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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제 2 편

제 5 장

2


…8.15해방 10돐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리승기는 승용차를 타고 청수에서 평양으로 나왔다.

경축대회장의 층계를 오르내릴 때 그와 면식있는 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인사를 청해왔다. 휴계실에서도 숙소에서도 그를 일부러 만나러 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심과 고무를 주는 눈빛들이였다. 난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오로지 좋은 성과만을 기다린다는듯 굳게 손을 잡고 흔들어주는것이였다. 그 손마다에서 느껴오는 힘과 뜻을 통하여 리승기는 일시적인 의기저상은커녕 잠간 제자리에서 쉬고있을수조차 없다는것을 강렬히 느끼였다.

경축대회가 끝나고 예술공연전에 잠시 휴식이 있었는데 그때 홍명희부수상이 불러서 리승기는 어느 한 휴계실로 들어갔다.

홍명희는 청수에 왔다간지 얼마 안되지만 오랜만에 만난것처럼 무척 반가와했다.

《승기선생, 수령님께서는 내가 거기 갔다온 보고를 받으시고 마음이 좀 놓인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승기선생과 여러 연구사들의 휴식을 두고 걱정하시였습니다. 사람이 너무 일에만 몰리면 성과두 나지 않는다면서 그 근방은 수풍호도 있고 창성약수터도 있는데 일요일에는 그런데 가서 바람도 쐬우면 좋지 않겠는가고 하시였습니다.》

리승기는 여직 이런 일에는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는 실책보다도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그 세심한 사랑에 그만 머리를 들수 없었다.

홍명희가 말을 계속하고있었다.

《승기선생, 사실은 요전번에 내가 승기선생한테 들린것도 수령님의 직접적인 가르치심이였는데 그때는 그이께서 자신께서 가보라고 하면 어떤 행정적인 중압감으로 느낄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게 아니겠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뜨거운 눈길을 부딪칠뿐 잠간 숙연한 침묵속에 있었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그렇게 걱정해주실 때 자기는 과연 어떤 정신상태에 있었는가를 돌이키는 리승기의 심중은 뜨거움에 뒤이어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언젠가 전쟁시기 그이께서 김용진을 통하여 《합성1》호 연구사업을 추진하도록 할 때에도 그것은 모르고 깊은 후방에 들어앉아 자기는 일부 사람들의 행동만 보고서 의혹과 오해와 불신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지금 홍명희의 말을 들으면서 리승기는 그이께서 자기의 매 걸음, 매 순간의 생각, 매일매일 하는 일들을 지켜보시고 걱정해주시고 마음쓰신다는것을 더욱 절절히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휴계실을 나서면서야 홍명희를 통하여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 감사의 인사를 올릴 생각조차 못했음을 때늦게 깨닫고는 자신의 미거함에 그저 머리를 저었을뿐이다.

경축대회가 있은 그 이튿날 저녁에는 최삼열교수가 자기 집으로 리승기, 계응상 두 박사를 함께 초대하였다. 그렇잖아도 리승기는 최삼열을 조용히 만나 상론할 일도 있었다.

집은 새로 지은 아빠트 3층에 있었다. 방은 네칸에 널직널직하였다. 두 박사는 부인과 인사를 나눈 후에 주인의 서재에 들어섰다.

계응상은 방안을 둘러보다가 그 설핀 턱수염을 내리쓸며 말했다.

《온돌이 아니군.》

희한하다는것인지, 나무라는것인지 종잡을수 없는 어조다.

한데 최삼열은 계응상이 아니라 리승기를 보며 량해를 구하듯 말했다.

《침대보다 온돌방바닥을 좋아하는 리선생한테는 불편할텐데.》

《아니, 아니 괜찮소.》

뜻밖에도 자기의 습관이 남한테 걱정을 끼치게 되자 당황해하는 리승기였다.

세사람은 의자에 둘러앉아 허물없는 담소를 하다가 다른 방에 가서 저녁밥을 나누었다.

서재로 다시 돌아와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불쑥 계응상박사가 말했다.

《여보시오, 최삼열선생. 난 려관에 가지 않구 여기서 자겠소.… 근데 좀 일찌기 자야겠수다. 래일 아침일찍 떠나야겠으니. 보다싶이 지금 8월이요. 먹성좋은 누에들이 연구소잠실에서 와삭와삭 먹어대는 소리가 막 들리는것 같소그려. 한시바삐 내려가야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최삼열이 일어서서 계응상을 자기의 침실로 데려가려 했다. 집주인을 따라 일어서던 계응상은 뒤돌아보며 히쭉 웃더니 《리선생, 당신네들은 같은 화학쟁이들이니 나야 앉아있어두 아무래두 방해나 될것 같소그려.》 하고 능청을 떨었다.

《원, 선생두. 언젠가는 생물학자가 화학을 모르면 반편이라 하더니.》

《허허. 내가 그랬던가. 하여튼 난 가 자야겠소. 누에란 놈들이 눈에 사물거려 도무지… 빨리 가야겠거던. 그리구 리선생두 려관에 갈게 있소? 나와 동무해서 이제 저 방에 와서 함께 잡시다. 저 전쟁때 후창에서처럼 말이요.》

최삼열이 부인과 함께 침실로 계박사를 데리고가 잠자리를 봐주고나서 서재로 돌아왔다.

단둘이 마주앉게 되자 최삼열은 미안한 생각부터 앞서는지 서둘러 말을 꺼냈다.

《오정해는 졸업론문도 거의 학위론문수준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해방후에 우리 힘으로 초산과 알콜을 합성할 때 김용석동무랑 같이 송복섭동무밑에서 일해봤구 또 리선생밑에서 전쟁때 두해씩이나 배웠으니 실천에서두 문제없을수밖에요. 사람이 괜찮으니 사방에서 욕심을 내지요. 그래서 과학원에 끌어당기겠다는 바람에 나두 첨엔 동요했구 본인두 적지 않게… 하지만 본인이 강경히 청수로 가겠다구 해서… 이젠 나두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리승기는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그의 바로 등뒤에는 여러 층단으로 된 서가에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그의 한손은 자연스레 주인의 서탁우에 놓여졌다. 거기에는 여러권의 두툼한 책들이 쌓였는데 리승기의 손가까이에 《고분자화학》이라는 책이 따로 놓여있었다. 번역도서였다. 리승기는 무심중에 얼핏 겉표지를 보았다. 《엔. 무라비예브 저, 방하민 역》우연히도 방하민의 이름을 여기서 보자 리승기는 최삼열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응대를 하게 되였다.

《글쎄 나두 욕심을 내서 대학엘 보냈던건데… 후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니 본인두 동요했겠지요.》

이 순간 두사람은 거의 동시에 방안에 없는 제3자의 존재를 얼핏 생각하였다.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방하민이였다. 하지만 그의 영상은 이내 이 방에서 사라져버렸다. 책표지에 씌여진 그 이름조차 가리우려는듯 저쪽 책상모서리에 앉았던 최삼열이 무심한 동작처럼 다른 책을 훌쩍 그우에 던져올려놓았다.

리승기는 최삼열과 반드시 상론할 일을 머리속에 가지고왔던것만큼 이미 거기에는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최삼열에게 말했다.

《난 얼마전에 외국문헌에서 카바이드에서 출발하면서도 폴리비닐알콜을 거치는 〈합성1〉호가 아니라… 다른 섬유를 할수 있다는걸 보았습니다.》

그러자 최삼열은 상당한 정도로 놀라며 상대방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말했다.

《나도 보기는 보았습니다.… 그래서요?… 아닐론 말이지요?》

(※ 이 아닐론은 지금 원유에서 뽑는 그것과는 달리 카바이드에서 출발하는것이였다.)

최삼열은 이 리승기박사가 《합성1》호에서 물러나거나 아닐론인지 하는데로 방향을 돌리자고 한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리비닐알콜의 난관이 그로 하여금 한순간의 동요라도 불러일으키는것이 아닐가? 허나 그것을 감히 물을수는 없었다.

리승기는 놀라움을 애써 숨기는 최삼열의 눈빛과 표정에서 상대방의 의혹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하는 합성섬유의 폭을 넓혀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렇다. 아마도 청수에서 리승기가 최삼열을 만났더라면 이렇게 말하지 못할수도 있었다. 8.15해방경축행사에 참가하고나서 보다 신심에 넘친 리승기는 자기의 창조물 하나만을 부둥키지 않는 마음의 크낙한 여유를 가지는듯싶었다.

흔히 학자들은 자기의 탐구과정에서 난관에 부닥치면 그럴수록 더욱 그 미완성창조물에 대한 애착과 거기서 오는 고집과 편벽된 주장을 가질수 있다. 반대로 창조적탐구에서 희망과 신심이 생기면 도리여 시야는 넓어지고 여유있게 주위를 살펴볼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맞는 리치가 아닐가. 탐구의 빈곤과 실패가 고집과 편견을 낳는다는 말이 괜한 소리이겠는가.

리승기는 평양에 올라와서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얻게 된셈이다.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하면서도 《합성1》호와는 다른 방향에서 섬유를 탐색할수도 있었다는것을 유기화학자인 최삼열과 의논하고싶은것이다.

리승기는 말뜻을 미처 알아 못 듣는 시늉을 하며 눈을 꺼벅거리는 최삼열에게 재차 말했다.

《가능한한 모든 방향에서 합성섬유를 탐구해봐야지요. 우린 절대로 우물안의 개구리로 되여서는 안될것입니다. 페쇄적인 울타리속에서 과학을 해서는 안되니까요.》

그제야 최삼열은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리승기가 폴리비닐알콜이나 자기의 창조물인 《합성1》호에서 조금치라도 물러서는것이 아님을 느꼈던것이다. 그는 화학계의 높은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는것이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말씀대로 과시 그는 한개 학문의 봉우리임에 틀림이 없다. 자기의 창조물에만 집착하거나 남의 창조적탐구를 도중에서부터 질시하는따위의 그런 학자는 아닌것이다. 정말이지 우리의 수령님께서만이 사람을 잘 보신다.

최삼열은 심중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우선 과학원평의회에서 광범한 토론에 붙이였으면 합니다.》

《한데 문헌조사나 해서 평의회가 이루어질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습니다. 어차피 외국에 사람들이 가서 보는것이 필요하지요.》

여기서 최삼열은 난색을 지었다.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없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갔다와야겠는데… 거기에 필요한 그 청산특허기술때문에 말입니다.》

이 말에는 리승기도 대답을 못했다.

허나 최삼열이 밝은 어조로 말했다.

《하여튼 대책을 취해보겠으니 저한테 맡기십시오.… 사실 저두 그런 문헌을 보구 생각이 있었지만 리선생의 연구를 혼란시키는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한데 거기에 만약 사람들이 갈수 있게 된다면 우리 〈합성1〉호 연구실에서 가야 할겁니다.》

《아니? 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합성섬유에서 애를 먹고 경험을 쌓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제가 직접 당하는 고충을 헤아려 더 주인답게 살펴볼수 있을테니까요.》

실천가들과는 달리 대학에서 주로 화학인재육성에 몸바치는 최삼열이지만 그것을 이내 리해하게 되였다.

《하긴 그렇습니다.… 한데 만약 보내신다면 누구를?》

리승기는 잠간 생각하고나서 말했다.

《김용석동무와 옥지문동무가 어떨지.》

《거기서 기둥들인데 그렇게 오래 자리를 뜰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해두 연구속도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만큼 자기것을 완성하려는 지향이 더 높아질겁니다.… 다만 정상적인 관계가 없는 그 나라들에 가낼수 있겠는지…》

《그렇지만 내가 과학원 원장선생과 토론하구… 하여튼 그 아닐론인가 하는건 저한테 맡기십시오.》

최삼열은 리승기의 생각을 고맙게 여기고 감심하면서도 어쨌든 그를 《합성1》호 이외의 다른 부담을 시키지 않으려고 작정했던것이다.…

리승기가 청수에 돌아온지 며칠뒤의 어느날, 오정해가 그의 방에 들어왔다.

《그새 수속두 다 끝내구 실험공정료해두 있었겠지?》

《네… 빨리 저두…》

이미 의논들이 있었기에 리승기는 더 주저하지 않았다.

《현석실장하구두 합의되였지만 실험실을 맡아주면 어떻겠나? 20키로중간공장에서두 다시 실험실적단계로 되돌아와 검토할 때가 많구… 실험실이란 항상 출발이면서 기초이니까. 하여튼 래일 아침 현석실장이랑 다시 만나자구. 오늘은 일찍 합숙에 들어가 쉬게.》

그런데 오정해는 얼른 나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왜 그러구 섰나?》

《선생님, 사실… 저기 밖에 지금…》

오정해는 그 곱슬머리를 손빗질을 하고나서 용기를 내여 말했다.

《선생님, 저기 평의대졸업생 녀동무가 의주병원에 실습을 왔다가… 선생님을 한번 만나뵙겠다구 기다리구있습니다.》

《화학공대졸업생도 아니구 평의대졸업생이 나를?… 나를 만나서 어쩐다는건가?》

《한번 선생님한테 인사만 드리고 물러가겠답니다.》

웬일인지 오정해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리승기는 아무것도 리해할수 없었다.

《나한테?… 이 안경쟁이를 구경하자는건 아닐거구. 혹시 우리 하는 연구에 흥미를 느끼구 구경하자는게 아닌가? 그런데 아직이야 무슨 구경할거나 있다구.》

《구경이 아닙니다.》

오정해의 거동을 살펴보던 리승기는 그제야 마음에 짚이는것이 있는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오, 그렇지. 나한테 인사를 시키겠단 말이지? 애인인 모양이지. 그럼 그렇다구 처음부터 말해야지. 들어오라구 하게. 같이 들어올게지 사람두 참.》

한편 오정해는 놀랐다.

리승기가 몹시 달라져보였다.

학자다운 무관심대신에 다심하고 부드러운 성정이 새로 생겨난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정해는 리해 못했으니 믿음을 저바리고 간줄 알았던 제자가, 미래를 촉망하던 후배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그의 심정이 얼마나 밝아졌고 뜨거워졌는가를 미처 몰랐던것이다.

흰샤쯔에 까만 스카트를 받쳐입은 처녀가 들어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명숙이라구 합니다. 많이 배워주십시오.》

《반갑소. 알게 되여… 그러니 우리 오정해가 이젠 여기에 벌써 보금자리를 펴려는셈이구만.… 처녀동무, 그렇지 않소?》

《아이, 선생님두.》

처녀는 얼굴을 활딱 붉히고 아미를 다소곳이 숙이였다. 오정해는 히죽거리며 창밖으로만 시선을 던지고있었다.

리승기는 전에없이 자꾸 말을 해주고싶었다.

《명숙동무, 과학도의 반려자가 되자면 헐치 않소. 과학자나 작가한테는 안해가 그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영웅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다지만 과학자의 뒤에는 안해가 있소. 신들메를 단단히 하고… 그래두 과학자들만큼 애처가들은 또 없다오.》

리승기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곤난을 겪을 때 사람이 사람을 찾아오는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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