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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국의 품에 안겨》중에서

 

《내 생일은 9월 2일입니다.》

 

어린시절 나는 생일날마다 밥속에 살짝 묻혀있는 삶은 닭알을 발견하군 하였었다. 그것은 일곱 남매중 막내아들을 제일 사랑하는 어머니가 형들 몰래 숨겨놓은 닭알이였다.

그 닭알에 깃든 어머니의 한숨과 안타까움을 전혀 알수 없는 나는 그 하얀것을 제꺽 한입에 삼키군 했는데 그것은 유독 나만이 누리는 호사였다.

삶은 닭알을 먹는 날, 그날이 바로 나의 생일이였다.

어머니는 해방후에도, 그리고 내가 성인으로 자란 다음에도 생일날이면 그 일을 아프게 회상하군 하였다.

전쟁시기와 전후복구건설시기, 대학시절에는 전우들과 친구들이 생일을 잊지 않고 성의껏 차려주었었다.

그때에도 나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그들은 삶은 닭알 한알씩 올려놓군 하였다.

그러나 그후 조국통일성전에 나섰다가 감옥에 갇힌 후에는 생일닭알에 대한 미련이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생일은커녕 오히려 우리들의 생일이 놈들의 전향공작수단으로까지 악용되여 다름아닌 자기의 생일날에 고문으로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기때문이였다.

조국의 품에 안긴 다음에야 비전향장기수들은 수십년동안 잊었던 생일을 다시 찾게 되였다.

지금은 매일 아침마다 내 식탁에 삶은 닭알이 꼭꼭 오르군 한다. 옛날처럼 생각한다면 결국 나는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생일을 쇠고있는것으로 된다.

흥하는 집에는 좋은 일만 줄줄이 생기는 법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생일상덕분에 비전향장기수들속에서는 40여년전에 헤여졌던 옥중동지를 만나는 극적인 일까지 생겨났던것이다.

이제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전진동지는 1924년 전라북도 옥구군의 가난한 소작농의 집에서 태여나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머슴살이를 하였다.

그러다가 인민군대에 의하여 고향이 해방되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평생소원이였던 땅을 분여받았다.

머슴살이, 빨찌산투쟁, 오랜 옥중생활로 생일도 모르고 지내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긴 전진동지는 주체92(2003)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은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땅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였던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토로하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오래오래 사십시오.》라고 진심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정색한 어조로 《김동지에게 꼭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후에 시간을 좀 내주시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궁금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건가?

그러던차에 마침 전진동지한테서 집에 오라는 련락이 왔다.

내가 도착하자 그는 식사나 함께 하자고 하면서 못하는 술까지 한잔 붓고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것이였다.

… 1960년대초 대전감옥에는 수용자가 너무 많아 그는 비좁은 감방에서 여러명의 수인과 함께 살았다.

하루는 아침식사시간에 어린아이 주먹만한 4등식콩보리밥덩어리를 받아놓고나서 자기보다 나이가 여섯살우인 한 동지가 《오늘은 전진동지의 생일입니다. (그때 전진동지의 나이는 38살이였다. )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생일상을 차리겠습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전진동지는 영문을 몰라 그를 쳐다보았다.

오늘이 바로 자기의 생일이라는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또 설사 안다고 한들 보잘것없는 콩보리밥밖에 없는데 무엇으로 생일상을 차린다는건가?

그 동지는 빙그레 웃으며 제 밥에서 콩 다섯알을 골라 전동지 밥우에 슬쩍 얹어놓았다. 그러면서 《이 콩 한알은 쌀밥, 다음 콩 한알은 찰떡, 다음 콩 한알은 고기국, 그 다음은 푸짐한 반찬, 마지막 한알은 30%의 축하소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동지들도 자기 밥에서 콩 다섯알씩 골라 전진동지 밥우에 얹어놓았다.

잠시후 그 동지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쯤되면 성찬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성의입니다. 그리고 전동지가 적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신념을 지켜 싸워줄것을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전진동지는 그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생일상》을 받고 콩 한알씩 입에 넣으며 《생일축배》를 들었다고 하였다.

콩 한알이 얼마나 큰가 하는것은 옥중에서 실지 콩보리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알수 있다. 흰쌀밥만 먹어본 사람들은 그 콩 한알한알의 무게를 아마 모를것이다.

그날의 감동이 너무 깊어서 그는 40여년세월이 흘렀지만 동지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80돐생일상을 받은 날 대전감옥에서 함께 지냈던 인정많은 동지들을 초대할수 없었던것이 섭섭했다고 했다. …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어떤 동지입니까?》

《먼저 콩알을 주었던 그 동지는 나보다 나이가 우이고 함경남도출신이였는데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한 사람이란것밖에 모르오.》

이렇게 응대하는 그의 눈가에는 안타까운 빛이 그려졌다.

알고보니 전진동지는 그 동지가 함경남도출신이여서 단천태생인 나를 초청한것이였다.

나는 속으로 그 이름모를 옥중동지가 오늘같은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전진동지에게 보내주신 은정어린 80돐생일상을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함께 조국에 온 비전향장기수들가운데는 한종호동지도 있다.

그는 독감방에서 겪은 고초로 해서 일어나 걸을수도 없어 항상 누워있는 몸이다.

그러나 그는 매달 시 두세편을 쓰고있다.

나는 기회를 보아 그에게 시를 쓰는 일보다 건강에 더 관심을 돌려야 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한동지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김동지, 난 다른 동지들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고 상봉모임이나 예술공연에도 참가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때문에 시를 쓰고있지요.》

이런 불같은 동지한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저 그의 높은 정신세계에 탄복할뿐이다.

하루는 한종호동지가 시 한편을 써서 보여주었다.

《콩 다섯알과 생일잔치》란 특이한 제목이였다.

읽어보니 옥중생활체험자의 체취가 확 풍기는게 대번에 감동되였다.

 

콩 다섯알과 생일잔치

오늘은 전동지가 감옥에서 맞는 생일날

동지들 빙 둘러앉아서

아침식사 받아놓고

전동지를 바라보며

무슨 뜻이라도 있는듯

벙글벙글 웃음짓네

받아놓은 식사래야

보리쌀 반, 콩 반씩 섞은 잡곡밥

무우시래기 한두오리 뜬 멀건 소금국

그나마 이리저리 도적맞고

반도 차지 못하는 밥그릇

동지들 약속이나 한듯

자기 밥에서 콩 다섯알씩 골라

빙그레 의미있게 웃음짓고

전동지 밥우에 얹어놓는다

그리고 한 동지가 말을 한다

오늘은 전동지의 생일날

변변치 못하나 생일잔치상이라 차렸소

우선 생일상 설명부터 하리다

이 콩 한알은 쌀밥을

다음 콩 한알은 찰떡을

다음다음 콩 한알은 고기국을

그다음 콩 한알은 푸짐한 반찬을

마지막의 한알은 30%짜리 축하소주를 뜻합니다

성찬이지요

우리의 성의입니다

동지의 10년 넘은 적과의 싸움

치하하며 감사보내오

앞으로도 배가의 굳은 의지 가지고

싸워 이겨나갑시다

자, 축배를 듭시다

모든 동지들 콩 한알씩 입에 넣으며

전동지의 감격어린 표정을 바라보며

얼굴에 짓는 기쁨과 웃음

전동지의 생일덕분에

《술》 한잔씩 오랜만에 맛보누만

모두 진심에서 나오는 즐거운 표정

우리는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서 이런 뜻깊은 생일잔치

또 어디서 맛볼수 있으랴

아무리 감옥에 갇힌 몸인들

면회오고 령치금 차입금 있으면

이다지도 궁핍하지 않을것을

비전향자라 하여 이것 모두 없으니

콩 한알이 없어도 좋다

물 한사발이 없어도 좋다

더 모진 탄압이 있어도 좋다

어버이수령님 한생의 높으신 뜻 받들어

우리 인민의 최대념원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는 투사

모두가 깊이 간직한 한마음한뜻

서로가 사랑하고 격려하면서

손 굳게굳게 잡고

맹세하노라 다짐하노라 필승을

조국통일 만세부를 그날까지

희망과 락관안고 용감히 싸우리

장하고나 기쁘고나 뜻깊고나

오늘의 생일잔치

길이길이 새겨두리라

저 북녘의 맑고 청청한 하늘 바라보며

 

나는 그 원고를 어느 한 출판사에 보냈는데 얼마후 문학잡지에 시 《콩 다섯알과 생일잔치》가 발표되였다.

이 시의 발표가 뜻밖에 40여년만의 해후를 가져다줄줄을 어찌 알았으랴.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날이였다.

그날 나는 병때문에 참가못한 한종호동지를 대신하여 동지들앞에서 그 시를 랑송했는데 모두 좋은 시라고 박수를 쳤다.

시랑송이 끝난 후 전진동지가 나를 찾아오더니 문득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한종호동지가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한 사람이 아니요?》

그렇다고 하자 전진동지는 무릎을 툭 치면서 《그럼 한동지는 대전감옥에서 콩 다섯알로 내 생일을 축하해준 사람이 틀림없소, 틀림없단말이요.》라고 하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런데도 여직 서로 알아보지 못했단 말입니까?》

전진동지는 면구스럽게 웃었다.

좀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수 있었다. 한창때인 30대와 40대에 옥중에서 헤여졌다가 80대, 90대가 되여 만났으니 그들이 어떻게 알아본단말인가.

더우기 한동지는 집에 누워있는 몸이였으니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지 않았던것이다.

며칠후 전진동지는 한동지의 집에 찾아가 병문안을 한 후 시 《콩 다섯알과 생일잔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도 한동지는 그때의 생일주인공의 이름은 몰랐으나 성이 전가라는것만은 기억하고있었다.

전진동지가 먼저 한동지의 손을 꽉 잡았다.

《한동지,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 전진이란 말입니다.》

한동지는 놀라와했다.

《뭐요? 그게 정말이요?》

잠시 전진동지를 찬찬히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차츰 반가운 미소가 물결쳤다.

《이렇게 보니 옳구만. 옳아.》

마침내 두 동지는 와락 끌어안았다. 40여년만에 만난 두사람의 해후가 어느 정도 뜨거웠겠는가 하는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전진동지는 한동지를 자기 집에서 식사 한끼라도 같이 하고싶다고 초청했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 앉을수도 없는 몸이여서 그 초청에 응할수 없었다.

만일 그들이 성한 몸으로 오늘은 한동지네 집에서, 래일은 전동지네 집에서, 이런 식으로 서로 오고가며 대전감옥에 있을 때처럼 롱삼아 《콩 다섯알 생일잔치》를 한번 펼쳐놓았더라면 오죽 감회가 깊겠는가.

생각할수록 아쉬운 일이다.

전진동지는 감방에서 《생일축하소주》로 받았던 콩 한알에 대한 인사로 술 한잔 올리고싶다고 하였으나 한동지는 건강이 악화되여 그 청마저도 받아들일수 없었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할아버지는 기침이 나기때문에 알사탕을 항상 입에 물고있다고 하자 전동지는 응접실 접시에 있던 알사탕 한개를 누워있는 한동지의 입에 넣어주며 《늦었지만 옥중생일 축하소주에 대한 답례인사로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한동지는 그 알사탕을 입에 넣고 미소를 지었는데 전동지도 싱글벙글 웃었다.

40여년전 생일날의 콩 한알과 40여년후의 사탕 한알!

한방울의 물에도 온 우주가 비낀다고 그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비전향장기수들의 뜨거운 인간미를 말해주는 보석같은 세부였다.

우리를 만나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전향장기수들은 누구라없이 어린애처럼 깨끗하고 순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 비전향장기수들이 그런 인간들이 아니였다면 누구도 보지 않는 독감방속에서 어떻게 수십년세월 혁명적신념을 지켜 싸웠겠는가.

2008년 1월 한종호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어린 90돐생일상을 받았다.

그는 일어나 앉을수 없는 몸이였지만 기어이 일어나 생일상앞에 마주앉았다.

《어찌 내가 누워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겠습니까. 비록 일어서지는 못하지만 누워서 생일상을 받는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는 자세와 도리가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앉은 자세로 생일상을 받겠습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은 그는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넥타이를 맨 다음 정중한 자세로 생일상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것은 한동지가 생일상을 전달받자 《경애하는 장군님,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비록 낮은 목소리지만 정확한 음성으로 말한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지닌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이다.

그날 전진동지는 침대에 누워있는 한동지의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하고 건강을 회복해서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그리고 이제 백살을 살아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자고 말하였다.

몇년전에 나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일흔돐생일상을 받았다.

그날 나는 온밤 잠들지 못했다.

잃었던 생일을 다시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덕이 너무도 고마워서 밤중에 일어나 오래도록 그이의 초상화를 우러러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이 생일이 언제인가고 물을 때면 서슴지 않고 《내 생일은 9월 2일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놀라서 쳐다본다.

나는 사람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 생명을 구원해준 날이 바로 2000년 9월 2일이기때문이라고 그 리유를 설명하면서 《그러니 난 지금 열살입니다.》라고 덧붙인다.

나의 대답은 결코 잘못된것이 아니다.

생각해보시라.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태줄을 끊은 날을 생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생일도 자기가 어떤 사회적처지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만일 내가 독감방에 갇혀있었다면 감히 생일을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안아오신 6. 15의 혜택속에 밝아온 뜻깊은 9월 2일이 있었기에 내가 조국의 품에 안길수 있었고 오늘의 참된 행복도, 사랑의 일흔돐생일상도 받아안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니 나의 진짜생일은 9월 2일이다!

생각할수록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 감사의 정이 가슴에 꽉 차오른다.

 

비전향장기수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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