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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국의 품에 안겨》중에서

 

젊어지는 나날에

 

어느날 길을 가다가 가깝게 지내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자세히 보더니 빙긋 웃었다.

《난 또 누군가 했습니다. 글쎄 분명 동기선생님인데…》

《그건 무슨 말입니까?》 하고 나는 의아해했다.

《한 10년은 젊어보이니 첫눈에 알아볼수가 있어야지요.》

이런 사람과는 아무리 바빠도 초청해서 한끼 식사를 나누고싶은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젊었다는것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더우기 우리처럼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늙은이들의 경우 그 말처럼 반가운것은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겨 젊어지고싶어하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소박한 소원마저 헤아려주고계신다.

장군님의 배려로 우리들은 해마다 조국의 명승지들을 찾아 휴양을 하군 한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송도원, 시중호…

이 많은 휴양이야기들을 여기서 다 할수는 없으므로 송도원휴양소에 갔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송도원휴양을 떠나기 며칠전부터 그 준비를 하느라고 온 집안이 들끓는다.

《애엄마야, 내 수영복은 어디 건사했느냐? 참, 거 수영모자도 같이 꺼내놓으렴… 가만, 수중안경도 잊지 말아라.》

가족들은 내가 한가지라도 잊고 떠날가봐 걱정스러워 양복장, 이불장 등을 죄다 뒤진다.

트렁크에 챙겨넣는것을 보면 고양이뿔을 내놓고는 다 있다.

사진기, 록화기, 여러벌의 여름옷, 모자, 신발 등…

지어는 우산까지도 있다. 그러고나면 트렁크가 보통 두세개이다.

보름이나 스무날의 휴양을 위한 준비라고 볼 때 너무 극성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이 어쩔수없이 들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도 도로 꺼내놓고싶은 생각은 없다.

휴양을 떠나는 날은 아침부터 온 가족이 쑤셔놓은 벌둥지마냥 분주하다.

젊은이들은 들락날락거리며 내 트렁크를 내가고 손자애는 내 손을 잡고 달랑거리면서 층계를 내렸다.

뻐스가 출발할 때에는 집에 남아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의 가족들이 마당에 나와 바래준다.

30년, 40년동안 옥중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진득한 인내성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조바심을 치면서 언제 오는가고 묻고 또 묻는 그들이다.

《왕할아버지, 휴양 잘 갔다와요. 올 때 문어잡아오라요.》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애가 말끄러미 쳐다보며 하는 말이다.

자신은 없지만 그애를 실망시키고싶지 않아서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러마, 헌데 지금 문어가 있겠는지 모르겠다?》

손자애는 약간 시무룩해졌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발쭉 웃는다.

《그러면 골뱅이라도.》

《골뱅이말이냐? … 알겠다.》

《야, 좋네. 우리 왕할아버지가 제일이야!》

그것으로 할아버지와 네살난 손자와의 타협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고층살림집을 출발한 뻐스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통과하여 인차 시원하게 뻗어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뻐스안에는 비전향장기수들과 안해들이 부르는 석쉼하고 부드러운 노래소리가 안삼불을 맞추며 그칠새없이 울린다.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다. 노래라는건 이런 때 불러야 제격이 아닌가.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주름진 얼굴마다에는 자기들을 경치좋은 휴양소로 불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어려있다.

뻐스는 다리를 넘고 굴을 몇개 통과하고는 300리길을 내처 달리더니 어느 한 잔디밭우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우리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앉아 집에서 준비하여온 점심식사를 서로 나누었다.

가족들이 성의껏 해준 음식을 한참 먹다보니 부지불식간에 소학교시절 원족가던 일이 떠올랐다.

… 가난한 로동자가정이였던 우리 집에서는 쌀밥 한그릇 싸주기도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원족을 간다고 하자 사과 몇알, 사탕 한봉지, 사이다 한병을 배낭에 넣어주었다.

돈있는 집 아이들은 어머니는 물론 남자종까지 동원해서 지게에 음식을 지워가지고 원족대렬을 따라온다.

우리 집에서는 온 집안이 달라붙어 싸준 음식이지만 나는 그런 애들속에 끼우지 못하고 혼자 먹어치우군 했다.

그럴 때면 다른 아이들처럼 배낭이 터지도록 음식을 마련해주지 못한 어머니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그런 연고로 소학교에서 원족을 가는 날은 내가 제일 기분나쁜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신 다음에야 우리 집살림도 펴졌고 어머니는 해방전의 안타깝던 일을 봉창하려는듯 배낭끈이 어깨를 아프게 파고들도록 음식을 싸주군 하시였다. …

점심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또다시 뻐스에 올랐다.

뻐스가 무지개동굴을 빠져나오자 산들은 발밑에서 감돌고 벌써부터 어디에선가 비릿한 바다바람이 불어왔다.

원산시에 도착한 우리들은 해안동광장에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에 평양에서 정성들여 만들어온 꽃다발을 올리고 삼가 인사를 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배려로 송도원에 휴양을 왔습니다.》

얼마후 뻐스는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다시금 달렸다.

멀리서 휴양소건물이 보이자 비전향장기수들은 누구라할것없이 어린아이들처럼 기분이 들떠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남조선출신이므로 송도원이 처음인것이다.

뻐스는 마침내 휴양소정문에 들어섰다.

무성한 수림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휴양소건물은 아담하면서도 화려하게 생긴 건물이다.

현관앞에서 휴양소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떨쳐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직원들은 뻐스에서 내리는 우리들의 짐들을 받아들고 친절하게 방에까지 안내하여주었다.

휴양소건물안에 들어서면 랭풍기에서 내쏘는 시원한 공기가 잔등에 돋았던 땀줄기를 금시 잦아들게 했다.

복도바닥은 고급대리석을 깔았는데 어찌나 알른알른한지 찰떡이 떨어져도 주어먹을수 있을것 같다.

방안은 TV, 침대, 쏘파, 책상, 의자, 이불장 등 고급가구들로 훌륭히 꾸려져있었다. 그리고 푹신한 침대우에는 고급모포와 베개, 이불이 미리 준비되여있었다.

저녁에 침대에 누우니 마치 동화에서 나오는 별세계에 와있는듯싶어 어쩐지 거북스러운 느낌마저 갈마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복철여름에도 바람 한점 없는 0. 75평 독감방에서 34년동안 살아온 몸이 아직 이런 분위기에 익숙되지 못했던것이다.

그날밤 나는 누님의 손을 잡고 겨울바다가를 거니는 꿈을 꾸었다.

휴양소에서 보낸 첫날밤 꿈에서 하필이면 겨울바다를 보았을가 하고 생각했다.

곰곰히 더듬어보니 감옥에서 바다가 그리울 때면 여름바다보다 겨울바다가 자주 생각났었던 까닭 같았다.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소나무사이로 뻗은 산책길을 따라서 바다가에 나가군 했다.

늠실늠실 굼니는 파도우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돋이장관…

몇십년만에 처음 보는 그 해돋이는 누를수 없는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보고싶었던 바다가해돋이인가.

34년동안 해돋이구경을 제대로 할수 없었던 내가 오늘은 장군님의 품에 안겨 이렇게 바다경치를 보고있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느새 눈굽을 타고넘은 눈물은 하얀 모래불에 소리없이 떨어진다.

나는 무슨 사연을 속삭이듯 파도가 쉬임없이 출렁거리는 백사장 모래불을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 걷다가 문득 생각키우는것이 있어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모래불에 뚜렷이 찍히운 내 발자국이 보였다. 동시에 그옆에 또 하나의 발자국이 찍혀졌다.

하나는 행복한 오늘의 내 발자국이고 상상속의 발자국은 감옥바닥에 수없이 찍혀졌을 어제날의 발자국이였다.

한 인간의 인생이 비껴있는 의미심장한 두발자국…

나는 주먹을 꽉 틀어쥐였다. 이제부터 찍혀지는 내 발자국중에는 그런 발자국이 더는 없을것이다.

… 바다물이 더워지는 낮시간에 수영복을 갈아입고 백사장으로 나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것 같아 좀 쑥스러웠다. 그것도 몇십년동안 독감방생활로 몸에 붙은 일종의 피해의식이다.

나는 못난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가슴을 쭉 펴고 걸었다.

바다기슭을 따라 띠모양으로 펼쳐진 백사장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물속에 들어섰다. 바닥이 모래로 된 바다물은 유리처럼 맑고 깨끗하다. 뿐만아니라 바다밑 물매가 매우 느리므로 기슭에서 바다로 100메터까지 나가도 물깊이가 1. 5∼2메터정도밖에 안되니 리상적인 해수욕장이다.

나는 머리를 바다물속에 잠그었다가 어푸- 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바다물이 얼굴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혀끝으로 맛보니 짠맛이였다. 어린시절 느끼였던 바다물맛 그대로였다.

이 물속에 풍덩 뛰여들어 소시적처럼 멋지게 헤염을 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허리관통상으로 오른쪽다리가 마비되여 그렇게도 좋아하던 수영을 할수 없다는 현실감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나는 구명대에 몸을 싣고 손으로 노를 저었다.

갑자기 날씬하게 생긴 요트 한척이 곁으로 오더니 한 젊은이가 날더러 타라고 했다.

나는 그런 행운을 거절할만큼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요트우에 올라타자 젊은이는 돛을 조종하여 바다우를 미끄러져갔다.

알고보니 그는 요트선수였다.

그는 내가 비전향장기수라는것을 알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왔다고 토설했다.

《우리 요트에 비전향장기수동지를 태운것은 정말 영광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겸손하게 대꾸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경기용요트를 탔으니 내가 영광이지요.》

선수는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요트를 태워주었다.

송도원해수욕장은 가까이에서 보나 멀리에서 보나 경치가 아름답고 바다물도 깨끗할뿐만아니라 모여온 사람들도 의젓했다.

나는 출옥후에 남조선에서 가장 크다는 부산해운대 해수욕장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그 좁은 해수욕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해수욕이 아니라 인욕을 한다는것이 정확한 표현일것 같다.

게다가 해수욕장물마저 심하게 오염되여있다.

그에 비하면 원산 송도원은 그야말로 《천당》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속에 송도원은 현대적인 인민의 유원지로, 문화휴양지로 전변되였다.

산과 들, 강과 바다를 포괄하는 송도원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으로,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강을 좋아하는 사람은 강으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밭으로 자기의 요구와 취미에 맞게 휴식할수 있는 하나의 종합적인 유원지로 꾸려져있다.

송도원에는 휴양소들과 국제소년단야영소를 비롯한 문화휴양시설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어 해마다 수많은 청소년학생들과 근로자들, 외국의 벗들이 찾아와 휴식의 한때를 마음껏 즐기고있다.

그때문에 남조선사람들은 이곳에 한번 와보면 한이 없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노래소리 울리지 않는 휴양은 양념을 치지 않은 국수와 같다.

우리들은 짬만 있으면 손풍금에 맞춰 노래부르고 춤을 추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각자가 다른 감옥에 갇혀있다보니 동지들의 취미와 성미를 모르고있었는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아 즐기는 과정에 서로 더 잘 알게 되였다.

얼마나 좋은 동지들인가.

부부혼성2중창을 할 때는 더욱 흥겹다. 그들은 머리에 백설을 떠이고있지만 마치 갓 결혼한 신랑신부처럼 수집어 얼굴을 붉힌다.

남편이 열성껏 두드리는 북장단에 맞추어 고운 률동을 엮어나가는 안해들을 보면 그들이 도무지 70∼80고령의 할머니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마치도 그들은 아득히 멀어진 젊음을 끌어오려는듯 시간가는줄을 모르고 즐기였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멋들어진 노래가락도 풍성한 음식상을 곁들여야 더 흥그러워지는 법이다.

식사때에는 문자그대로 산해진미가 우리들을 기다리고있다.

식탁우에 별식 한가지라도 더 올려놓으려고 진심으로 애쓴 휴양소직원들의 정성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젊어지게 하는 명약이였다.

료리사들은 매끼마다 열가지가 넘는 별식을 식탁에 올려놓느라고 주방칸에서 맴돌았고 다른 직원들도 매일 양봉한 꿀을 가져다주고 추리, 살구, 언감을 매 방들에 가져다놓군 하였다.

게다가 신선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만들어 술 한잔 받쳐 마실 때면 한창때의 청년처럼 몸에 기운이 뻗쳐 로인태권도라도 하고싶은 기분이다.

한번은 면식이 있는 한 늙수그레한 직원이 짐짓 놀라와하며 말을 건네왔다.

《허, 김선생님이 며칠새 한 20년은 젊어지신것 같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왜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어쨌든 고맙소.》

나는 그와 웃으며 헤여졌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방에 돌아오자마자 슬그머니 거울부터 들여다보게 되였다.

(내가 정말 젊어졌단 말인가. )

생각이 그래서인지 눈귀의 주름살이 한결 펴진것 같고 꺼져버렸던 볼살도 두두룩이 나온것 같았다.

한참 그렇게 서있다가 저도 모르게 실없이 웃고말았다.

이러나저러나 젊었다는 말이 늙었다는 말보다는 듣기 좋았다.

그럴수록 우리를 위해주려는 이곳 사람들의 진실하고 텁텁한 마음씨가 안겨와 코마루가 찡했다.

나는 송도원휴양기간에 시간이 있으면 소나무숲속을 걸으면서 바다의 시원한 공기를 깊숙이 들여마시군 했다. 숨막히는 독감방속에서 마음껏 마시지 못했던 맑은 공기를 마시고싶어서였다.

휴양기간 우리는 철령과 명사십리의 해당화구경도 하고 석왕사에도 갔다왔으며 금강산관광도 하였다.

금강산경치는 정말 볼만 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에서 《야!》 하는 감탄이 터져나온다.

금강산은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이루어져있는 조국의 명산이다.

외금강은 기세차고 웅장한 산악미를 보여주는 관음련봉과 녀자들만이 살던 태고적에 산나물을 뜯으려고 올랐던 한 녀인이 해가 가는줄을 모르고 경치에 취했다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을 들이키고 그만에야 임신을 하여 남자애를 낳았다는 전설을 안고있는 세존봉 등 수많은 봉우리들 그리고 삼선암, 귀면암 같은 기암괴석들과 이름난 계곡들, 폭포들과 담소들까지 한데 어울려 제아무리 뛰여난 화가라도 함부로 붓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할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나타내고있다.

해금강은 천하절승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바다에 옮겨놓은것 같다고 하여 해금강으로 불리운다.

해금강일대는 주체36(1947)년 9월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그리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장군께서 다녀가신 뜻깊은 곳이다.

해금강은 말그대로 바다의 금강, 금강의 바다풍경이다.

해금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출옥후 남녘에 있을 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누를수 없어 이른바 《통일전망대》에 올라 해금강을 하염없이 바라본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해금강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우리 민족끼리 단합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할 그날을 그려보고있는것이다.

휴양의 날자가 지나갈수록 우리는 세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아득했던 20대, 30대의 젊음을 되찾은듯 모두 건강해지고 기분도 쾌활해졌다.

나는 독자들에게 감히 충고하고싶다.

비전향장기수들의 겉모습만 보고 우리들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렇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잃었던 젊음을 되찾고있는 우리들은 명실공히 이팔청춘이다!

 

 

비전향장기수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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