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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회

제 2 편

제 4 장

3


벌써 여러날째 반응가마안에 엉켜붙은 페촉매를 뜯어내고있었다. 황갈색수지속에 숯가루가 엉켜붙어 돌처럼 굳어졌다. 정을 대고 망치로 쳐야만 했다.

정대에 소형함마가 땅땅 부딪쳐 그 소리에 귀청이 따가왔다.

무시로 날아오르는 파편쪼각같은것을 조심해야만 했다. 때로는 찐득찐득한 층이 나지여 더 애를 먹였다. 연구사들까지 교대로 망치질을 하였다. 림창직이 실장갑을 낀 손에 정대를 잡고 앉았고 함마질은 한태호가 하였다. 리승기는 그 모양을 지켜보고있다. 리승기도 몇번 정대를 쥐여보았었다. 요즈음 림창직의 입에서 반짝이던 금이는 볼수 없다. 그는 지금 함마가 내려질 때마다 머리를 약간 비키면서도 손에 힘을 주어 정대만은 드팀없이 제자리에 세우려고 애쓰는것이였다.

그때 문간으로 다급히 뛰여들던 어느 중년운전공이 주춤 멈춰섰다가 재차 급한 걸음으로 리승기한테 다가왔다. 그는 애써 목소리를 낮추려고 하였다.

《리선생, 저기서 뽐프에 불이… 불은 이미 껐습니다만…》

리승기는 벌써 몇번째 거기서 그런 일이 있어 별로 놀라지는 않으면서도 바삐 운전공을 따라 밖으로 나와서는 그 건물안에 들어갔다.

뽐프의 기름에 불이 붙었던것이다. 불을 끄고난 뒤라 세멘트바닥이 온통 물바다였고 헝겊쪼박들이 널려있었다. 아직 뒤거두매를 하는중이여서 누구한테도 말을 시킬수가 없었다. 저녁때 구체적인 원인을 알아보기로 하고 리승기는 거기서 나왔다. 그는 오른손 둘째손가락끝으로 안경을 추슬러올리는 그 습관적인 동작을 몇번이나 반복하면서 다시 몇분전의 그 장소로 되돌아왔다. 마음이 산란해진 그는 자신과 싸우려는 어떤 갑작스런 충동에 사로잡혀 한태호의 손에서 함마자루를 앗아내려 하였다. 한태호가 놀란듯 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리승기가 정대를 쥐고 망치질을 한적은 더러 있어도 이렇듯 소형함마의 물푸레나무자루를 기어이 달라고 붙잡으며 놓지 않은적은 없었던것이다.

《그만두십시오, 제가 교대하겠으니.…》하고 림창직이 말한것도 리승기는 듣지 못하는듯 《달라니까.》하면서 힐책하는 눈초리로 한태호를 보며 함마자루를 꽉 잡고있었다. 한태호는 자루에서 손을 풀며 하는수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장갑을 벗어 리승기한테 주려 했다. 허나 리승기는 어떤 다급한 심정에 몰린 사람처럼 그것도 못 보았는지 그냥 손에 함마를 들고 머리우에 추켜들었다.

《땅…》하고 함마대가리가 정대를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정대끝이 딴딴히 굳어진 페촉매에 부딪쳐 튕겨오르기만 한다.

리승기는 숨을 헐썩이며 세괃게 내리쳤다. 함마가 정대를 면바로 때리지 못해 한쪽으로 몸을 비칠하는 그 찰나 리승기의 얼굴에서 안경이 날아 세멘트바닥에 떨어졌다. 누구도 얼른 그 안경을 주어들념을 못했다, 가장 비참한 결과가 거기서 기다리기나 하듯이… 한태호가 먼저 그 안경을 손에 들려고 했다. 산산쪼박이 난 한쪽유리알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아츠러웠다.

리승기는 함마자루를 놓지 못한채 한태호가 손에 주어든 그 안경만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에 공장울타리밖으로 나와 20키로그람중간공장으로 찾아온 서필규와 방하민이 여기에 들어선것이다. 서필규가 급히 리승기한테로 다가왔다.

《아니? 리선생,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리선생이 꼭 곡괭이를 들어야 합니까?》

그 순간 그는 함마라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곁에는 사람들이 없단 말입니까?… 동무들은 도대체 뭘하구있소? 그래, 박사선생한테 이걸 쥐여야 옳소?》

그는 분개한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태호가 머주히 서있다가 그와 시선이 부딪치자 인사겸 어떤 사죄의 뜻으로 허리를 약간 굽혀보였다.

서필규는 별반 알은체도 않고 다시 리승기를 바라보았다.

《큰 학자선생이 이러시면 됩니까? 이게 뭡니까? 물론 여기 형편이 말이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짐짓 어성을 높였다.

《곁에서들 도대체… 그래, 동무네들은 학자선생을 아낄줄도 모른단 말이요?… 리선생두 그렇지요. 그래, 선생이 이 쇠덩이같은걸 때리면 몇쪼박이나 떼내겠습니까.…》

그러자 방하민이 곁에서 조용히 권유했다.

《리선생, 그러지 마시구 같이 나갑시다, 의논할 일두 있으니…》

리승기를 데리고 공장구내의 실험실 2층에 있는 그의 방으로 가려던 참인지라 서필규도 더 말을 안했다. 방하민이 한태호의 손에서 한눈이 빠진 안경을 받아서는 리승기한테 줄가말가 망설이는듯싶었다.

《다른 안경이 없다면 광학전문가인 제 친구한테 부탁해서 수정안경알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이게 근시경 몇도입니까?》

그 실무적이고도 현실적인 물음에 리승기는 얼른 대꾸를 못하면서 마치 어디서 갑작스레 나타났냐싶게 서필규와 방하민을 번갈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방하민의 손에서 받아쥔 외눈안경을 아무 주저없이 쓰면서 말했다.

《책상서랍에 다른 안경이 또 있습니다.》

리승기는 두사람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공장구내로 들어가 연구소건물의 2층층계에서는 리승기가 앞에서 올랐다. 그의 방이 2층에 있었던것이다.

좁고 경사가 급한 삐거덕거리는 나무층계를 오르면서 서필규가 두덜대듯 말했다.

《이게 왜놈때 건물이라지? 왜놈들이 〈가이단〉을 만들어놓은 꼴 좀 보구레.》

사실 체중이 어지간하고 다리가 밭은 사람은 그 층계를 오르기가 좀 헐치 않았다.

《그렇지. 낯이 있구만. 2층에 회의실이 있지? 여기서 회의를 몇번 지도했는데… 전쟁때니까 그게 벌써 삼사년전이지.》

맨뒤에서 층계를 오르던 방하민은 결코 힘에 부쳐서가 아니라 순전히 어떤 심리적인 요인에 의하여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단테는 말하기를 남의 집 층계는 오르기 힘들고 남의 집 빵은 목에 걸린다고 했지.… 한데 이 나무층계가 이번따라 힘든건 무엇때문일가.…)

방하민은 어떤 상서롭지 못한 길에 동행해나선듯 한 심정이였다.

이 실태조사인지 뭔지 하는 일에 관여하게 된 자신이 못마땅해나기도 했다.

그는 리승기와 서필규의 사이에 끼우게 된 자신의 마음이 편안치 못해 마치 그 불안감이 삐걱이는 층계소리로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회의실을 지나 2층복도를 걸어가던 리승기는 제 방으로 먼저 들어서며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그들은 긴 탁자를 가운데 놓고 나무의자들에 앉았다가 이내 리승기의 권고로 벽가에 놓인 개별쏘파들에 자리를 옮겼다.

서필규가 측은하고 동정어린 미소를 띠우고 외눈안경을 낀 리승기를 쳐다보았다.

《리선생, 안경부터 바꿔끼십시오.》

그뒤에 따르는 뜻은 (당신 꼴이 참 말이 아닙니다.) 하고 울리는상싶다. 그제야 생각이 난듯 리승기는 책상으로 다가가 빼람들을 아래우로 한참이나 뒤지더니 테가 그리 좋지 못한 다른 안경을 찾아내여 바꿔끼였다. 자리에 앉은 리승기는 서필규의 도착에 대한 의문에 앞서 어째선지 방하민한테 먼저 주의가 미치는것을 느끼였다. 의주병원에서 오원배로인으로부터 서경조라는 이름을 들었기때문이리라. 허나 자기가 그렇듯 가슴깊이 묻어두었던 그 서경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방하민이 여기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것이 어쩐지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방하민이 서필규와 평양에서부터 한차로 동행하여 온것으로 착각이 되기도 했다.

중절모를 벗어 탁자우에 슬쩍 올려뜨린 서필규는 인차 일어서야 된다는듯 코트는 벗지 않은채 쏘파에 몸을 잠그었다. 단추를 채우지 않은 코트의 량쪽자락을 버릇처럼 갈라붙이고는 한다리우에 다른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는 옆의 쏘파에 앉은 리승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리선생의 신색이 말이 아닙니다. 좀 쉬십시오. 그놈의 〈합성1〉호 때문에 영 늙구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리승기는 어째선지 아까 운전공이 데리러 와서 가보고온것 즉 뽐프에 불이 붙은 원인이 열이 얼마였기에 그랬을가 하는 의문이 때아닌 순간에 머리속에 튀여올랐다. 언제나 그러하듯 별로 중요치 않은 담화에 응하면서 아니, 그것이 심각한것이라 해도 저도 모르게 어떤 실험수치나 반응식 즉 탐구의 한고리가 재생되거나 불쑥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때로 동문서답을 하게 되여 자기의 무례함에 스스로 민망해지기도 한다. 서필규의 말에 무심히 응대를 하는 순간에 뽐프의 기름온도가 몇도였을가 하는 의문이 이렇게 되여 떠오른것이다. 학자의 그 어떤 방심상태에서도 탐구의 사색과정은 계속되는것이다. 재능있는 학자일수록 주위생활에 무관심한듯이 보이는것은 이때문이다.

서필규는 리승기의 기색은 알바가 아니란듯이 짐짓 소탈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해 난 화학에 문외한이기는 합니다만 리선생보다 더 국가적인 견지에 서야 하는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려올 때 화학공업부문 일군들과도 만나보니 그들 말이 바야흐로 석유화학의 시대가 시작되였다는거지요. 물론 리선생두 잘 아시겠지만 외국에두 두루 나가보면 세계적인 판도에서 화학의 물계를 나두 알게 되는데…》

서필규는 자기의 왼쪽쏘파에 앉은 방하민을 돌아보았다. 방하민이 슬며시 시선을 피했건만 마치나 그의 얼굴에서 말없는 긍정을 본듯이 서필규는 더 열을 올렸다.

《세계적추세가 원유에서 섬유는 물론 별것 다 뽑으려 한다는데 이제 쏘련에서 원유를 대대적으로 들여와서 그런 화학을 발전시켜야 할겝니다.… 그건 그렇구, 일본놈들이 〈합성1〉호를 비닐론이라구 이름을 붙이구 지금 공업화를 한다구 하지요? 그러니 다른 나라들에서 다 한 다음에 우리가 도입하면 안되겠습니까? 어쨌든 〈합성1〉호를 발명한거야 리선생이라는걸 세상이 다 아는데 그 영예와 이름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자기를 찬양하는듯 한 이 말에 리승기는 도리여 어떤 방심상태에서 깨여난듯 펀뜻 정신을 차렸다. 그는 심상치 않은 그 무엇을 감촉하며 불안한 눈초리로 서필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이 문제가 아니지요. 어쨌든 실을 뽑아 천을 짜서… 물론 석유화학두 해야 하지만…》

그러자 서필규는 얼굴에 삐주름한 미소를 그리며 거의 비양조에 가깝게 말을 했다.

《한데 보십시오. 선생이 일본에서 해놓았다는 방사와 후처리, 열처리는 세계적인 발명이라구 칩시다. 한데 그 전 공정인 폴리비닐알콜을 만들어내야 할게 아닙니까. 발전된 나라들두 아직 별루 하는데가 없는데… 우리의 기술이 부족하니 보다싶이 지금 공정마다 말썽이 아닙니까?》

흔히 독선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서필규는 다른 사람이 말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생각해보시오. 계획을 세운다 칩시다. 여기 필요한건 불수강을 비롯해서 다 수입자재들인데 어디 외화를 여기다 쓸 형편이 되구 있습니까? 그렇다구 형제나라들의 원조를 여기다 쓰겠습니까? 인민들이 당장 굶구있는데… 기계에서 밥이 나오지 않고 쌀이 나오지 않는 이상 여기두 같구같습니다. 여기 중간공장을 세우면 당장 천이 쏟아지기라두 합니까? 까놓구말해서 〈합성1〉호는 수지타산두 맞지 않는다는겁니다. 계획경제도 리윤중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쏘련의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리윤중심의 경제리론을 내놓구있습니다.… 그렇다구 우리가 리선생의 연구사업을 아주 그만두게 하자는건 아니잖습니까! 단지 대규모중간공장을 국가계획에 물리는 문제는 곤난하다는것입니다.》

점점 굳어지는듯 한 리승기의 기색을 힐끔 살피고난 서필규는 제 말의 정당성을 확인하듯이 아주 여유있게 덧붙였다.

《완전히 중지하지 않구 연구는 계속하자는건데 뭘 그러십니까.…》

여태 아무 말이 없던 방하민이 불쑥 끼여들었다.

《그렇지 않구요. 전쟁때 전시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군님께서 친히 주신 과업이나 다름없는데.》

그러자 서필규가 방하민을 지그시 쏘아보았다.

《방선생, 방선생두 학자가 아니요? 과학에서의 난관과 불가능을 정치적요인, 정치적견해로 미봉하려 하지 마시오.》

뭐라고 방하민이 입을 열려고 하자 서필규가 앞질러 그를 무질러놓았다.

《방선생자신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소? 큰 규모의 중간공장은 시기상조이구 아직 20키로에서 성과와 경험을 공고히 해야 한다구말이요. 난 그걸 과학원측의 견해로 접수했는데?》

《내가요?》

가슴이 뜨끔해진 방하민이 고개를 숙이였다. 그때 방하민을 바라보는 리승기의 눈길에서 원망에 뒤이어 랭혹한 경멸의 빛을 본 서필규는 그것이 자기한테로도 향해진것임을 간파하고서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일단 마무리짓고싶었다. 제 할 말은 다 했으니 상대방한테 생각해볼 여유를 줘야 할게 아닌가. 그는 결코 리승기의 견해를 안중에 두려고는 안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틀쯤 있을테니 리선생두 생각을 깊이 해보십시오. 래일 아침 또 만납시다.…(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점심때가 지났구만.》

그러면서 그는 방하민을 돌아보았다.

《바깥날씨가 좋은데 이런 날에 방안에 자꾸 틀어박혀있을 멋이야 있나?》

서필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리승기를 앞세우고 나무층계를 내려가며 다시금 그 삐걱이는 급한 경사를 나무람하다가 현관을 나서자 맑은 가을하늘을 쳐다보았다.

《거참, 날씨가 정말 좋군.》

심각해지는 분위기에서 물러나게 된것을 방하민은 여간만 다행으로 여기지 않았던지라 즐거운 기분으로 말했다.

《압록강가에 나가 산책할가요? 그러지 않으면 수풍발전소 지배인한테 전화를 걸어 수풍호반에서 발동선을 타는 유람을 조직할가요?》

《아아, 그럴 시간이 없소. 어느때라구 한유하게… 점심시간에 저기 어디 밭으로 나가 콩청대나 하기요.》

《네? 콩청대라니 그게 뭡니까?》

《하하, 이 동무가 콩청대가 뭔지두 아직 모르는구만. 우리 민족의 풍습에 영 깜깜이구만.》

그러면서 서필규는 이런데서는 자기가 더 낫다는듯 앞에서 코트자락을 날리며 걸어갔다.

리승기는 콩청대를 모르진 않았으나 통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필규가 서둘러 일어서는 바람에 할말도 꺼내지 못한 그였다.

가슴속에서 고패치는 감정을 터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그런 충동에 사로잡혀 리승기는 무의식중에 그들을 따라나섰을뿐이다. 그는 제가 할말이 딱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흥분을 늦추며 랭정해지려고 애썼다. 평상시엔 그저 온화하고 선량한 표정뒤에 항상 학자의 깊은 사색만이 깃들어있는듯싶던 그의 얼굴에는 지금 존엄이 손상당한데서 오는 분격이 어리여 그것의 번뜩임처럼 안경알이 해빛에 무시로 번쩍이였다.

서필규는 원사이며 교수, 박사인 고명한분을 머리쉬임시킨다는 대의명분을 세울수 있어 버젓이 앞장에 서서 공장주변의 밭으로 나갔다.

콩밭마다 가을을 한 콩단들을 무져놓은것이 보였다. 한 중년농민이 짚으로 콩단을 묶고있었다. 서필규는 협동조합의것이 어딘가고 방하민한테 물었으나 그도 알리가 없었다. 하는수없는지 방하민이 갔다와서 하는 말이 그 중년농민이 콩청대야 한단이면 되는건데 자기네 밭에 와서 하란다는것이다. 서필규는 손을 내저었다.

《아아, 개인농들거야 축내서 안되지. 말이 더럽게 날수 있어. 중앙에서 온 간부가 남의 사유재산을 침해해서 함부로 손을 댔다구… 저쪽것이 협동조합것이라니 그걸루 합시다.》

방하민이 우물쭈물하자 서필규가 제법 큰소리를 쳤다.

《여보 방하민동무, 협동소유의것이야 공동의것이구, 그러니 우리의것이 아니요? 우리의것은 내것이란 말이요.… 제꺽 한단 태웁시다.》

바람 한점없이 따뜻한 가을날이였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콩단이 타오르는 연기냄새를 가을대기속에서 기분좋게 느낄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필규는 웃동을 벗어붙인 내의바람으로 마른 풀밭에 스스럼없이 앉아 몸을 제빠듬히 젖히였다. 그는 두팔굽으로 땅을 짚은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 기분이 좋구만, 좋아. 정말 동요시절이 생각나누만.》

그는 리승기의 기분은 개의치 않은듯싶다. 아니, 그것은 일종의 너스레인지 모른다. 심각한 낯색이 풀리지 않는 리승기를 공연히 여기까지 끌고왔다는 후회가 드는 서필규였다.

콩이 다 익어 주어먹게 되자 서필규는 연방 입안에 콩알을 집어넣었고 방하민은 후후 불면서 검댕이가 입가에 묻지 않게 조심히 먹었다. 콩깍지안에 있는것이 김까지 몰몰 피웠으나 그런걸 몇알 입안에 넣고도 리승기는 고소한 맛을 도무지 느낄수가 없었다.

한참 주어먹다가 서필규는 뒤로 나앉았다.

가을잠자리들이 낮추 떠돌았다. 빨간 잠자리가 서필규의 무릎에 와앉았다. 퍼그나 기운이 진하고 동작이 굼떠진 잠자리들이다. 서필규는 손쉽게 잠자리의 날개를 잡아쥐여 그것을 쳐들며 말했다.

《우리 옛날사람들은 미개했소. 글쎄 우린 아이때 메뚜기를 닦아먹지 않았겠소. 개구리뒤다리도 잘라 구워먹구. 그리구 이런 잠자리대가리두 수태 잘라서 떼먹었는데 그게 무슨 꼭 배가 고프다든가 약이 돼서 그런것두 아니지. 그저 대가릴 떼서 먹었단 말이요.… 이 어질고 서정적인 잠자리를 말이요.》

방하민이 한탄조로 그 말을 받았다.

《옛날에야 갓 쓰고 하늘소 타고다니던 문명밖에 더 있었습니까?!》

서필규는 정말 심심풀이로 그 고추잠자리의 대가리를 뚝 떼서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사이에 넣어 비비적거리며 돌리다가 손톱으로 튕겨 툭 쏘아버리는것이였다. 빨간 몸뚱이만 남은 고추잠자리는 아직도 나래를 퍼덕이고 까부라지는 몸뚱이끝에서는 노르끼레한 알이 흘러내린다.

리승기는 그것을 보지 않고 먼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 어떤 위압감과 불안은 사라지고 이 순간에 서필규에 대한 참을수 없는 혐오감이 치받쳐올랐다.

서필규와 방하민이 앉아 서로 쉴새없이 과학원의 기구와 그 누구를 두고 말들을 했으나 그것은 거의나 리승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승기는 주위가 한없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자기는 사람들과 마주 앉는것이 아니라 인간아닌 인간허상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참을수 없이 고통스러워 푸른 하늘만 눈주어보는것이였다. 그의 안경알에는 거기에 반사된 맑은 하늘과 흰구름이 비껴흐르고있었다.

방하민과 얘기를 하던 서필규는 가끔 곁눈으로 살피게 되는 리승기의 기분을 무시할수 없었던지 래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던 말을 잊어버리고 리승기한테로 고개를 돌리였다.

《리선생, 너무 심각히 생각지 마시오. 이제 3개년계획이나 수행하고나면 무슨 여유가 생기겠지요.… 여기서 리선생의 결심을 얘기해주시오. 그렇다면 난 연구사들두 더 만나볼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들을 만나봐야 문제가 더 복잡해질뿐입니다.… 난 이제 평양에 올라가 담당부수상동지한테 보고하게 됩니다.… 우린 리선생의 과학적신념은 존중합니다. 그러니 연구사업은 계속하시고… 다만 현시기 정치적인 각도에서…》

그 이상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서필규가 여기였을 그때 리승기는 이제껏 생각해오던 말을 터치듯 불시에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물어봅시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 일을 알구계십니까? 그이께선 이 일을 어떻게 보시는지…》

《걱정마시오. 이번달 내각전원회의에는 외국출장에 간 위원장동무 대신 내가 참가할수 있는데 내가 다 보고하겠습니다.… 리선생, 공연한 기대입니다. 화학공업기지인 흥남에서 비료와 화학에서두 자금이 딸려 미처 복구를 못하는 형편에서 여기 중간공장이 승인될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 말한다 해두…》

리승기는 제 생각을 솔직히 터놓으려고 서필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난 수령님께서 그렇게 결론하지 않으시리라구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만났던 홍명희부수상동지의 말을 들어봐두 그렇구…》

그러자 서필규는 짐짓 퍼그나 놀랍다는듯 한 표정을 띠였다.

《뭐라구요? 참 무엄하십니다. 국가수반의 결론을 앞질러 짐작하시니… 난 실무일군으로서 리선생의 발언을 문제시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리승기는 서필규의 말에 분격을 느꼈으나 그만 못지 않게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리승기는 자신을 후회하였다. 자기가 경애하는 수령님의 기대를 지키지 못하는데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었는가 하는 자책감이였다.

서필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리선생은 정치적으로 너무…》

그러자 그 말에 반발하듯 리승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서필규의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을 담아 아주 명백한 어조로 말하였다.

《아니요. 난 정치적신념을 오늘처럼 크게 생각해본적은 없었소.… 그것은… 그것은 당신이 나를 그렇게 해주는것 같소.》

《아니, 뭐요?》

서필규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허나 그때 벌써 리승기는 뒤로 돌아서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였다.

리승기는 길없는 곳을 질러 와삭거리는 마른 풀숲을 밟아가며 공장구내에 들어섰다. 그는 자기의 방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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