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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49 회

제 3 편

제 1 장

4


낮동안은 리승기의 널직한 방이 대체로 비여있군 했었다. 그가 실험실과 중간공장현장에 거의 붙박혀 실험과 관찰에 몰두했기때문이였다.

한데 요즈음 며칠째 별안간 여기가 행정일군들의 방처럼 번잡해졌다. 리승기도 줄창 그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방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길다란 탁자우에는 백로지 석장을 이어놓은 기장만큼한 종이우에 공정도가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며 그려졌다. 카바이드―알데히드―합성―중합―검화―방사에 이르기까지, 도해에는 둥그런 탕크며 탑, 반응가마와 뽐프들이 배관을 말해주는 두줄기선으로 련결되여있다. 매 공정마다 반응식과 촉매와 중간원료들이 분자식으로 씌여졌다. 한마디로 비날론의 공정도 일목료연하게 그려졌다. 탁자 한쪽에는 실험일지와 공정일지들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군관학교에서 반화학을 가르치던 그때처럼 군인다운 체취가 어딘가에 배여있는듯 한 림창직이 색연필을 들고 탑과 배관들이 서로 구분되게 빨간색, 푸른색으로 빗살형의 선을 그을 때면 그가 정말로 작전대앞에 나선 로련한 군사참모로도 보이는것이였다.

허나 리승기는 그것보다는 공정일지들을 뒤지여보는것에 더 큰 주의를 바쳐가며 자기의 책상앞에서 일어날줄을 몰랐다.

제1차 5개년계획기간의 과학연구방향들을 토의하는 과학자들의 협의회가 며칠안으로 평양에서 열리게 되는데 성과 과학원과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서 연방 전화가 내려오면서 비날론의 전망안작성을 알아보고 독촉하는중이였다.

리승기는 이따금 고개를 들고 대견하게 림창직을 바라보군 하였다.

리재업이 못지 않게 공학에 밝은 림창직은 전망안작성에 각별한 열성으로 대했다. 림창직한테 천성적으로 맞는 일 같았다. 계획과 전망, 미래에 대한 설계…

비날론중간공장장인 리재업도 여기에 있어야 했으나 그는 합성고무전망안때문에 거의나 이 일에 관여치 못하게 되였다.

이 방으로는 해당 공정을 맡은 연구사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때로는 실험공처녀들이 실험일지나 종이장을 들고왔다가 그걸 놓고는 방안을 둘러볼념도 못하고 조심스레 물러가버리군 하였다.

전망안작성은 서면상으로도 될것이나 만일을 생각해서 걸그림처럼 걸어놓고 설명할수 있게 하자는것이였다.

한데 막상 해놓고보니 그럴상싶기도 했다. 미래의 공장전경도까지 상상할수 있어 사람들은 퍼그나 관심을 갖고 탁자에 펼쳐진 공정도해를 바라보군 하였다. 어느날 김용석의 일곱살짜리 아들애가 방안에 들어왔다가 발뒤축을 들고 들여다보다가 《피, 재미없는 그림이야.》하고 달아났는데 아이들의 눈으로 볼 때의 그 평가가 사실임에도 사람들은 서운한 생각에 서로 웃고말았다.

벌써 며칠째 하루일을 총화하는 저녁이면 연구사들이 탁자주위에 모여앉군 하였다. 저마끔 제 맡은 공정을 그 도해를 짚어가며 설명을 했다. 림창직은 그것이 그들의 손에 덞어질가봐 짧은 나무지시봉까지 갖다놓았다.

방안에 들어서는 신현석실장이 고개를 수굿한채 두손에 받쳐든 실험일지를 들여다보며 들어와서도 한쪽쏘파에 가앉아 그냥 그것만 들여다보더니 급히 만년필을 꺼내들고 그우에 부지런히 계산을 했다. 집요한 탐구정신으로 사는 그는 일과 휴식의 한계가 없다. 하루하루가 사색과 관찰의 련속이다. 밥먹을 때도 제 손에 든 숟가락이 시약숟갈로 혼돈되는 그런 실험가, 실천가이다. 그래서 리승기는 누구보다도 그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한데 요즘 리승기의 마음은 자주 림창직한테 끌리고있다. 바로 자기한테 없는 측면이 그한테 있다고 생각되기때문이다. 《자, 보시오. 이렇게 될것입니다.》하고 자주 미래의 설계를 내놓군 하는 그가 사실말이지 전망안을 작성하는데서는 더없는 적임자로 되는것 같았다.

쏘파에서 일어난 신현석이 여전히 공정일지를 들여다보며 탁자로 몇걸음 다가오다가 어떤 계산기초를 토의에 내놓으려는지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선생님, 이건 말입니다.》

현석실장이 입을 떼는데 불현듯 리승기가 가벼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였다.

《가만, 좀 기다리시오.》

모두는 리승기의 의문에 찬 시선을 따라 도해의 어느 한 부분을 더듬었으나 그가 어디를 보고 그러는지 딱히 알수 없었다.

리승기는 안경을 벗어들고 들여다보더니 몸을 펴고는 림창직을 바라보았다.

《여기 합성에다 왜 류동촉매라구 써놓았소?》

《이제 비등식으로 넘어가야 할것 같애서.》

《그러나 지금은 고정식을 하고있구 비등식은 아직 실험실단계에서 결속하는 정도인데 여기에 비등식을 념두에 두는 류동촉매라?》

너무 빠르다는 리승기의 말에 곁에서 신현석이도 기웃이 거기를 들여다보았다.

림창직은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리승기의 시선에 질리여 그만 한손을 들어 머리칼을 매만지듯 집으며 저의 실책을 인정하듯이 대답했다.

《그럼 고정촉매라구 고쳐써놓겠습니다.》

그러자 리승기는 조용히 말했다.

《고정촉매라구 써놓으시오, 아니면 괄호안에 또는 류동촉매라구 덧붙이던지.》

《알겠습니다.》

림창직이 이렇게 대답하자 역시 이런 때에 기분을 전환시키는 솜씨는 김용석이한테 있었다.

《아무튼 자넨 공상가야! 항상 리상이 앞서는건 좋아. 한데 미래로 지내 앞서달린다니까. 벌써부터 비등식을 된거나 마찬가지로 써놓다니.》

《그러게 전망안이 아닌가!》

이렇게 부르짖는 림창직의 미소어린 입귀에서는 금이가 반짝였다.

무엇인가 말하고싶어 한손을 내들고 서있는 리승기를 바라보며 모두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현학적인 언사를 싫어하는 리승기는 자기의 내심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현실과 공상!) 하는 거대한 대조관념이 쌍벽처럼 솟아올랐다. 공상이 없이는 과학이란 있을수 없다. 공상은 과학의 추동력이다. 끊임없이 공상하는것, 그것은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것이 과학자의 본분일진대 과학자는 두더지처럼 땅만 팔것이 아니라 산매처럼 하늘로 올라 무한한 대공을 날아예며 멀리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허나 현실성이 없는 공상이란 한갖 거푸집에 불과한것,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상은 현실속에서 출발하기때문이다.

하다면 어째서 림창직의 잘못을 튕겨주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비현실적인것, 과학상의 자그마한 허풍도 반대하기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리승기는 미래에로 세차게 내닫는 림창직의 그 락관주의가 자못 대견스럽고 그것이 못내 부러워지기까지 하는것이다.

리승기는 이 복잡한 내심을 단마디로 내비치기 힘들었다. 그는 말했다.

《공상과 현실… 과학에서 근본문제의 하나입니다.》

모두 얼떠름해서 리승기의 입을 지켜보는데 그는 문득 이렇게 말을 이었다.

《어느 책에선가 본것 같은데… 앞으로 과학의 분업이 발달되면 한 학자집단은 전문적으로 이모저모 무수한 공상을… 저, 그 구상안들을 생각해서 내놓으면 다른 집단은 따라가면서 그것을 실험이나 문헌으로 검토하여 버릴것은 버리고 다음집단에 넘기고… 다음은 완전히 실천가들로서 거기에 달라붙어 탐구해낸다는거요.… 아마 그게 과학환상소설에 있은것 같은데?…》

《저두 본 기억이 납니다.》

림창직이 응수해나섰다.

리승기는 말을 이었다.

《한데 그것이… 대담하구 활발한 공상을 지지한 점은 좋은데… 공상과 현실적인 탐구를 인위적으로 갈라놓는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더구만. 내 생각엔 공상과 현실은 한 학자의 머리속에 나란히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가 하는게요. 어차피 학자가 발을 딛고 선 현실에서 출발하고 그 현실에로 돌아와야 하니까.… 공상과 현실은 반작용을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구…》

리승기가 앉자 모두 탁자주위의 의자들에 앉았다.

신현석이 주저주저 말을 꺼냈다.

《공상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여야 한다는건 옳습니다. 현실성없는 공상은 헛눈을 팔게 하고 남을 넘겨다보는 버릇을 궂혀주거던요.》

김용석이 분위기를 눙치느라고 어리손을 치던 그런 웃음을 거두고 심중한 낯색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난 이게 일반론으로 번진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고쳐 생각해보니 확실히 중요한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전망안을 앞에 놓고 마주앉으니 말입니다.》

앞으로 더 론의할 여지를 보면서도 모두는 여기에 오래 집착해있을수 없음을 느끼면서 신현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무엇인가 토의에 붙이려고 손에 공정일지를 펼쳐든 신현석이 입을 열려고 할 그때 리승기는 제가 보던 실험일지에서 고개를 들고는 《미안한데 잠간만…》하고 다시 신현석을 제지시켜놓는것이였다.

리승기가 말했다.

《창직동무, 여기 와 좀 보우.》

림창직은 탁자를 에돌아 곁에 다가서며 리승기의 어깨너머로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여러번에 걸치는 실험표에는 류량압력, 온도 등을 표시한 많은 수자들이 보였다.

《이걸 보시오. 쉰다섯차례의 실험에서 왜 이것만은 다른 수자를 표시하고있소?》

림창직은 당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글쎄 말입니다.》

《동무가 종합하면서 이걸 놓쳤을리는 없겠는데…》

림창직은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소 게면쩍은듯 말했다.

《아, 생각납니다. 물어보니 이날은 실험조건이 불리했다고 해서…》

그는 자기를 구원해줄 누구를 찾으려는듯 공연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으나 그 검화공정의 연구사는 여기에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실험조건은 다른 때와 차이나지 않게 적혔는데… 실험공의 오기는 아닐것이구…》

《오기가 아니란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림창직은 말문이 막혔다. 허나 그는 허리를 펴고나서 두손을 감싸쥐며 솔직한 말투로 인정하였다.

《저는 그… 한번을 무시해버렸습니다.》

《무시하다니, 원참.》

리승기는 불쑥 바른손을 들어 앞쪽으로 한번 흔들어보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이럴수 있는가?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난 그게 믿어지지 않아… 이런 여러가지 뜻이 그 하나의 손짓에서 풍겨왔다.

김용석이 참지 못하고 몇걸음 급히 다가와 리승기가 내주는 실험일지를 들여다보더니 림창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한번을 무시했다는 말인가, 자넨 공상가가 아니라 이제 보니 허풍쟁이야… 이렇게 무랍없이 꾸짖는 눈찌였다.

그 실험일지는 신현석의 손에 갔다. 그는 꼼꼼히 그 앞장에서부터 훑어보았고 그 실험기록을 지나 뒤장까지도 다 보고나서도 말없이 앉아있었다.

리승기는 림창직에게 물었다.

《그 한번의 실험이 이상한걸 보여줬는데 리론적인 검토는 없었단 말이요?》

림창직은 아무 말도 못한채 머주하니 서있었다. 그가 직접 맡은 공정이 아니라 해도 종합할 때 그런 특이한 사항을 협의에 제기하지 않은것은 그의 실책이 분명하다.

리승기는 여태 본적 없는 단호한 동작으로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로서는 어지간히 높은 음성으로 말했다.

《안되겠소. 그대로 넘어갈순 없습니다. 그 실험을 반복해봐야겠습니다.》

현석실장이 급해나서 리승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이틀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현석동무.》

리승기는 이렇게 부르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이 전망안을 우리가 당과 인민앞에 내놓는다고 생각할 때…》하고는 사람들이 제 말의 뜻을 알리라고 믿었는지 더 말하지 않고 그 어떤 선언을 내리듯 이렇게 말했다.

《교대를 조직해서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그것이 리론적으로 해명될 때까지 실험과 문헌연구를 동반해서 하루이틀동안 집중시킵시다.》

그것은 작전대앞에서 내린 군사령관의 목소리처럼 엄숙히 울렸다.

고대로마로부터 시작하여 여러형의 군사가들이 있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군사가들을 두가지 형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하였다. 전자는 얼핏 보면 온화하고 내성적이면서도 령활한 형이고 후자는 언변이 사색을 낳고 사색이 언변을 낳으며 능청스럽다가도 결정적순간에 단호한 형이다. 만일에 리승기를 군사가에 비길수 있다면 일상시에는 그가 전자와 같다면 세명의 연구사와 함께 서있는 지금의 이 순간이야말로 후자형에 가까운것이다.

《검화공정을 책임진 박동무와 함께 전적으로 이 일에 달라붙겠습니다.》하고 심심히 뉘우치는듯이 말하는 림창직을 바라보며 리승기는 그가 동정이나 위안으로 받아 안 들이게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쉰다섯번중의 한번은 하나의 티이구 우린 그 티를 제거하면 되는거요.》

그리고는 다시금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지금은 다른걸 론할 시간이 없습니다. 실험일지에 나타난 이상한 현상을 해명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입시다.》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지금은 당장 쉰다섯번중의 그 하나를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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