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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1. 재미나는 집


푸르싱싱하던 산발들이 어느덧 불그스레해지기 시작한지도 벌써 여러날째가 되였다.

멀리 높은 산정에 바라보이는 빨간 단풍들은 저녁노을의 빛을 받아 마치 봉화재의 불길이 하늘높이 솟아오르는듯 하였다.

거리에 두줄로 쭉 뻗어간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들은 그것대로 또 얼마나 황홀한지…

한해동안을 잠시도 쉬지 않았던 산천초목들이였다.

저마다 제 모양대로의 고운 꽃을 피워 사랑의 열매를 낳았으며 푸른 잎사귀를 펼치여 그 열매를 자래웠고 지금은 뜨거운 열정을 다 기울여 저를 대신할 후대, 제가 낳은 열매를 마지막까지 충실히 여물구기 위해서 저렇게 자기를 불태우고있는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단풍을 바라보며 아, 벌써 마지막모습이구나, 꽃같이 고운 저 단풍도 이제 락엽이 되여 없어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풍은 락엽이 되여 영영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남긴다.

이제 저 꽃같이 고운 단풍이 설사 락엽이 되여 우수수 바람에 날려 떨어진다 해도 여태 품들여 무르익힌 알찬 열매들을 대지에 힘껏 뿌려놓아 우리의 아름다운 거리와 유정한 산천들에 저와 똑같은 모습들을 활짝 피워놓게 될것이다.

그러고보면 푸르던 좋은 계절도 락엽지면 볼품 없노라 하고 구슬프게 읊었던 옛사람들의 풍월도 그리 꼭 맞는 소리는 아니였다. 이 아름다운 산천을 쉬임없이 꽃피울 사랑의 열매를 여기 풍요한 대지에 심어주거니 어찌 볼품없는 계절이라 할수 있으랴. …

보라, 저 가로수밑으로 쌍을 지어 걸어오고 걸어가며 거리에 웃음꽃을 가득히 날리는 우리 젊은이들의 의젓하고 끌끌한 모습을… 저 젊은이들도 저만큼 자라서 이 땅의 주인으로 되기까지는 역시 숱한 품이 들었을것이다.

어찌보면 살아숨쉬는 세상만물들은 모두가 다 자기의 모습을 세상에 남기기 위하여 저를 깡그리 바치고있는것은 아닌지. …

희슥희슥한 반백에 도수높은 두툼한 안경을 무겁게 걸친 홍유철도 지금 창밖을 내다보며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무엇인가 남기는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이것은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소중히 간직해온 홍유철의 아름다운 리상이였다.

그 좋은 꿈이 간직되여있었기에 고려약생산관리국 부원으로부터 제약공장 지배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생을 행정사업으로 들볶이우면서도 여러건의 가치있는 론문들을 내놓았고 지금은 림상실천에 크게 도움이 될수 있는 현대나노기술에 의한 약물과 고려약물의 배합치료효과에 대한 의의있는 박사학위론문의 집필을 마지막단계에서 다그치고있는것이다.

지배인은 아무나 할수 있는 하나의 행정사업으로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의자에 앉아서도 자기 하던 일을 그대로 아니, 훨씬 더 잘해나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신만이 할수 있는 일, 그래서 이것만은 내가 세상에 남긴것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에야 세상에 났던 보람도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 홍유철이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완성중에 있는 이 론문이 학계의 인정을 받아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에 났다가 자기를 남기는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때문에 그는 약품생산을 위한 전투지휘도 그저 행정실무에만 매달리지 않고 학위론문을 완성하기 위한 학술적탐구와 잘 결부해서 밀고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한창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등뒤에서 부드러운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배인동지, 명상에 잠긴 그런 심각한 모습은 지배인동지에게 좀 덜 어울리지 않습니까?》

돌아보니 안해가 어느새 자기가 방금 일어선 의자에 걸터앉아 두툼한 원고에 무엇인가 써넣고있는것이다.

홍유철의 안해 진순영은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까지만 해도 이만한 롱을 제가 먼저 하는것은 고사하고 남들의 우스개소리를 받아들일만 한 그릇도 전혀 못 가진 새침데기였다. 간혹 남학생들이 《요새 순영동무가 별로 고와지는데…》 하고 롱을 하면 《놀리는거예요?》 하며 새파래져서 다음말이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한마디 롱을 했던쪽이 무안해서 저절로 돌아서게 만들어주군 하던 그런 얼음조각같은 처녀였다고 할가, 문학예술부문에서 흔히 쓰는 말에 비유하면 심각한 정극양상의 처녀였다고 할지. …

그러던 진순영이가 홍유철이와 결혼하여 30여년세월을 함께 살면서 이제는 남편을 닮아가는지 흔히 주고받는 보통말에도 유모아의 옷을 곧잘 입히군 하였다.

홍유철은 별로 웃는 법을 몰랐다. 노상 무표정한 인상이였는데 웬일인지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리군 하였다. 홍유철이 오히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뭐가 우스워서 내가 한마디 하면 저렇게들 좋아할가 하는 의아쩍은 생각이 들어 뻥해질뿐이였다.

지금도 그는 뻥해서 진순영이를 바라본다.

《아니, 여보! 참, 국장동지지. 내 학위론문을 공동집필로 하자는겁니까? 손까지 척척 대면서…》

《걱정마세요, 여기에다 내 이름은 안 써넣을테니. 라틴어표기가 한두자 좀 또렷치 않아서 진하게 다시 새겨드립니다. 이제는 마음이 놓이시나요, 지배인동지?…》

시침을 뻑 따고 척척 받아넘기는 솜씨가 이제는 진순영이도 남편을 눌러보겠다는 심산같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조금도 안해에게 지려고 할리가 만무한 홍유철이였다.

《이젠 나를 지배인이라 부르지 말구 박사선생이라 불러주시오, 국장동지. …》

《네, 네… 이 학위론문이 통과되면 그날부터 그렇게 불러드리지요. 그러나 아직은 통과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외상으로 먼저 그렇게 불러드릴가요?》

하긴 아직도 통과되지 못한 집필중에 있는 론문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여기서 다음대답을 찾지 못하면 안해에게 지는판이였다.

《내적으로는 이미 다 통과된거나 같다는걸 모르겠지요? 몇명의 심사성원들이 이 론문을 읽어보고 환성을 질렀다는걸…》

《정 소원이라면 그렇게 불러드립시다. 그런데 당신도 남들이 나를 부르는대로 약국장선생이라고 제대로 부르세요, 지금부터…》

《예, 예… 약국장선생님, 이젠 좀 빨리 일어나서 내게 자리를 내여주시오, 자리를…》

《한가지 의문나는 점을 마저 좀 물어보구요.》

《어서 …》

《머리말에 〈새로운 약재의 발견과 발명〉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렇다면 발견이라는것과 발명이라는것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설명해드리지요.》

홍유철은 마치 교단에 서서 강의를 하듯 류창하게 내리엮었다.

《발견이 이 세상에 이미 있던것을 찾아내는거라면 발명이란 이 세상에 전혀 없던것을 새로 만들어내는겁니다. 리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내 가까운 례증을 들어 설명해드리지요. 당신은 나를 찾아냈구 나는 당신을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발견이지만 우리 아들 홍경식은 이 홍유철이와 진순영의 〈발명품〉입니다.》

순영은 그만 저도 모르게 킥- 하고 웃어버렸다. 결국 오늘도 남편에게 지고말았던것이다. 하긴 하나밖에 없는 아들때문에 같이 기쁘고 같이 걱정하고 같이 밤잠을 설치게 되는것을 보면 남편의 말마따나 공동의 발명품이라는 말도 틀리는 소리는 아닌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순영은 남편과 함께 아들 경식에 대한 문제를 의논하고싶었다.

《여보, 당신은 그래 우리 〈발명품〉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예요?》

《어떻게 하다니?》

《아니, 경식이도 이젠 세는 나이로 스물둘이예요. 그런데 아직 대학에도 못 가…》

《여보, 내가 왜 그 애를 원자재공급소 창고원자리에 넣어준것 같소?》

《거야 나도 알지요. 시간두 좀 많구 비교적 편안한 자리에 넣어서 그새 입학시험준비랑 착실히 시키자는걸 내가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자리가 글쎄 늘 돌격대에 뽑혀다니는 자리같기도 해서…》

진순영은 순간에 납덩이같은것이 가슴을 꾹 누르는듯 하여 얼굴마저 찡그리였다.

《지금 그 돼지목장확장공사에 나가 일하면서 얼마나 피곤했으면 애가 요새 음식맛까지 다 잃구… 가뜩이나 편식이 심한데다 입이 잔뜩 밭아가지고 뭘 먹는둥마는둥하니 그러다가…》

홍유철의 얼굴도 금시 어두워졌다.

《근심걱정이 그것만이래도 좀 낫겠소. 그녀석이 거기에 동원나가서 일이 좀 힘들다고 몰래 자유주의를 하며 돌아가지나 않는지, 무슨 또 말썽을 일으켜서 집단에 걱정거리가 되고있지나 않는지… 내 말은 다 안해두 늘 가슴이 달랑달랑해. …》

진순영은 이때라는듯 한걸음 다가앉으며 간절한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 그래서 하는 소리예요. 무슨 또 골치아픈 일이 생기기 전에 차라리 그 공사장에서 빨리 데려내오는편이 어때요?》

《여보!》

홍유철은 엄한 눈길로 진순영이를 쳐다보며 딱 잡아뗐다.

《정신있소? 지금 제일 어려운 곳에 책임일군들의 자식들부터가 앞장서라는건데 당신은 그걸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오? 그따위 오그랑수를 써서 함부로 빼내는 놀음을 벌렸다가 말썽이라도 생기면 내 체면은 또 뭐가 되오?》

《그러게 말썽도 생기지 않구 당신의 체면도 깎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좀 조용히 데려내오는 방도가 없을가 해서 의논해보자는거지요 뭐.》

《흥…》 하고 홍유철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말썽도 생기지 않구 체면도 깎이지 않으면서 빼낸다? 여보시오, 현상모집을 해도 그 답을 찾아낼 사람은 있을것 같지 않소.》

《현상모집?》 하며 진순영은 갑자기 호호 웃어댔다.

홍유철은 의아해서 안해를 쳐다보았다.

《아니, 뭐가 우습소?》

《우리가 그전에도 가끔 가다 그런 재미나는 내기를 하군 했던 생각이 나서 그래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지을 때두 우리가 그런 현상모집내기를 해서 당신이 당선됐댔지요? 여보, 그럼 또 한번 우리 현상모집을 해볼가요?》

안해쪽에서 먼저 이렇게 우스개소리로 넘어가자 홍유철이도 역시 우스개소리로 받아넘기였다.

《그럼 무슨 현상모집요강 같은것이 있어야 할게 아니겠소. 상품이나 표창 같은것도 있어야 할거구. …》

《물론 있어야지요, 있어도 아주 크게. …》

《그래 뭘 내겠소?》

《그걸 왜 내게 물어요? 거기에 아직 누가 당선되겠는지도 모르면서… 오늘은 우선 현상모집의 마감날자와 시상부터 먼저 제정하자요.》

홍유철은 허허 웃으며 천정에 눈길을 보낸채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먼저 상부터 제정하자?》

《여보, 내가 복안을 내놓을가요?》

《어디 한번 들어보기요.》

《현상모집의 기간은 3일간, 총화는 경식이까지 참가하여 우리 세식구, 당선자에게는 〈모범부모칭호〉를 수여하며 총화뒤끝에는 당선자를 축하하여 특별식사를 마련한다… 어때요?》

《모범부모칭호?》

홍유철은 안해의 말을 다시 받아외우며 문득 정색해지였다.

《자, 이거 또 은근히 긴장시킨다? 우리 경식이 앞에서 어느 한쪽은 모범부모가 되고 다른 한쪽은 부모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있으나마나한 부모로 평가받는다는 소린데…》

《그러게 〈모범부모칭호〉를 받으란 말입니다, 좋은 답안을 내놔가지구. …》

《어떤 답안을 찾으면 당선될수 있을가?…》

홍유철은 천정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더니 허허 웃었다.

《좋기는 우리 제각기 제출한 두 답안이 신통히 똑같애서 나도 당신도 다같이 〈모범부모칭호〉를 받으면 리상적이겠는데…》

《똑같은 답안?》

진순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남편을 가볍게 흘겨보았다.

《여보, 내가 생각하는것하고 당신이 생각하는것하구 언제한번 꼭같은 공통점이 있은적이 있기나 했어요?》

《있었지! 있어두 우리가 가정을 이루던 첫날부터…》

《예?》

《그래, 우리가 같은 해, 같은 날에 결혼식을 하자고 한것도 내 생각하고 당신의 생각하구 꼭같은 공통점이 있었기때문이 아니였소? 시작부터가…》

순영은 이번에도 또 제가 먼저 호호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하긴 그 무엇인가 그들 둘사이에 귀중한 공통점이 있었기에 홍유철의 말마따나 그들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질수 있었으며 오늘의 행복한 가정도 생겨날수가 있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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