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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국의 품에 안겨》중에서

 

꿈이 아니다

 

세상에 꿈처럼 아름답고 랑만적인것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꿈에 자기의 희망과 미래를 담기도 하고 꿈에서 깨여나면 그렇듯 아쉬워하는것이다.

평양고려호텔에서 생활하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배려로 현대적인 고층살림집으로 이사를 한 날이였다.

그날 나는 배정된 집의 출입문앞에서 한동안 조각처럼 굳어져 서있었다.

이 집이 정말 내 집이 옳은가.

숨을 죽이고 슬그머니 손등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갔다. 아, 그러니 꿈이 아니구나!

문득 성냥곽처럼 작고 뻘겋게 녹쓴 철문이 눈앞에 그려졌다. 나를 34년동안 가두어놓았던 지옥의 문이였다.

그것이 악착스러운 이붓어미의 마수를 피해 방황하던 백설공주가 우연히 찾아들어갔던 일곱난쟁이들의 집문처럼 사랑과 행복을 가져다준 문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 문은 비전향장기수들을 사형장이나 혹은 고문장으로 끌어낼 때에만 열리군 하던 불행의 문이였다. 비록 내가 갇힌 독감방의 문이였지만 언제 한번 그 문을 내 손으로 열어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문손잡이를 잡았을 경우 탈옥기도로 기소되여 재판에 회부되는 판이니 간수가 일방적으로 열군 하는 문에 대한 관심은 은연중 사라져버리고말았었다.

우리들의 처지에 비하면 프랑스작가 알렉쌍드르 뒤마가 쓴 장편소설 《몽떼 끄리스또백작》에서 나오는 이프성새의 수인은 호사를 누렸다고 할수 있다.

《어서 문을 여십시오.》 하고 내뒤에 있던 일군이 부드럽게 권고해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출입문을 열었다.

다음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만치 문들이 너무도 많았기때문이였다.

얼떠름해서 문들을 세여보았다.

하나, 둘…

열둘까지 세고는 그만 삭갈렸다. 이번에는 눈을 바로 뜨고 셈세기를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 세고보니 모두 17개였다. 많기도 하구나! 그 문너머에 어떤 행복이 있을가 하는 호기심이 솟구쳤다.

먼저 앞에 보이는 문부터 열었다. 그러자 가구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는 넓고 환한 방이 나타났다. 한쪽벽면을 가득 채운 큰 창문으로는 밝은 해빛이 거침없이 비쳐들고 방안에는 따스한 온기가 맴돌고있었다. 한겨울에 런닝그만 입고있어도 춥지 않을 방이였다.

긴긴 세월 귀가 얼고 머리가 시리고 발이 얼음처럼 차거운 천연《랭장고》속에서 추위에 쪼들린 나로서는 이런 뜨뜻한 방에서 한번 잠을 푹 자보는것이 평생소원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갈망이 마침내 성취되게 된것이다.

가만, 이 옆방은 어떤 방일가?

그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 방도 덥고 밝았다. 오른쪽에도 방이 있었다. 그리고 또…

문을 열 때마다 기다리고있은듯 행복이 달려나와 나를 얼싸안는것 같았다.

아, 이것이 이제부터 내가 살 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남조선에 있을 때에는 온종일 해빛 한점 비쳐들지 않는 비좁은 독감방에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누워있던 내가 오늘은 궁궐같은 이 방들의 주인이 되다니…

그 감정은 부엌세간들이 구색에 맞게 놓여있는 부엌에 들어섰을 때에도, 욕조에 가득찬 뜨끈한 물이 어서 오라고 부르는듯싶은 목욕탕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꿈인가 생시인가 해서 손등을 꼬집어보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그 많은 집안의 문들에 내 손때가 진하게 배였고 푹신한 침대며 화려한 이불장들, 품위있는 양복장들, 씽씽 돌아가는 랭풍기 등에 습관되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 넓고 따스한 방에서 오금을 쭉 펴고 누워있느라면 자꾸만 독감방시절이 생각난다.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수 있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먹물같은 어둠이 기다렸다는듯이 수인을 덥석 집어삼키고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냄새로 질식해버릴 더러운 감방…

바닥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구데기가 꿈틀꿈틀 기여다니고 천정에는 흡사 기관총련발사격을 한것처럼 파리, 모기가 새까맣게 붙어있는 감방은 겨울에는 한와트의 전기가 없이도 잘 돌아가는 천연《랭장고》이고 여름에는 원하지 않는 땀을 동이채로 뽑아야 하는 《한증탕》이였다.

결국 그 비좁은 곳에서 만물의 령장인 인간과 진화를 거부한 벌레가 공존하는셈이다.

머리를 뗑하게 하고 속을 뒤집어놓는 감방안의 악취속에서 한두달도 아니고 수십년동안 생활하다보니 지독한 냄새가 몸에 배고 코도 자기의 사명을 포기해버렸었다. 그 불결한 냄새는 아무리 씻고씻어도 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내 몸에서 고급향수냄새만 풍긴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매일 집에서 목욕을 하고 주 1회씩 은정관에 내려가 습식 혹은 건식한증을 하니 수십년동안 지독하게 배여있던 악취가 달아나버린것이다.

꿈같은 행복은 보금자리에만 깃들어있는것이 아니였다.

조국에 돌아온 후 나는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이 오면 저녁늦게까지 모란봉의 을밀대와 청류정에 올라 양푼처럼 둥그런 달을 하염없이 구경하군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저 아바이는 보름달을 처음 보는가?) 하고 의아해할것이다. 행복한 땅에서 자라나 마음껏 자연의 경치를 부감해왔으니 십분 그럴수 있다.

하지만 오래동안 독감방에 갇혀있느라 정월대보름날의 달구경은 고사하고 려염집들에서 례사롭게 먹군 하는 국수나 귀밝이술 같은것도 상상속에 재간껏 그려보아야 했던 나로서는 언제 남들의 눈치를 볼새도 없다. 그래서인지 정월대보름날 모란봉에서 제일 늦게 내려오는 사람은 아마 나일것이다. 실컷 달구경을 하고싶다. 잃었던 모든것을 다 누려보고싶다.

지난해에도 나는 정월대보름날이 오자 젊은이들처럼 기운차게 모란봉으로 올랐었다.

해마다 그러했지만 그날에도 달빛이 환히 비치는 산길을 걷느라니 내가 아직도 그 인간생지옥속에 달팽이처럼 꼬부리고있었다면 이런 좋은 보름달구경을 어떻게 할수 있었으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출옥후 나는 정월대보름날이 오면 《통일의 집》에서 모여살던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달구경을 하군 했었다. 수십년동안 쪼각달마저 볼수 없었던 독감방에 있을 때의 안타까움은 다소 풀수 있었지만 왜 그런지 보름달이 별로 작고 밝아보이지도 않았었다.

그 느낌은 나만이 아니라 내곁의 동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정월대보름달은 남조선에서 보던것보다 더 크고 밝다. 그래서 저절로 흥취가 나고 정감이 솟구치군 한다.

최근년간에는 내가 정월대보름달구경을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면목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달구경을 실컷 하고나서는 기분좋게 맥주나 소주를 들이키기도 한다.

래년도에도 그 다음해에도 나는 정월대보름날마다 꼭꼭 모란봉에 오를 생각이다.

정월대보름달구경 못지 않게 아름다운것은 조국의 사계절경치이다.

봄에는 수려한 모란봉의 자락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취하도록 냄새맡으면서, 여름에는 송도원백사장에 활짝 핀 해당화꽃과 푸른 파도속에 몸을 잠그고서, 가을에는 중앙식물원의 타는듯 한 붉은 단풍과 끝없는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은행나무의 누런 락엽을 밟으면서 그리고 겨울에는 역시 모란봉의 눈내리는 산책길을 조용히 걸으면서 알고 받는것보다 모르고 받는것이 더 많은 조국의 사랑을 되새겨보군 한다.

행복은 이 땅 그 어디에나 다 깃들어있다.

조국의 품에 안긴 후 내 생활에서 일어난 꿈같은 변화중의 하나는 내 주위에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것이다.

나의 동지들이 때없이 집에 찾아오는가 하면 거리에 나가서도 숱한 사람들을 만나군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구면지기처럼 반가와한다.

어느날 거리를 걷는데 웬 남자가 무춤 멈춰서더니 《저, 김동기선생님이 아닙니까?!》 하고 묻는것이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모를 사람이였다.

《뉘신지요?》

상대방은 10년만에 헤여졌다 만난 막역지우라도 되는듯이 반가워하는데 나로서는 초면이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수 없다.

별수없이 《날 어떻게 압니까?》 하고 물을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예, 옳구만요. 선생님이 쓰신 수기집 <태양가까이에서>를 보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아, 그래요?》

우리 두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은 내가 조국에서 매일처럼 겪는 생활의 한토막이다.

내가 알게 된 사람들중에는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인민배우, 인민예술가도 있고 국제경기들에 나가 선군조선의 영예를 떨친 체육인들도 있다.

남조선에 있을 땐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꿎게 밀려드는 고독, 고독…

그것은 소리없는 고문이였다.

기껏 만난다는것이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더 나을 그런 추물들-나를 전향시키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풍성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배신의 나락으로 집요하게 유혹하던 놈팽이들뿐이였다.

이제는 그 악몽도 콩크리트바닥에 떨어진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이 김동기는, 아니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은 더는 고독하지 않다.

나는 때없이 이런 생각을 하군 한다.

내가 하루에도 몇번씩 쥐여보군 하는 그 행복한 문들, 다리가 시도록 걷고있는 모란봉의 산책길, 언제나 나를 돌봐주는 고마운 사람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꿈은 깨여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누리는 생활은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금방석에 앉혀주시고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안아온 엄연한 현실이며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된 삶이다.

 

 

비전향장기수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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