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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 3 편

제 1 장

3


도이췰란드에서 돌아온 리승기의 생활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고 외국방문이 그한테 아무러한 자극도 주지 못한것만 같았다.

허나 그럴수는 없었다. 방문에서 돌아온지 엿새째되는 날에 리승기는 한태호의 곁을 지나가다가 용접면을 쥐고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그한테 이런 말을 하였다.

《태호동무, 내 이번에 도이췰란드에 가 공장을 돌다가 마침 동으로 특수용접을 하는걸 보았소. 한데 동무솜씨에다 대면 아주 락후하더구만. 동문 요새 그걸 용접하는게 잘 안돼서 상심해있다는데 조금두 그럴 필요가 없어. 신심을 가지라구.》

리승기는 한태호의 어깨를 다독여주기까지 하고는 합성건물쪽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스스로 얻는 어떤 신심이나 암시일수도 있었다.

실은 그가 도이췰란드방문을 전후하여 지금까지 줄곧 고정식이냐? 비등식이냐? 하는 탐구의 모대김속에 있음은 누구에게나 명백했다. 2층에 있는 그의 방 창문에는 밤늦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이 불빛 하나만 가지고도 학자의 마음이 순편치 않다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따라서 청수에 내려온 방하민은 리승기를 만나 합성공정에 대한 제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뒤로 미루기만 하였다.

리승기와 함께 갔다온 리재업을 과학원청사의 제방에서 만났을 때 방하민은 우선 그의 합성고무부터 물었다.

《그래, 쏘련에서 감자알콜을 원료로 합성고무를 연구한다는게 사실이지?》 하더니 리재업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방하민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마치나 (거 보라구, 내 권고가 옳았지.)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방하민은 상대방의 기색을 살피며 미상불 불안도 없지 않은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부나화학에선 합성을 어떤 방법으로 합디까?… 비등식일테지?》

하지만 리재업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그럼 뭐란 말이요?》

방하민은 퍼그나 놀라며 의자에서 일어설번 했으나 그 순간 자제할수 있었다.

《웬일인지 도이췰란드에서는 우리처럼 고정식방법입니다. 고정촉매를 쓰지요.》

방하민은 두리두리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 작은 두눈을 한껏 치뜨며 리재업을 빤히 보기만 할뿐 잠간 말이 없더니 짐짓 한숨을 내쉬였다.

《그럼… 우리도 비등식으로 못하겠구만. 도이췰란드에서 고정식으로 한다니 우린 심중해야겠어.… 도이췰란드야 다른 공업도 그렇지만 화학공업이 최대수준으로 발전한 나라인데… 가만, 그게 장치가 복잡한데 우리 나라 공업발전수준에 맞을가.… 아니 아니, 장치는 수입하는 일이 있더라두 도이췰란드에서 하는대로 고정식을 계속하는게 옳을것 같구만.》

그는 스스로 제 말에서 모순을 느꼈던지 《됐소, 됐소. 그건 리선생과 구체적으로 토론하기로 하고…》하면서 부랴부랴 자기들의 담화를 끝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리승기가 도이췰란드에 가서 고정식에서 가장 큰 난점인 반응열제거, 장치제작 등을 충분히 보고 왔겠으니 동요없이 계속 고정식을 추진시키자고.

한데 먼저번에 왔을 때 방하민은 리승기가 오정해한테 과업을 주어 실험실에서 비등식방법을 하게 하는것을 보고는 무척 놀래였다. 그런가 하면 20키로중간공장에서는 여전히 고정식을 하고있어서 방하민의 의문은 더욱 커지였다. 그러니 이제 대규모의 200키로중간공장에서는 어느 방법을 하려는가? 도대체 종잡을수가 없었다.

연구사들의 말을 들어봐도 리승기가 아직 확고한 결심을 못 가지는게 분명하다. 이건 전적으로 그의 우유부단한 성미의탓이라고 방하민은 생각하였다.

허나 그도 학자인것만큼 리승기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싶은 심정을 억누를수가 없었으며 지어 밤늦도록 앉아있는 리승기의 건강까지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승기와 마주앉아 도이췰란드에서 보고온 고정식론의를 내밀어볼 배심을 가지게 되였다.

오늘 저녁도 방하민은 현관을 나섰으나 2층의 불빛을 보고는 얼른 거기서 떠날수가 없었다.

가까이로는 주위가 캄캄한데 공장구내의 저쪽에서는 전기로의 웅웅거리는 아크소리가 들릴뿐이였다. 문득 한 녀인이 그의 앞에 마주왔다. 방하민은 2층의 외로운 불빛에서 시선을 내려 몇발자국앞의 어둠속에 서있는 녀인을 보았다.

녀인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방선생이시군요.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방하민은 당황히 중얼거렸다.

《아, 이거 얼른 알아보지 못하구… 그래, 어떻게 이렇게 나왔습니까?》

분이는 바삐 걸어오던 숨을 호― 내불며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밤두 늦게 계실것 같아 저녁밥을 가져오느라구…》

분이는 어둠속에서 밥보자기를 들어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렇군요.》

방하민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오늘 밤은 일찌감치 들어가게 내 좀 올라가 말해볼가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분이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예요. 그건 안될거예요. 요샌 집에 들어와서두 줄창 날이 새도록 책상앞에 앉아있으니 참…》

《하, 그러니 어쩐다. 그러다 또 병이 도지지 않겠나요?》

《그러기 말예요.…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온걸요.》

《그래두 내 한번 말해보렵니다.》

방하민이 당장 현관쪽으로 돌아서는것을 분이가 황급히 말리였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세요. 그 칭원이 나한테 돌아올거예요.》

방하민이 거기로 올라가는것을 두려워하는 분이는 길섶의 긴의자에 우선 방하민을 잡아앉히려고 서두른다.

《방선생, 여기 좀…》

방하민도 장의자에 앉았다. 방하민을 설득시키는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나 한듯 분이는 서둘러 입을 열려고 하였다. 하지만 저 2층의 불빛이 자기를 힐책하는것 같아서인지 분이는 한사코 그쪽은 보지 않으면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글쎄 일본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화산의 분화구에서 나오는 가스를 연구하겠다고 가스를 포집하러 몇번이나 산으로 갔어요. 위험하다구 아무리 말려두 들을리가 있나요? 워낙 그런데서는 지꿎은분이니까요.… 한데 글쎄 가스포집이 잘 안되니까 분화구가까이까지 다가갔지요. 그러니 어찌됐겠어요? 가스를 포집기구에 잡다가 그만 질식해서 쓰러졌지요. 사람들이 찾아냈을 때까지도 여전히 의식을 잃구, 조선고학생들이 아니였더라면 그때 구원되지 못했을거예요. 그 어혈이 후에 신경증을 일으키는데 원인의 하나로 되였다는 의사두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감탄도, 새삼스러운 느낌도 아닌 방하민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방하민은 언젠가 그때는 귀담아듣지 않았어도 지금 분이의 이야기에서 오는 충격때문인지 언뜻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몇년전인가 어느 일요일에 리선생이 부인과 함께 산에서 길을 잃어서 소동이 일어난적 있었지요?》

《참 그랬어요. 저두 그때 정말 혼났어요.》

《무슨 샘줄기를 찾는다던가 했지요?》

《그래요. 집앞에 있는 개울이 어디서부터 흐르는지 그 시원을 알겠다구 글쎄 저보구 길동무 해달라구 해서 따라나섰지요. 저기 저 골안에서 말입니다.》

분이는 어딘가 어둠에 잠긴 곳을 가리켰다.

《실개울을 찾구 그것두 성차지 않아 그 마지막샘물터까지 찾아냈지요. 그렇게 한적이 세번이나 돼요. 갈라진 개울마다 다 따라올라갔으니까요. 한번은 20리나 되게 골안을 더듬어올라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면서 길을 헛갈렸어요. 우리를 찾느라구 글쎄 연구사선생들까지 다 나섰댔지요. 깊은 밤에 우리가 나타나니 아이들이 왕 하고 일시에 울음을 터뜨려 저두 함께… 한데 그인 희색이 만면해서 웃방의 책상부터 찾아가앉더니 무슨 중합공정인지 하는데서 풀리지 않던 고리를 찾았다나요. 마치나 산속으로 샘줄기를 찾으러 간게 아니라 연구사업에서 어떤 착상을 얻으러 거기까지 갔다온것만 같았어요.… 참, 무슨 성미가 그런지 샘줄기는 찾아 또 뭘하며…》

그 말을 듣던 방하민이 《아닙니다, 그게 학자들이지요.》 하고 조용히 응수하더니 《음.》하고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였다. 그러자 그는 리승기가 지금 고정식인가 비등식인가를 안고 모대기는것이 우유부단이 아니라 끈질긴 탐구정신에서 오는것임을 동업자로서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날 밤도 2층에 있는 그 창문에서만은 날이 새도록 불빛이 흐르고있었다.

이렇듯이 폴리비닐알콜의 심장부인 합성공정에서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에서 탐구를 거듭하고있는 때에 뜻밖에도 비날론공업화의 전망안을 작성하라는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와 성의 지시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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