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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33 회

제 2 편

제 3 장

1


낮동안 사나운 눈보라가 울부짖었다. 세찬 눈바람에 이 세상밖으로 밀려난듯 겨울해는 허공중천 어딘가에서 별로 따스한 빛을 뿌리지 못했다.

딴딴하게 다져진 눈길은 강추위에 얼어붙어 얼음판처럼 매끄러웠다. 게다가 하루전에 눈발이 다시 내리면서 보라질을 했다. 그래서 어떤데는 눈이랑들과 눈더미들로 하여 길바닥을 얼른 구분할수가 없었다. 눈바람은 길아래 자드락의 관목숲까지 아예 눈속에 깊숙이 묻어버리고말았다.

바로 이러한 길우로 한대의 발구가 미끄러져가고있었다. 소가 없이 앞에서 두사람이 끌고 뒤에서 또 두사람이 미는 발구였다.

네사람은 성한데없이 깁거나 터져서 볼품없이 되여버린 솜바지저고리들을 입었다. 발에는 모두 통버선에 짚신감발이였다. 머리만은 제가끔이였다. 한사람은 털모자의 귀덮개를 내리고도 목에 수건을 둘러 입까지 막았고 또 한사람은 토끼털귀마개를 붙이고도 털수건을 볼아래로 내리동였다. 한 청년은 새까만 스키모를 썼고 네번째 사람은 바람에 귀덮개가 너펄거리는 솜모자를 썼다.

앞에서 발구를 끌어당기는 두사람중에서 한사람은 김용석이고 다른 사람은 검은 스키모에 녀자머리수건을 목에 감은 한태호였다. 봄에 한달만에 퇴원한 한태호는 제말마따나 《오금에 피가 아홉동이나 고이는》나이에 그쯤한 부상자리는 나은지 열삼년이나 된다고 하면서 여름과 가을동안 줄창 공장과 지하실험실을 왔다갔다하면서 제 할일을 다 찾아하였다. 이번에도 먼길을 못 나서게 극력 만류했으나 그자신 누구도 몰래 슬그머니 길차비를 하고 산을 질러 일행이 오는 길앞에 떡 나타나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같이 떠나게 되였던것이다. 털모자를 쓰고 목에 감은 털수건으로 입까지 가리운 김용석은 한태호보다 나이 10년쯤 우였으나 몸이 다부져서인지 더 힘을 쓰는것만 같았다. 허나 몸이 호리호리하고 날파람있게 생긴 한태호는 실상 힘에서도 김용석이만 못지 않다.

150키로그람짜리 암모니아봄베 두개를 싣고 두만강가의 화학공장에서 떠난지도 스물닷새째, 천신만고하여 여기까지 도달한 그들이였다. 초산비닐합성에는 랭동장치가 필요하고 거기에는 당장 암모니아가 있어야 했다. 한데 전쟁중에 암모니아는 오직 몇천리 떨어진 그 먼 고장의 화학공장에만 있었다. 조국땅 최북단까지 빈몸으로 걸어서 간 그들은 가지고간 돈으로 거기서 소와 달구지를 샀다. 허나 오면서 도중에 소로 끌고온것보다 사람의 힘으로 운반한 거리가 더 많다고 볼수 있다. 소가 폭격에 죽기도 했거니와 얼음처럼 미끄러운 고개길에서 소가 영 어쩌지 못해서 사람의 힘으로 끌 때가 많았던것이다. 다섯명이 떠났으나 한사람은 끝내 오다가 촉한을 만나 메돼지열과 곰열을 구해놓고 설한령밑 리서기장네 집에 떨궈놓고 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눈바람을 맞받아나갈 때면 솜옷도 랭기를 막지 못했다. 네사람 다 20대, 30대 젊은이들이였으나 이젠 맥이 빠질대로 빠지고 할말도 다 해버려서 그저 어떤 숙명적인 힘에 끌리듯 숨을 헐썩이며 끌고 밀고 미끄러운 길에 발을 벋디디느라 안깐힘을 쓸뿐이였다.

평평한 길은 물론 올리막길이 차라리 나았다. 내리막에서는 바람이 나지 않게 발구채를 들어 모두가 뒤에서 당기면서 조금씩 드티여 내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한사람이 발구에 싣고오는 괴목을 들고 발구밑에 요령있게 끼웠다뺐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차직해서 골짜기아래로 굴러뜨리면 이 귀중한 암모니아봄베를 어느 눈구뎅이에서 찾겠는가.… 그럴 때면 발을 벋디디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발구가 쏠리는 내리힘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발구우에는 도중에서 만난 걷지 못하는 한사람이 앉아 타고왔는데 그는 말하자면 일행의 다섯번째였다. 봄베 두개의 짬에 가마니를 깔고 솜외투를 몸에 감고앉은 그 사람은 이따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것이 아무래도 몹시 거북살스러운 모양이다. 개털모자를 푹 뒤집어쓴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봐서야 그가 방하민부국장임을 알아볼수 있었다.

부득불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된 방하민은 옹색해서 자주 올리막이나 급한 내리막에서는 내려 지팽이를 짚고 절뚝거리였다. 한발자국이라도 제힘으로 걸어보려는것이였다.

이틀전에 방하민이 이 발구를 만나게 되였는데 그때 그는 너무나도 반갑고 다행스러워 발구에 앉아오려는 생각은 못하면서 제가 처한 딱한 형편부터 서둘러 설명했다.

《말두 마오. 글쎄 평양에서 동해안쪽에 전시생산문제로 화약공장에 갔다가 돌아서 청수로 가는 길인데 적 구라망편대에 걸려 〈윌리스〉가 기총소사를 받아 운전사는 중상을 입구 난 천명으로 살아났소. 오면서 달구지도 타구 걷기두 하다가 발에 동상을 입어 벌써 보름째 이러구있지 않소.》

방하민은 제가 발급받아가지고 다니는 전시특별증명서의 덕분으로 리인민정권기관의 방조를 받아 산기슭의 외딴집에서 동상을 치료받았다. 집주인이 꿩의 대가리를 구해다가 약을 만들어 방하민의 발에 발라주었고 주인집녀인이 자주 콩자루를 바꿔주어 그속에 발을 묻은 덕분에 언독이 거지반 다 빠졌다는것이였다.

어디로 무엇때문에 갔다오느냐고 묻던 방하민이 사연을 듣고는 그만 입을 딱 벌리였다.

《아니? 그래 그 먼델 갔다온다는 말이요? 그 암모니아때문에?… 거참, 근 한달동안이나 엄동설한에 소처럼 끌구온단 말이요?》

《랭동장치가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지금 그게 거기밖에 더 있습니까?》

김용석이 이렇게 무뚝뚝하게 말하자 방하민은 급히 경탄조로 말투를 바꾸었다.

《하여튼 모두들 용소, 용해. 정말 영웅조선의 기상이요.》

방하민이 이번에는 제일이 야단났다고 일종의 푸념을 시작했다. 군수생산때문에 자기를 기다릴것이고 더우기 자기는 맡은 사업을 결속하고 이제는 과학원사업에 나서야 한다는것이였다.

김용석은 오래 생각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 발구에 앉아 같이 떠납시다.》

방하민은 《그건 안되오, 안돼.》하면서 손을 내저었으나 김용석이 재차 《두말 말구 떠납시다. 우리가 그래 혼자 떠나겠습니까?》하고 말하자 방하민은 《하참, 이거야, 이거야 어디… 하여튼 고맙소.》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발구에 매달렸던 절인 고등어 두손을 쪄서 감자조밥을 배불리 먹고난 그들은 주인집에 부국장동지를 돌봐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절인 고등어 몇손을 남기고 떠나왔다.

길을 떠날 때 처음에 방하민은 지팽이를 짚고가려고 고집을 부렸으나 도저히 발구를 따라갈수 없게 되였다. 그래서 그는 한숨을 짓고 곁에서 권하는대로 암모니아봄베우에 앉게 된것이다.

발구가 평탄한 길을 따라 미끄러져갈 때면 방하민은 미안한감이 어지간히 덜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그래도 이렇게 생각했다.

(마차라도 있었으면… 살같이 달리는 마차의 말방울소리! 우리 선조들은 기껏 생각해냈다는게 소발구지…)

어쨌든 마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끄는 발구우에 앉았으니 마음이 송구한건 사실이다.

(지나가는 자동차라도 있었으면…)

방하민은 힘들게 끄는 그들한테 자꾸 말을 시킬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마음이 더욱 솗아지는것이였다. 제가 할일은 그토록 지치고 맥빠진 사람들한테 힘을 주고 그들을 위안하는것이다. 하다못해 유쾌한 롱담으로 그들을 웃기던지… 그래서 그는 무슨 걸죽한 육담이라도 해보려 했으나 원체 그런건 속된것이라고 여겨온지라 별로 생각나는것이 없었다. 《데카메론》에서 읽은 얘기들은 몇개 기억했으나 그것은 이런 힘든 길에서는 너무 길어서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김용석의 환심을 사고싶었다.

《용석동무, 이제 과학원안에 화학연구소가 생기오. 쏘련에서처럼 우리도 연구소안에 여러개 실을 꾸려야지. 거기로 넘어올 생각은 없소?》

《지금 저야 어디 그걸 생각할 땝니까?》

《하긴 그렇지.… 그리구 앞으루 동무네 중앙연구소두 화학연구소에 통합될수 있으니까…》

방하민은 김용석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은근히 암시해놓는것을 잊지 않았다.

발구우에 앉아서 가는 그는 곁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별로 반대할 의사는 없는것 같기도 하다.

오후에는 눈보라가 잦다. 저녁끼니를 길가의 어느 농가에서 치르고난 그들은 하도 달이 밝고 바람없이 고요한 밤이여서 내처 더 길을 축내기로 작정했다. 더구나 이제 하루만 더 가면 청수에 닿는다는것으로 일행은 지칠대로 지친 몸임에도 빨리 한걸음이라도 더 가려고 조바심을 쳤다.

길이 평탄해지자 방하민은 김용석에게 말을 건늬였다.

《용석동무, 난 동무네보다 먼저 청수를 떠나 평양에 갔댔으니 모르겠는데… 그래 창직동문 어떻게 하구있습디까? 슬픔이 좀 가라앉았겠지?》

김용석이 발구채에 별로 힘을 주지 않아도 되였기에 뒤돌아보며 말했다.

《며칠 두고… 술로 그가 잠이 들게 했습니다. 안해가 정말로 잘못된걸 그가 어찌 믿어내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내각사무국 지도원두 만나구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녀성군의두 만났구… 안해의 품속에서 나온 사진까지 있으니 믿지 않을수가 없게 되였습니다.》

《아, 참 슬픈 일이요. 시간이 상처를 아물려주겠지…》하더니 방하민은 뒤말을 이었다. 《동무가 동지애를 발휘해서 옆에서 잘 위안해주구 힘을 주느라구 수고가 많소.》 잠시 말이 없었다. 방하민은 순전히 김용석을 새 세대 지식인으로 높이 일컬어주고싶은 마음에서 발구채를 힘겹게 끄는 그의 뒤모습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튼 동문 그 집단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란 말이요.… 동문 새형의 지식인으로서 리선생한테두 좋은 영향을 주고있지 않소!…》 그러자 김용석이 피끗 돌아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발구채부터 끌려고 다시 머리를 돌리고마는것이였다. 김용석의 기색을 본 한태호가 제꺽 방하민을 돌아보며 말머리를 돌리였다.

《한데 부국장동진 어떻게 돼서 중앙아시아에… 그 까자흐 뭐라던가, 거기에 가 살게 됐습니까?》

《까자흐스딴이요. 스딴이란 땅이란 뜻이지.》

방하민은 전혀 아는 티를 내지 않으며 친절히 말해주었다.

그렇다. 그는 그 어떤 보상과도 같이 스스로 겸허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고국땅에 와 처음으로 제가 걸어온 지난날을 허심탄회하게 돌이켜볼수가 있은것이다.

비행기소리가 멀리서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달빛을 환하게 반사하는 눈덮인 길과 산기슭, 하늘에는 달빛과 눈의 반사광으로 별들도 희미시 잠이 드는것만 같았다.

방하민은 서글픈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비참하였소. 만주에서 일본놈들한테 간도〈토벌〉때 아버지도 잃고 형도 동생도 다 잃고 어머니와 나만이 남았소.》

발구를 당기고미는 네사람은 이 말에서 대번에 방하민에 대한 련민의 정을 똑같이 느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뒤에서 밀던 청년은 방하민이 편히 기댈수 있도록 보퉁이를 잔등에 받쳐주기까지 했다.

《어머니와 나는 원동지방에 건너갔다가 다시 중앙아시아로 가게 되였소. 그때 나에게는 양아버지가 생겼소. 양아버지는 일찌기 독립군에 참가했다가 왜놈의 간도〈토벌〉후 혈혈단신이 되였고 원동에 들어갔지요. 거기서는 독립군을 저마끔 제편으로 끌어당기면서 상해파와 이르끄쯔크파가 싸우고 게다가 대국들의 흥정판까지 벌어져 류혈참극이 벌어졌단 말이요. 간신히 거기서 살아남은 양아버지는 모든 주의주장과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중앙아시아로 갔지요.》

한태호가 제꺽 그 말을 받아챘다.

《그게 그 흑하사변이라는게지요?》

《그렇소, 흑하사변이지. 어머니와 양아버지는 다같이 조국을 잃은 몸으로 이역만리에서 서로 의지하게 되였소. 그때 내 나이 열한살인가 열두살… 양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도땅이였는데 나에게는 양아버지가 제 고향을 두고 하는 말들이 곧 조국에 대한 표상으로 되였소. 대나무숲과 소나무숲, 넓디넓은 벌과 강줄기… 사실 양아버지는 계부가 아니라 내 친아버지나 다름없었소. 그러면서 언제든지 조국에 돌아가면 전라도 고향땅에 가보라구 하시였소. 사실 난 만주에서 태여나서 고향에 대한 표상은 곧 양아버지가 나한테 들려주는 그것이였소.… 힘들지 않소? 이제는 새벽이 되겠는데 좀 쉬여야지 않겠소.…

저기 어디 집이 있을상싶은데…》

하지만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바늘로 볼을 따끔따끔 찌르는것처럼 날이 찼다. 밤은 고요했고 별들도 조용히 깜박이며 굽어보는듯싶다. 누구도 멈춰서려고 하지 않았다.

《양아버지는 민족이 문명하자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구 늘 말씀했소. 물론 나라를 찾은 다음에 말이지. 소박한 생각이긴 하지만 절절한 념원이였소.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만나서도 자식이란 나 하나뿐이였소. 두분이 모든 힘을 다해 내 한사람 뒤바라지를 했댔소. 그래서 나는 스웨르들롭스크종합대학에 입학하였댔소. 양아버지는 쏘도전쟁기간에 돌아가셨소. 그의 유언은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내가 조선에(양아버지는 고려라고 말하군 했소.) 나가 과학자, 기술자가 되라는거고 다른 하나는 자기한테 은인이나 다름없는 오동진을 장차 찾아보라는거였소. 오동진을 못 만나면 그와 친척간인 청수동에서 사는 오원배라는 사람을 찾아보라는거였소.》

《아니, 그 오원배라는게 종합대학에 간 정해동무네 아버지가 아닌가요?》

한태호가 쾌재를 올리며 소리쳤다.

《그 오원배로인이 맞소. 전쟁직전에 의주에까지 갔댔지.… 지금부터 썩 오래전에 오원배로인은 우리 양아버지랑 같이 청수동에서 광제청년회에 속했소. 우리 양아버지는 후에 오동진의 광복군총영에서 오동진의 막하에도 있었다더군.… 우리 양아버진 그 끔찍한 피바다… 간도〈토벌〉이후에는 더구나 흑하사변 다음에는 현실도피라 할가 은둔생활이랄가… 그렇게 됐지요.》

김용석이 멈춰서자 모두 발구와 함께 멎었다.

《부국장동지, 저기서 한두시간 쉬고갑시다.》

전에없이 김용석의 목소리는 방하민의 앞에서 깍듯이 울리였다. 매 사람에게는 제나름의 운명이 있고 깊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김용석의 머리를 지배한것이다. 흩어졌던 조선사람들이 모여와 얼굴도 채 익히기 전에 이런 큰 전쟁판에 맞다들렸으니 아직은 서로를 다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르지 않은가.… 곧잘 의협심에 불타는 곧은 성미이면서 이런 때는 그만큼 더 너그럽기도 한 김용석이였다.

방하민이 발구에서 내릴 때 그를 먼저 부축해준 사람도 역시 김용석이였다. 한태호는 길량식자루를 어깨에 걸메고 저만치 앞서 달려들어가고있었다. 방하민한테서 또 새로운 얘기를 들으려고 조급히 서두르는것만 같았다.… 새벽무렵, 서산에 기우는 달은 시퍼렇게 얼어 푸르께한 차거운 빛을 뿌리고있었다.

…간고하고도 준엄한 12월이였다.

미국대통령으로 된 아이젠하워가 남조선에 기여들었다. 아이젠하워는 비밀리에 군용기로 남조선에 날아와 클라크를 만나자 인사도 없이 《죤은 어디에 있는가?》고 하면서 침략군으로 와있던 제놈의 아들부터 찾았다. 밴프리트의 아들이 야간폭격으로 북반부에 날아왔다가 맞아죽고 클라크의 아들 역시 싸움터에서 다 죽게 된것을 겨우 비행기로 빼내여 미국에 실어보낸 판이니 제 아들놈부터 찾을만도 하였다.

제 아들의 생존을 확인한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선거전약속을 헌신짝같이 집어던지고 12월 2일~5일까지 남조선에 앉아 매일같이 전쟁을 확대할 밀담을 벌렸다.

여기서 클라크는 《군사교착상태를 뚫고나가기 위해서는 원자탄이 요구된다.》고 떠벌였다.

남조선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이젠하워는 순양함 《텔레나》호에 각료들을 모아놓고 조선에서 패전을 만회하며 여지없이 떨어진 미국의 위신을 회복시킬 방도를 론의하였다. 그러나 아무리해야 뾰족한 수가 나지 않자 그것을 맥아더한테서 들어보려는 해결책을 찾고 미국에 돌아가자 아이젠하워는 즉시 덜레스와 맥아더를 모셔다 회합을 하였다.

이 회합에서 패전장군 맥아더는 조선전쟁을 승리에로 이끌 《명백하고 확실한 해결책》으로 원자무기의 사용, 중국령토에 대한 대규모적폭격, 중국에 대한 봉쇄와 아울러 조선전선에서 일대 공세를 취할것을 내놓았다. 이 전쟁확대계획은 미국전쟁상인들의 미친듯 한 지지를 받았다. 아이젠하워는 《신공세》를 준비하여 조선전선에 막대한 함선과 비행기, 전투기재, 병력을 새로 투입하였으며 동서해안 상륙작전을 벌릴 준비도 대대적으로 진척시켰다. 이리하여 1952년~1953년의 조선전선에서의 군사정치정세는 극도로 긴장해지고있었다.

하지만 바로 아이젠하워의 남조선방문 하루전인 12월 1일, 우리 민족사에서 첫 과학원 개원식이 성대히 진행되고 거기서 공화국정부의 축하문이 전달되였다. 아직 아이젠하워가 남조선에 틀고앉아 전쟁확대음모를 꾸미던 12월 5일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제3회 졸업식이 순천군 백송리에서 엄숙히 거행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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