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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회

제 3 편

제 1 장

6


이튿날 아침에 리승기는 여전히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려관방의 거울앞에 서서 넥타이를 바로잡고있었다. 한쪽으로 비뚤어진 넥타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넥타이를 감아돌리는 순서를 종종 헛갈리지만 지금처럼 벌써 세번씩이나 고쳐 매보기는 처음이다. 지난밤에 잠을 설친탓인지 새벽부터 자질구레한 사말사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학자는 그 넥타이 매는 일을 고스란히 반복하고있을따름이다.

어데 나간줄 알았던 김용석이 뒤에서 그를 찾았다.

《선생님, 저기에 누가 왔습니다, 당중앙위원회에서.》

《뭐?》

리승기는 돌아섰다. 그는 용석이 앞에 목과 턱을 내대며 말했다.

《이 넥타이를 좀 바로잡아주게.》

다시 풀지 않고도 용석이 그것을 손쉽게 바로잡아주었다.

《됐습니다. 어서요, 상의를 입으십시오.》

리승기가 복도에 나서자 닫긴깃의 회색양복을 입은 중년나이의 한 일군이 허리를 굽혀 점잖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수령님께서 부르십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려는 그를 찾아온 일군이 멈춰세웠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잠간이면 될겝니다, 수령님께서 어디 떠나시는 길이니.》

리승기는 서기를 따라 현관으로 나왔다. 서기는 리승기의 곁을 따라서며 말했다.

《선생님의 차에 저두 함께 타겠습니다. 제가 타구온 차두 저기 있지만…》

함께 타고가면서 급히 할말이 있는 모양이다.

리승기는 차에 올랐다. 서기가 옆좌석에 들어와앉더니 차가 떠나자 이렇게 당부한다.

《수령님께서는 제철소에 방금 나가시려던 참에 선생님을 찾으셨습니다.… 수령님의 바쁘신 시간을 되도록이면 끌지 말았으면 합니다.》

리승기는 제가 접견을 요청한것은 아니지만 서기의 말을 충분히 료량할수 있었다. 그렇지, 현지지도의 길을 조금이라도 지체시켜서야 되겠는가, 한데 무슨 일로 갑자기 만나자고 하실가. 생각은 맨먼저 리재업을 두고 무엇인가 더 말씀하실 일이 계실것이라는데 미치였다.

리승기는 차라리 이 기회에 제가 직접 그이로부터 된꾸지람을 실컷 받으리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데 아직은 딱히 그 일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할수는 없었다.

청사앞 현관에 나와서 기다리시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계시였다. 차창으로 얼핏 눈여겨본 리승기는 차가 멎자 급히 문을 열었다. 현관층계를 내려서신 김일성동지께서 벌써 차가까이 다가오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시라구 해서 안됐습니다, 바삐 떠날 일이 있어서… 선생을 만나긴 만나야 하겠구.》

김일성동지께서는 양복차림이시였다. 군복차림의 부관이 량손에 수령님의 코트와 중절모를 들고 뒤에 서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리승기한테 말씀하시였다.

《시간이 바쁘지 않다면 저와 동행하면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저기 청사휴계실에서 만나고 떠나자구 했지만…》

《아닙니다, 바쁘지 않습니다. 저야 뭐 시간이…》

리승기는 다급해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꽃이 한창 피는 계절에 산천구경도 하면서 머리도 쉬울겸 차를 타구 한번 제철소에 갔다옵시다. 거기서 오늘 용광로와 해탄로조업식이 있는데 아마 리선생두 그 출강소리를 듣구 쇠물이 쏟아지는걸 보면 기분이 상쾌해질겁니다.》

리승기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처음부터 조업식에 자기를 데리고가시려 작정한것이 아님을 알았다. 꼭 하셔야 할 말씀을 뒤로 미룰수 없었거니와 그 말씀을 짧은 시간에 다 하시고 떠나실수 없으시여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하신다는것을 직감하였다.

무슨 일일가? 생각은 자꾸 어제회의에로만 돌아간다. 비날론? 리재업이? 허나 이런 추측들을 잊어버리며 리승기는 그저 수령님의 옆좌석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밖에 펼쳐지는 봄의 대자연에는 거의 시선을 돌리지 않으시더니 리승기한테로 약간 몸을 기울이시였다.

《리선생, 지금 재업동무의 기분상태는 어떻습니까?》

《응당 받아야 할 비판인데… 걱정을 마십시오.》

《그래두 그렇습니까? 아마 고민이 있을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앞시창으로 마주 달려오는 도로를 내다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실 난 어제 그 순간에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더구나 리선생이 있는데서 그를 비판하자니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찌겠습니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런 결함을 범하는것 같아 경종을 울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리선생의 얼굴을 보구서 그냥 스칠수는 없다구 생각한겁니다.… 량해하십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꾸중을 하셔야 하는겁니다. 더구나 저부터 일쿼세워놓구 하셔야 했습니다.》

《아니, 아니, 그렇게야 어떻게…》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의 무릎을 가벼이 다치시며 더 말을 못하게 하시였다.

《리선생… 재업동문 내가 해방직후에 류학을 보냈구 거기 가는 기회에두 만났구 전쟁때두 중요한 과업을 준 동무입니다. 화학공업에 대해서 알고싶은게 있으면 청해다 강의두 듣구… 난 크게 믿었습니다. 그만큼 난 어제 마음이 몹시 허전했습니다, 제가 하던것을 버리고 남의것을 따라가다니… 어제 밤 늦도록 그 동무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를 직접 부를가도 생각했지만 리선생이 제 심정을 더 잘 리해하실것 같아 이렇게 부른겁니다. 어제는 내가 리선생을 대신했다구 생각해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구 전 더 말씀드리기 어렵…》

리승기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시선을 앞으로 향하신채 옆에 놓인 리승기의 한손을 찾아쥐시며 말씀하시였다.

《리선생두 여러 자식을 키워보며 아시겠지만 꾸지람을 하구두 가슴이 아픈게 부모되는 사람이 아닙니까. 사위는 친자식이나 다름없다는데 리선생은 어제 밤 마음이 괴로왔을겁니다. 나두 그런 심정이였습니다. 아주 믿던 동무인데… 어디 안 그럴수 있더라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차가 떠나서 처음으로 차창밖을 내다보는듯 하시더니 이내 리승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건 제힘을 안 믿구 남부터 쳐다보거나 남의 힘을 바라는 그것입니다. 정치에서는 더 말할것두 없구 과학에서두 그렇지 않겠습니까?》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느라니 일생 처음 리재업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는 혈육의 정이 끓어오르는 스스로의 심정에 사뭇 놀라며 리승기는 어줍게 입을 열었다.

《수령님… 저… 언젠가는 제가 수령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새끼황새가 될번 했는데 지금두 여전히… 그가 새끼황새 되는걸 보지 못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새끼황새라… 리선생은 여전히 그 얘길 잊지 않으시는군요.》

《그도 그렇구 저두 얘기로만 들었지 사상으로는 깨쳐듣지 못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고맙습니다. 리선생이 내 맘을 알아주시니…》

그러자 리승기는 더욱 자책의 심정이 끓어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제가 곁에 있으면서… 참 면목이 없습니다. 저한테 잘못이 더 많습니다. 저두 감자알콜에 중독되였던겁니다. 그러니 제가 비날론두 아직 제정신을 똑바루 갖구 한다구 말할수 없습니다. 합성고무나 합성섬유가 다 같은 고분자화학분야인데 그게 비뚜루 나간다는걸 알아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외람된 말이오나 남의 연구를 잘 삐치려 안하는 고루한 학자들의 본새대루 강건너 불보듯 하다나니…》

《일리는 있는 말씀입니다만 그게 아닙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였다.

《내 생각엔 그렇습니다.… 어제 회의때 휴계실에서 어떤 일군이 괜히 학자들을 두고 그들이 제 울타리를 친다구, 개인주의라구 나무람했는데 과학연구사업을 그렇게만 볼수는 없습니다. 새것을 창조해내는 탐구란 처음부터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주어모으는 식으로 할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개척하는걸 조장시켜야 합니다. 사회주의사회의 과학이라구 해서 집체적협의의 그늘밑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원래 학자란 여러가지 쓸데없는 일에 관심하고 삐치면 제일도 남의 일도 다 그르치는 법이지요.》

그이께서는 조용히 사색깊은 목소리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학문은 어느 한 단계까지는 울타리를 치구 탐구해내야 한다, 기초를 쌓는데까지는 독창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흡사 발전소언제를 쌓기 전에 가물막이를 해서 기초를 깊이하는것과 같다구 할가, 그 단계까지는 탐구자, 창조자고유의 세계에 쓸데없이 간참할 필요가 없다, 일단 기초가 축성된 다음 언제를 쌓을 때엔 문제가 다르다, 탐구자, 발명가가 내놓은 기초가 있은 다음엔 그때는 집체적협의와 사회적력량을 동원해야 하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다, 개인주의울타리와 학자들이 치는 탐구의 울타리를 갈라보아야 한다, 목수가 많으면 집이 삐뚤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얘기가 딴데로 흘러간것 같은데 어쨌든 학자들이 남의 일에 간참하고 무엇이 되기도 전에 시야비야하는것은 남의것을 통채로 삼키는것보다 못지 않게 옳지 않은 일이다.…

리승기는 참으로 귀중한 그 말씀들을 가슴속 갈피마다에 빨리 그리고 뚜렷이 적어나갔으며 심장으로 그 참뜻을 공감하면서 경탄의 심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 어떤 스승도 이제껏 자기한테 이러한 과학탐구의 철리를 깨우쳐준적은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리재업을 두고 말씀을 옮겨오셨다.

《재업동문 어제 비판이 아팠겠지만 좋은 약이 쓴것처럼 제 말이 옳다는걸 이내 깨달을겁니다. 또 내가 알고있기엔 의기를 잃구 소침해질 동무는 아닌게고…》

《저한테 다 맡기십시오. 근심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리선생을 믿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그의 마음을 풀어주십시오.… 그런데 재업동문 술을 좋아한다지요?》

《네, 과하게 하진 않지만 즐기는것 같습니다.》

《리선생, 그와 마주앉아 술 한번 나눈적 있습니까? 선생이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본적 없는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도 뜻밖의 말씀이여서 리승기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띠우시였다.

《이번에 재업동무를 집에다 불러놓고 한잔 부어주면서 얘기를 나누십시오. 재업동문 선생한테 사위이기 전에 학문의 제자가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리승기를 지켜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술을 즐기는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을 풀적엔 술이 괜찮을 때도 있습니다.》

어째선지 그이께서는 차창밖에 잠시 시선을 던지시더니 고개를 돌리시여 앞을 바라보시였다.

《전쟁때 김책동무가 세상을 떠났을 때입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빈방에 앉아 그를 잃은 슬픔을 도무지 이길수가 없어 독한 술로 위안하느라구… 그때 난 혼자 앉아 책상을 쳤습니다.… 허, 내가 그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른 미소로써 가슴아픈 추억을 지워버리시며 흔연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입모습에는 어딘가 그 추연한 빛이 남은듯싶었다.

리승기는 얼른 말머리를 돌리였다.

《걱정마십시오. 그를 제가 꼭…》

《부탁합니다.… 나를 대신해서 리선생이 그한테 잘 얘기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침내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 밝은 미소로 하여 리승기는 만시름이 그리고 여태 가슴에서 떠나지 않던 송구함과 죄스러움이 일시에 가시는것만 같았다. 그는 자못 마음이 풀리여 같이 미소를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승기한테 고개를 돌리시였다.

《이제 쇠물이 쏟아지는걸 보면 한결 기운이 솟을겁니다. 우리한테두 튼튼히 주추돌을 박은 금속공업이 있구나 하구 말입니다. 화학공업에서 그처럼 바라는 질좋은 불수강을 우리 손으로 척척 만들어낼 날두 멀지 않습니다.》

그이께서 만족한 표정을 띠우시자 리승기는 점점 즐거운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승용차는 살같이 달리며 어느덧 제철소지구의 도로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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