정치성만 부여하는것으로 보였다. 형제나라들이 있는데 공업화단계에서 그만한 장치설비를 수입해올수 없단 말인가.…

방하민은 검화공정에서의 산에 의한 방법인 자기의 론문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신심이 적던 그 론문에서 겸손히 물러나면서 빨리 쏘련으로 떠나 그곳 박사원에서 새로운 합성수지연구로 방향을 바꾸려 했던것이다.

그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림창직의 조작상실수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리승기의 그 비등식주장에서 찾고싶었다. 그것이 너무나 시기상조이고 서뿔리 도입된것만 같이 여겨졌다.

진정으로 림창직의 죽음이 가슴아프게 느껴지자 방하민은 자기가 그를 결사적으로 말려야 했으며 리승기를 설복시켰어야 했다고 후회하였다. 적어도 이번까지는 과학원측을 공식적으로 대변한 자기였는데 제가 떨떨해서 그런 사태가 빚어진것만 같았다. 물론 이러한 리성적인 사고들은 썩 후에야 방하민의 머리속에 떠올랐고 그 돌이켜질수 없는 사고가 저질러진 이후 몇밤을 그는 독한 술로 자신을 위안하려고 애쓰고있었다.

이사짐만 보내놓고 아직 늙은이들은 떠나지 않은 그 하숙집방안에서 그는 머리를 싸쥐고 침대에 앉았다가는 벌떡 일어나 우리에 갇힌 짐승마냥 빙빙 돌아치기도 하였다.

그는 벽에 늘 걸려있는 기타를 벗겨들고 타면서 음울한 목소리로 낮게 노래를 불렀다.


백설이 덮인 볼가강우를 달리는 삼두역마차

마부는 슬픈 노래 부르며 힘없이 머리숙이네


노래의 가사처럼 그도 힘없이 머리를 숙이며 기타를 부둥켜안았다. 그러다가는 기타를 활 침대우에 던져놓았다.

밤이면 안주도 없는 술을 들이키고는 침대에 쓰러졌다. 문득 녀인의 애통한 부르짖음을 들은듯싶어 와뜰 놀라 깨여나서는 다시 잠을 들지 못했다.

자기는 마땅히 림창직이를 제지시켜야 했다!

리승기도 바로 그곁에 있어야 했다!

그는 죽었고 자기나 리승기는 살았다. 그러니 자기도 리승기도 도덕적으로 파멸한셈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고 산 사람은 죽어버렸다는 독설과 역설이 취기가 오른 머리속을 맴돌았다.

방하민은 리승기를 찾아갔던 그 순간이 돌이켜졌다.

《그는 아까운 사람이였습니다. 리선생의 한쪽팔이였는데…》

크나큰 슬픔의 순간에 그것은 위선과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금진을 위로하던 말도 그런것이였다.

《아주머니, 슬픔을 이겨내고 힘을 내야지요.》

남들보다 먼저 감히 그런 말을? 차라리 남들의 뒤에 숨어서 침묵을 지켜야 할것이였다. 금진의 오빠와 단 둘이 있게 된 기회에 그한테 한말이 옳았을수도 있다.

《아무튼 누이동생을 어머님이 계시는 곳에 데려가시는게 좋을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매일, 매 시각 더 고통을 느끼게 될게라고 말해주어야 했다.

그렇다, 모두가 이 고통스러운 고장에서 떠나야 한다. 방하민은 그 순간에 자기가 리승기의 주위에서 그의 기슭이 허물어져내리고 봉우리조차 위태로와지기를 바란다고는 전혀 생각할수 없었으나 내심의 어디선가는 시기와 질투의 어두운 그림자가 배회한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였다.

그러자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환멸과 저주를 받아야 할 너는 무엇에 소용이 닿는 인간인가고. 다음순간에 다른 목소리가 부르짖는다. 하지만 보라, 매 개인의 가정과 사랑과 운명에 찾아드는 불행을.…

마침내 방하민은 림창직의 죽음까지도 그 출발을 리승기의탓으로 돌리고싶어졌다. 그는 자신을 두고 하던 비난마저 이제는 다 리승기한테 돌릴수 있는것이 얼마간 다행스럽기도 하였다.

그는 모든것을 잊으려고 다시 침대밑에서 부랴부랴 술 한병을 꺼내 고뿌에 콸콸 붓고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오만가지 상념을 밀어버리였다.

방하민은 자기의 론문을 신현석실장을 내세워서라도 리승기한테서 찾으려고 했었지만 그럴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론문초안이 한통 있는것은 둘째치고 자기는 이제 쏘련학계가 인정하는 새로운 합성수지주제를 쥘테니까 말이다. 쏘련에 들어가 2년쯤 있느라면 뒤죽박죽이 된 자기의 정신생활을 정돈할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였다.

어쨌든 래일 저녁은 여기를 떠날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전환점이 아닌가. 방하민은 그렇게 생각하니 일종의 용기조차 솟구쳤다.

아래방에선 역시 그들대로의 마지막밤을 이 집에서 보내는 늙은 내외가 깊은 잠에 들어있다.

바깥로인의 코고는 소리가 드르릉거리며 세게 들려왔다. 평상시에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 소리가 인간의체와 정신에 깃드는 일상생활의 안정을 방하민한테 불러주었다. 방하민은 정상생활로 되돌아온것 같아 다소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로부터 십여일이 지나 방하민은 평양에서 외국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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