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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회

제 2 편

제 5 장

1


8월 초순이였다.

그날 수풍호반의 새벽은 고요하였다. 수면은 어둠의 그림자를 채 벗지 못한듯 우중충하고 거무스레하게 번들거리는데 잠을 깬 물새 한마리가 물을 차며 날아오르자 가느다란 파문이 서서히 기슭에까지 미쳐왔다. 그 움직임에 깜부기가 한두번 흔들거리다가는 수면에 박아놓기라도 하듯 까딱 않고 서있다.

홍명희는 요즘 며칠째 낚시터에 나와앉군 하였다. 휴양기일이 끝나는 때에 와서 갑자기 새벽마다 낚시질에 더 열성을 부리는 홍명희를 그의 운전사도 리해할수 없어했다. 기일도 되기 전에 빨리 평양으로 돌아가야겠다면서 조바심을 치더니 며칠째 낚시질에 정신이 팔린듯 가겠다는 말도 없다. 된장이나 들깨를 섞은 고기먹이를 미리 전날저녁에 뿌려놓고 고기들이 밤새 모여오게 하는 솜씨는 제법 전문가들한테 짝지지 않는다.

운전사도 같이 낚시질에 나갔다. 그는 워낙 낚시질에 능하지만 되도록 홍명희보다 덜 잡아내려고 하였다. 늙은이의 심리를 생각해서 그러는것이였다. 한데 홍명희가 연송 쏘가리며 야레, 간혹 잉어까지 낚아내자 그만 운전사도 열이 올라 낚시군의 그 승벽에 몸이 달아 온 신경을 동동이에 집중하군 하였다.

일은 참 별나게 되여간다. 홍명희가 훨씬 더 많이 낚아내기 시작했는데 줄이 켕길 정도의 큰 고기를 슬근슬근 당길 때면 운전사는 시샘과 부러움에 찬 눈으로 홍명희를 흘끔 곁눈질해본다. 홍명희는 히죽이 웃으면서 아닌보살하며 고기아가미에서 낚시를 꺼낸 다음 고기를 그물중태에 넣고는 그 퍼들쩍거리는 모양을 흐뭇하니 내려다보는것이였다.

운수란 말은 워낙 낚시군들한테서 나온 소리라고도 한다. 낚시군한테는 솜씨도 중요하지만 앉은 장소와 날씨 그리고 그날의 기분상태라는것이 있으니 말이다.

이날따라 늦은 아침이 되기도 전에 숱한 고기들을 낚았는데 기분이 좋기는 두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한데 이날 아침에 운전사는 결코 홍명희의 심중을 알수가 없을것이다.

내각부수상인 홍명희는 오늘이 일요일이라 여기서 멀지 않은 청수에 내려가 리승기를 끌어다 호수가에 앉혀놓고 낚시군의 재미와 휴식에 붙들어두고싶었다. 커다란 심적고충속에서 그를 해방시켜 정신적인 여유를 주려는것이였다.

홍명희자신이 리승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 1954년 5월, 과학원 부문위원회 총회에서 (그것은 과학원창립후 1년 6개월의 사업총화이기도 했다.) 리승기원사는 다음과 같은 보고들을 제기하였다.

《고분자화학공업의 전망》

《활성탄》

《초산비닐합성》

국가계획위원회 일부 사람들이 중간공장전망계획을 반대하는것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바로잡아주신것은 얼마전이였다.

홍명희가 여기 수풍호반휴양소로 떠나오면서 인사를 올리려고 김일성동지의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이께서는 문밖에까지 나와 바래워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리승기박사한테 한번 들려주십시오.… 산봉우리가 높으면 바람도 더 많이 맞는 법입니다. 그의 주위에서 연구사들이 아무리 기슭처럼 떠받들어준다 해도 역시 바람은 봉우리가 더 맞게 되여있지요.》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말씀에 얼른 뭐라고 대답을 올릴수가 없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금 당부해주시였다.

《휴양기간이든지, 끝나서 돌아오던 길이든지 아무튼 한번 들려서 힘을 주십시오.》

그이께서는 잠시 홍명희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는듯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한데 그것이 고무적힘으로 되는게 아니라 중압감으로 리해되면 안될것 같습니다. 정신문명의 창조자들한테는 추궁이나 조급한 요구성이 역효과를 나타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선생두 작가활동을 해봤으니 아시겠지만 글쓰는 사람이 돈과 독촉에 못이겨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홍명희를 돌아보시였다. 홍명희는 《네, 그건 참 그렇습니다.》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의 감심어린 어조에는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으시고 말씀을 이으셨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만일 어떤 학자한테 행정적통제를 좋아하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면 문제를 그저 그가 조직생활을 싫어하고 무원칙한 자유를 바란다고만 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학자들이란 대체로 독자적인 활동으로 탐구하고 창조하는것만큼 서로 연구사업의 진행과정이 다르고 따라서 그들 매 개인이 처한 정신심리적인 상태가 같지 않다는걸 고려해야 할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맞게 대해주고 한가지 요구로만 사업해서는 안된다구 봅니다. 한창 잘되는 때도 빨리 하라고 하면 괜히 덤비게 되는데 하물며 잘 안되는 경우에야… 그냥둬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되니마니 시비나 하고 독촉과 요구성만 제기하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리여 위축되여 헤여나지 못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신심과 용기를 옳게 북돋아주는데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간 동안을 두셨다가 말씀하시였다.

《물론 리승기박사는 큰 학자니까 그럴 일이 없겠지만… 어쨌든 내각수상이 꼭 들리라고 해서 왔다고는 하지 마십시오. 행정적인 중압감만 받을수 있습니다.》

홍명희는 그이의 뜻이 자신에게 돌려지는 사랑인것처럼 생각되여 가슴이 뜨거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마십시오. 외람된 말이오나 제 화학이라는 학문은 몰라두 사람의 기분과 심리는 좀 돌려세울수 있을것 같습니다.》

《믿겠습니다.… 그리구 휴양에서 도중에 돌아오신다든가 하지말구 푹 좀 쉬십시오. 이것 역시 내각수상이 주는 과업으로 생각하구 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런데 휴양도중 어느날 새벽에 홍명희는 김일성동지께서 거시는 장거리전화를 받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에게 수풍호반의 기후와 물이 몸에 맞는가, 음식맛이 제대로 나는가고 세심히 물으시고는 낚시질도 하고 약간의 등산도 몸에 좋다고 루루이 당부하시였다 .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리승기박사를 이번에 진행되는 8.15해방 10돐 기념행사에 꼭 참가시키도록 하라는것이였다.

홍명희는 떠나올 때 김일성동지께서 하시던 당부까지 곰곰히 되새기며 리승기한테 어떻게 나타날가 며칠째 생각중이다가 이 낚시질을 생각해낸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내 우리 손자녀석들한테 이 할애비가 얼마나 낚시질에 솜씨가 있나 한번 본때를 보여야지. 그녀석들이 내가 낚시대를 괜히 가지고간다구 비양거리지 않겠소.…〈림꺽정〉에두 낚시질 잘하는 인물은 없다나. 하, 그녀석들 그럼 내가 뭐 걸음재간이 있어서 황천왕동이를 그렸겠나… 그러구보면 그녀석들 말이 옳긴 옳아. 나한테 없는 재간을 가진 사람들만 소설에 있거던, 나같은 인물은 하나두 없구.》

전에 없는 말수더구에 운전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도 마음놓고 낚시질을 하게 된 이 다시없는 기회와 기막힌 재미에 언제 홍명희의 심중을 헤아려볼새도 없는것 같았다.

홍명희는 거의 한바께쯔나 되는 이 압록강의 산 물고기들을 통채로 싣고 청수에 갈 심산이였다. 견물생심이라고 펄떡거리는 고기를 보면 낚시질을 하고픈 욕망은 몰라도 생선반찬생각이야 나겠지. 이게 다 고급어족이니 이 번대머리령감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맛있게 먹고 기분이 즐거워질게거던.… 허나 홍명희는 이때 미처 몰랐다, 박사라는 사람이 바다고기이건 민물고기이건 일체 비린 생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것을…

늦은 조반을 먹은 뒤에 홍명희는 운전사더러 청수로 내려가자고 했다. 바께쯔에 물을 더 붓고 그물쪼박지까지 씌워 물고기들이 뛰여나지 못하게 하고서 승용차뒤꽁무니에 싣게 하였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지 운전사는 눈이 떼꾼해지며 미타해서 물었다.

《어디로 가잡니까?》

《원사이며 교수, 박사인 리승기한테.》

홍명희의 목소리는 지어 엄숙한듯싶다.

승용차는 10리도 못되는 청수를 향해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청수공장의 첫번째 정문근처에 왔을 때 홍명희는 길에서 리승기를 발견하고 차를 멈추게 했다. 문을 열고 밖에 나선 그는 뒤에서 길을 따라오는 리승기를 기다렸다.

전혀 뜻밖에 홍명희를 만난 리승기는 누군가 해서 바라보다가 바삐 걸어와서 홍명희의 두손을 잡았다.

《어떻게 이렇게 오셨습니까?》

거의 20년이나 년배인 홍명희였으나 언제나 리승기를 깍듯이 대해주군 한다.

《한데 리선생은 왜 걸어서 다닙니까. 얼마전에 내려보낸 차가 고장이 생기진 않았겠는데…》

리승기는 얼른 말을 못했다.

홍명희는 대뜸 짐작이 가는지 머리를 흔들었는데 해빛에 그의 이마가 번뜩이였다. 리승기가 요즈음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처럼 정신적으로 극도의 위축상태에 있다는것을 간파한 홍명희는 그를 설사 낚시터에 끌어낸다 해도 그런 정도의 위안이나 고무로써는 어림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승용차는 청수공장안에 자리잡은 연구소건물앞에 멎었다. 리승기와 홍명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어떤 손님이나 가림이 없이 분수없게 삐거덕거리는 그 나무층계였다. 어둑컴컴한 복도에서 방안으로 들어서자 홍명희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일산 200키로중간공장을 들여앉히자면 왜놈들이 쓰던 합성고무중간공장건물들로는 모자라겠으니 우선 건물부터 더 지어야지요.》

홍명희는 숫제 그 계획과 확장을 반대하는 의견들이 심각히 제기되였었다는것을 무시하는 눈치였다.

《그리구 공장밖에 있는 20키로에선 계속 섬유를 뽑는다는데 이따가 갈 때 한번 봅시다.》

《뽑으며말며 요샌 제대루 되지 않습니다.…》

홍명희는 곁에 앉은 리승기의 옆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그의 무릎을 다치며 《리선생, 과학에는 순탄한 길이 없다는 맑스의 명언도 있지않습니까.》 하더니 누구나 아는 이런 말로는 안되겠다는듯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심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좀 들어보시오.… 수령님께서는 여기 일을 두고 단술에 배가 부를수 없다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구 그이께서는… 매개 학문에 솟아오른 한두사람의 봉우리가 있다면 아마 그 봉우리가 바람을 제일 많이 맞을거라구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이의을 받들어 봉우리가 제일 꿋꿋이 솟아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이의 뜻깊은 말씀에 용기를 내시오.》

리승기는 가슴에 부딪치는 충격때문에 한순간 홍명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봉우리라구… 봉우리가 더 바람을 맞는다구 하셨다니… 내가 이런 과분한 기대를 받는단 말인가!…)

《걱정만 끼쳐 죄송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리승기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홍명희는 리승기에게 말했다.

《이번 8.15해방 10돐 기념행사를 크게 하는데 선생이 거기에 꼭 참가해야겠습니다.》

《제가요? 제가 어떻게…》

리승기는 퍼그나 놀래여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홍명희는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럼 과학자대표들속에 선생이 없으면 누가 있겠습니까?… 평양에는 선생의 수고에 큰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시비군들보다 더 많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만나면 모두 반가와할겝니다.》

《제가 무슨 이렇다할 성과가 있다구…》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선생이 못 온걸 아시면 뭐라구 하시겠습니까. 접견하실 시간이 있으시겠는지는 모르겠으나 혹 안 왔다는걸 아시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는가 하는겁니다.》

그러다가 그는 일깨워주는듯 하면서도 별로 높지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동문 제 생각, 제 기분에만 사로잡혀있는것 같소.》

이 순간에 리승기는 참말로 자신이 제 머리속에서만 헤매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두고 하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말씀과 그이께서 자기를 기다리실수 있다는 홍명희의 말에 그만 불시로 솟구치는 뜨거움에 말을 못하다가 자신을 다잡으며 급히 떠듬거렸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홍명희는 리승기의 심중이 헤아려지는듯 같이 머리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리구 꼭 선생이 받은 새 승용차를 타구 청수에서 평양으로 나와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밖에 나온 홍명희는 운전사더러 승용차뒤꽁무니에서 물고기바께쯔를 꺼내게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리선생, 이건 내가 낚시질한 고기입니다. (그리고나서 운전사를 보며 웃었다, 운전사가 잡은것도 적지 않았으니까.) 이걸 가져다 부인한테 주시오. 내가 내는거라구 생각하오.》

《고맙습니다.》

리승기는 홍명희의 얼굴만 보면서 바께쯔를 받아들었다. 묵직한 바께쯔에서 그의 팔뚝으로 오르는 힘은 어떤 육체적인것이 아닌 정신적인것으로 감득되여 그 무게조차 가늠할수 없는 순간이였다.

그는 그것이 홍명희가 주는 물고기바께쯔가 아니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자기한테 주시는 기대이고 믿음이고 확신인것만 같았다.

승용차가 떠나가자 비로소 리승기는 물고기바께쯔를 내려다보았다.

이 순간에 그는 제가 고기나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까맣게 잊고있었다. 다만 그물을 씌운 바께쯔안에서 퍼들쩍거리는 고기들이 이 세상의 가장 진귀한 물고기들이여서 오늘 저녁은 제가 직접 료리를 해서 먹자고 부쩍 구미가 동할 지경이였다.

리승기는 생선바께쯔를 들고 공장정문을 지나 길거리로 나섰다. 뭇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서서 자기를 지켜보는것도 알지 못했다, 이거야말로 생전 있어보지 못한 일이니까… 리승기는 바께쯔를 버젓이 들고가면서 주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마음은 까닭없이 즐거워지고 흥분에 떠올랐던것이다. 물론 제일 놀라는 사람은 그의 안해였다. 분이는 너무나 아연해서 입도 못 다물고 말도 못했다. 연구소에서 무엇을 공급해줘도 그런것을 들고다닌적은 꿈에도 있어본적 없다.

분이는 남편이 또 그 무슨 신경증이 생겨 정상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 지경이였다.

허나 그것이 아니라는것은 명백하다. 남편은 우울한 표정이 아니라 여느때없이 얼굴에 미소까지 흘렀으니 말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지… 더구나 민물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으니 이건 아이들을 위해서일가?

《이거… 어찌된… 거예요?》

분이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안해가 묻는 말에 아무 대꾸없이 리승기는 웃방에 올라가 책상앞에 잠시 앉았다가 나왔다. 마음의 흥분을 다소 가라앉히고 부엌을 내다보던 리승기가 안해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고기요?》

《아니, 당신이 바께쯔에 들고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렇지. 홍명희선생이 날 먹으라고… 오늘 저녁엔 나두 먹겠소.》

안해는 더욱 놀랐다.

《그래요? 바다물고기도 얼간을 해야 잡수시면서도요? (재차 분이는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차라리 물고기회를 한번 입에 붙여보시겠어요? 물고기회는 창직선생이 잘 치는데.》

《글쎄 청하는건 창직동무두 청해야겠지만 손질은 내가 하겠소.… 칼이 어디 있소?》

《네―에? 뭐라구요?》

분이는 깜짝 놀라 눈만 커지였다. 기절초풍이라도 할것만 같았다.

남편이 물고기밸을 따고 손질해서 회를 치겠다니 이건 정말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안해는 모른다. 일찌기 서울과 교또에서 하숙집의 일을 거들어주면서 때로는 먹지 못하는 물고기도 밸을 따주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는것을… 그러니 비린내가 나고 미끈거리는 물고기를 손에 잡고서 칼을 대면 대였지 못할것은 무엇이랴. 물고기살을 얇게 저미는 일이 아무리 까다롭다 해도 그래 천평에 시약을 놓고 만분의 1의 정확성으로 떠서 가장 적당한 반응시간을 맞춰 시험관속에 넣는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인가. 천만에. 안해여, 내가 하면 했지 못할줄 알았어?

《여보, 내가 제꺽 손질할테니 당신은 가서 현석실장과 용석동무 그리구 창직동무, 옥동무 다 오라구 하우. 뭘 멍청히 보기만 하우? 빨리 가란데.》

안해는 여전히 눈이 퀭해서 바라보다가 아이들을 불러대였다.

《얘, 혜연아… 얘들아, 빨리 나와 아버지일을 거들어드려라.》

그리고는 비슬비슬 뒤걸음질로 문밖에 나서더니 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것이였다.

한손에 물고기를 잡고 다른 손에 칼을 든채 열려진 부엌문으로 안해의 거동을 내다보던 리승기는 껄껄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 어머닌 내가 이런다고 저렇게 혼쭐이 빠진 녀자처럼 드달려가는구나.》

하지만 부엌으로 불려나온 혜연이도 놀라서 그만 손벽을 딱 마주치면서 굳어져버렸고 아들애는 바삐 나오다가 코등에서 미끄러지는 안경을 손끝으로 어른처럼 밀어올리면서도 제 아버지가 옳은가싶어 멍청하니 보기만 했다.…

이날 저녁은 사람들까지 모여와 집안이 명절처럼 흥겨워졌다. 분이는 물고기회를 맛있게 먹는 남편을 결혼해서 처음으로 보았다. 물론 남편은 제가 잡아온 물고기를 대접하듯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권하면서 저는 저가락으로 몇점을 집는 정도로 적게 먹었지만 그것만도 분이가 보기에는 정말 놀라울만 한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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