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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제 2 편

제 3 장

2


리승기는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굴속의 실험실에서 실험과 관찰을 계속하였다.

다른 연구사와 실험공들도 밥을 날라다먹으면서 줄창 붙박이로 실험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별안간 래일에 있을 초산비닐합성의 기초실험을 앞두고 다른 공정에서도 한사람씩만 남겨두고 모두 집에 들어가라는 바람에 연구사들과 실험공들은 어리둥절해지였다. 갑자기 집에 들어가 푹 쉬라니 무슨 일인가? 허나 리승기는 자기도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과 연구사들, 실험공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려고 작정한것이 분명하다. 긴장하게 실험작업을 하던 그들을 쉬우는것이 어느모로 보나 유익하다고 본것이다. 《자, 여긴 누가 남소?… 다른 동무들은 빨리 들어가시오.》 매 실험실의 문마다 열어보며 여느때없이 단호히 울리는 리승기의 목소리였다.

집에 들어가는 연구사들과 실험공들이 굴밖으로 나간 뒤에도 리승기는 잠시 제 방에 머물러있었다. 사람들이 적어진 굴안의 실험실들은 조용하였다. 실험용뽐프의 사르락소리, 유리기구가 가벼이 부딪치는 소리, 실험과 세척에 쓰느라고 받아두는 물통에 동안뜨게 《똘랑… 똘랑…》 떨어지는 맑은 석수의 물방울소리… 그는 실험대앞에 서있었다.

실험대… 새로운 착상이나 법칙들은 례외없이 실험대앞에서 얻는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오직 실험을 거듭하는 길이 가장 믿음직하다. 따라서 그는 책을 쓰기보다 자신의 실천적인 실험과정을 성실히 서술한 연구보고문헌이 무엇보다 귀중한 탐구의 열매로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발표하는것을 최상의 기쁨으로 여긴다. 그렇다, 그는 응용화학자로서 실험과 실천을 제일생명으로 여긴다. 그에게서 실험은 곧 생활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비교하고 차이나 공통점을 찾아내여 법칙을 알아내야 하는것이니 그의 생활의 전부는 실험, 실험이다!

리승기는 굴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한번 자기의 사색을 시험관속에 비쳐보기로 하였다.

그는 지금 호젓한 정적속에서 자그만 시험관을 쳐들고 전등빛에 비쳐보고있었다. 맑고 투명한 액체속에서 생긴 침전물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는 안경을 벗어 실험탁우에 놓으면서도 여전히 시험관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한방울의 액체… 리승기의 상념은 거기로부터 우주의 무한한 화학적변화에로 줄달음치는것만 같았다.

100개가 넘는 화학원소들은 서로 그 끝을 헤아릴수 없는 자연의 수풀속에서 뒤엉켜돌아가는가 하면 단 한방울의 차이로 하여 분석결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미크로뷰레트의 유리관에서, 아니면 고열로 대지를 덥히고 섬광으로 하늘을 밝히는 태양의 노호하는 불바다속에서 그것들은 끊임없이 형태와 성질을 바꾸고 거주지와 순서를 옮기면서 자연의 삼라만상, 다양다채한 존재방식을 가져오는것이다.

안경을 벗은 박사의 인상은 엄숙한 표정의 낯모를 사람으로 변한다.

리승기는 밖에서 적들의 야간폭격기들이 날치고있을지 모를 이 순간에 여기 고요한 굴안의 실험실에서 짜장 전쟁이나 이 세상 만사를 다 잊은 사람처럼 미크로뷰레트(천분의 일 단위로 측정할수 있는 눈금표식시험관)에 한방울의 액체를 떠서 그것을 여념없이 들여다보는것이였다.

리승기의 팔은 허공에서 굳어졌다. 그 손에 들린 미크로뷰레트속의 한방울 액체를 주시하는 리승기의 눈길은 안경알속에서 까딱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사여, 그 한방울의 액체속에서 그대는 무엇을 보고있는가, 그 한방울을 통하여 전쟁의 거대한 파괴력을 이길 창조의 세계를 들여다보는것인가.

그는 그 한방울을 향해 말을 하고 의사를 나누려는듯 입술을 움직움직하였다.

문득 리승기한테는 방하민이 말하던 그 늙은 천문학자가 생각났다. 그 천문학자는 산정에서 우주를 관찰하느라고 몇년간의 전쟁이 지나간줄도 알지 못했다.

한데 리승기는 산정이 아니라 지심속깊이에서 전쟁과 상관없는 세계에 빠져있는것인가? 아니다, 그는 창조의 세계에 도전하는 파괴의 힘에 도리여 선전포고를 하고나선 사람인듯 근엄하고 도고한 자세였다. 그는 이 굴속의 여러 실험실들을 거느린 화학의 사령관처럼 보였다. 단지 군복이 아니라 깨끗한 실험복을 입고나서 매 실험실들에서 진행되는 시험전들을 무언의 동작으로 또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조언을 주며 지휘해나가는것이였다.

리승기는 래일 있을 초산비닐합성의 마지막기초실험을 앞두고 결코 불안에 잠기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김용석이 제기한 어떤 첨가제를 두고 사색에 잠겼으니 미크로뷰레트안의 한방울의 시약도 바로 그것을 위한것이였다.

마침내 그는 법랑대야에 손을 씻고나서 실험복을 벗어 굴벽에 누군지 솜씨있게 박아놓은 나무말코지에 걸어놓았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이른봄의 밤대기는 쌀쌀하면서도 어딘가 훈기가 돌았다.

굴앞에 커다랗게 솟은 그 수양버들에서 내리드리운 가지들이 까딱도 않았다. 굴간과 함께 두번째로 봄을 맞는 버드나무에서 움이 돋는것 같았다.

리승기는 부지중 그 가지를 손에 쥐였다. 겨울내내 찬바람부는 바깥에서 이리저리 뒤채기면서도 꺾이지 않은 가느다란 실가지였다. 그 수양버들은 굴간앞에 일부러 심은것같이 보였으나 사실은 우연히도 굴간을 이 나무옆에 뚫었을뿐이였다.

수양버들은 전쟁의 어려운 시련과 함께 겨울이나 여름이나 비바람속에서, 눈바람속에서 굴간을 지켜선 보초병이나 수호신처럼 보였다. 폭격에 날아오는 파편이나 적기의 기총탄을 뒤집어쓰면서도 제 혼자 갖은 경난을 다 받아내면서 오직 굴간안의 평화로운 안정과 화학실험들을 막아 서있는 한그루의 수양버들… 여름날에는 더없이 좋은 그늘을 주어 조용한 날이면 그아래 길다란 널판자의자들에 연구사들이 모여앉군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굴간에서 줄창 실험을 하다가도 혼자 나와 해빛을 쪼이며 휴식 겸 사색도 할수 있는 곳이다.

리승기는 여전히 이 버드나무밑 의자들에서 학술토론회를 가지였다. 읽은 잡지들에 대한 견해와 소감을 피력하는 잡지토론회였다. 연구사들이 새로운 착상을 발표하면서 서로 론쟁도 하군 하였다. 리승기는 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하였다. 어디선가 야간폭격기의 둔중한 동음이 멀리로 울려왔으나 이미 거기엔 습관된지 오래였다. 오히려 익숙되지 않은것은 이상하게도 압록강의 여울물소리이다. 지난날의 감회를 곧잘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앞날에로 달음치는 활기가 물의 흐름에 비껴있는상싶어 마음이 끌리는 그 여울물소리였다. 집앞에 들어서서 차광막을 친 캄캄한 부엌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섰다. 불빛이 환한 방에는 벌써 아이들이 누워 잠들었는데 안해가 의아한 눈길로 맞아준다.

《오늘 저녁두 안 들어오시는줄 알았더니.》

반갑게 부딪치는 눈길에는 서로가 알고픈 사연이 있는것만 같았다. 안해는 남편이 래일의 시험을 위해 심중해있다는것을 알았으나 남편은 안해의 표정에서 전에 없던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부부란 오래 같이 사느라면 서로 같아지기도 하고 서로 보충해준다는 말은 옳다. 사랑―그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상대방한테서 자신의 부족점을 보충하려는 지향이며 부지불식간에 서로 자기의 리상을 체현시키려고 애쓰는 과정인것이다. 그것은 흔히 사생활의 습관, 성미와 취미, 심지어는 식성에서도 표현되는것이다.

마침내 안해가 입을 열었다.

《아까 방금전에 금진이한테 갔다왔어요.…》 안해는 며칠만에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더구나 래일의 중요실험을 앞둔 그한테 말을 해야 할지 즘저리는 빛이였다. 실상 그것이 더 심중한 이야기의 서두처럼 느껴졌다. 입은 미소를 그리고있으나 눈은 정색한 뜻으로 남편의 기색을 살피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안해는 일어나서 웃방에서 자는 두 사내애와 아래방에 누운 세 딸애한테 덮개를 펴주고나서 다시 남편곁에 와앉았다. 리승기는 자는 아이들의 얼굴에 사랑어린 시선을 가져갔다. 흔히 아이들이 잠든 후에는 서로 얘기를 나누기 전에 습관처럼 잠시 아이들을 지켜보는 그들이였다. 그러느라면 자연 가슴의 흥분은 가라앉고 마음의 침체는 가셔져 밝아오르고 갈피없는 생각들도 제곬이 생기는것을 그들은 무의식중에 체험하는것이였다. 리승기가 여전히 아이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있을 때 안해는 남편의 무릎을 가벼이 다치며 조용히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금진선생의 작은오빠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와서… 회령에 있는 어머니네 집, 그 맏오빠한테서 편지가… 그래서 용석선생과 같이 금진이한테 갔댔어요.》

《나두 오늘 현석실장한테서 들었소.… 그 참 안됐어.》

리승기는 한숨을 쉬고는 덧붙였다.

《당신은 잘하였소, 가서 위로라두 해주어서.》

《용석선생은 거기 오래 있지 못하구… 제가 같이 앉았다가… 오늘밤과 며칠은 우리 집에 데려오려구 했는데 금진인 저혼자 있게 해달라누만요.》

그러면서 분이는 울분을 삭이지 못해 말하였다.

《정말 미국놈들이 원쑤예요. 그 작은오빠두 고중을 다니다가 전선에 나갔는데 미래에 꼭 과학자가 되겠노라고 했다지 않아요.… 한데 어머니도 작은오빠를 제일 사랑했대요. 큰오빠네는 세간을 나서 어머닌 혼자 계셔 금진인 그 어머니 걱정이 더 많아서… 일간에 한번 갔다오겠노라구… 이젠 려객렬차두 다니구 하니… 그리구 장차로는 어머니한테 가있어야 할가 생각한대요.…》

리승기는 제 생각에 잠긴듯 그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다가 문득 안해한테 물었다.

《어머니한테 가있어야겠다구 한단 말이지?》

《네, 그럴지두 모르겠다구 확고한 결심은 못되는것 같애요.… 전사통지서를 받은 어머니의 정상이 눈앞에 떠올라 한시두 못 견디겠다면서…》

리승기는 참말로 그 낯모를 어머니의 눈물어린 얼굴이 눈에 보이는듯싶어 또다시 머리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만 하였다.

안해는 의아쩍은듯 남편을 마주보았다.

《왜 그러시나요?》

《여보, 그 어머니를 여기에 모셔오면 어떨가?》

그 순간 리승기자신도 놀라리만큼 그것은 전혀 타당치 않는 소리같았다.

《온참, 큰아들두 있구 거기가 태를 묻은 고장이란데… 그리구 이 전쟁통에 어떻게…》

《하긴 그래.》

제집 가정사에도 무력한 그가 어찌 남의 집일에 대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수 있으랴.

분이가 남편에게 말했다.

《첨에는 용석선생이 창직선생두 데리구 금진이한테 가자구 하더군요. 그러다 그러지 말자구 했어요. 용석선생두 생각이 깊어져 그러겠지요.》

리승기는 안해의 얼굴을 바라볼뿐이다. 래일의 합성실험을 앞두고 거기에 사색이 묻히던 그로서는 얼른 여기에 주의가 돌아서지 않는다.

하지만 실험집단앞에는 그만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것만 같아 안해와의 이야기에 생각을 끌어오지 않을수 없었다. 안해는 근래에 어쩐지 사람들을 멀리하는것 같은 림창직이 전문학교 초청강의에 다른 사람을 보내는것도 다 금진이를 피하는 눈치가 아닌가고 하였다. 금진이쪽에서도 창직선생한테 그런 불행이 생기자 도리여 멀리서 동정할뿐이지 감히 찾아가 위안의 말 한마디 못했다는것이다.

《글쎄, 용석선생두 그렇게 보았지만…》

안해는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간혹 그들이 길에서 서로 만나도 금진이 그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만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진이 어쩌다 뒤를 돌아다볼 때는 있어도 창직이쪽에서는 머리를 짓수그린채 뒤도 옆도 안 보고 걸어가는데 마치나 금진이라는 녀자한테서 황급히 멀어지려고 애쓰는것 같다는것이다.

《하지만 녀자의 마음이란 이상한거예요. 금진이 제가 창직선생한테 다가서지 못하더니 이번 일을 당하고는 누구보다 창직선생을 야속해하는것 같군요. 녀자들의 약한 마음이란 이런 때 동정과 위안을 바라는건 사실이지요.》

그러던 안해는 전에없이 뜻깊은 말을 한다.

《제가 불행을 겪으면 남의 불행이 그림자처럼 보인다는 말두 있지만… 남의 불행에 제 불행까지 겹치면 더욱 괴롭기만 하지요. 그렇지 않나요?》

한낱 가정주부에 지나지 않는 안해가 인생철학의 진실을 밝히는 현명한 예언자처럼 말하는데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것이 도무지 어리석게 들리지 않고 그럴상싶기만 하였다.

림창직이 그 불행한 소식을 들은 때로부터 퍼그나 시간이 지나갔다. 그의 가슴속에 남은 재속에 한점의 불티라도 있어서 삶의 활력이라는 바람결에 서서히 타올라 락천가, 랑만가인 그의 미소어린 입귀에 다시금 해빛에 반짝이는 금이를 보게 되리라고 믿은 사람은 비단 리승기 혼자뿐이 아니였다.

그러나 리해할수 없는 사람은 림창직이보다 리금진이였다. 림창직을 오빠처럼 그토록 존경하고 고향과 안해를 남반부에 두고온 사람을 동정하여 온갖 사생활을 누이동생처럼 보살펴주던 리금진이 바로 림창직의 안해가 잘못되였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자 단 한번, 단 한마디의 위로의 말을 하고는 졸지에 물러나 먼장에서 바라보다니?…

그러다가 이제는 자기쪽에서 림창직이를 더 야속하게 여기다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인정세계란 천태만상이니 그것은 차라리 화학의 세계에 대비도 안되게 착잡하고 리해할수 없는것이였다.

리승기는 바로 리금진이 녀성이기에 그것을 안해한테 묻고싶은것이다.

《여보, 금진선생이 왜 지금에 와서 창직선생을 피하는지 당신 생각은 어떻소?》

그러자 분이는 칭원하듯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가 전사해서 슬픔에 잠겼는데 하필 이런 때에 그걸 물어요?》

그러다가 분이는 종당에는 그것이 더 중요하리란걸 알았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녀자들의 마음을 그리두 모르니… 그전때 내 마음두 그렇게 몰랐댔지요?》

《건 또 무슨 소리요?》

《그 얘긴 좀 있다 하기루 하구… 아니, 그렇지두 않아요. 내 얘기자 금진이 얘기 비슷해요.》

리승기는 의아해서 안해를 마주보기만 하였다. 안해는 여느때의 공손하고 사려깊은 표정이 아니라 어떤 손우누이나 어머니들이 짓는 그런 도고하고도 근엄한 표정이였다.

《그건 그래요. 창직선생한테 불행이 생겼으니… 그것도 이만저만한 불행인가요… 그런 류의 불행은 처녀한테 굉장한 동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만큼 둘사이의 장벽은 더 높아지는거예요. 금진은 창직선생을 스승으로 생각하였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래요. 갑자기 보통의 남자와 녀자사이처럼 자기들의 관계를 상상할수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던 분이는 아무 대꾸없이 방안의 한곳을 응시하는 남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분이의 눈초리는(저이는 무슨 생각을 하실가.… 그러니 우리 사이의 옛날얘기두 해야 하지 않을가.) 하고 말하는것만 같았다.

분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구 녀자의 자존심이라는것이 있어요. 아무리 성스러운 죽음이라도 안해가 죽은 그런 사람에게 달려간다는것은 보통의 용단이 있어서는 안되는거예요. 적어두 우리 조선녀성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래요. 물론 그 죽음은 조국을 위한 희생이지만… 리금진의 경우에는 그런 훌륭한 녀성을 제가 대신할수 없다는 생각두 있구… 그러나 보다는 처녀의 자존심때문이지요.》

리승기는 안경을 벗어들었다가 다시 눈에 끼였다. 그는 듣고만 있었다.

분이는 말을 이었다.

《당신이 철도 없는 때에 조혼을 했고 그후엔 불행에 빠졌더랬는데… 그때 당신을 찾아갔다가 그것을 알았을 때 나의 가슴속에서 동정심과 자존심이 어떻게 싸우고있었는지 당신은 아직 그것을 다 모르구계신단 말예요?》

분이는 와락 남편의 무릎을 잡아흔들려다가 손을 움츠리며 조용히 말하였다.

《용서하세요. 그만 제가… 난 그저 창직선생과 금진이사이를 너무두 당신이 리해를 못하셔서… 그러니 내 말을 노엽게 생각지 말아주세요. 그리구 그 일은 나와 용석선생한테 다 맡겨놓으세요.》

리승기는 말없이 앉았다가 혼자 속으로 생각하였다.

(애정이니 세태인정이니 하는건 언제가나 영 깜깜이니. 난 그저 어느때든 한낱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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